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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심고, 공포심 조장하고... 韓에 뿌리내린 中의 ‘맞춤형 공작’
김지원 기자
입력 2024.04.28. 17:32업데이트 2024.04.28. 18:22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AP 연합뉴스
최근 독일·영국 등에서 중국 측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은 인력이 군사 기밀을 중국 측에 빼돌리는 사례가 잇따라 적발되면서 중국의 첩보 행각에 대한 전세계적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1월 총통 선거를 치른 대만에서는 3년간 반미(反美) 성향 정보들이 조작·유통된 것으로 드러났는데, 대부분 중국 지도부와 공산당 지원을 받는 관영 매체 등이 출처였다.
최근 저서 ‘불통의 중국몽’을 출간한 주재우 경희대 중국어학과 교수는 19일 경기도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서 열린 한국 국가안보연구원 중국연구센터 세미나에서 “중국이 ‘중국몽(中國夢) 실현을 위해 전세계를 상대로 영향력 공작을 펼치고 있다”고 했다. 주 교수는 “특히 우리나라에서 펼치는 중국의 영향력 공작은 서구를 향한 것과는 다른 ‘맞춤형’ 공작”이라고 했다.
◇ 한미동맹·주한미군 무력화 노리는 ‘영토 주권 침범’
중국은 2010년 우리 서해를 자국의 ‘내해(內海)’로 규정하고 상습적으로 드나들고 있다. 국방부가 2020년 공개한 ‘최근 5년 주요 외국 군함의 한반도 인근 활동 현황’에 따르면, 중국 군함이배타적경제수역 등 잠정 등거리선을 넘어 한반도 인근에 출연한 횟수는 2016년부터 2019년까지 5년간 900회가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3월에는 중국 해군의 미사일 구축함 2척과 보급함 1척 등 총 3척이 동중국해를 떠나 대한해협을 통해 동해쪽으로 북상하는 사건도 있었다.
주 교수는 “중국은 무소불위의 태도로 우리의 영토 주권에 끊임없는 위기와 불안을 심어주고 있다”며 “가장 큰 이유는 한미동맹 폐기와 주한미군 철수가 요원하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중국은 1982년 자국의 최후 해상 방어선으로 ‘제1도련선(Island Chain)’을 설정했다. 제1도련선은 일본 오키나와부터 대만, 필리핀, 남중국해를 지나 말레이시아까지 이어진다. 최근 입수한 중국 인민해방군 내부문건 ‘해군군사학술’에 등재된 논문에는 제1도련선을 내해화하고 전투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담겼다. 주 교수는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의 존재는 제1도련선 방어에 치명적”이라며 “이런 전략적 부담감을 해소하기 위해 (영토 주권 침범으로) 우리의 영해와 공해를 포함한 모든 해역을 중립화하고, 영해와 영공이 불가분의 관계인 점을 이용해 영해를 잠식함으로써 영공도 잠식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 중국에 대한 환상과 공포심 활용
주 교수는 “중국은 영토 주권 침범과 동시에 영향력 공작을 통해 한국에서 중국에 대한 환상을 퍼뜨리고, 중국에 대한 공포심을 활용하려고 한다”고 했다. 중국에 대한 환상은 한반도 통일과 북한의 비핵화에 중국이 협조해 줄 것이고, 거대한 중국 시장에서 우리가 경제적 이익을 누릴 수 있다는 기대 등을 뜻한다. 주 교수는 “한중수교 이후 30년간 중국은 한반도를 상대로 이중플레이를 해왔다”며 “남한에도 외교적인 수사로 ‘평화통일’을 지지한다고 하지만, 북한의 동맹국으로서 중국은 북한 체제와 정권 위에 통일이 구현되길 응원한다”고 했다.
중국에 대한 공포심은 2014년 사드(THAAD) 배치 논쟁 이후 중국이 ‘한한령’과 한국 상품 불매 운동, 한국 단체관광 상품 불허 등 경제 보복 제재를 단행하면서 뿌리 내렸다. 주 교수는 “우리 국익을 따져보기도 전에 중국을 즉각적으로 먼저 의식하며 베이징의 눈치를 보는 병폐가 사회 지도층에 만연해있다”며 “중국은 이런 모습을 비웃으며 우리를 계속해서 압박하고 있다”고 했다.
◇ 지방과 관변단체 공략하는 문화적 침투
중국이 ‘영향력 공작’에서 가장 주요하게 공을 들이고 있는 분야는 문화를 도구로 삼은 사상적 침투다. 이른바 중국이 원하는 방식으로 우리가 중국을 인지하도록 하는 ‘인지전’인 셈이다. 주 교수는 “선전과 매수부터 압박과 위협까지 다양한 방식을 활용해 국가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들의 대중국 인식을 왜곡시키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다.
중국어 교육 및 중국의 사상과 문화를 전파할 목적으로 세운 ‘공자학원’이 대표적이다. 2004년 중국은 세계 최초의 공자학원을 서울에 건립했다. 지난해 기준 국내 공자학원은 총 23개소로 늘었고, 이중 22개소가 대학 캠퍼스 내에 있다. 이들은 단순히 언어·문화 교류 만이 아니라 국내 지방자치단체들을 중국의 도시·기업·교육 기관과 사업을 연결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2017년 3월 개설된 제주대 상무공자학원은 그해 12월 제주해양경찰서와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호남대 공자학원은 2006년 개소한 이후 지자체와 지방 공무원을 중국과 연계하는 사업을 추진해왔다. 주 교수는 “중국은 지방 정부의 투자 희망과 지방 대학의 중국 유학생 유치 염원을 이용해 지방에 친중 의식을 널리 확산시키려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재우 경희대 중국어학과 교수/이태경기자
◇ 제도적 허점 보완하고, 대(對) 중국 외교원칙 바로 세워야
주 교수는 “현재 국내에는 중국 뿐만 아니라 해외의 영향력 공작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법이 없다”며 “중국의 초한전(超限戰·한계 없는 전쟁)에 대비하려면 국내법을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보안법보다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외국인 간첩법과 사이버 안보법 등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을 상대로 한 외교 원칙을 정립해야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서로가 주권 국가로서 확고한 외교 원칙에 따라 넘지 말아야 할 ‘레드라인’을 명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 교수는 “지금까지 우리의 대중국 외교는 다른 국가와 달리 마지노선이 부재한 가운데 이뤄졌다”며 “대중국 외교는 원칙에 기반하는 동시에 중국의 도발행위에 적극 대응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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