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의장 문희상이 중인환시리에 자유한국당 임이자 의원을 성추행하는 장면
이것이 좌파 인사들의 민낯이다.
홍윤성(1425~1475)은 수양대군이 반란을 일으켜 조카 단종의 보위를 찬탈할 때 김종서‧황보인 등 조선 초 최고 충신들을 살해한 일등 역도(逆徒)였다. 그 공로로 홍윤성은 수양과 그의 아들 예종 집권 하에서 요직을 두루 거치며 부귀영화를 만끽함으로써,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관료들이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권력자에게만 충성을 바치는 부정적 가치관을 형성한 원흉이 되었다. 오직 전두환만 바라보고 충성을 바친 장세동이 좋은 사례다.
수양대군 찬탈 4년(1458) 7월 11일, 사헌부가 홍윤성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 모친 상중임에도 불구하고 이웃 처녀를 겁탈하려다 실패한 범행이 사헌부에 고변되었다는 내용이었다.
“홍윤성에게 죄가 있다면 명백한 증거를 가져와서 탄핵하라!”
수양은 오히려 상소를 올린 대사헌을 엄히 꾸짖어 내보냈다. 사헌부에서는 홍윤성에게 재차 출두요구서를 보냈지만, 오늘날 국害의원들처럼 법 위에 군림하는 그가 출두할 리 없었다.

사헌부에서 수양대군에게 상소를 올리기 사흘 전, 홍윤성은 만취한 채 세종대왕 때 사역원 주부를 역임하다 죽은 김한의 딸을 겁탈하려고 담을 넘어 그의 집에 침입했었다. 소란에 놀란 故 김한의 부인은 경황 중에도 딸을 데리고 이웃으로 급히 피하여 위기를 모면한 뒤 사헌부에 고변했다. 그러나 사헌부 관원인 정언 및 감찰 누구도 사건을 맡으려 들지 않아 수사가 난관에 봉착했다. 법무부차관 김학의의 수사를 맡은 검사들의 데자뷰였다. 하는 수 없이 대사헌이 직접 출두요구서를 보냈지만 대사헌쯤 우습게 여기는 홍윤성은 끝내 출두하지 않았다.
탄핵상소를 올린 대사헌을 꾸짖어 내보낸 수양대군은 사건을 아예 의금부로 넘겨버렸다. 검찰에서도 손대지 못하는 법무부차관 김학의의 강간 및 뇌물수수 사건을 경찰로 이첩한 꼴이었다. 그리고는 의금부 판의금부사를 불러 대사헌 어효첨, 정언 이파, 감찰 황윤언 등도 직무유기죄로 함께 수사하라고 엄명했다. 수양이 자신의 심복인 홍윤성을 감싸기 위해 검찰총장, 차장 및 중앙지검장 등을 동일선상의 죄인으로 취급하여 함께 수사하도록 어명을 내린 것이다. 이것이 단종을 축출하여 살해하고 왕권을 장악한 수양의 진정한 찬탈 목적이었다.

사건을 의금부로 넘긴 뒤 수양대군은 홍윤성을 술자리로 불러 변명의 기회를 주었다.
“신이 술에 취하여 신의 집인 줄 알고 잘못 들어간 것입니다. 신은 이내 나왔고, 김한의 집에서 소란을 피운 것은 신의 수족들이라 심히 야단을 쳤습니다.”
“홍윤성의 잘못이 아니라지 않느냐! 감히 대사헌 따위가 과인의 공신을 무고했단 말이냐!”
수양은 즉석에서 대사헌 어효첨을 파직하고 의금부에 고변자들을 전면 수사하도록 명했다.
의금부는 즉각 고 김한의 아들 김분 등 홍윤성을 고변한 가족들을 모조리 잡아들여 가혹한 심문을 시작했다. 억울하게 가택침입을 당한 가족들이 각중에 가해자로 둔갑한 것이다. 사건에 재수 없게 연루되어 대사헌이 파직되고 새 인물이 제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헌부는 새로 제수된 대사헌 민건을 필두로 전 관원들이 연명으로 다시 한 번 홍윤성 탄핵상소를 올렸다. 이번에는 소장(訴狀)에 홍윤성의 잘못이 구체적으로 명기되어 있었다. 그러나 수양은 여전히 홍윤성을 두둔하며 끝까지 상소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문재인이 야당과 국민들의 명백한 거부에도 불구하고 부패하고 파렴치한 인간들을 계속 고위공직에 임명하는 인사독재도 수양이 저지른 행위에 버금가는 잘못이다.

세월이 흘러 홍윤성이 이조판서로 재임하고 있을 때였다. 숙부가 찾아와 아들에게 감투를 씌워달라고 청탁했다. 근본이 없던 홍윤성은 어린 시절 숙부 집에서 자랐다.
“흥인지문 밖에 있는 옥답 스무 마지기를 내게 넘기면 현감 자리를 하나 주겠소.”
“예끼 배은망덕한 놈아! 내 30년 동안 너를 친부모처럼 키워줬거늘, 이제 와서 내 유일한 재산인 그 옥답마저 내놓으라는 것이냐!”
“이 자식이 감히 어따 대고 함부로 이놈저놈 하느냐!”
홍윤성은 주먹 한 방으로 숙부를 때려죽여서 하인들을 시켜 후원에 파묻어버렸다.
하인들을 통해 소문을 전해들은 숙모는 홍윤성을 형조에 고변했지만, 이미 수양대군이 홍윤성을 지나치게 비호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형조에서는 숙모의 고변을 아예 접수조차 하지 않았다. 홍윤성의 숙모가 천신만고 끝에 수양에게 직접 그 사실을 알리자 수양은 마지못해 의금부에 진상조사를 명했다. 의금부에서 홍윤성의 후원에 암매장되어 있는 숙부의 시신을 발견하여 수양에게 보고하자 수양은 홍윤성을 교수(絞首)하도록 명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수양의 보위 찬탈을 도운 반란의 무리들, 이른바 정난공신(靖難功臣)들이 들고일어나 그만한 일로 공신을 죽여서는 안 된다며 수양을 겁박했다. 이에 수양은 시신을 암매장한 홍윤성의 하인 3명을 효수(梟首)하는 선에서 사건을 매듭지었다. 이후에도 홍윤성은 온갖 못된 짓을 도맡아 저지르면서도 영의정에까지 올라 죽는 날까지 반란 가담의 특혜를 톡톡히 누렸다.
첫댓글 힘으로 정권을 잡은 수양대군 이방원이나 천하무식꾼 홍윤성이나 말년에 고생좀 했지
야사에 보면 피부병때문에 온천에 자주가는 수양이나 집안에 바람잘일 없는 홍윤성이나 파렴치범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