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소설만큼 영어를
자주 쓰는 장르도 없을 것이다.
요즘은 동서양을 넘나드는 소설도 있어서
꼭 영어만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무협에 있어서 한자를 빼놓을 수 없듯이
영어라는 이름은 판타지 동호인들에게
상당한 강요로서 작용한다.
이는 우리에게 너무나 강력한 모티프로 작용하는
J.R.R Tolkien으로부터 D&D까지 모두
영어로 되어있다는 점에서 생각해 보아야한다.
우리는 그런 영어화된 문화를
아무런 장치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고,
어느새 영어는 <판타지의 언어>라는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판타지에서
어떤 마법의 주문을 이야기할 때도
영어화시켜서 주문을 발동시키고
어떤 이름을 붙일 때에도
영어화시켜서 이름을 정한다.
이런 풍토 속에서 우리는
영어라는 언어의 틀 속에 갇혀버렸다.
(혹자는 무협에서 한자를 쓰듯
판타지도 영어로 쓰는 것은 당연하지 않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이 둘은 엄연히
세계관이라는 분명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없다.)
영어는 어느새 우리에게 판타지를 인식하는
하나의 방법이 되었고,
소위 영어로 해야 '뽀대'가 나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한 번 생각해 보자.
국제화 시대에 영어가 필수라고 해서
판타지 세상에도 영어를 쓸거라고 생각하는가?
물론 울티마처럼 고대 영국을 배경으로
한다면 공통어가 영어라는 것이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물론 울티마에서는 고대 영어가 상당수 쓰인다.)
그러나 우리가 익히
접해온 판타지 - 영어를 쓰는 세계관을 가진 - 에서
진짜 왜 영어를 쓰는지에 대한 적당한 설명이라도
되어있는 작품이 얼마나 되는가?
대부분이 우습게도 그 나라 말이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어를 사용한다.
(제일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영어를 쓰면서
인물 작명이 영어식이 아닌 경우이다.
영어를 쓰면 작명도 영어식이어야 할 것이 아닌가?
스위스처럼 공용어가 3개쯤 된다면 혹시 모르지만)
이러한 상황은 일본도 별반 다를 것이 없어보이지만
(일본 사람들은 우리보다 영어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 스스로 반성해보는 목소리가 있었던가?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나 당연하게 무비판적으로
영어를 판타지의 언어로 생각해오지 않았을까?
우리가 판타지라고 하면
서양 중세풍의 마법적인 세계를 떠올리듯이
판타지 하면 영어를 써야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나?
...
판타지라는 장르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의 언어를
'영어'라고 하는 일종의 사대적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해져 버려서 사대적이라는 것조차 모른다.)
세상에는 수많은 언어가 있고, 영어란 그 중에서
하나의 언어일 뿐이다. 물론 가장 널리 쓰이기는 한다.
하지만 가장 널리 쓰인다고 해서
판타지의 언어가 되야한다는 적절한 근거가 있을까?
한 번이라도 영어 이외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아는 언어, 즉 학교에서 배운게 영어 밖에 없어서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슬픈 현실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예전에 이 주제를 가지고 글을 썼을 때
영어를 '아버지의 언어'라고 한 적이 있다.
우리는 현재 Tolkien과 D&D라는 아버지의 계보적 자식들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마치 모국어를 배우듯이
영어라는 언어에 길들여지는 것이 과연 당연한 것일까?
이것이야 말로
판타지의 가능성을 빼앗는 <영어라는 이름의 강요>일 것이다.
카페 게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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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영어라는 이름의 강요
최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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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5.21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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