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대학생들은 누구를 모델로 삼고 있을까? 한 조사에 의하면 대학생들은 이건희 회장과 김은혜 앵커를 가장 닮고 싶은 인물로 선정하였으며 남학생들은 안철수 사장, 박찬호 선수, 이재웅 사장 등을, 여학생들은 황현정 앵커, 탤런트 송윤아, 박세리 선수, 조수미 등을 닮고 싶은 인물로 꼽았다고 한다. 물론 이 조사가 모든 대학생들의 생각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겠지만, 오늘 젊은이들의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를 읽을 수 있는 한 자료임에 틀림없다. 선정된 인물들은 분명 남다른 능력과 노력을 바탕으로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이들은 모두 재력이 있거나, 외모가 출중하고, 매스컴의 각광을 받고 있는 세속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돈이 최고의 가치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많이 번 사람을 닮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남다른 도전심과 노력으로 무엇을 성취했거나, 창조적 실험을 감행했거나 어려운 인생을 살면서 어떤 신념과 가치관을 소중하게 지킨 사람보다는 부모의 후원에 힘입어 재벌총수가 되었거나, 타고난 외모와 지성으로 이미 매스컴의 주목을 받은 인물을 각각 닮고 싶은 사람 1위로 올린 것은 이들 젊은이들이 과정보다는 드러난 결과를, 방법보다는 목표를 중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의 이번 선택은 평소의 의식이나 행동과도 일치한다. 즉 자신의 능력으로 자립하려 하기보다는 할 수만 있다면 부모의 재력에 의존하려는 남학생들, 결혼시장에 내 놓은 상품 카달로그인 졸업 앨범에 내 놓을 사진을 위해 수백만원을 들여 성형 수술하는 여학생들의 모습이 그러하다.
여기에 등장한 모든 인물들은 거의가 매스컴이 만들어낸 스타라는 점에서 이제 매스컴을 통해 부각되지 않는 어떤 인물이나 중요한 활동들은 모두 젊은이들의 관심권에서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 즉 이들이 닮고 싶어하는 사람의 목록에는 이들만큼이나 성공했고 유명해졌지만 나름대로 어려움을 겪었던 박경리 같은 소설가, 이들보다 더 많은 일을 했지만 개인적 출세를 위해 일하지는 않았던 김수환 추기경과 같은 시대의 양심, 사회정의를 위해 젊음을 바친 30, 40대 시민운동가들의 이름은 찾아볼 수가 없다. 하기야 이웃 일본의 여성들도 결혼조건 1순위로 돈을 꼽고 있으며, 여타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젊은이들도 영상매체가 조성한 소비문화와 그것을 누릴 수 있는 물질적 능력을 중시하고 있으니 한국 대학생들이 이런 성향을 가진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가 우려하는 것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을 돈이 없고, 기대하는 만큼의 물질적 보상을 얻을 수 없는 압도적 다수의 젊은이들은 기대와 현실의 괴리를 메울 수 있을지, 아무리 성형수술을 해도 탤런트처럼 될 수도 없을뿐더러 돈 많은 남자를 만나기도 쉽지 않은 여성들은 과연 행복해질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시대가 아무리 변하고 돈과 매스컴이 영혼을 지배하더라도 젊다는 것은 희망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며, 사람을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고, 소중한 일에 대가없이 몰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희망함은 반드시 자신의 이익을 넘어서 이웃과 사회를 향한 넘치는 정열로 표현된다. 10년 전, 20년 전 우리 사회의 일부 젊은이들이 그러했다. 대의를 위해 희생을 불사하려했던 용기는 비록 그 시대와 `불화'를 겪을 수밖에 없었지만 이웃 나라에게는 그래도 장래가 있는 사회라는 부러움을 받을 수 있었다.
어떤 사회든지 젊은이들이 따르고자 하는 모델은 반드시 기성세대 혹은 지배질서가 만든 것이다. 젊은이들이 돈과 외모에 매달리는 것은 분명히 우리 사회가 그것 외에는 추구할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을, 그리고 다른 것을 무시하고라도 그것만을 추구하면 성공한 인생이 되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오늘의 젊은이들을 탓하기 전에 이러한 `생각 없는 세상'을 만들어낸 이 시대의 `승리자'들이 먼저 반성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