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을 앞두고
220613_송혜영
아빠는 국민학교 4학년 때인가 맹장수술을 하셨단다. 그 때 입원을 한 달을 하셨다지. 엄마는 30대에 수술을 했다. 기우길집사님을 비롯한 교회 집사님들이 병문안을 오셨는데 그리 웃긴 이야기를 하더란다. 아, 이런! 배가 얼마나 당겼을까! 엄마가 배를 잡고 웃었다는 이야기로 추억 소환이다. 맹장수술로 입원했다 하니 주로 어르신들께서 나도 했다고 경험담을 얘기해주신다. 주위 또래 이웃들 중에선 내가 수술선배가 되었다.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 이제는 개복 수술을 안 해도 되고 배꼽에 하나, 아래쪽으로 삼각형 모양으로 두 개로 세 개의 구멍을 내어 관을 삽입해 잘라낸다. 단일 복강경을 시행하는 곳도 있다니 거기는 더 회복이 빠르겠다.
벌써 4년 전의 일인데, 삼척 쏠비치에서 자고 일어나 강릉으로 향하는 여행길에 배가 무척이나 아파 집으로 돌아왔더랬지. 강릉 시내에서 지은 소화제도 말을 안 듣고 집에 와서 끙끙대다가 산부인과를 가 보니 염증이 잡힌다고 큰 병원을 가보라 했다. 그 때는 고대 응급실이 대기가 길었다. 남편은 도련님께 연락을 했고 성바오로병원(동대문구, 현 은평성모병원으로 이주)에서 진료를 받게 되었다. 도련님과 친구되는 여의사가 내 배가 중앙이 아픈지 오른쪽이 아픈지 눌러보며 물어보았고 골반염이라 진단을 내렸다. 골반염은 약으로 다스릴 수 있지만 당시 아이가 어려 집에서 쉴 수 없는 형편이었기에 입원을 결정했다. 진주에서 어른들이 바로 올라오시고 서은 가은은 울면서 엄마랑 떨어져 가는 길에 경찰차 만날 때까지 울었다. (계속 울면 경찰 아저씨가 잡아간다는 할머니 말씀이 먹혔다.)
약만 먹으면 되는 경증 환자였는데도 입원 생활은 내게 너무 힘이 들었다. 뭔가 미식거리는 듯한 느낌이 계속되었고 무거운 병원공기가 나를 짓누르는 듯했다. 병실은 북적였지만 나는 조용히 지냈고 미사에 한 번 참석했던 기억이 난다. 퇴원을 하고 나왔을 때 바깥공기가 참 좋았다. 길 건너편이 바로 경동시장이었고 시장의 분위기를 맛 본 우리 가족은 그 이후로도 몇 번 부러 시장을 찾았다.
4전 병원의 기억은 회색인데, 이번에는 좀 산뜻한 편이다. 약 먹고 더 심해진 오심과 전체 마취 후유증에의 두려움을 안고 차가운 수술대에 누웠는데 잠에서 억지로 깨고 나니 왠걸! 제왕절개 때보다 목이 덜 아프다. 조금 불편한 정도니 거의 안 아프다고 할 수 있겠다. 바로 일어서서 걸을만 했고 크게 힘들지도 않았다. 와우! 가뿐한 이런 기분은 뭐지. 보호자가 있으면 오히려 신경쓰였겠구나, 오롯이 혼자 지내기 딱 좋은 컨디션이구나. 좀 지겨울 때도 있었지만 금방 3박 4일이 지난 듯하다.
처음엔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의 [공부하는 삶] 책을 계속 읽었다. 1일 1책 하신다는 사부님께 자극 받아 하루만에 다 읽으려 했으나 무리였다. 수준에 안 맞는 책을 읽으려니 머리가 멍했다. 읽으면서 집중이 안 되어 와닿는 문장을 타자로 쳤다. 다음날에는 '우리들의 블루스' 드라마 편집본을 몰아봤다. 다운증후군 정은혜 작가가 출연해 한지민배우와 쌍둥이자매로 연기하는 14,15회가 참 사랑스러웠다. 김현정의 뉴스쇼에 정은혜작가 모녀가 출연한 것을 보았는데 30년 넘게 자녀를 인격적으로 대하며 잘 키워온 엄마가 대단하다 싶었다.
마침 주중소그룹 묵상모임도 시작하는 날이어서 빈 병실에서 zoom으로 참여를 했다. 기름기 절절 흘러 감당 안되는 머리와 까만 민낯의 비디오만 무시하면 바깥의 생기를 불러들이는 아주 훌륭한 시간이었다. 여는 질문으로 '예수님과 저녁식사를 한다면 어떤 대화를 나누고 싶은가?' 나는 묻고 싶다고 했다. 이번 해에 예상과 달리 연장된 휴직 시간을 보내며, 유산도 하고 코로나도 걸리고 수술도 하고, 평소 잘 없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요. 제가 귀기울여 들어야 할 메세지가 있나요?
일단은 목, 금으로 계획된 1박 엄마 캠핑에 나는 안 가기로 결정을 했다. 단톡방에는 준비물 의논으로 이래저래 새 글이 죽죽 올라온다. 처음에는 본의는 아니라 해도 5팀 중 내 사정으로 빠지게 되는 것이 미안하기만 했다. 컨디션을 보고 결정하자며 유보해 오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번 주에 이렇게 아픈 것은 가지 마라고 하시는 거다. 딱 봐도 아닌 건데 억지로 갈 필요 있나. 그래서 혜원언니에게 못 가겠다고 연락을 하고 내가 얼마간 비용을 내겠다고 했다. 언니는 서은이만 괜찮다면 서은이만 보내도 좋다고 한다. 그것도 좋은 방법이다. 마음이 편해졌다.
휴직을 하면서, 입원을 하면서 나에게 조용한 시간을 주셔서 감사하다. 그런데 이 시간을 충만하게 못 보내고 있는 안타까움은 여전하다. 병원에 있으니 일찍 깨어 새벽기도를 참석하였다. 그래, 조금씩 가까이 나아가자. 기분이 영 가라앉을 때 주님을 불러보았다. 주님, 임재하시는 주님,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주님께 시선을 돌려본다. 주님과 마주하는 시간이 더 충만했으면 좋겠어요.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러도 명쾌하지는 않지만 내가 무엇을 계획해도 내 맘대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 내가 건강하다고 자만할 수 없다는 건 확실하다. 지금 내가 여기서 누리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니라 허락된 것이라는 사실이 지금 여기를 더 소중하게 하는 것 같다. 즐거울 땐 감사를, 고통 중에서는 기도를. 곧 퇴원이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