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예술인이 되겠다고 하면 열 부모 중 아마 아홉 명은 반대할 것입니다. 그나마 남은 한 사람도 자식에게서 특별한 재능을 확인하기 전에는 쉽게 동의해주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글을 쓴다, 음악을 한다, 그림을 그린다, 등등 쉽게 떠오르는 것은 ‘굶어 죽을래?’ 아니겠습니까? 천의 하나, 만의 하나 특별한 재능을 가지지 않고는 성공하기 어려운 길입니다. 부모는 자식의 어려운 앞날을 걱정합니다. 하늘의 별 따기 같은 성공을 기대하기보다는 무난히 살아가주기를 바랍니다. 특별한 길보다는 평범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게 인생의 무거운 짐 지지 않고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더구나 현재 부모의 삶이 팍팍하고 어렵다면 대단한 성공보다는 오히려 그런 안전한 길을 찾아가기를 희망할 것입니다. 부모처럼 고생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싶지요.
평범한 길이라고 쉬운 것도 아닙니다. 역시 많은 사람들이 함께 가야 하니까 말입니다. 경쟁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러니 부모는 부지런히 일해야 하고 자식은 부지런히 배워야 합니다. 여러 가지 배울 것도 많은데 악기를 배우겠다고? ‘쓰잘 데 없는 짓 말고 공부나 해!’ 이게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쓸 돈도 없고 너는 그런 쓸데없는 짓 말고 공부나 부지런히 해. 그래서 악기까지 거저 제공하고 가르쳐준다는데도 불구하고 아이를 붙잡아 갑니다. 선생님은 기가 막힐 지경입니다. 수업료도 받지 않는다 함에도 소용없습니다. 그럴 시간이 없다는 말이지요. 사실 학교의 입장도 다르지 않습니다. 나중에는 그 음악반을 없애려 합니다. 그게 교육위원회의 입장이랍니다.
물론 예술 분야에서 성공을 하고 속된 말로 그것 가지고 먹고살려면 남달리 뛰어난 재능이 있든지 각고의 노력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되든지 해야 합니다. 평범한 사람이 공부하고 실력을 닦아갈 만한 분야가 아닙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오랜 시간과 경제력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취미생활 정도로 가지고 있겠다고 하면 그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지금은 공부나 하고 여유 있을 때 알아서 배우도록 해. 사실 살아가면서 여유라는 것이 다로 생깁니까? 그 때가 언제이든 어차피 스스로 만들어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따로 생기는 시간이 아닙니다. 어려서든 커서든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시간을 쪼개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살아가며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어디서 어떤 사람들과 어떤 직종의 일을 하든 한 가지라도 예능을 지니고 있다면 자기뿐만 아니라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도 매우 유익하다는 것이지요. 보여주어서 즐겁고 보아서 즐겁습니다. 어느 분야이든 한 가지 정도의 예능을 지니고 있다면 삶을 보다 풍요롭게 만들어줍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압니다. 그럼에도 그 재능을 지닌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가장 편하게 그리고 여유 있게 배울 수 있는 기간이 십대 전후입니다. 어려서 배운다면 덜 부담이 되고 시간도 한결 사용하기 쉽습니다. 문제는 부모의 입장입니다. 아이가 하려 해도 부모가 막으면 힘들게 되지요.
예능이 실제적인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음악을 한다고 일반 과목의 성적에 반영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영향력을 고려해야 합니다. 예전에 ‘인턴’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평생 우체국에서 일하다 퇴직을 하였습니다. 국가 실버 지원정책에 따라 나이든 퇴직자 고용을 독려 받은 홈쇼핑 업체가 취업을 허용합니다. 사실 업체로서는 아무 쓸모없는 인력입니다. 그렇게 꿔다놓은 보릿자루 마냥 출퇴근을 합니다. 사실 현장 업무에는 크게 기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무실 분위기를 바꿔줍니다. 일할 수 있는 공간으로, 더구나 모두가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꿔주는 것입니다. 나아가 그는 업체 대표의 인생 상담자로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실제적 역량 이외의 일상에서 자기 몫을 담당하게 된 것입니다.
예능은 실제적 효과를 당장 얻기보다는 다른 여러 가지 분야에서 사람이 자기 역량을 힘껏 발휘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남편의 버림을 받고 낙심에 빠진 딸 ‘로버타’를 일터로 몰아세웁니다.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음악에 대한 열정 하나는 있기에 할렘의 한 고등학교에서 바이올린을 가르치게 됩니다. 평교사도 아닌 보조교사로 우겨 들어갑니다. 제멋대로 구는 학생들을 붙잡고 열정을 쏟습니다. 교장선생님이 돕고자 해도 그러나 교육위원회나 학부모회의 힘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작은 연주회를 열어 일단 가능성을 보여줌으로 학부모와 관계자들의 마음을 삽니다.
하고자 하면 곁들여 길도 열립니다. 아는 사람, 돕는 사람들이 껴들게 되는 것이지요. 참으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은 재능과 특기를 하나씩 가지고 졸업하고 성장합니다. 그럼에도 교육위원회는 예산을 삭감하고 바이올린 학급을 없애려합니다. 학교장도 힘을 쓸 수가 없습니다. 그 교육위원회의 조치를 뒤집을 수 있는 획기적인 연주회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로버타의 열정은 모든 음악인의 로망이라 할 수 있는 카네기홀 연주를 시행합니다. 사람은 대부분 눈앞의 실리만 따지려 합니다. 보이지 않게 기여하는 부분에 대해서 너무 무지합니다. 영화 ‘뮤직 오브 하트’(Music of the Heart)를 보고 생각해보았습니다. 1999년 작품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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