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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덕산 남릉, 가야 할 능선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가고
나의 길 새로운 길
―― 윤동주, 「새로운 길」에서
▶ 산행일시 : 2017년 4월 29일(토), 맑음, 미세먼지 나쁨
▶ 산행인원 : 13명(버들, 자연, 영희언니, 모닥불, 악수, 대간거사, 수담, 상고대, 맑은, 향상,
구당, 오모육모, 메아리)
▶ 산행거리 : 도상거리 13.7km
▶ 산행시간 : 8시간 55분
▶ 교 통 편 : 두메 님 24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6 : 30 - 동서울터미널 출발
08 : 33 - 평창군 방림면 운교리 밤나무골 마을, 산행시작
09 : 08 - 임도
10 : 02 - 1,260.5m봉, 헬기장
10 : 33 - 백덕산(白德山, △1,350.1m)
11 : 06 - 1,284m봉, Y자 능선 분기
11 : 11 - ┣자 갈림길, 오른쪽은 관음사 가는 길
11 : 36 - 신선바위봉(1,111.8m)
11 : 44 ~ 12 : 22 - 안부, 점심
12 : 40 - 신선바위(881.9m)
13 : 35 - △906.0m봉
14 : 28 - 여림치(餘林峙)
14 : 55 - 837.1m봉, 법흥산성
15 : 12 - △824.3m봉
15 : 27 - 778.2m봉
15 : 38 - 무릉치(茂陵峙)
16 : 20 - 763.2m봉
16 : 56 - 임도
17 : 28 - 영월군 주천면 무릉리, 혜각사(慧覺寺), 산행종료
17 : 55 ~ 19 : 40 - 주천, 목욕, 저녁
21 : 25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백덕산 정상에서, 뒷줄 왼쪽부터 악수, 상고대, 자연, 모닥불, 버들, 맑은, 수담, 대간거사,
앞줄 왼쪽부터 오모육모, 구당, 메아리 대장, 향상
2. 오른쪽 중간은 수정봉
▶ 백덕산(白德山, △1,350.1m)
“설경이 좋아 적설기 등산지로 소문난 백덕산은 능선 곳곳이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를 이루
고, 기암괴석이 천연침엽활엽수의 원시림과 어우러져 수려하고 정상에서의 조망 또한 장쾌
하다.” 백덕산에 대한 김형수 씨의 『韓國400山行記』에서의 소개 중 일부다. 과연 그러
하다.
그간 백덕산은 문재를 들머리로 해서 몇 번 올랐고 운교리 비네소골 ‘밤나무골 마을’에서 오
르는 건 오늘이 처음이다. 겨울철에는 등산객들로 붐비던 백덕산이었는데 이 봄날에는 텅 비
었다. 밤나무골은 봄이 늦게 오는가 보다. 추운 마을이다. 이제야 개나리꽃, 벚꽃, 조팝나무
꽃 등이 만발하였다. 더덕밭 옆 마을길을 지나 눈부시게 ‘푸른 산빛을 깨치고’ 산모퉁이를 돌
아간다.
백덕산 3.6km. 이정표 안내 따라 산길에 들자마자 연분홍 꽃술 마구 흔들며 열광하는 진달
래 무리의 환영에 우쭐하여 저절로 빠른 걸음한다. 백덕산까지 완급과 곡절이 없지는 않겠으
나 줄곧 오르막이다.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이 차다. 고개 들어 파르르 떠는 개별꽃, 잔뜩 움
츠린 노루귀, 납작 엎드린 노랑제비꽃 …. 등로 주변의 풍경이다.
미리 버너에 대한 이야기 좀 하련다. 흔히 ‘등산은 무게와의 싸움이다’라고 한다. 말이 버너
이지 이에 부수되는 코펠, 라면, 커피, 물 등 짐이 적지 않다. 며칠 전 백덕산 산행공지의 댓
글에서 라면의 계절인 겨울이 지났으니 버너가 필요 없지 않겠느냐고 의론이 일었으나 아직
은 가져가 보기로 하였다. 오모육모 님이 버너를 챙겼다.
그런데 매번 라면을 조달하던 두루 님이 오늘 산행에 결근하였다. 대간거사 님의 말로는 모
범생일수록 간혹 일탈(혹은 탈선)해버리고자 하는 유혹에 빠질 때가 있다며 두루 님이 딱 그
짝이 아니겠느냐고 한다. 예리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그랬으니 누군가 라면을 준비해야 하
는데 모두 그만 잊고 있었다. 백덕산 오르는 도중에 그런 사실을 깨달았다.
하는 수 없이 엄나무 순이나 두릅을 따서 데쳐 먹어야겠다고 허전한 마음을 다독였다. 백덕
산 고지대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북사면은 이른 봄이다. 엄나무나 두릅은 아직 눈을 뜨지 않았
다. 이도 글렀다. 점심 때 커피라도 끓여 마시려는데 이번에는 불(라이터)이 없다. 도대체 담
배를 피우는 사람이 없다. 이구동성. 두루 님의 빈자리가 이렇게 클 줄을 몰랐다고.
산허리 도는 임도와 만나고 첫 휴식한다. 대병 냉환타는 맑은 님이 준비했다. 그 시원하고 상
쾌한 맛으로 입산주 탁주를 대신한다. 영진지도에는 등산로가 비네소골로 표시되어 있어 능
선은 어쩌면 개척적인 우리의 길이려니 하고 좋아했는데 웬걸 능선도 먼지 풀풀 이는 대로의
주등산로다. 길섶은 노랑제비꽃으로 수놓았다. 그 건너에는 노루귀들이 수대로 얼굴을 살짝
쳐든다.
일로직등. 완만한 등산로가 그렇게 났다. 1,260.5m봉. 헬기장이 노란 꽃밭이다. 국토지리정
보원의 지형도에는 이 봉우리를 사재산(四財山)이라고 한다. 우리가 알기로는 문재 위의 사
자산(獅子山, 1,180.4m)의 이명이다. 사재란 4가지 재물, 즉 동칠(東漆 : 동쪽의 옻나무), 서
삼(西蔘 : 서쪽의 산삼) 그리고 남토(南土)와 북토(北土)로 흉년에 먹는다는 흙을 일컫는다.
암봉을 오른쪽으로 크게 돌아 오른다. 아무튼 카메라를 매면 적지 않게 발품이 든다. 여태 조
망이 시원찮기도 했다. 영희언니와 함께 등로 약간 비켜 1,283.1m봉 전망바위(?)를 들른다.
건너편 백덕산이 우람하고 그 오른쪽 어깨 너머로 삿갓봉이 아득하게 보인다. 암봉 돌아 사
자산 넘어오는 백덕산 주릉과 만나고 정상이 0.5km이라니 통나무 의자들이 놓인 쉼터를 마
다하고 내쳐간다.
점점 시야가 넓게 트이는 바윗길을 주춤주춤 올라 백덕산 정상이다. 사방 거침없이 펼쳐지는
장쾌한 조망에 환성을 합창한다. 그것도 여러 번이나. 승두봉, 거문산, 남병산, 가리왕산, 청
옥산, 삼방산, 절개산, 배거리산, 치악산, 매화산 등등을 짚어낸다. 삼각점은 요즘 보기 드문
(소위 명산을 외면했던 까닭에) 1등 삼각점이다. 11 복구, 77.7 건설부.
3. 백덕산 들머리로 잡은 밤나무골 마을, 앞은 더덕밭이다
4. 더덕밭의 더덕(Codonopsis lanceolata), 초롱꽃과의 여러해살이풀
5. 노루귀(Hepatica asiatica),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6. 노루귀
7. 노랑제비꽃(Viola orientalis), 제비꽃과의 여러해살이풀
8. 개별꽃(Pseudostellaria heterophylla), 석죽과의 여러해살이풀
9. 양지꽃(Potentilla fragarioides var. major), 장미과의 여러해살이풀
10. 노루귀
11. 멀리는 오른쪽은 삿갓봉
12. 멀리 가운데는 가리왕산
13. 왼쪽 중간은 수정봉
14. 백덕산 정상에서 바라본 가야 할 능선
▶ 신선바위(881.9m)
백덕산 남릉이 머나먼 장릉으로 보기만 해도 가슴 설렌다. 저기를 간다. 어서 가자 바윗길 뚝
떨어져 내리면 연대기재, 가파른 사면 한 피치 바짝 오르면 1,355m봉이다. 길 좋다. 쭉쭉 내
린다. Y자 능선 분기봉인 1,261m봉에서 왼쪽은 수정산(水精山, △989.6m)으로 간다. 그쪽
은 인적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십여 년 전 한겨울에 그리로 갔었다.
오른쪽으로 관음사 가는 ┣자 갈림길을 지나고부터 인적은 뜸하고 등로는 사나워진다. 밧줄
달린 가파른 슬랩을 내린다. 4월은 달바위봉, 천주산에 이어 암벽 타는 짜릿한 손맛을 연속
해서 즐긴다. 신선바위봉(1,111.8m, 신선바위와는 다른 봉우리다. 신선바위는 한참 후에 만
난다) 내리막도 밧줄구간이다. 오른쪽 사면을 내리다가 절벽을 테라스로 트래버스 하여 능
선에 든다.
되게 길었던 가파름이 잠잠해지고 휴식하여 가쁜 숨 달랜다. 점심때가 되었다. 따스한 햇살
아래 자리 편다. 라면(국물)이 없으니 입안이 밭음에도 어렵게 도시락을 비웠다. 그러나 밥
을 먹은 것 같지 아니하다. 탁주도 덜어냈고 배낭이 한결 가볍다. 철계단이 나온다. 조망이
또 어떠할까? 등로 벗어난 암봉에 들른다. 카메라 때문은 연희언니와 모닥불 님, 나이고, 향
상 님은 암벽 암릉에 재미 붙였다.
암반에 올라 발돋움하여도 조망이 시원찮다. 성급했다. 바로 앞이 881.9m봉 신선바위다. 신
선바위도 철계단 오르고 밧줄 잡고 암벽 올라 너른 암반이다. 신선 노름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속담이 바로 이 바위에서 유래되지 않았을까 싶다. 국가기관인 동부지방산림청에
서 세운 안내문이다.
“이 바위는 신선들이 즐겨 머물던 곳으로 가을 햇살 따사롭던 어느 날 흰 수염 신선과 까만
수염 신선이 이 바위에서 바둑을 두는 동안 동네 청년들이 양쪽으로 나뉘어 내기를 하다가
까만 수염 신선이 불계승을 거두자 흰 수염 신선에게 걸었던 청년들이 아쉬워하며 나무를 하
러가기 위해 도끼를 집어 드는데 도끼자루가 썩어 나무를 못하게 되자 화가 난 청년 서너 명
이 바둑판을 법흥사 쪽으로 굴려버려 더 이상은 신선들의 대국을 볼 수 없게 되었다는 전설
이 남아있다.”
우리도 사방 둘러보며 잠시나마 신선된 기분을 느낀다. 비로소 부드러운 능선길이 이어진다.
암봉을 왼쪽 사면으로 돌아 길게 오르면 △906.0m봉이다. 삼각점은 ‘평창 445, 1989 복
구’이다. 봉봉 오르내리는 굴곡이 심하다. 그러니 잰걸음에 롤러코스터 타는 기분이 난다. 깊
은 안부는 여림치((餘林峙)다. 숲이 울창한 고개라는 뜻이리라.
여림치에서 느긋이 오른 837.1m봉에는 법흥산성의 축성 흔적이 남아있다. 후삼국시대의 산
성이라고 한다. 성곽은 다 허물어졌다. △824.3m봉은 잘 난 등로를 따라 왼쪽 사면으로 돌아
넘느라 정상에 있을 삼각점을 확인하지 못했다. 나중에 알고 나니 퍽 아쉽다. 이 다음 778.2
m봉은 넙데데하여 마루금 잡기가 어렵다. 골로 갔다가 머리 위 공제선인 능선에 오른다.
15. 멀리 가운데는 치악산 비로봉
16. 멀리 가운데는 거문산
17. 오른쪽은 수정봉
18.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산은 삼방산과 절개산(오른쪽)
19. 멀리 가운데는 가리왕산
20. 백덕산 정상의 진달래
21. 계속 가야 할 백덕산 남릉
22. 삼방산과 절개산(오른쪽)
23. 가운데는 배거리산
24. 백덕산, 신선바위에서
25. 가야 할 백덕산 남릉, 신선바위에서
▶ 혜각사(慧覺寺)
무릉치(茂陵峙). 중국 한무제(漢武帝)의 능이 있는 지명일 리는 없고, 한자 풀이대로라면
‘숲이 우거진 언덕’이란 뜻인데 무릉(武陵)의 오기인 것 같다. 행정구역으로 무릉도원면의
무릉리인데 그 옆에 도원리가 있다. 울창한 낙엽송 숲을 간다. 이 봄날 신록의 숲은 소설가
김훈이 『자전거 여행』에서 보는 그런 숲이다.
숲의 시간은 헐겁고 느슨하다.
숲의 시간은 퇴적의 앙금을 남기지 않는다.
숲의 시간은 흐르고 쌓여서 역사를 이루지 않는다.
숲의 시간은 흘러가고 또 흘러오는 소멸과 신생의 순환으로서 새롭고 싱싱하다.
숲의 시간은 언제나 갓 태어난 풋것의 시간이다.
첨봉인 763.2m봉을 오르면서의 일. 스틱을 뻗쳐도 닿지 않는 두릅은 어떻게 따는가? 작년
이맘때 더산 님과 둘이서 발교산과 대학산을 산행할 때 궁여지책으로 시전(施展)했던 비법
을 하는 수없이 여러 사람 앞에 드러내고야 말았다. 그때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말고 봄이면
우리 둘이만 두고두고 써먹자고 굳게 약조했었다. 더산 님에게 미안하다.
구당 님이 여러 사람 살린다. 구당 님이 힘들어 하기에 그만 놓아드리자 하고 임도 따라 내리
시라(앞서 버들 님과 자연 님은 무릉치에서 탈출했다) 안내하려다보니 못미더웠다. 아예 탈
출 아닌 하산하기에 이른다. 불감청고소원이라 여러 사람이 환호작약하였다. 763.2m봉 내려
임도와 만나고 임도 따라 굽이굽이 돌고 돌다 이에 지쳐 지능선을 잡아 내린다.
간벌한 나뭇가지 헤치고 가파른 사면 쏟아져 내리고 사방댐 개울 건너니 혜각사 앞이다. 그
아래는 ‘초록정원’ 펜션이다. 건장한 중년인 펜션 사장의 표정이 뜨악하다. 대간거사 님의 다
짜고짜 정중한 “안녕하십니까?” 배꼽인사에 이어 뒤따르는 일행 줄줄이 인사를 복창했다. 왜
길이 아닌 사유지인데 함부로 드나드느냐고 야단쳐야 하는데 그만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는 표정이다. 억지라도 미소 지으며 맞인사 할 수밖에.
지난주에는 공덕산을 혜명사로 내렸었다. 오늘 하산은 혜각사다. 우리 오지산행의 혜명(慧
明)하고 혜각(慧覺)한 산행 마침이 아닐 수 없다. 벌써 술 익는 냄새가 나는 주천(酒泉)으로
간다.
26. 구봉대산 연릉, 그 뒤로 치악산 비로봉이 보인다
27. 신선바위에서
28. 산괴불주머니(Corydalis speciosa), 현호색과의 두해살이풀
29. 철쭉(Rhododendron schlippenbachii), 진달래과의 낙엽 활엽 관목
30. 산벚나무(Prunus sargentii), 장미과의 낙엽 활엽 교목
31. 개복숭아
32. 임도로 하산 중, 구당 님이 여러 사람 살렸다
33. 멀리 가운데는 제천 용두산
34. 백덕산 남릉의 △739.9m봉, 저 봉우리를 오르기 전에 임도로 진행했다
첫댓글 백덕산 산행기로 아쉬움을 달랩니다 !!!
봄바람난 아줌마가 봄기운을 살방살방 풀어내듯 봄향기가 물씬 풍기는 산행기네유.
완연한 초여름의 날씨속에 마지막 무렵에 낙엽송군락지가 아주 푸르러서 좋았습니다...산행코스가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분위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