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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12일 목요일 [(백) 부활 제2주간 목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대사제가 사도들을 신문하자 사도들은,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나무에 매달아 죽인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셨고 우리는 이 일의 증인이라고 한다(제1독서).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기에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복음).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성령도 증인이십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5,27-33 그 무렵 경비병들이 27 사도들을 데려다가 최고 의회에 세워 놓자 대사제가 신문하였다. 28 “우리가 당신들에게 그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단단히 지시하지 않았소? 그런데 보시오, 당신들은 온 예루살렘에 당신들의 가르침을 퍼뜨리면서,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씌우려 하고 있소.” 29 그러자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였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 30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나무에 매달아 죽인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31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영도자와 구원자로 삼아 당신의 오른쪽에 들어 올리시어,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게 하셨습니다. 32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순종하는 이들에게 주신 성령도 증인이십니다.” 33 그들은 이 말을 듣고 격분하여 사도들을 죽이려고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31-36 31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고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는데, 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32 그분께서는 친히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신다. 그러나 아무도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33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참되심을 확증한 것이다. 34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다. 하느님께서 한량없이 성령을 주시기 때문이다. 35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36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러나 아드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이 유다의 지도자들 앞에서 당당하게 맞서 믿음을 고백하는 모습은 정말 놀랍습니다. 문을 닫아걸고 붙잡힐 것을 두려워하던 그들의 모습과는 너무 대조적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의 구원이 선포되었음을 확신한 제자들은,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순종하는 이들에게 주신 성령도 증인이십니다.”라고 당당히 고백합니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용감하게 만들었을까요? 요한 복음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다. 하느님께서 한량없이 성령을 주시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합니다. 이 모든 일은 성령께서 이끄시는 은사이며, 성령께서는 예수님께서 “위에서 오시는 분”으로 “모든 것 위에 계신다.”는 확신을 이끄십니다. 유다의 지도자들도 하느님께서 모든 것 가운데 모든 것임을 모르지 않았기에 제자들의 확신과 표징을 거부할 수는 없었지만, 자신들이 신성 모독으로 몰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인 예수가 하느님의 메시아이며, 그를 믿는 것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임을 선포하는 제자들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자가당착에 빠진 유다의 지도자들에게는 제자들이 골칫거리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진리는 결코 만들어지거나 몇몇 사람의 생각으로 확인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는 모든 사람에게 받아들여지고 인간의 가치와 논리에 타당해야 합니다. 제자들은 복음이 보편적이고 누구나 받아들일 만한 삶의 지혜가 담겨 있음을 확신했기에, 목숨에 연연하지 않고 기쁘게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이라면, 시대가 왜곡하고 은폐하며 만들어 내는 거짓에 맞서, 죄와 죽음을 이겨 낸 십자가에서 드러난 복음의 기쁨을, 진리에 목말라하는 이들에게 선포하도록 부름받고 있음을 기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
우리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습니다. 수도원에서 먹는 밥그릇수가 많아질수록 더욱 진하게 와 닿은 깨달음이 한 가지 있습니다. 수도원은 ‘날개 없는 천사’들만 사는 곳이 아니라는 것, 수도원은 천국이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습니다. 수도원은 선과 악이 공존하는 곳, 희망과 실망이 교차하는 곳, 그래서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교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거룩함을 향해 나아가는 교회이지만, 부족한 인간들이 모인 공동체이기에, 그 안을 들여다보면 어쩔 수 없는 분쟁과 그로인한 상처, 이기심과 죄가 버젓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에 대한 지나친 기대 역시 금물입니다. 열심히 신앙생활 해보려고 교회에 가까이 다가서는 사람일수록 상처를 받기 쉽습니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실망도 커집니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당연한 일입니다. 신앙생활 하다보면 이런 뼈아픈 체험도 부지기수로 하게 될 것입니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나를 바라보는 교회 공동체 사람들의 시선이 이상해지기 시작합니다. 날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고, 뒤에서 수근 거립니다. 사사건건 딴 지를 겁니다. 왕따를 시킵니다. 다가가도 슬슬 피합니다. 하느님 때문에 성당에 나가지 인간들 때문에 나가나 하고 스스로를 위로해보지만 그것도 한계에 도달합니다. 원인을 추적해나가는 과정에서 깜짝 놀랄 사실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나를 그렇게 만든 주범이 다름 아닌 대자(代子)입니다. 아니면 대녀(代女)입니다. 내가 그를 하느님께로 인도했었고, 신앙의 씨를 뿌려주었으며, 그토록 극진히 사랑했던 사람이었는데, 그가 나를 이렇게 만든 것입니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된 순간 그야말로 하늘이 노랗게 변할 것입니다. 분노와 배신감에 치를 떨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면서 땅을 칠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복음 선포의 일선에 섰었던 사도들 역시 이런 체험을 셀 수도 없이 했더군요. 저는 초대교회 복음 선포, 쉽게 생각했습니다. 사도들이 가는 곳 마다 신자들은 열렬히 환영해주었고, 예비자들의 수효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으며, 사도들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는 듯 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절대로 그게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멀뚱멀뚱 소 닭 바라보듯이 관심 없이 쳐다보았습니다. 목숨을 걸고 겨우 복음의 씨앗을 뿌려놓았지만 때로 결실이 전혀 없었습니다. 아무리 신신당부해도 사람들은 과거와 결별하지 못했고, 우상숭배를 계속했습니다. 그중에는 교회공동체 구성원들을 교묘하게 이간질시키는 가라지 같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앞에서는 미소를 짓지만 돌아서면 갖은 험담과 중상모략을 일삼던 사람들, 그래서 교회의 성장을 가로막던 암초 같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 앞에 보여준 사도들의 태도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들을 음해하는 무리들의 사악한 행동 앞에 분노하지도 않았습니다. 상처받지도 않았습니다. 복수하지도 않았습니다. 실망하지도 않았습니다. 범인을 색출하고자 기를 쓰지도 않았습니다. 전과 같이 마음 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럴수록 더욱 사도들은 겸손하게 처신했습니다. 관대함과 온유함으로 무장하고 다시 그들에게 다가갔습니다. 분노하는 대신, 슬퍼하는 대신, 실망하는 대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그들 앞에 내세웠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만을 설명합니다. 그분을 믿을 것만을 부탁합니다. 그분과 함께 영원한 생명의 대열에 참여할 것을 독려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전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무엇이 사도들을 그토록 변화시켰을까요? 부활 예수님에 대한 강렬한 체험,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들의 스승이셨던 예수님은 위에서 오신 분이시고, 하느님 아버지께로부터 파견되신 분이라는 것을 완전히 파악하게 된 사도들이었습니다. 그분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실 구원의 샘이란 사실을 정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사도들에게 있어 예수님만이 전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자신들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습니다. 그들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사명은 스승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고, 스승님께 영광을 드리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사도들은 예수님 때문에 모욕당하고 박해를 받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죽는 것을 가장 큰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하늘의 말과 땅의 말
텍사스 레인저스의 명포수였던 짐 선버그는 은퇴한 후 유명 강사로 활약했습니다. 어느 날 교도소를 방문한 그는 죄수들에게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를 하게 됐습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와 캐치볼을 하다 공이 머리 위로 날아가면 아버지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와, 공을 이렇게 멀리 던질 수 있다니. 언젠가 넌 메이저리그에서 뛸 수 있을 거야.”
타격 연습을 하다 헛스윙을 했을 때 아버지는 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정말로 힘 있는 스윙이었어. 그 정도 힘이라면 훌륭한 메이저 리거 감이야!”
공이 울타리를 넘어 이웃집 유리창을 깼을 때나 차의 지붕 위에 떨어져 큰돈을 물어주셔야 할 때도 그러셨습니다.
“그렇게 멀리 날아가는 공을 칠 수 있다면 메이저리그에 가는 것은 시간문제야!”
항상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자라왔기에 짐에게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고, 선수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세 번의 올스타, 여섯 번의 골든글러브 수상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이 이야기를 마치고 내려오는데, 한 죄수가 다가와 말했습니다.
“선버그씨, 당신과 반대로 내 아버지는 늘 내가 못난 놈이고, 뭐하나 잘하는 것 없는데다 언젠가는 철창신세가 될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죠. 그래서 나 역시 내 아버지의 꿈을 이뤄드렸죠”
[출처; 유투브, 감성다큐: 부모의 꿈을 이루게 한 두 사람]
성공한 인물 주위에는 그가 성공하는데 도움을 준 사람들이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어떤 아버지는 끊임없이 긍정적인 말을 해 주어 아이가 정말 큰 메이저리거가 되게 하였고, 어떤 아버지는 끊임없이 부정적인 말만 해서 아이가 부정적이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한 것을 말하고,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시고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다고 합니다. 즉 말하는 것이 자신이 어디에 속해있는지를 증명합니다.
그 러나 땅에 속한 언어는 무엇이고 하늘에 속한 언어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하늘로부터 오는 것이 무엇인지 잘 구분할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말과 부정적인 말이 있을 때는 당연히 긍정적인 것이 하늘로부터 오는 것이고 부정적인 것이 땅에 속한 말일 것입니다. 만약 진실과 거짓이 있다면 당연히 거짓이 없는 것이 하늘에 속한 말일 것이고, 희망을 주거나 낙심하게 하는 말을 한다면 희망을 주는 말이 하늘에 속한 언어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언어들 속에서 그것을 듣는 이들이 하늘에 속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땅에 속한 사람으로 전락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미술가 피카소는 학교 수업을 따라가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특히 수학은 넘지 못할 산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아주 쉬운 계산도 못 해 내는 자신에 대해 털어놓았습니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학이 전부는 아니지. 넌 그림을 아주 잘 그리잖아.”
아인슈타인도 학교 교육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의 어머니는 가정교사를 들여 그가 좋아하는 수학을 가르치도록 하였습니다.
“너는 외우는 것보다는 수학을 참 잘하잖니.”
그는 매우 어린 나이에 미적분을 하게 되었고 위대한 물리학자가 되게 됩니다.
내가 해 주는 말이 사람을 만듭니다. 그렇다면 내가 하늘의 말을 쓰고 있는지 땅의 말을 쓰고 있는지 내 스스로 체크해 보아야겠습니다. 무엇보다 긍정적이고 희망가득한 말들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긍정과 감사, 희망과 사랑에 머물러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내가 먼저 하늘에서 오신 분의 말씀 안에 머물려고 노력합시다.
오늘의 성인
성 요셉 모스카티(Joseph Moscati)
신분 : 의사, 과학자
활동지역 : 나폴리(Napoli)
활동연도 : 1880-1927년
같은이름 : 모스까띠, 모스카띠, 요세푸스, 요제프, 조세푸스, 조세프, 조셉, 조제프, 주세페, 쥬세페, 호세
성 요셉 모스카티(Josephus Moscati)는 1880년 7월 25일 이탈리아 베네벤토(Benevento)에서 판사인 아버지 프란치스코와 어머니 로사 사이의 아홉 자녀 중 일곱째로 태어나 6일 만에 유아세례를 받았으며 1884년에 나폴리로 이사하여, 1888년에 첫영성체를 하였다. 1897년 나폴리 대학에 들어가 의학을 공부하던 모스카티는 어려서부터 깊은 신앙과 친절한 성품을 지녔는데, 대학 시절에도 학업에 열중하면서 기도에 충실하여 매일미사 참례를 하였다.
1903년 우수한 성적으로 학업을 마치고 의사로서 바쁘고 고된 생활을 시작한 그는 정성껏 환자들을 돌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영혼을 돌보는 데에도 깊은 관심을 가짐으로써 교회를 떠나 있던 많은 사람들을 신앙생활로 다시 돌아오게 하였다. 특히 가난한 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베풀었는데, 이들을 무료로 진료하였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이들에게 금전적인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나폴리의 중심가에 자리 잡은 그의 진료소에는 그에게서 진료와 마음을 위안을 받으려는 환자들이 줄을 이었다.
이처럼 과중한 활동 중에도 모스카티는 의학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아 32편의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1911년에는 나폴리 대학의 화학생리학 주임교수로 임명되었고, 또 빈(Wien)과 에든버러(Edinburgh)에서 개최된 국제 생리학 회의에 이탈리아 대표로 참석하기도 하였다. 한편, 1906년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였을 때는 즉시 피해 지역으로 달려가 위험을 무릅쓰고 인근 병원의 환자들을 옮기는 작업을 거들었으며, 1911년 콜레라가 창궐하였을 때에는 이 전염병 환자들을 헌신적으로 돌보았고,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군병원의 책임자로도 활약하였다.
1919년 40세도 안된 나이에 불치병 환자들을 위한 병원의 책임자 중 한 사람으로 임명된 모스카티는, 1927년 4월 12일 병원에서의 오전 진료를 마치고 평소와 마찬가지로 오후에 자신의 집에서 환자를 진료하던 중 갑작스런 발병으로 사망하였다.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나폴리 각계각층의 시민들은 달려와 “의사 성인, 쥬세페 모스카티가 죽었다”고 애도하였으며, 그를 추모하고 그의 전구를 비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제주 누오보(Giesu Nuovo) 성당에 안치된 그의 무덤은 항상 꽃으로 덮였다.
그로부터 4년 뒤 모스카티의 뛰어난 덕행과 전구를 통한 기적적 치료에 대한 증거와 증언을 수집하기 위한 교구 차원의 조사가 시작되었고, 성년(聖年)인 1975년 11월에 교황 복자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복식이 거행되었고, 1987년 10월 25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복자 안젤로(Angelus)
신분 : 수사
활동지역 : 키바소(Chivasso)
활동연도 : 1411-1495년
같은이름 : 안겔로, 안겔루스, 안젤루스
이탈리아 피에몬테(Piemonte) 지방 키바소에서 태어난 안젤루스 카를레티(Angelus Carletti, 또는 안젤로)의 양친은 피에몬테의 귀족 가문 출신이었다. 그는 볼로냐(Bologna) 대학에서 수학하여 민법과 교회법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고향에 돌아와서 주의원으로 선출되었다. 안젤루스는 모친이 사망하자 자신의 재산을 나누어 형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자신은 제노바(Genova)의 작은 형제회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안젤루스의 장상은 즉시 그가 선교열이 대단하며 뛰어난 재능이 있음을 감지하고 그를 훌륭한 인물로 양성하였다. 그는 특히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온정을 베풀었고, 환자들을 돌보면서 탁발 생활을 계속하였다.
제노바의 성녀 카타리나(Catharina, 9월 15일)도 그에게 늘 자문을 구하였고, 사보이아(Savoia)의 공작 카를로 1세는 자신의 고해신부로 그를 모셨다. 그는 소위 “숨마 안젤리카”(Summa Angelica)라는 윤리 신학서를 저술하였다.
교황 식스투스 4세(Sixtus IV)의 임기 중 모슬렘의 침공이 있었을 때 작은 형제회는 위험에 처한 지역 국민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 안젤루스는 언제나 제일 위험한 지역에서 신자들을 돌보았다.
1491년 80세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선교단의 책임을 맡을 정도였다. 교황 인노켄티우스 8세(Innocentius VIII)가 그를 주교로 승품시키려 하자 그는 끝내 거절하였다. 그는 항상 겸손하였다.
여든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구걸하였다. 그는 마지막 2년을 쿠네오(Cuneo) 수도원에서 지내다가 84세의 일기로 운명하였다. 그에 대한 공경은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승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