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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여행11 - 구엘저택을 보고 람블라거리를 걸어 콜럼버스의 탑을 보다!
2018년 5월 18일 바르셀로나 산츠역에서 지하철로 리세우역 Metro Liceu 에 내려 피 광장
을 거쳐 새광장을 보고 바르셀로나 대성당 카테드랄 Catedral 을 구경한 후에 왕의광장
Plaça del Rei 과 바르셀로나 역사박물관 Museu d'Historia de Barcelona 을 구경합니다.
그러고는 레이알 광장 Plaça Reial 을 찾아 가우디 가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제작한
가로등 을 구경하고 건너편 노우 데 라 람블라스 거리 Calle Nou de la Rambla 로
들어가 가우디가 설계했다는 화려하기 그지 없는 구엘 저택 Palau Guell 을 구경합니다.
다시 람블라스 거리 Ramblas 로 나와 항구 쪽으로 걷는데... 오래된 나무가 줄지어선 녹음
우거진 도로에는 꽃이 많고 새를 파는 가게며 기념품숍이 늘어서고 카페테리아에서
내놓은 의자에 거리 예술가 들이 퍼포먼스 를 벌이는 곳이니 구경거리가 많은 거리입니다.
바르셀로나 는 인구 170만으로 스페인에서 2번째 대도시로 도시 이름은 고대 페니키아어
(지중해 동부 레바논) 바르케노 Barkeno 에서 유래했으며 바르셀로나 백작 이
다스리던 땅은 결혼에 의해 11세기에 아라곤 왕국 으로 귀속되어 18세기 까지 계속됩니다.
스페인 땅으로는 타라고나와 더불어 로마에 가장 먼저 점령된 지역이고 712년에는
바다를 건너온 이슬람 사라센인 들에게 정복당했으며 8세기말에 프랑크족
샤를 마뉴 대제 에 의해 일시 점령당하기도 했으나 프랑크 세력이 쇠퇴하면서
결국 아라곤 왕국 에 속하게 되었던 것인데 17세기 부터 분리 독립운동 에 나섭니다.
람블라스 거리 를 계속 걷노라니 거리에는 데포르마시옹에서 초사실주의 까지 초상화가
들이 많은데 시간만 있다면 캔버스 앞에 앉아 내 얼굴 커리커처 라도 그려
보고 싶다만...... 오늘 기차를 타고 프랑스 로 넘어가야 하니 그건 사치스러운 일입니다!
쇼핑센터 마레마그눔 Maremagum 을 지나 메트로 드라시네스역 근처에 이르니 포르탈 데
라 파우광장 Placa Portal de la Pau 인데 항구 부근 푸에르타데라파스 에는 하늘
높이 솟은 거대한 기념비적 건축물이 서 있으니 콜럼버스 탑 Monument a Colon 입니다.
여긴 관광객들이 많이 모여드는 곳이라.... 신호를 기다려 도로를 건너가 기념비 에
이르니 생각보다 엄청 큰 건축물로 많은 사람들이 기념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데 기념비 내에 또 조각이 하도 많으니 하나 하나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콜럼버스의 탑 을 구경하다가 문득 몇년전에 이탈리아 서북부 제노바 에 갔을때 단테광장
Piazza Dante 을 찾아 콜럼버스 생가 Casa di Colombo 를 구경했는데 르네상스 시기
베네치아와 함께 동방무역에 종사하여 큰 부를 이루었으나 신대륙 발견후에 쇠퇴했지요?
콜럼버스 라는 이름은 영어식 이니 이탈리아어로는 콜롬보 Colombo 인 데 1,451년 제노바
에서 양모업자의 장남으로 출생하여 동방 무역선이 들락거리는 모습을 보며 자라
25세가 되던 1,476년에 제노바 무역선을 탔다가 프랑스 해적선의 습격 을 받고
바다에 빠져서 떠다니는 노를 잡고 간신히 살아나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 으로 갑니다.
리스본에서 동생 바르톨로메오와 더불어 지도 제작 에 종사하며 범선인 카라벨선 조종술 을
익히던중 1,478년에 선장의 딸 인 펠리파 모리즈와 결혼해 장인으로 부터 항해지도 와
선장일지 를 받은후 아이슬란드를 항해하며 항해술을 익히는 한편 지도 제작 에 몰두합니다.
이 무렵 마르코폴로 가 쓴 “동방견문록” 을 읽으며 향신료의 나라 인도 와 비단의 나라
카타이(중국) 그리고 황금의 나라 지팡구(일본) 를 동경하는데 수학자 토스카넬리
와 서신을 교환하면서... "지구는 네모난 것이 아니고 둥글다" 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당시 가톨릭 세계 에서는 지구는 네모나고..... 바다 멀리 나가면 바닷물이 폭포수 처럼
절벽으로 떨어져 지옥 에 이른다고 믿었는데.... 유럽은 동양에서 나는 비단 과
향료 를 구하기 위해 제노바와 베네치아 가 동방 무역에 종사하고 있었으니
당시 최고급 향신료는 인도네시아 동쪽 뉴기니에 가까운 뮬르카즈 제도 에서 납니다.
인도 상인 들이 미얀마와 말레이 반도를 돌아 인도네시아 동쪽에서 향료를 인도에 가져
오면 아랍 상인 이 다우선을 타고 인도에서 아랍으로 후추와 정향등 향료를 나르고
그럼 아라비아 대상 들이 낙타에 싣고 레바논등 동지중해(레반트) 까지 오면
제노바나 베네치아 상인 이 캬라벨선에 싣고 유럽 까지 가져오는 무역항로를 밟았습니다.
그런데 오스만 터키 가 중동지방을 확고히 지배하게 되면서 관세 를 물리고 이탈리아
상인이 이문 을 탐하면서 가격이 너무 비싼게 불만 이었으니...
1325년경 영국 노섬브리아에서 쓰여진 시에 이런 귀절이 보입니다!
“그곳은 기쁨으로 가득한 과수원이 있으며 스파이스의 온갖 달콤한 향 이 가득하다네!“
향신료 Spice 는 클로브(정향) 와 시나몬, 나트메그(육두구) 며 계피도 있지만 가장 선호
하는 것은 후추 Pepper 였는데.... 유럽 사람들은 인도 에서 난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니 조미료 외에 치료제와 최음제로도 쓰였던 후추와 같은 향신료에 대한 갈망 이
콜럽버스며 바스코다가마, 마젤란등을 저 거친 바다로 내몬 원동력 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여 저 향신료 는 16~17세기에 스페인과 포르투갈, 네델란드와 영국이 아시아를 놓고
식민지 쟁탈 각축전에 나서게 되었던 주요한 원인이 되었던 것이니... 콜럼버스 는
지구가 둥글다면 동쪽 대신에 서쪽으로 가도 인도와 중국, 지팡구 에 도착할 것이라
믿었는데 태평양 의 존재를 몰랐으므로... 지구를 실제의 5분지 1 크기로 계산했습니다?
1484년 부터 대항해의 후원자 를 물색하면서 포르투갈 왕 주앙 2세 에게 대서양
항해 탐험을 청원하였으나 오스만 터키를 피해 인도로 가는 육로
대신에 아프리카를 도는 동쪽 희망봉 루트 를 준비하던 포르투갈 왕은 거절 합니다.
1486년 콜럼버스 는 에스파냐 로 건너가 카스티야 왕조의 이사벨 여왕 을 만나
대담한 항해 계획을 설명하였고 지원을 요청하나 역시 거절당하고는 그후
영국, 포르투갈, 프랑스에 후원을 요청하였다가 번번이 거절만 당하였지만
그의 집요한 노력으로 1492년에 마침내..... 에스파냐의 후원 을 받아내게 됩니다.
당시 에스파냐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 그라나다 에는 700년간 지속된 이슬람
왕국 이 있었고 북부와 중부에는 카스티야국 여왕 이사벨 1세와
아라곤국 왕 페르난도 2세가 결혼하여 에스파냐(스페인) 가 탄생 하게 됩니다.
이사벨과 페르난도 국왕 부부는 1492년에 그라나다를 함락해 700년 이슬람 통치를 몰아낸
뒤라 해외진출에 관심 을 돌려 이사벨 여왕이 콜럼버스를 등용 하였던 것인데 여왕에게
콜럼버스가 제시한 계약은“콜럼버스는 발견한 토지의 부왕(副王)으로 임명될 것이며
직책과 특권(산물의 1/10)은 자손에게 전승한다” 라는 것으로 산타페 협약 이라고 부릅니다.
이사벨 여왕은 자금을 제공하고 팔로스시(市) 로 하여금 핀타호와 니냐호 를 내주게 하고
"과거의 모든 죄를 면죄(免罪)" 하여 준다는 조건으로 승무원 모집에도 협력하여
주었으며 팔로스항에 사는 핀손 이라는 선장 형제가 자기 선박 산타마리아호 와 함께
참가하였으니 120명 선원을 태운 3척의 콜럼부스 함대 는 1492년 8월 3일에 출항합니다.
하지만 몇달을 항해해도 육지가 나타나지 않자 공포에 질려 반항하는 선원들을 간신히
달래가며 마침내 10월 12일에 바하마 제도 를 발견하고 쿠바 와 아이티 에 도달해
인도의 일부 라고 생각했는데 콜럼버스는 히스파니올라(아이티) 에 40명을 남겨
식민시킨후 1493년 3월에 귀국하여 왕으로부터 “신세계의 부왕” 으로 임명되었습니다.
당시 그가 가져온 금제품 이 전 유럽에 센세이션을 일으켰고“콜럼버스의 달걀”이란
일화도 생겼으며 2차 항해는 1493년에 17척 1,500명 대선단 으로 출범하는데
히스파니올라에 남겨둔 식민자는 전멸해 버렸으나 콜럼버스는 식민지 행정관
으로 이사벨라 시 를 건설하는 한편.... 토지를 에스파냐인 경영자에게 분할해 줍니다.
인디언들에게는 공납과 금 채굴에 경작등 부역 을 명령했으나 금 산출량이 보잘것 없자
인디언을 학대, 살육하고 노예 로 본국에 실어오는데 이 항해에서 에스파냐로
보낸 산물은 금이 아닌 노예 였기 때문에..... 그는 본국으로 돌아오자 문책 을 당합니다.
1498년의 3차 항해에서는 트리니다드와 오리노코 하구 를 발견하였으나 히스파니올라
에서 내부 반란으로 그의 행정적 무능이 문제화되어 본국으로 송환 되었으며
1502년의 제4차 항해 허가는 바스코 다 가마의 성공에 자극을 받은 때문인
것으로 보이는데..... 이 항해에서 콜럼버스는 온두라스와 파나마 지협 을 발견하였습니다.
1504년에 이사벨여왕이 죽은 뒤 그의 지위는 더욱 하락하였으며, 직책의 세습까지도 인정
되지 않았으며 2년후 죽었는데..... 자기가 발견한 토지를 인도 라고 믿고 있었다네요?
서양 사람에 의한 아메리카대륙 최초 발견은 1000년경 노르만인 에 의한 것이었지만
그들은 모두 현지에서 멸종 되었기 때문에 후세로 연결되지는 못했으니
그의 서인도 항로의 발견 으로 인하여 아메리카대륙이 유럽 사람들의 활동
무대가 되었고 또 에스파냐 사람에 의한 신대륙 식민지 경영 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훗날 아메리고 베스풋치 가 미국에 이르러 이 대륙이 인도가 아닌 신대륙 임을 밝혔고...
그후 코르테스 가 멕시코 아즈테카 제국을 정복하고 피사로 가 페루
잉카제국 을 점령해 스페인 사람들이 그토록 목마르게 기다렸던 "황금" 을
유럽으로 실어왔으며 아메리카를 식민지화 하면서 인디오들은 무참히 죽어갔던 것입니다!
오른쪽에는 해양박물관 Museu Maritim 이 있는데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후 16~17세기 이른바 대항해시대에 선박 모형 과 기독교세게가
이슬람 오스만 터키 해군을 물리치고 지중해 제해권을 되찾은 레판토
해전에 참가한 선박 모형 및 세계 최초의 잠수함 익티네오 를 볼수 있다고 합니다.
항구까지 걸어 잠시 구경하고는 메트로 드라시네스역으로 들어가 Zona Universitaria
방향 지하철을 타고는 5정거장을 가서는 지하철 산츠역 Metro Sants Estacio
에 내려서 지상으로 올라와서는..... 엑스포 호텔에 가서 아침에 맡긴 배낭을 찾습니다.
로비에서 휴식을 취한 후 배낭을 짊어지고 호텔을 나와 3~4분을 걸어 바르셀로나 산츠역
Barcelona Sants 으로 가서는 어제 유레일 패스 를 제시하고 좌석 예약을 위해
10유로를 내고 끊은 기차표를 들고 역으로 들어가 파리 로 가는 떼제베 기차에 올라탑니다.
바르셀로나 13시 20분 출발 떼제베 TGV 기차는 15시 24분 프랑스땅 나르본 Narbonne
역에 도착할 예정인데 평소 같으면 다시 16시 로컬 기차를 타면... 카르카손
Carcassonne 을 거쳐 17시 45분 툴루즈 Toulouse- Matabiau 에 도착하지만
지금은 파업 Strike 중이라 기차표를 끊을수 없으니 불안한 마음 을 떨칠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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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즐겁게 봅니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카폐지기님 덕분에 마음과 눈,귀 몇 해를 간간히 때론 매일이 감사함으로 보낼 수 있어 저물가는 즈음에 늦은 인사드립니다.
다시 가고푼 스폐인 그 외 나라들 그리고 풍부한 명화 해설과 다양하고 풍부한 지식을 제공해 주심에도 깊은 찬사 보냅니다
참으로 대단한 복을 지으시는 지기님의 지혜로운 여정이 ㅉㅉㅉ
거듭 자비광명
함께 하시리라 여기며.
더불어 공간에서 즐감하시는 모든 분들께도
가는해 오는해 무탈하시어 나날이 웃음 가득 하시길 기원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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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폐지기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시간이시길 바랍니다
모두들.... 감사합니다.
이제 본격적인 겨울인가 본데
건강하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