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4. 17>
첫댓글 至痛在心 日暮途遠지극한 슬픔과 고통이 마음에 가득한데,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구나.
孝宗大王 賜白江李相國 批答語也효종대왕께서 백강 이상국(이경여)에게 내린 비답의 말씀이다.
臣宋時烈 敢手戮首 謹書原批稱李相國以大人先生신 송시열이 감히 손 모아 절하고 머리 조아리며 삼가 쓴다.비답의 원문에서는 상국을 대인선생이라고 했다.
부산각서석은 조선 효종이 백강 이경여(李敬輿, 1585~1657)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 말을 백강의 제자인 우암 송시열이 여덟 글자를 써서 백강의 넷째 아들인 이민서(李敏叙)에게 전해주었는데 이민서의 아들인 이이명(李頤命)이 바위에 새긴 글씨로 전해진다.
당시 효종 임금과 조정은 청나라를 정벌하자는 북벌론(北伐論)을 은밀히 추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군사력은 부족하고 시간은 흘러가는데, 뜻을 이루지 못하는 안타까운 시대적 상황을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어 마음이 아프다"라는 8글자에 압축하여 바위에 새겨 넣은 것이다.
일모도원(日暮途遠)은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라는 뜻을 가진 사자성어이다.할 일은 산더미처럼 많고 목적지까지 가야 할 길은 까마득한데, 시간이나 여건이 허락하지 않아 마음이 초조하고 다급할 때 주로 쓰이는 말이다.
이 말은 중국 춘추시대 초나라의 명장 오자서(伍子胥)의 이야기에서 유래했다.오자서는 자신의 아버지와 형을 억울하게 죽인 초나라 평왕에게 복수를 다짐하고 원수나라인 오나라로 망명했다. 이후 오나라의 군대를 이끌고 마침내 초나라의 수도를 함락시켰으나, 이미 평왕은 죽고 무덤에 묻힌 뒤였다.
원한을 풀지 못한 오자서는 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그 시신을 꺼낸 뒤, 채찍으로 300번을 내리치는 혹독한 복수(굴묘편시, 掘墓鞭屍)를 감행했다.이 소식을 들은 그의 옛 친구 신포서가 "복수가 너무 과하고 천리에 어긋나지 않느냐"라며 비판의 편지를 보내자, 오자서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나의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기에, 도리에 어긋난 줄 알면서도 차마 거꾸로 갈 수밖에 없었네."(吾日暮途遠, 吾故倒行而逆施之)여기서 오자서가 말한 '일모도원'은 자신의 수명(나이)은 다해가는데 아직 풀어야 할 원한과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이 남았기에, 마음이 극도로 조급하여 극단적인 방법(도행역시)까지 쓸 수밖에 없었다는 처절한 심경을 담고 있다.
오늘날에는 오자서처럼 복수나 극단적인 행동을 정당화할 때 쓰이기보다는, 주로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비유적으로 사용된다.나이는 들어 노년이 되었는데,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많거나 삶의 마무리가 준비되지 않아 안타까워할 때.
중요한 프로젝트나 시험, 마감 기한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진척도가 낮아 마음이 몹시 다급할 때.해결해야 할 구조적 문제나 과제는 산적해 있는데, 이를 해결할 시간이나 자원이 턱없이 부족함을 한탄할 때.즉, '하고 싶은 일(또는 해야만 하는 일)의 양'과 '나에게 남은 시간' 사이의 거대한 불균형에서 오는 인간적인 고뇌와 초조함을 가장 잘 표현하는 사자성어라고 볼 수 있다.
첫댓글 至痛在心 日暮途遠
지극한 슬픔과 고통이 마음에 가득한데,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구나.
孝宗大王 賜白江李相國 批答語也
효종대왕께서 백강 이상국(이경여)에게 내린 비답의 말씀이다.
臣宋時烈 敢手戮首 謹書
原批稱李相國以大人先生
신 송시열이 감히 손 모아 절하고 머리 조아리며 삼가 쓴다.
비답의 원문에서는 상국을 대인선생이라고 했다.
부산각서석은 조선 효종이 백강 이경여(李敬輿, 1585~1657)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 말을 백강의 제자인 우암 송시열이 여덟 글자를 써서 백강의 넷째 아들인 이민서(李敏叙)에게 전해주었는데 이민서의 아들인 이이명(李頤命)이 바위에 새긴 글씨로 전해진다.
당시 효종 임금과 조정은 청나라를 정벌하자는 북벌론(北伐論)을 은밀히 추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군사력은 부족하고 시간은 흘러가는데, 뜻을 이루지 못하는 안타까운 시대적 상황을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어 마음이 아프다"라는 8글자에 압축하여 바위에 새겨 넣은 것이다.
일모도원(日暮途遠)은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라는 뜻을 가진 사자성어이다.
할 일은 산더미처럼 많고 목적지까지 가야 할 길은 까마득한데, 시간이나 여건이 허락하지 않아 마음이 초조하고 다급할 때 주로 쓰이는 말이다.
이 말은 중국 춘추시대 초나라의 명장 오자서(伍子胥)의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오자서는 자신의 아버지와 형을 억울하게 죽인 초나라 평왕에게 복수를 다짐하고 원수나라인 오나라로 망명했다. 이후 오나라의 군대를 이끌고 마침내 초나라의 수도를 함락시켰으나, 이미 평왕은 죽고 무덤에 묻힌 뒤였다.
원한을 풀지 못한 오자서는 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그 시신을 꺼낸 뒤, 채찍으로 300번을 내리치는 혹독한 복수(굴묘편시, 掘墓鞭屍)를 감행했다.
이 소식을 들은 그의 옛 친구 신포서가 "복수가 너무 과하고 천리에 어긋나지 않느냐"라며 비판의 편지를 보내자, 오자서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나의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기에, 도리에 어긋난 줄 알면서도 차마 거꾸로 갈 수밖에 없었네."
(吾日暮途遠, 吾故倒行而逆施之)
여기서 오자서가 말한 '일모도원'은 자신의 수명(나이)은 다해가는데 아직 풀어야 할 원한과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이 남았기에, 마음이 극도로 조급하여 극단적인 방법(도행역시)까지 쓸 수밖에 없었다는 처절한 심경을 담고 있다.
오늘날에는 오자서처럼 복수나 극단적인 행동을 정당화할 때 쓰이기보다는, 주로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비유적으로 사용된다.
나이는 들어 노년이 되었는데,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많거나 삶의 마무리가 준비되지 않아 안타까워할 때.
중요한 프로젝트나 시험, 마감 기한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진척도가 낮아 마음이 몹시 다급할 때.
해결해야 할 구조적 문제나 과제는 산적해 있는데, 이를 해결할 시간이나 자원이 턱없이 부족함을 한탄할 때.
즉, '하고 싶은 일(또는 해야만 하는 일)의 양'과 '나에게 남은 시간' 사이의 거대한 불균형에서 오는 인간적인 고뇌와 초조함을 가장 잘 표현하는 사자성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