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릴적 시골에 살 때는 부잣집이라고 하면 식구들이 밥 굶지 않고 반듯한 기와집에 살며
커다란 벽시계가 마당에서도 보일만큼 벽에 걸려 있고 자전거가 있는 집이었다.
당시에는 동네 집들이 대부분은 초가집이었고 시계나 자전거가 있는 집은 100여호가 사는
동네에 한 두 집에 불과했다.
내가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마산으로 내려왔을 때는 부잣집이라고 하면 집에 전화가 있었다.
다이알식도 아니고 손잡이를 몇번씩 돌려서 전화국에 있는 안내양에게 몇번 대어 달라는 공전식
전화기였다. 가난했던 우리집은 알바 하러 서울로 올라간 동생에게 전화를 하기 위해 마산전신
전화국에 가서 시외전화를 신청해 놓고 네시간이나 기다려야 했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쯤에는 TV와 냉장고가 나오기 시작했다. TV도 흑백이었다가 나중에 천연색으로
바뀌었다. 월남전에 갔던 군인들이 귀국하면서 미군 PX에서 TV를 사오기 시작하여 TV가 보급되기
시작하였고 부산에서는 우리나라 TV방송국이 생기기 전부터 일본방송을 청취하였다. 당시 유치원
이나 초등학교에서 가정실태 조사를 하기 위해 자기 집에 있는 물건을 그려내도록 하기도 하였다.
대학에 다닐때쯤 부잣집에서는 수입 양변기를 사용하고 가스레인지를 썼다.자가용 차를 가진 사람들
의 수도 점차 늘어났다. 호구지책으로 배를 탔지만 그 덕에 사궐셋방 신세를 면하고 조그만 아파트를
마련하게 되어 내집을 갖게 되었다. 점차 전화기와 TV, 자동차도 갖게 되었지만 국민생활수준의 향상
에 따른 것으로 부자는 아니었다. 고급 오디오와 요트정도는 있어야 부자로 인식되었다.
KB부자보고서에 의하면 작년도 우리나라 부자의 기준은 부동산이 10억 이상에다 현금성 자산이 10억
이상 있어야 한다고 돼 있다 한다. 이런 조건을 만족하는 사람의 수는 46만 1천명으로 전체인구의 약1%
수준으로, 서울 경기 인천에 약 70.4%가 거주하며 특히 강남,서초,송파 3구에45.5%가 살며,그 다음으로
부산에 29.2%가 산다고 한다. 스스로 부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총자산이 100억은 돼야 한다고 하니
부자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기 보다 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