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kbs 정도전
운영자는 생각없이 받아들이는 다문화 이주정책 즉 외국인과 혼혈 이주정책은 장차 나라의 우환이 될수있다고 경고한다. (이미 160만명 정도 된다)
현재 방영중인 <정도전>에서 이성계의 행동을 미심쩍게 보는 이인임은 최영에게 이러한 대사를 던진다. "우리는 고려인으로 태어난 것이 운명이었으나 이성계는 원나라사람으로 고려인이 된것은 그의 선택이었으니 그 선택은 언제든지 마음먹기 달려있다"고 일갈한다.
틀린말 일까? 역사적으로 예를 들어보자.
출처 kbs 이용상
역사적으로 보면 고려에서 받아들인 월남 리왕조의 후예라던 <이용상 사건>에서 보듯이 정통성이 필요했던 공산당 베트남은 상징적인 사건으로 월남왕 후예 이용상이 왕족으로 개선장군 처럼 귀화하자 대대적으로 환영했다 이용상도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평범하게 사느니 용이 되어보자는 심산으로 700여년된 고려를 버리고 냉큼 월남인으로 갈아 탔다.
한국에 남아있는 나머지 화산이씨들만 새가 된 셈이다.
미국이 100년 동안 유지하여 오고있는 강대국의 지위를 잃어버리면 4500만명의 노예출신 흑인들은 미국에서 조용히 살아갈까? 운영자는 단연코 no라고 말한다. LA폭동사태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잘사는 나라에 스며들거나 이민온 사람들은 그럭저럭 강대국,선진국이라는 비교적 그들이 살덧곳에 비해 우월한 사회분위기에 젖어 살아가지만 그가 선택했던 나라가 약해지거나 위기에 처했을때 반역하는 강도와 비율은 원주민보다 높지않을까 생각한다.
프랑스 이민자 폭동사건 발생 지역과 외국인 이민 폭동자.
근자에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대규모 소수 이주자 폭동분쟁도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와 북아프리카 그리고 동유럽에서 유입되었던 사람들이 주동자였음을 알것이다.
800년전 고려 서경에서 서경유수를 살해하고 폭동을 일으켜 급기야 서경을 포함한 고려의 동쪽 60개성을 원나라에 바치고 3대에 걸쳐 원나라에서 호가호위했던 홍복원이 元史에서는 고려인이 아닌 중국인이란 기록이다!
고려사 卷一百三十 列傳 卷第四十三 叛逆 홍복원
洪福源, 初名福良, 本唐城人, 其先徙居麟州, 父大純, 爲麟州都領. 高宗五年, 元遣哈眞·扎刺, 攻契丹兵于江東城,大純迎降. 十八年, 撒禮塔大擧入侵, 福源又迎降于軍.
二十年, 福源爲西京郞將, 與畢賢甫, 殺宣諭使 大將軍 鄭毅·朴祿全, 據城反. 崔怡遣家兵三千, 與北界兵馬使 閔曦討之, 獲賢甫送京, 腰斬于市. 福源逃入元, 於是, 擒其父大純及女·子弟百壽, 悉徙餘民于海島, 西京遂爲丘墟.
福源在元, 爲東京惣管, 領高麗軍民, 凡降附四十餘城民, 皆屬焉. 讒構本國, 隨兵往來, 怡患之, 欲悅其心, 官大純爲大將軍, 百壽時爲僧, 髮之爲郞將. 以張暐爲福源女壻, 賄賂不絶, 福源感之, 讒構稍弛. 然自是, 元兵歲至, 攻陷州郡, 皆福源導之也.
홍복원은 당성(고대지명사전: 호북성)사람이다.선조가 인주로 이사오다.그의 아버지는 대순으로 인주도령이었다. 고종5년(1218) 원나라가 하진과 찰라를 파견하여 거란병을 강동성에서 공격하자 대순이 항복하며 환영하다.고종18년(1231) 살리타이가 대거 침공하자 복원이 항복하며 환영하다. 고종20년(1233)복원이 서경랑장으로 필현보와 함께 서경선유사 대장군 정의,박록전을 살해하고 반란을 일으키다. 최이가 가병 3천과 북계병마사 민의가 함께 토벌하여 현보를 서경으로 압송하고 저자에서 요살했다. 홍복원이 원으로 도망하고 복원의 아비 대순과 식솔들이 바다 가운데 섬으로 피난하니 서경이 폐허가 되었다.
복원이 원에서 동경총관이 되어 고려군민을 통솔하여 40개성을 들어바쳤으며 이후로 자주 고려에 들어와 고려를 침탈하니 모두 복원이 앞잡이 노릇을 한 결과였다.
元史 卷154 列傳第四十一
洪福源俊奇 君祥 萬
洪福源,其先中國人,唐遣才子八人往教高麗,洪其一也。子孫世貴於三韓,名所居曰唐城。父大宣,以都領鎮麟州,福源為神騎都領,因家焉。歲丙子,金源、契丹九萬餘眾竄入高麗。丁丑九月,奪江東城池據之。(후략)
복원의 선조는 중국인이다. 후당에서 재사 여덟 사람을 고려에 오가며 문물을 교환할때 홍복원의 선조가 그중 한 사람이다. 자손이 삼한에서 귀한 가문이 되었는데 당성에서 기거하였다.아비는 대선으로 인주진의 도령이었고 복원은 신기도령이 되다.병자에 이르러 금의 원류인 거란병9만을 이끌고 고려를 침입하였는데 강동성을 빼앗고 그 연못에 기거하였다. (후략)
심제 글.
첫댓글 헤안이십니다.
작금에 종교갈등도 실은 종족간 민족간의 갈등이라 봐야지요.
완전히 동화 흡수돼도 어려울텐데 작은 가정내에 다문화라는것은 가정파탄에 주범입니다.
혈족이 존재하는한 민족이 라는 개념의 의식이 사라질수는 없을겁니다.
혈족 민족 생존을 위해 뭉쳐야하는 이유의 구심점이기에 세월이 흐른다 하여도 사라지지않는 본능이라 생각합니다.
당한넘이 ㅄ인거죠. 97년 IMF 맞았을대 필리핀애들 싹다 귀국하거나 다른 나라로 튀었어요. 근데 좀 살게된 2002년부터 슬금슬금 들어오더니 이모양 이골.
프랑스뿐만 아니라 영국,독일,스웨덴,스위스 듣등 유럽은 다문화 때문에 문제가 많습니다. 이미 너무 많이 들어와서 손을 쓸 수 없을 정도 입니다. 오죽했으면 독일 수상 메어켈이 '다문화는 실패한 정책이다'라고 공개적으로 말했을까요. 현재 스위스는 더이상 외국인 받아 들이지 않습니다. 이슬람 사원도 건축허가 내주지 않습니다. 한국만 관대한 정책을 한다고 외국애들 우대 정책을 펴는데 이게 실제는 나라 망하는 정책입니다.외국인 정책은 일본이나 대만이 잘하는 겁니다. 일본은 10년이상 살았어도 절대 일본국적 내주니 않고 체류기간이 끝났으면 무자비 할 정도로 쫓아 낸답니다. 대만은 외노자들 대만사람하고 결혼 금지 시켰습니다
잘 읽었어요
심리적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생각합니다. 만약 미래에 차이나가 우리를 집어삼키는 날이 온다면, 차이나를 뿌리로 둔 성씨로 태어나있는 사람이라면 별 거부감없이 차이나를 받아들이고 적극 동조할 여지가 있겠죠. 마음이란게 그렇게 작용할수밖에 없다고 봐요.
역으로 발상전환을 한다면, 아시아가 옛날엔 모두 환국의 일원이었고 지금 나라들은 다 그 후손이라는 역사관점을 차이나와 일본인들이 다 인식하게끔 한뒤에 우리나라에 어떤 큰 불꽃이 튀면서 환국의 체제를 부활시킨다면 우리가 문화도 국력도 경제도 우월해서 저들을 압도할 지경이 된다면, 환국에대한 역사인식을 받아들이고있는 지나인 일본인들은 거부감이 적을테고 오히려 그 체제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을겁니다.
결국 뿌리를 누가 잡고있느냐, 역사를 누가 쥐고있느냐도 중요할것 같습니다. 지나인이라고 해도 마냥 중국인이 아니죠. 자기 뿌리를 모르고 선조도 모르면서 난 한족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모두다 국적불명인 기업인들이 자신들만 잘먹고 잘살겠다고 외국노동자들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고 있기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