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랜드를 가기위해 춘천을 향한 것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형제들 얼굴도 보고, 강원도 고유의 재래된장인 막장과 메밀전병도 구입할 겸 나선 길. 거의 절연한 채 오래 연락끊고 지내온 형제들임에도 최근 연락이 닿은 후 제 마음을 열어보고자 했으나 쉽지만은 않습니다. 결국 춘천에 왔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은 채 안부전화만 하고는 말았습니다. 마음 한 쪽 구석에서 서늘함과 무심함의 강요가 파도처럼 일지만 이럴 때는 쿨하게 대처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문득 강원도의 애물단지로 전락한 레고랜드의 정체가 궁금해져서 한번 가보기로 합니다. 여기서 태어나 고교졸업 때까지 한번도 떠나본 적 없던 고향인데도 하중도라는 곳은 처음입니다. 문득 이외수의 '꿈꾸는 식물' 소설이 생각납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목도沐島는 바로 춘천을 말하는데 안개로 목욕하는 섬이란 뜻입니다.
사방이 강물로 둘러쌓인 춘천은 정말 안개가 많은 곳이었습니다. 고교시절 춘천을 둘러싼 강가운데 어딘가 감춰진 듯 사람흔적 뚜렷한 섬들이 몇 개 있었는데 그 섬들은 늘 미지의 세계였습니다. 그 미지의 세계 속에 중도가 있었고, 지금은 레고랜드 진입을 위해 멋진 다리가 놓여져 있으니 어린시절 막연히 동경하던 그런 미지의 땅을 밟는 기분입니다.
그렇게 묘한 감정으로 진입한 하중도는 요란시끌하게 오픈했던 대형놀이공원 전용섬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황량해 보입니다. 한 여름의 뜨거운 뙤약볕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유명한 세계적 놀이공원을 여러 개 섭렵한 경험으로도 참 어색한 황량함이 먼저 다가옵니다. 주차장에서 공원입구까지 한참을 걸어야하는데 놀이공원에 왔다는 설레임을 줄만한 요소도 전혀 느낄 수가 없습니다.
자금이 달려서 그랬는가, 공원주변에 인위적으로 심어놓은 나무들은 너무 작은 묘목으로 해놓은데다가 그것도 듬성듬성이라 폭염을 고스란히 내리받으며 한참을 걸어가야 합니다. 많진 않아도 아예 물놀이 복장의 가족들 몇몇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렇게 황량한 공원진입 분위기는 어째 쉽게 바뀔 것 같지 않습니다.
더우기 공원조성을 위한 중도개발 작업 때 무더기로 발굴된 청동기 시대 유물들이 꽤 있었나봅니다. 레고랜드의 자연과 유물훼손 현장을 고발하고자 하는 환경단체들의 시위했던 흔적이 마치 무허가촌 비닐하우스 모습과 쓰레기더미로 그대로 남아있으니 두 가지 의문이 강하게 듭니다.
그 때 출토된 유물들은 제대로 관리되고 있을까? 차라리 레고랜드 한 쪽에 중도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한 박물관이 하나 있다면 참 괜찮겠다 싶습니다. 청동기시대 유물들이 대거 쏟아져 나왔다고 하고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어보이는데 이 소중한 유물들과 현장들은 레고랜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해 보입니다.
어마어마하게 투입된 자본에 비해 공개된 현장은 제 눈에 봐도 마치 레고장난감의 미니어쳐 같습니다. 대부분의 놀이시설은 저처럼 크지않은 성인들 조차 이용하기에 턱없이 작고 비좁아서 태균이같이 덩치큰 사람이 탈 수 있는 게 거의 없습니다. 복지카드 가지고 있다고 퀵어세스 (빠른 이용특권) 등록도 시간내서 했지만, 일단 입장객이 많지 않으니 놀이시설 이용하는데 기다릴 필요도 없었고 이용자체가 불가능한 시설구조라서 퀵어세스 제도가 우습기만 합니다. 소인국에 들어선 걸리버의 모습이 오늘 태균이의 형상입니다.
그나마 해적들을 소재로 한 뮤지컬공연 속에서 물흠뻑쇼의 열기는 그런대로 재미있었지만 물을 뿌리려면 제대로 뿌리던지 뮤지컬 배우들이 일일이 작은 바케스로 뿌려대는 연출들은 하나의 코메디같습니다. 소인국에서 벌어지는 작은 페스티발같습니다.
입장료 66000원을 지불한 것에 비해 퀵어세스는 굳이 할 필요도 없었고, 남들은 이래저래 다 할인해서 입장하는데 복지카드 소유자는 1+1이 가능해서 원래 정가를 다 내야한다니 거의 생색용 제도입니다. 요란한 지자제 보증 공원개발사업이 개장 얼마못가 부도로 이어지는 엄청난 사태의 원인들에는 이유가 다 있습니다. 다행히 입장객의 절반은 외국인이라서 그나마 중국을 포함한 동남아국가의 사람들에게는 조금 먹히는 것인지.
그래도 베트남에서 가보았던 대규모 테마파크에 비하면 너무 초라하고 동네놀이공원 수준입니다. 아무리 아동용 놀이공원이라고 하지만 가족 모두 출동하는 곳인데 구상컨셉 자체의 오류입니다. 그나마 4D 입체영화관은 볼만하고 수용인원도 큰 극장규모라서 입장료 본전은 해준 것 같습니다. 애초 설계가 잘못된 사업인지라 계륵같은 느낌의 놀이공원이었노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이 황량한 터에 주차료까지 알뜰하게 뺏어가는 정책조차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3시간 가까이 있었다고 만원가까이 주차료를 따로 물어야하니 호기심에 한번 왔던 가족들이 발길을 마냥 돌릴 것 같습니다. 연간회원권 가격이 너무 저렴한데는 다 이유가 있을 듯 합니다.
레고랜드의 씁쓸한 체험을 뒤로 하고 우리의 영원한 고향장터 동부시장에 가서 막장도 사고 메밀전병도 사가지고 옵니다. 막장은 간장을 만들지 않은 온전한 메줏가루에다 보리밥 등을 섞어만든 된장으로 구수하고 감칠 맛이 일품입니다. 친정엄마의 막장찌개 맛은 아무리 흉내내려고 해도 그 맛이 나오질 않습니다.
그러고는 우리의 단골 막국수집에서 신나는 식사! 따끈따끈 손두부에 막국수와 열무김치의 조화! 열무김치를 세 접시나 먹어대는 태균, 몇 년을 춘천방문 때마다 들리곤 하는데 어찌 그리 맛이 한결같은지! 한결같은 맛이란, 사람에게도 그러하듯 음식도 똑같이 높이 사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춘천에서의 알뜰한 시간을 보내고 준이를 만나기 위해 달려온 길. 저녁 7시까지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6시 50분부터 기다렸는데 결국 준이누나의 도착시간은 7시 50분. 미리 도착예정 시간을 알려달라고 했지만 묵묵부답하다가 결국 1시간을 기다리게 만드는 이 무성의는 뭐라 해석해야 하는지! 화가 나는 것은 둘째치고 지난 수요일 준이 인계 때도 결국 약속시간을 못 지켜서 하는 수 없이 본가에 맡기게 하더니... 제 조카가 이랬다면 절연감입니다!
그대로 넘기면 안되겠다싶어 몇 마디 했습니다. 나중에 준이를 어떻게 볼 수 있겠냐며... 제 형제들이 그렇듯 60년 세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데 뭘 기대를 하랴? 더 가관인 것은 7시 50분에 도착해서는 저녁도 안 먹였다하니 분명 그럴 마음은 아니었을지라도 제가 호구잡힌 건 맞아보입니다. 제가 꾸짖자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고 영혼없는 사과는 하지만 기분나쁜 표정 또한 마구 지나갑니다. 얼른 준이를 데리고 그 자리를 떠나는 게 상책입니다. 때가 되면 보내야 되겠지만 어째 마음이 편치않습니다.
희노애락이 하루에 다 스쳐지나갔습니다. 다시 완도항으로 가서 제주도행을 목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진이를 만나 같이 가야합니다. 하루하루 제주도행만 기다린다고 하니 흥미진진 제주도시간이 되길 바라는 수 밖에! 오늘 레고랜드에서 보았던 황량 그 자체 전경을 올려봅니다.
첫댓글 준이 미래가 어째 미덥지 않습니다.
제주도로 날아오는 미납 고지서들과 두번의 지각 사태.
언젠가 떠나야 된다면 준이의 기억 속에 형님과 또 엄마같은 대표님과의, 또 제주도며 외국여행이 남아 있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