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2차 대전 레마겐 철교에 글을 썼는데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니 다리 폭파 이야기를 더 하고 싶네요...
한강철교 폭파는 6.25 비극 중의 비극이었습니다. 물론 군사정권 시대에는 누가 선뜻 말하는 사람이 없었고 문민시대에 다큐로 방송이 되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승만 대통령이 서울을 사수한다고 큰 소리를 쳤고 자기는 도망...국군이 반격하여 38 선을 돌파했다고 국민을 속였었죠. 덕분에 대다수의 서울 시민이 피란을 못 가고 적 치하에 떨어지게 됩니다. 철교 폭파는 그 와중에 일어난 비극으로 뒤늦게 몰려든 피란민을 통제하지 못하고 피난민이 철교 위에 가득한 상태에서 발파를 합니다. 철교 위에 있던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한 것은 물론이고요. 당시 증언을 들어보니 사람의 팔다리가 시가지에 까지 떨어졌었다고 하네요. 기록사진에도 사지가 새까맣게 탄 시체가 참혹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수천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 친지를 잃은 사람들은 정부가 자기들만 살겠다고 도망가면서 국민을 속이고 뒤늦게 살겠다고 철교를 건너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으니 원망을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물론 다리 폭파 책임자 하나가 내린 결정은 아닐테고 이 책임을 둘러싸고 논쟁이 많습니다. 책임자는 폭파 후 군사재판을 받고 허겁지겁 처형을 당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 한 사람에게 책임을 뒤짚어 씌워 면죄를 받으려 한다는 의혹이 일어납니다.
사실 한강 철교가 적 수중에 떨어지면 국군에게 심각한 타격이 되었죠. 그래서 철교를 폭파하기 위해 공병대가 투입되는데 밀려오는 인파를 통제하는데 실패했다고 합니다. 철교를 폭파한다고 소리쳐도 누구 하나 물러서지를 않았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철교를 건너는 인파 속에는 군인들도 많습니다. 부대가 철교를 건너는 것을 본 시민들은 자기네만 기회를 놓칠까 우려했던 것이죠. 거기에다 공산군이 피란민 틈에 특공대를 침투시켜 잠입하려 한다는 첩보마저 있었다합니다. 그러니 조바심이 난 폭파 책임자는 철교 위에 사람들이 있는 상태로 폭파할 것을 결심합니다. 흔히 군대에서 자주 말하는 대를 위한 소 희생의 법칙이죠. 그 덕분에 철교는 끓겨 공산군의 남하 속도는 다소 지체되지만 폭파 책임자 역시 소 에 섞여 총살로 희생되고 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