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20일(수)■
(요한계시록 7장)
1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2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3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
4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5 유다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6 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7 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8 스불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
(묵상/계 7:1-8)
◆ 일곱째 인이 떼어지기 직전
(1)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만일 이 예언이 문자적이라면 바람이 불지 못하게 하는 이 상황은 전 세계적으로 매우 특이한 자연환경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말씀은 비유적일 것이다. 예레미야에도 비슷한 말씀이 있다. 엘람인들을 사방으로 흩으실 때, 사방 바람을 불어서 흩으시겠다고 하셨다(렘 49:35). 이것은 주변 나라들을 이용해서 엘람인을 치게 됨을 의미하는 말씀이었다.
즉 오늘 본문의 바람이란 태풍이나 허리케인 같은 바람이 아니라, 이제 인류를 완전히 심판하게 될 남은 재앙들을 의미한다고 본다. 남은 재앙이 그나마 남아 있는 인간들을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흩을 것이다.
◆ 이마에 인 맞은 자
(3)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
그러나 이 마지막 재앙이 임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인(seal)치는 일을 하신다. 이마에 인을 침으로써 선택받은 자들을 구별하신다. 이들은 일곱 인 재앙에서 살아남고, 일곱 나팔 재앙 동안 예수님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아낼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모두 유대인 지파에 속한 자들이다. 더구나 지파별로 12,000명씩이다. 이것은 과연 문자적으로 유대인들 144,000명일까, 아니면 지상의 모든 성도를 비유적으로 말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오늘 본문의 몇 가지 특별한 점을 살필 필요가 있다.
일단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에서 에브라임 지파를 '요셉 지파'로 대치했다. 이것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에브라임은 요셉의 둘째 아들인데, 야곱은 축복할 때 에브라임에게 오른손을 얹음으로써 그가 요셉지파를 대표할 것임을 시사했다(창 48:13,20). 그리고 구약 성경에서는 요셉지파와 에브라임 지파를 동일시 하기도 했다(민 1:32, 시 78:67).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특이한 것은 요셉의 또 다른 아들인 므낫세 지파는 열두 지파 중에 하나로 등장하는데, 정작 정식 지파인 '단'지파는 빠져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열두 지파라고 할 때는 오히려 제사를 맡은 레위지파를 빼고 말한다. 민수기 2장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을 셀 때 레위 지파는 뺐다. 가나안 정탐꾼 12명을 선정할 때도 레위지파는 뺐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레위지파가 들어가 있고, 단 지파가 빠졌다. 단 지파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지파인가? 그렇지 않다.
에스겔서에는 마지막 때에 이스라엘 땅이 지파별로 어떻게 분배될 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분명히 북쪽 끝에 단 지파의 영토가 표시되어 있다(겔 48:1). 만일 오늘 본문의 열두 지파가 문자적인 유대인들을 가리킨다면 계시록과 에스겔은 서로 충돌하게 된다.
따라서 나는 여기에 언급된 이스라엘 열두 지파는 육신적 혈통에 의해서 분류된 지파라고 보지 않는다. 이것은 새예루살렘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새예루살렘에는 열두 문이 있고, 이 문들에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이 문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만이 아니라 만국 백성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간다고 했다(계 21:26).
한마디로 새예루살렘의 문으로 들어가는 자들은 유대인만이 아니라 거듭난 성도들이고, 이들이 각 지파의 이름이 새겨진 문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여기에 분류된 각 지파란 육체의 혈통적 지파가 아닌 새예루살렘에 속한 영적인 지파로 봐야 할 것이다.
이것에 대해 여러 증거들을 말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뽑으실 때, 지파 별로 뽑지 않으셨다. 심지어 야고보, 요한은 형제지간이며 베드로와 안드레도 형제지간이다. 제자들도 지파별로 뽑지 않으신 주님께서 새삼스럽게 지파별로 골고루 숫자를 배분한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참고로 오늘날 유대인들은 자기가 무슨 지파인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고, 그런 분류도 사실 의미가 없다. 민족 구별조차 배제한 하나님 나라에서 유대인을 지파별로 구별을 둔다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
에스겔에서 소개된 각 지파에 할당된 영토의 구분이야 상징적인 의미가 있지만, 거기에 거하는 자들에게 순수혈통을 요구하는 차별은 없을 것이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비유적임을 드러내는 것이 또 있다.
144,000이라는 숫자다.
E.W 벌링거는 성경의 숫자에 대해 기념비적인 작품을 남겼는데, 그는 12란 통치적 완전을 뜻하는 수라고 한다. 통치받는 사람의 수란 의미다.
성경을 보면 야곱의 아들은 열둘이지만, 요셉의 아들 둘을 지파로 만들면서 모두 열세 지파가 되었다. 그런데도 성경은 단 한 번도 이스라엘을 열세 지파라고 말한 적이 없다. 언제나 열두 지파라고 했다(창 49:28, 출 24:4). 이스라엘에서 땅을 배분할 때도 열두 지파에게만 배분했다. 레위 지파는 열외로 했다.
사사기에 나타난 사사도 열두 명이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열두 명이다. 제자 중에 가룟 유다 한 명이 빠지게 되자 다시 맛디아로 채워 넣을 정도로 열둘에 집착했다. 심지어 모든 성도가 들어갈 새 예루살렘 크기도 12,000(12X1000) 스타디온, 벽은 144(12 X12) 규빗이다(계 21:16,17). 열둘은 문자적이면서 동시에 상징적인 숫자다.
144,000은 12X12X1000을 의미한다. 즉 완전한 통치의 수를 두 번이나 곱하고 거기에 무수히 많다는 의미를 가진 1000을 곱한 것이다. 이것은 문자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상징적으로 봐야 한다.
결론적으로 오늘 본문의 144,000명이란 온 세상 모든 곳에 퍼져있는 성도들 중에서 나팔 재앙 시기에 온 세계에 마지막으로 복음을 전할 사람들이라고 본다. 이 숫자는 상당히 많은 백성을 상징한 것이라고 본다.
이 사람들은 7장에서 소개되는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와 대조가 된다.
일곱 인 재앙 시에는 불신자만 죽는 것이 아니다. 성도들도 각종 자연 재해에 수없이 죽는다. 어떤 분은 재앙에 죽는 것을 불행으로 간주하지만, 일곱 인 시기에 재앙으로 죽는 것은 오히려 배려일 수 있다.
왜냐하면 이어질 일곱 나팔 재앙 시기에는 성도들이 말도 못한 핍박과 고문을 받게될 것이기 때문이다. 믿음이 약한 성도들은 그러한 핍박과 고문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배도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일찍 죽는 것이 더 낫다.
이렇게 인 맞은 144,000명들은 끝까지 살아남아서 나팔 재앙 시에 말도 못한 핍박과 환난을 견뎌내고 상당수가 순교당할 것이다. 그리고 남은 자들은 마지막 나팔 때 모두 휴거될 것이다.
신천지와 같은 사이비 이단 교주들은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144,000명에 속한 지위를 부여하는데, 도대체 성경의 144,000이 유대인도 아니고, 대부분 한국인이라는 것이 말이 되는가? 나는 분명히 확신하는데, 신천지나 사이비 종파에서 144,000의 지위를 부여받은 자들은 거기서 나오지 않으면 백퍼센트 지옥에 간다.
교회 형제들에게 물었다.
일곱 인 재앙에서 그냥 죽는 게 좋을지, 아니면 144,000에 뽑혀서 핍박을 견디다가 순교당하는 것이 좋을지...
대부분 형제들이 그냥 재앙으로 죽겠다고 한다. 순교 시에 당해야 하는 고문과 핍박이 두려운 것이리라.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전 15:55-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