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친구 이야기
공군 학사장교 64기로 5개월 동안 훈련받을 때의 일이다. 나는 제1구대 제2 내무반에 배치되었는데, 나의 옆자리 짝꿍이 정만택 후보생이다. 요즘도 그는 평균 일주일에 한 번꼴로 나를 찾아온다. 그는 친화력이 남다른 사람이다. 누구에게나 그렇지만 특히 나와 대면해서는 나에 대한 찬사가 매우 특별하다.
그 찬사의 역사적 배경은 이렇다. 훈련 첫째 달 3월 중순쯤인가 두껍게 누빈 내복이 지급되었는데, 그것을 개어서 관물함에 보관할 때, 개어 놓은 내복들이 정면에서 보았을 때, 반듯하고 나란하게 각을 세워서 쌓아놓아야 했다. 아니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후보생들은 그것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접은 옷을 아무리 세워 놓아도 내복은 각이 지워지고 허물어졌다. 얼마나 많은 기합과 벌을 받았는지 모른다. 나는 비법을 알고 있었다. 내가 노하우를 터득한 뒤에도 옆자리의 만택이는 그걸 몰라서 계속 기합받는 일이 그치지 않았다.
그날 나는 식당에서 밥을 한 숟가락을 주머니에 감추어 와서, 만택이의 내복을 나란하게 개어 놓고 그 전면에 밥풀을 바르고 이빨로 잘근잘근 씹어서 마치 빨래에 풀을 먹이듯 처리했다. 그랬더니 개어 놓은 내복에 각이 반듯하게 유지되었다. 그로부터 만택이가 내복의 각 때문에 기합받는 일은 없어졌다. 그는 그 후 네가 모든 것을 다 잘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정만택은 공군에 지원할 때 떨어지지 않기 위하여 미리 연장 복무를 신청했단다. 따라서 단기 복무인 우리가 중위로서만 3년이 되었을 때, 그는 대위로 진급하여 거기서 3년 더 복무했다. 그는 자신이 대위였을 때 김포에서 지원 대대장을 했다고 항상 자랑이다. 그의 친화력이 빛을 발한 성공담 한 토막은 우리들 사이 대화의 단골 메뉴다.
그는 젊었을 때 무역업을 하면서 미국산 양변기를 처음 수입했는데, 당시는 양변기 적용 초창기라 엄청난 양의 수입품을 다 팔지 못하여, 보세창고 보관료만으로도 집을 팔아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 되었다고 한다. 고민 끝에 그는 무작정 J장군을 찾아가서 공군의 후배임을 소개하고 도움을 청했단다. 당시 J 장군은 참모총장과 국방부 장관을 거쳐서 한직인 섬유협회 회장직을 맡고 있었는데, 아무도 찾아오는 이 없는 무료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 J장군의 도움으로 만택이는 모 대기업에 물건을 전량 납품할 수 있었고, 두 사람은 각별한 사이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만택이의 전언에 의하면 J장군은 사석에서 ‘만택아, 나는 너 없으면 못 살겠다.’라고, 그렇게까지 이야기했단다. 정만택 친구가 지닌 친화력의 진수를 보여주는 에피소드이다.
만택이가 나를 찾아올 때는 대개 나의 일정을 확인하기보다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만 확인하고 쳐들어오듯이 온다. 그가 부인도 없이 어머니의 병환 수발을 남동생과 번갈아서 십오 년 이상을 이어오고 있었는데, 그때 나는 일정이 있더라도, 없다고 하고 그를 기다렸다. 어느 날 그는 앉자마자 술 한잔을 들이키고 나서는, 이렇게 말한다.
“나, 오늘 우리 엄마한테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한 자락 불러주고 왔다. 우리 엄마가 이 노래를 무척 좋아하거든.”
나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귀가 먹먹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는 할 말을 잃고 한참을 쳐다봤다. 그는 계속 떠들어 대면서 ‘나는 네가 좋아!’를 연발한다.
나는 그 후에 다른 동기생들을 만날 때마다 만택이는 ‘만고의 효자’라고 소개한다. 그래서 동기생 간에는 그의 효행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실제로 그의 효행은 주거지역 주변에 알려져서 서울시로부터 효자상도 받았다. 상금은 동생에게 전액 다 주었다고 한다.
정만택의 동생은 형에게서 월급을 받아서 생활하였다. 가족을 대구에 두고 평일에는 사업자인 형을 대신하여 어머니를 돌보고 주말에는 교대하는 주말부부다. 그 형에 그 동생이다. 그저 노인을 모시고 함께 사는 그런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대소변을 직접 받아내야 했다. 상태가 나빠지면 응급차로 모시고 병원을 오간다.
그도 장남이고 나도 장남인지라 말을 안 해도 그 심정과 형편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그와의 좋은 인연이 더욱 도타워지기를 바란다.
첫댓글 옷깃을 여미게 하는 훌륭한 아들입니다. 나는 내 엄미를 요양 병원에 모셨는데~ 그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미안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