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들키프가 유유히 사라지고 난 조금 뒤에 비가 왔다. 계속해서 불타고 있었던 마을은 조금이라도 하늘에 보상을 받는 듯 빗물에 불씨하나 남김없이 꺼졌고 크게 일던 연기와 먼지도 사라졌다. 불과 10분전만 하더라도 루벤지역에서 5번째로 크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전쟁과 범죄에 꿋꿋이 잘 버텨내며 성장해온 마을이 단 한순간 어느 노인의 광적인 행동으로 모든 것이 날아가 버렸다. 모든 집들은 다 붕괴되었거나 불타버렸고 그나마 마을에 쉼터였던 광장마저도 원래 없었던 듯이 깨끗이 사라졌다. 물론 라자르의 펍도 마찬가지였다. 캔들키프의 목표물이었기 때문에 그 피해가 다른 건물들보다는 더욱더 심했다. 그 누구도 살아
남은 자는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생명의 존귀한 목소리가 비가 내리자 하나둘 들리기 시작하였다. 그 엄청난 폭팔 속에서도 살아남은 끈질긴 인간들이 있던 모양이었다.
하나둘 모습을 나타낸 인간들은 살아났다는 기쁨도 잠시 자신이 일생동안 모았던 재산이 한순간의 재로 변하자 모두들 허탈해하며 무릎을 꿇고는 흐느끼고 말았다.
마을의 허망한 모습의 동쪽에서 거의 구를 듯이 달려오는 무리가 있었다. 모두들 붉은 색 톤의 로브를 입은 것으로 보아하니 루벤지역에 유일하게 있는 불의 신 메라의 프리스트들 같았다. 그들은 마을 앞에 서서 굉장한 허탈감을 토해냈다. 그들의 선두에 선 자가 그들의 허탈감을 대변이라도 하듯이 혼잣말을 하였다.
"이런. 늦었군. 마나의 요동을 느끼자마자 달려왔는데."
"렌돌스님. 이미 늦은 건 늦은 겁니다. 한시 바삐 생존자를 물색해 치료를 하는 것이 저희에게 주어진 임무인 것 같군요. 모든 것은 메라님의 뜻일 겁니다."
"그래요. 그러토록 합시다. 그리고 한스님과 데프퀸님은 마나의 흔적을 찾아 가보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만약 범인을 만나더라도 절대 두 분께서 움직이지마 시고 이곳으로 달려와 보고해 주도록 하십시오. 이 정도 파괴력을 자랑하는 마나를 다루는 마법사는 굉장히 위험한
인물로 생각됩니다. 어서 어서 움직이세요!"
한스와 데프퀸이 떠나자 남은 프리스트들은 마을로 움직였다. 마을 입구에 다다르자 멀리서 본 것보다도 훨씬 잔인하게 폐허가 되 버린 마을을 보고는 그들은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서로의 얼굴을 한번씩 번갈아 가며 보며 의지를 다진 뒤 움직이려 할 때 갑작스럽게 왼쪽 풀숲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는걸 듣고는 렌돌스가 그곳을 향해 소리를 쳤다.
"누..누구십니까!"
"프..프리스트?"
예상외의 어린아이 목소리가 들리자 그들은 긴장감을 풀고는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어린아이 하나가 이곳저곳 상처를 입은 체 풀숲에 숨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 어린아이는 렌돌스의 얼굴이 보이자 갑작스럽게 렌돌스의 품으로 달려들며 울먹였다.
"엄마가 흑 엄마가 저기 있어. 흑 난 이상한 초록색 구름이 몰려올 때 이쪽으로 숨었어. 앙앙!"
앞뒤가 맞지 않게 울음을 터트리며 어린아이가 말하자 렌돌스는 목뒤까지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그.. 그래 걱정 말아라. 우리가 왔으니까. 꼬마야 알겠지? 걱정 마. 이런 사내가 눈물을 흘리면 쓰나. 그래 그래 걱정 마. 멋들 하십니까? 빨리 빨리 움직이십시오!"
자신과 아이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어두운 표정을 짓고있던 프리스트들에게 렌돌스가 소리치자 그들은 알겠다고 끄덕이며 이미 폐허가 된 마을 쪽으로 달려갔다. 그들이 달려가고 난 후 렌돌스는 아이에게 차근차근 물었다.
"꼬마야. 꼬마야. 아저씨가 몇 가지 물어볼게. 대답해 줄 수 있겠지?"
"흐흑. 응"
"누가 그랬는지 봤니?"
"아니 너무 높은.. 흐흑. 높은 곳에 있어서 자세히 못 봤어. 그의 발에서 이상한 초록색 구름이 나오더니 마을 아저씨들을 터트렸어. 무서웠어 너무 무서웠어. 으앙."
"알겠다. 알겠어. 그만 뚝 그쳐야지. 아저씨들이 달려갔으니까 사람들을 모두 구할 수 있을 꺼야."
"정말?"
아이가 울음을 그치며 물어오자 렌돌스는 약간의 당혹 감이 들었다. 대체 어떻게 저 폐허 속에서 사람들을 다 구할 것인가? 다만 살아있는 사람 한 명이라도 더 구해내길 빌 뿐이었다.
@
약 2시간 가량의 메라의 프리스트의 빠른 구조활동으로 약 30명 정도의 마을 주민을 구해낼 수가 있었다. 이리저리 찢기고 상처 난 그들을 일단 임시 막사를 지어 그곳으로 옮겨놓고 치료를 하였다. 정말이지 그렇게 참혹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메라의 수석 프리스트들이라 할지라도 이런 광경은 처음 접해 보는 것이라 당혹 감을 감출 수는 없었지만 그들을 살려내는 것이 먼저였기에 그런 내색은 하지 않고 구조활동에만 몰두하여 구조활동은 성공적일 수가 있었다. 렌돌스가 열심히 치료를 하고 있는 도중 한 프리스트가 그의 귀에 대고 말을 하였다.
"이상한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그에게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는데 마나나 마성 같은 것은 아닙니다. 한번 만나보시겠습니까?"
"그래 빨리 안내하게. 이번 일에 대하여 뭔가 알고있는 자 같은 느낌이 드는군."
프리스트의 안내를 받으며 한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180cm의 건장한 체구를 가지고 있는 그는 후렌들리였다. 그 정도의 마법을 온몸으로 받았을 텐 데도 정말 상처하나 없이 이젠 기운도 완전히 차려 막사 안에서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그를 렌돌스가 막았다.
"잠시. 잠시만. 물어 볼 것이 있소."
렌돌스의 물음에 후렌들리는 떠날 채비를 하던 것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가만히 그를 지켜보다가 땅바닥에 철푸덕 앉자버렸다. 렌돌스는 물어보라는 뜻인 줄 알고 그도 땅바닥에 앉은 다음 입을 열었다.
"당신에게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대체 뭡니까? 이 사건과 연관이 있소?"
"버서커의 저주를 받았소."
렌돌스의 물음에 차갑게 한마디 던진 후렌들리는 자신이 입고있던 하드리더의 안쪽에서 담뱃대를 꺼내어 물고는 그곳에 불을 붙였다. 그 모습이 무지 맘에 안 들었지만 렌돌스는 참고 다음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버서커라니.. 신화 속에서만 나오는 옛이야기가 된 줄 알았는데.. 흠. 하여튼 이 사건과 연관이 있는 것 같은데 좀 아는 게 있으십니까?"
"그냥 잠깐 지나가던 차에 들린 것뿐이오. 아무런 연관 없소."
후렌들리는 무심한 말투로 대꾸하며 담뱃대를 입에 갖다대고는 깊숙이 빨아 들였다. 렌돌스는 더 이상 참기 힘들어 약간의 강한 어감으로 말을 했다.
"거짓말하는 것 다 압니다.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겁니까?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당신을 메라의 신판대위에 올릴 수도 있는 사람이오. 더군다나 버서커의 저주를 받은 당신은 모든 신관들의 동의하에 파멸될 수 있다는 것도 모르오? 자 바른 데로 말하시오!"
후렌들리는 렌돌스의 약간의 협박성 담긴 말에 피식 웃으며 간단하게 대꾸를 했다.
"버서커는 정령이오."
"네?"
"버서커는 정령이라고 했소. 난 악마의 저주를 받은 게 아니오. 버서커를 부르는 정령술사라면 또 모를까. 그러므로 난 당신들의 재판 대에 설 이유도 파멸 당할 이유도 없소. 질문을 끝나셨소? 그럼 난 가보리다. 더 이상 여기에 있으면 민폐만 끼치는 꼴이 되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