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하늘과 조계산 계곡 명경수가 그려낸
천의무봉의 자연 그림
내일이 음력으로 11월 15일이다. 날씨가 맑아 둥근 보름달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흘 전 수요훈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직동 도로변에서 단풍이 든 젊은 느티나무 사이로 올려다 본 미완의 달도 아름다웠는데 내일 밤에 뜨는 만추의 보름달은 더욱 황홀할 것이다. 지난 일요일 밤에 반달(상현)로 몸을 불리더니 밤마다 조금씩 토실토실 살을 찌워 만월을 앞두고 있다. 달이 지난 보름 동안 둥근 얼굴을 되찾고 있을 때 11월은 나무가 단풍잎을 하나 둘 떨어뜨리듯 며칠 남지 않은 11월의 날들을 미련없이 지워나갔다. 세월은 무정함으로 세상 질서를 잡아 주는 절대자이니 그 누구도 반기를 들 수 없다. 그래도 둥근달을 올려다 보면서 소원을 빌고 세월을 붙잡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사다. 이루어지는 소원보다 이루어지지 않는 소원이 절대적으로 많지만 허망한 소원을 빌어보는 것도 위로가 된다. 우리 가야지 회원님들도 조물주가 세상의 모든 단풍을 모아 만들어 우주에 띄워 올린 것 같은 만추의 보름달을 보면서 소원을 하나, 아니 몇 개씩 빌어 보자.
오늘 수요 훈련에는 5명의 회원(달리마, 꾸니, 달하니, 고무신, 태암)이 출석했다. 새벽 6시 알람 소리에 잠을 깨 주섬주섬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집 골목 뒷자리에 차를 주차해 둔 탓에 꼭두새벽부터 앞집 아저씨를 깨워 차를 좀 빼 달라고 하기가 미안해서 그냥 대중교통으로 환승을 하면서 왔더니 1시간 이상이나 늦어졌다. 약속 시간에 늦지 않게 훈련장에 나가는 것이 최선이지만 늦더라도 출석을 하는 것이 나의 훈련 출석 전략이다. 심하게 늦어 회원들이 훈련을 다 마치고 갔어도 혼자 숲을 산책하고 돌아오면 집에서 늦잠을 잔 것보다 훨씬 마음이 개운하다.
어제는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밤 10시까지 월 정기 역사답사를 다녀오느라 긴 시간을 보냈다. 부산에서 200여 km나 되는 전라도 승주까지 버스를 타고 가 선암사와 송광사 두 사찰을 이어주는 산길을 걸었다. 남도삼백리길 가운데 한 구간(천년불심길)인데 흙을 밟는 걸음보다 돌을 밟아야 하는 걸음이 더 많은 고행길이다. 호남정맥(전북 진안군 주화산-전남 광양시 망덕산에 이르는 산줄기)이 지나가는 큰굴목재(선암사 굴목재, 620m)와 송광사 굴목재(665m)를 넘어야 하는 돌밭길의 연속이다. 큰굴목재에서 우측으로 1km를 가면 조계산 정상인 장군봉(887m)이다. 기억에서도 사라진 오래전에 호남정맥 종주를 할 때 통과했던 고개였다는 생각을 하니 감회가 새롭다. 큰굴목재는 선암사 3.2km, 송광사 4.3km 지점이다. 큰굴목재를 넘어 가파른 내리막을 지나 30분 정도 더 가면 조계산 보리밥집(원조집)이다. 겨울 초입인데도 대도시 맛집 못지않게 손님들로 붐빈다. 주 메뉴인 보리밥에 도토리묵, 야채파전을 안주로 마시는 막걸리 맛이 일품이다.
보리밥집에서 송공사까지는 3.3km다. 시작부터 오르막길이다. 옛날옛적에는 호랑이가 버티고 앉았을 법한 호랑이턱걸이바위를 지나 조계산 3개 굴목재 가운데 가장 높은 송광사굴목재(665m)를 넘어야 한다. 30명이 넘는 일행 가운데 하나 둘 뒤쳐지는 회원이 나오기 시작한다. 후미를 맡은 나는 낙오자나 부상자가 생기지 않도록 속도를 재촉하지 않는다. 예상했던 것보다 산길이 험했지만 6.5km의 천년불심길을 무사히 걸었다. 선암사와 송광사 양쪽 계곡이 단풍나무군락지인데 철이 지나 그 화려한 단풍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다시 한번 더 다녀가라는 부처님과 산신령님의 뜻이 아닌가 싶다.
이런 어제의 개인사 때문에 오늘은 달리기 대신 산책을 하며 성지곡 단풍의 끝물을 감상했다. 다음주 일요일에는 양산마라톤대회 참가 관계로 성지곡을 찾지 못한다. 어쩌면 오늘의 단풍구경이 올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수원지 근처 단풍나무 몇 그루는 아직도 청록을 유지하고 있어 12월에도 단풍을 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절정을 지났지만 붉은잎을 달고 있는 박재혁의사 동상 옆 단풍나무를 배경으로 달리마 샘이 단체사진을 찍어주셨다. 오늘 성지곡 훈련에 동참하지 못한 회원님들은 달리마 샘이 절묘하게 앵글을 잡은 성지곡의 단풍 사진을 보면서 내년을 기약하고 1년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성지곡 일요 훈련에 나오시는 것을 주저하는 회원님들은 일기예보의 날씨에 지레 겁을 먹지 않으시기 바란다. 밤사이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도 훈련장에 나와 한바탕 신나게 달리고 나면 난방이 빵빵한 방안에 누워 있는 것보다 더 훈훈하다.
달리마 샘이 자주 이용하는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육개장과 콩나물해장국이 선택을 받았다. 운전을 안 하고 온 덕에 막걸리(생탁)도 두 잔을 마셨다. 꿀맛 이상이다. 어제는 조계산 산중에서 두 사발, 올해는 초읍에서 두 잔 막걸리를 마셨으니 이번 주말은 酒福이 덩굴째 굴러온 기분이다. 오늘 술복을 안겨주신 분은 달리마 샘이다. 막걸리 두 잔에 걸어오는 보도가 조금 좁아 보인다. 안락동, 명장동 이웃 고무신 샘이 집 앞까지 태워주셨다. 오전에 단잠을 자고 일어나니 몸이 다시 기지개를 켠다. 오뚜기 같은 몸이 고맙다.
秋冬同居
掛滿楓樹秋一樣
落葉裸木似入冬
秋冬尾首是同體
兩季混在至當然
旣越回甲六十代
生命時計過春夏
秋冬境界無休行
一線微風操心身
가을과 겨울의 동거
단풍을 가득 달고 있는 나무를 보면
아직 가을 같은데
잎을 떨군 나목을 보면
겨울에 들어선 것 같다.
가을의 꼬리와 겨울의 머리는
한몸이니
두 계절이 혼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회갑을 이미 넘긴
육십 대 우리들도
생명 시계가
봄 여름을 지나
가을과 겨울의 경계를
쉬지 않고 가고 있으니
한 줄기 실바람에도
몸과 마음을 잘 가누어야 한다.
첫댓글 훈련시간에 좀 늦으면 어떻습니까? 대중교통을 이용해 오랜 시간이 걸려 훈련장에 와 주시는 것도 대단한 일입니다. 11월을 마무리하는 수요훈련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