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日수출액 5위로 떨어져]
엔低에 嫌韓정서까지 겹쳐 아베 집권 후 수출액 급감
주력품 70%, 마이너스 수출… 휴대폰·TV 등 日서만 고전
전문가들 "TPP·FTA 공략, 정부도 관계 개선 나서야"
'12대'.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일본에서 팔린 현대·기아차의 총 숫자다. 지난해는 모두 73대였다. 그나마 승용차는 전무(全無)하고 대형 버스 같은 상용차뿐이다. 지난해 글로벌 판매량이 800만대가 넘는 현대·기아차는 독일에서는 8만5000여대를 팔았지만 일본 시장에서는 죽을 쑤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자국 자동차에 대한 자부심으로 일본 시장이 꽁꽁 닫혀 있는 데다 최근엔 엔저 효과까지 가세해 수출 틈새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본 시장에서 고전(苦戰) 양상은 삼성, LG 외에 한국타이어, 이랜드, 오리온 같은 중국에서 잘나가는 한국 기업들도 예외 없다. 일본이 한국의 5위 수출 대상국으로 추락한 것은 인구 1억2700여만명의 거대 내수(內需) 시장인 일본 공략에 한국 기업들이 실패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 일본 도쿄에 있는 한 도요타 자동차 전시장에서 방문객들이 차를 살펴보고 있다. 휴대폰과 자동차 등을 중심으로 국내 브랜드 제품은 일본 시장에서 고전 중이지만, 국내시장에서는 자동차, 패션, 주류 등에서 인기를 끄는 일본 브랜드가 속출하고 있다. /블룸버그
◇주력 품목 50개 중 35개, 對日 수출 감소
본지가 무역협회와 공동으로 올 들어 4월 말까지 한국의 50대(大) 주력 수출 품목의 일본 수출 동향을 분석한 결과, 35개 품목이 1년 전에 비해 감소했다. 특히 세계 TV 시장 1위인 삼성전자는 일본 시장에서 심각한 판매 부진을 견디다 못해 2007년 아예 일본 TV 시장에서 철수했다. 일본에서 영업하고 있는 LG전자는 전 세계 2위이지만 일본 현지에서는 샤프·소니 등에 밀려 5위에 머물고 있다. 스마트폰의 경우 올 1분기 글로벌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애플을 제치고 1위였으나 일본에선 소니(18.8%), 샤프(15.3%)에도 밀린 5위다. 중국에서 연매출 2조원을 올리는 이랜드는 2013년 일본에 진출했다가 올 초 철수했고, 한국타이어도 일본 현지 판매법인이 자본 잠식 상태에 빠질 정도이다. 농심의 신라면이나 오리온의 초코파이도 일본에서는 실적이 미미하다. 이지평 LG 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과 일본은 자동차, 전자(電子) 등 주력 산업이 정면으로 겹쳐 한국 제품이 일본 시장을 뚫고 나가기가 더 어렵다"고 말했다.
◇"혐한(嫌韓) 정서 확산도 악영향
한국의 최근 대일 수출 등이 부진한 가장 큰 이유는 엔저(円低)다. 2012년 10월 당시 100엔당 1430원대였던 엔화 대비 원화 환율은 900원대까지 추락했다. 이에 따라 한국 수출품의 일본 현지 판매 가격은 3년 새 37% 정도 더 비싸졌다. 강관 수출 기업인 A사 관계자는 "올 들어 환율 때문에 일본 수출 단가를 7~10% 내렸는데, 엔저가 지속되면 하반기부터 수출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공목 산업연구원(KIET) 연구위원은 "일본 경기(景氣)가 좋아지면 한국 수출이 늘어야 정상이지만 엔저 때문에 그런 효과를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일(韓日) 관계가 냉랭해지면서 일본 내 혐한(嫌韓) 정서가 퍼진 것도 중요 요인이다. 한국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아베 신조 총리가 2012년 말 집권한 이후 한국의 대일 수출액이 눈에 띄게 감소하는 게 이를 증명한다. 일례로 휴대전화의 대일 수출 증가율은 2012년(18.2%)을 정점으로 2013년부터 내리막길을 걸어 올 들어 4월까지 -54.1%를 기록했다. 화장품의 대일 수출 역시 2012년에는 전년 대비 27% 정도 늘었으나 2013년부터 계속 감소하고 있다.
◇"1억2000만명 日 내수 시장 잡아야"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의 타개책으로 한·일 FTA , 한·중·일 FTA,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같은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일본에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승관 무역협회 동향분석실장은 "개별 기업들의 경쟁력 향상도 긴요하지만 한·일 FTA 체결 같은 큰 틀의 변화가 이뤄지면 일본 시장 공략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양국 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연구실장은 "구매력 높은 일본 내수 시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혐한 분위기 해소 같은 노력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