181104 룻기1장1-18,신학적 관점.hwp
2018.11.4. 룻기 1:1-18, 신학적 관점
오늘 룻기 본문의 바탕에는 (비록 하나님은 전면에 등장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비차별성(inclusivity)의 신학이 깔려있다. 룻기는 아마도 예루살렘 재건기에 이루어진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개혁에 대한 비판으로 나타나게 된 것 같다. 이 두 지도자는 외국인 부인과 그 자녀들을 자기네 영토에서 추방함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순수성과 인종적 단합을 도모하려 했다. 룻은 외국인 부인으로서 이스라엘의 본질적 가치를 확산할 수 없는 처지였지만, 경이로운 과정을 통해 민족의 구원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야기는 피난과 죽음으로 시작된다. 베들레헴의 기근을 피해 엘리멜렉과 그의 아내 나오미, 그리고 두 아들이 이스라엘의 원수 나라인 모압 땅으로 피난을 간다.(1-5) 그 후 죽음이 그들을 계속 덮친다. 엘리멜렉과 두 아들이 세 과부를 남기고 죽는다. 과부들은 큰 위험에 처했다. 왜냐하면, 남편이나 아들이 없다는 것은 그들을 먹여 살릴 사람이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오미라는 이름은 “기쁨”이라는 뜻이 있다. 그러나 그녀는 뼛속까지 기쁨과는 반대되는 고통을 겪고 있다. 나중에 그녀는 “전능하신 분께서 나를 몹시도 괴롭게 하셨으니, 이제는 나를 마라라고 부르십시오”(20-21)라고 친구들에게 말한다. 그녀는 철저하게 혼자이고,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여, 절망에 빠진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챙긴다. 공허한 인생에 대해 하나님을 탓하는 순간에도, 그녀의 며느리 룻의 이름은 그녀의 운명에 반전이 있을 것을 예시한다. 룻의 뜻은 “친구”이다.
룻은 예상을 초월하여 나오미의 동반자가 되었고, 상상을 초월하여 자신의 이름을 성경의 책 이름으로 남겼다. 룻은 외국인, 여성, 과부, 그리고 더 중요하게, 이스라엘의 적이었다. 이 책은 룻을 “모압인 룻”(22)이라고 부름으로 계속해서 룻이 원수 민족 사람임을 상기시킨다. 나오미가 유다 사람들에게는 양식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려고 준비하면서 며느리들에게 하나님이 마련해 주실 새 남편과 미래를 찾아 그들의 집으로 돌아가라고 종용한다. 룻은 그것을 거절한다. 룻은 오히려 시어머니 곁에 더 달라붙는다.(14)
룻의 효성은 시적으로 아름답게 표현된 서약에서 잘 드러나는데, 여기에 이 책에서는 처음으로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16-17) 모압 여자 룻은 시어머니를 위해 자기 민족과 이별한다. 룻은 나오미 함께 가고, 머물고, 묻힐 것이다. 룻은 나오미와 같은 장소에서 죽을 것이고, 나오미의 겨레와 신을 자신의 겨레와 신으로 섬길 것이다. 룻은 이 서약을 공식적인 맹세로 확정한다: “내가 어머님을 떠난다면, 주님께서 나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더 내리신다 하여도 달게 받겠습니다.”(17) 고대 사회에서는 부족과 가족 관계가 개인의 정체성과 그가 믿는 신을 결정했고, 누구도 스스로 그것을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룻은 시어머니와 유대의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민족과 신을 포기했다. 외국인이 신앙인이 되었다. 이방인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인생을 바치겠다고 고백했다.
본문에서 신학적 메시지는 눈에 띄지 않게 은은하게 깔려있다. 하나님은 자연법칙을 거스르거나 죽은 사람을 살리는 식의 기적을 행하지 않는다. 그 대신, 하나님은 룻이라는 인물과 그녀의 흔들리지 않는 충성을 통해 역사하신다. 즉, 낯선 자, 과부, 적국의 여자가 충성과 헌신의 모범이 된 것이다. 이 이야기 속에서 모압 여자 룻의 충성과 헌신이 다윗의 가계를 구원할 것이다. 외부인이 민족의 끊어지는 대를 이을 것이다. 그녀는 백성을 구하고, 죽어가는 씨에 생명을 줄 것이다. 이방의 영향을 배제함으로 민족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했던 에스라와 느헤미야에 눈에는 단순해 보이는 룻의 이야기가 위험한 정치적 비판이자, 하나님이 모든 민족의 하나님이라는 신학적 선언으로 보였을 것이다. 룻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섬기기로 작정한 하나님은 낮은 자, 과부, 국외인, 원수의 하나님이다. 인종적 순수성을 정치 지도자들이 애써 지키려고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요구하시거나 바라시는 것이 아니다. 이 하나님은 어느 한 민족에만 속해있지 않고, 모든 사람들을 이 넓은 가족의 울타리 안으로 모으신다.
룻기에서는 하나님이 주인공이 아니다. 이야기는 인간의 일상사 가운데 전개되고, 하나님은 인물 간의 상호 관계와 이야기의 반전을 위해 암묵적으로만 등장한다. 룻은 나오미의 인생을 절망과 죽음에서 풍요와 희망으로 바꿔 놓았다. 황폐함과 불행으로 시작되었던 이야기가 풍요로운 결실과 새로운 탄생으로 마무리되었다. 새로운 생명은 아기에게뿐 아니라 한 가문과 온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진 것이다. 나오미는 손자를 무릎에 앉히고 그녀의 남편 이름이 미래에도 기억될 것을 상상해본다. 나오미는 손자 오벳이 태어날 때 이렇게 말했다: “주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이 집에 자손을 주셔서, 대가 끊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4:14) 룻은 달라진 나오미와는 대조적으로 굳건하고 충실한 모습을 계속 지킨다. 그녀는 들에 일하러 가기로 스스로 결정하고,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신중하게 움직인다. 결국, 보아스와 결혼하고 아들 오벳도 낳게 된다. 모압 여자 룻이 다윗의 조상이 되었다. 왕이 원수 나라 과부의 후손에서 나오게 되었다. 룻의 이야기는 흔히 겪게 되는 험한 인생사에서 어떻게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오늘의 본문은 숨어 계신 것 같지만 활동하시고, 인생의 반전을 일으키시고, 황폐를 풍요로, 죽음을 재탄생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이다. 하나님의 비차별적 섭리는 원수를 통해, 공동체에서 가장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사람을 통해 이루어진다. 마태복음은 룻을 예수의 족보에 포함함으로 예수가 다문화 가정의 후손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밝힌다. 예수의 족보 자체는 백성들과 이스라엘의 원수들과, 차별받는 사람들 모두를 포용하는 하나의 신학적 선언이다.
Kathleen M. O’Connor,William Marcellus McPheeters Professor of Old Testament
Columbia Theological Seminary, Decatur, Georg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