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략)
개인의 행적이 담긴 옛문서를 마주 대할때면,
마치 퍼즐게임을 즐기는 듯한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그 속에는 산만하게 흐트러진 개인의 역사가
빼곡히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몇가지 단서만을 가지고서
수학문제 풀듯, 천천히 그 해결 과정을 거쳐
마침내 정답에 다다를때면 뿌듯한 성취에
커다란 쾌감도 느끼기도 합니다.
바로, 이번에 소개할 문서가 그런 퍼즐게임 중 하나입니다.
이 책은 '영문록(榮問錄)'이라는 것인데요.
조선시대 과거제도사를 연구하는 학자라면
누구나 아는 문서이겠지만, 그 외의 분들에게는 무척 생소한 것일 겁니다.
영문(榮問)이라는 뜻은 '영광을 문후드린다.'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바로, 과거 급제자의 방방연(축하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의 명단을 기재한 '기록류'의 문서입니다.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고시합격은 개인의 영광을 넘어
국가 동량지재의 출현을 의미하기 때문에 대단한 경사입니다.
첫 장을 열어봅니다.
참으로 흥미롭네요.
이 영문록의 주인공이 시험에 합격한 날짜와 과종(科種:과거시험의 종류)
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의 이름을 알 길이 없어 문서 안의 단서만으로 추적해야 합니다.
우선 첫 장의 한자를 일일히 한글로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경인 이월 초팔일 일차유생 이제대강 응제 통방외 경무대 명관위지 명관문형 한장석'
이라고 적혀있습니다.
노가다(?) 같지만 이렇게 해야합니다.
이제 하나하나 이 퍼즐의 숙제를 풀어 봅시다.
'경인년(庚寅年)'이란 간지가 나옵니다.
정확히 어느 연도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단서가 보입니다.
'경무대(景武臺)'라는 장소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경무대'를 검색해 봅니다.
고종 임금이후부터 검색이 가능한 걸로 보아
'경무대'는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새로이 마련한 전각중 한 곳입니다.
즉, 경인년은 고종 임금 등극(1863년) 이후의
경인년이 되므로 계산해보면 '1890년'입니다.
주인공은 1890년 2월 8일날 경무대에서 치뤄진
'일차유생 전강(殿講:임금앞에서 암송시험)'을
'제술시험(製述:글쓰기시험)'으로 대신하여
응제(應製) 즉, 임금이 내려준 글에 답하여 짓도록 하되,
'통방외 유생(서울이외의 지방유생들)'까지 불러모은
시험에 합격한 것이 분명합니다.
일차유생 전강시험이란,
성균관 유생이나 서울 사학(중학,서학,남학,동학)에
재학중인 학생 가운데 명문가 자제나, 생원, 진사출신을
임금 앞에서 삼경(시경,서경,주역)에 관하여 암송하고 해석하는 시험인데
이번 시험은 강경대신에 제술!
그렇니깐 글짓기 시험을 보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강경시험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채점기준도 애매모호하기때문에
단한번의 글짓기 시험으로 당락을 결정하겠다는 겁니다.
역시 사대부의 나라, 조선입니다.
조선은 칼이 아니라 붓으로 실력을 겨룹니다.
이래야 조선이죠.
일차유생전강시험의 엄격한 격식을 따지자면
임금 앞에서 치뤄질 시험이지만,
영문록 내용 중에
'명관위지(命官爲之:명관으로 그것을 하도록 하다)'라는 기록이 있는 걸로 보아
임금의 명을 받은 관리가 왕을 대신해 시험을 주관했으며
그 시험을 주관한 이는 '문형(文衡:대제학의 별칭) 한장석'
즉, 대제학 한장석이었음을 알 수 있겠습니다.
우리 명복이
고종 임금님은 바쁘신 분(?)이었나 봅니다.
다음장을 넘겨봅시다.
'석사 영구(碩士 榮九)',
'송방(送榜) 이교리 승구(李校理 承九)'
'족대부(族大父) 석사 병기(碩士 炳夔)'...
'오석사 재경(吳碩士 在敬)'
'사종제 석사 의택(四從弟 碩士 義澤)'이라는 이름이 보입니다.
합격자 방목을 보내준 이는 교리 이승구입니다.
석사 병기는 집안어른(족대부)입니다.
'석사(碩士)'라는 것은 학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벼슬없는 선비를 존칭하는 단어입니다.
또, 사종제 석사 의택(四從弟 碩士 義澤)을 볼 때,
*사종제((四從弟)란 10촌 동생입니다. 삼종제는 8촌 동생입니다.
의택'이란 인물은 동생이므로
영문록의 주인공과 같은 항렬일 것입니다.
아직 충분한 단서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계속 가봅시다.
족숙 석사 '덕녕(悳寧)'이 보입니다.
석사 '승녕', 석사 '억녕'이 잇달아 나옵니다.
'족숙'이니 아버지 항렬인 분일 겁니다.
아버지 항렬은 '영(寧)' 자로 보입니다.
드디어, 벼슬 꽤나 한 고관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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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지(鄭承旨) 학묵(學默)
伻(팽) 追來(추래)
芹洞(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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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 승지 정학묵이라는 사람이
'伻'(팽:하인이란 의미)
즉, 방방연에 하인을 대신 보내 축하를 한 모양입니다.
하지만 '追來(추래)'라는 단어로 보아
뒷날, 정승지 영감이 집을 직접 방문해
주인공의 과거급제를 축하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정승지의 거주지가 '芹洞(근동)'임이 표기 되어 있습니다.
지금 서울의 '미근동'입니다.
왜 거주지를 적었을까요?
그 이유는 방방연에 참석한 것에 대한
답례를 드려야 하므로 손님의 거주지를 적은 겁니다.
조선시대는 행정구역을 적을 땐
한양 사대문 내의 지역이면 동(洞)명만 적었고,
서울 사대문 이외의 경우엔
안동부, 광주목, 영동군 등 부,목,군,현의 행정구역 명을 적었습니다.
중종 임금 당시 조광조는 급제한 후 3년만에
30대 나이로 지금의 검찰총장격인 대사헌에 올랐는데,
야사속에선 그가 개혁적 이미지로 부각되고
백성들의 민심을 얻어
'정동대감'으로 읽고 적고 불렸다고 합니다.
이미자 선생님의 '정동대감'이란 노래도 있지요.
서울 정동에 사는 대감님입니다.
정조 임금 당시 남인의 명재상인 채제공을
일반 백성들은 '미동대감'이라고 읽고 적고 불렀습니다.
즉, 서울 미동에 사는 고관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갑자기 궁금증이 발동합니다.
방방연은 급제자를 위한 잔치였을까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습니다.
절반은 주인공을 위한 잔치요,
절반은 급제자 아버지를 위한 잔치입니다.
태어나서 급제할때까지 공부만한 서생이
무슨 사회적 인적네트워크가 있겠습니까?
자식 잘 키운 아버지를 축하하는 자리를 겸한 것이죠.
방방연의 참석자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급제자 아버지의 사회적 위상입니다.
아버지가 고관일수록, 판서나 정승급이 참석하게 됩니다.
그렇게 참석한 아버지의 인적네트워크가 고스란히 아들에게
이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또 한 장씩 넘겨봅시다.
김판서 익용
민승지 철훈 장동
정승지 우묵 회동
이참판 학영 팽 필동
정승지 헌시
민판서 종묵
정판서 기회
정참판 현석
정승지 의묵
이승지 만교
서승지 의순...
고관들이 수두룩 나오는 걸로 보아
영문록 주인공의 아버지는
분명, 조정에 출사한 관료가 분명합니다.
하지만, 1품 대신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 걸로 보아
판서급 이상의 고관은 아닌 걸로 판단됩니다.
빨간 종이에 이름을 적어 놓은 게 보입니다.
빨강 바탕에 검은 묵필은 강렬한 대비를 이루면서 매력적입니다.
이쁘고 세련되었습니다.
명함같지만, 확실히는 모르겠습니다.
일단 명함으로 봅시다.
조선시대에도 명함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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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자(名刺) : 오늘날의 명함과 같은 것으로, 문자(門刺)라고도 하고 자(刺)라고도 한다. 옛날에는 종이가 없어서 대나 나무를 깎아 성명을 썼기 때문에 명자라고 하였으며, 후대에는 종이에 썼기 때문에 명지(名紙)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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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민병석, 민영준, 민응식 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고종 임금 시절, 위세를 부렸던 민씨 세도가들입니다.
민씨 세도가들도 만남은 갖지는 못했지만,
명함을 두고가 축하를 해준 게 분명합니다.
아! 드디어 단서가 나온거 같습니다.
민병석의 명함에 이 영문록의 주인공을 가늠할 수 있는
결정적인 메모가 적혀 있습니다.
'李 直赴 榮升 大闡(이 직부 영승 대천)'
여기서 '大闡(대천)'은 과거 급제를 말하는 단어입니다.
'榮升(영승)'은 영전에 오르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해석하면, '이 직부(李 直赴)가 과거급제의 영전에 오른 것을
축하 한다는 뜻입니다.
'직부(直赴)'는 직부전시의 축약이요,
이 직부라고 함은 직부전시의 자격을 갖춘 이(李)씨 성을
가진 사람을 존칭해 말하는 겁니다.
* 직부전시: 3차 시험인 전시에 응시할 수 있는 특권.
벽초 홍명희가 쓴 소설 '임꺽정'에서
양수척의 사위가 된 이장곤이 신분을 회복했을 때
함흥 사또가 문과급제자인 이장곤을
존칭하여 '이 급제(李及第)'라고 불렀던 것처럼,
직부전시의 자격을 갖춘 사람을 일러
이 직부라 했던 겁니다.
즉, 이 영문록의 주인공의 성씨는 이씨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해봅시다.
경인년에 치뤄진 일차유생전강시험이...
과연 있을까요?
검색결과...
1890년 2월 8일날 치루어진 일차유생전강시험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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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차 유생(日次儒生)의 전강(殿講)을 실시하였는데
제술(製述)로 강(講)을 대신하였다.
경무대(景武臺)에서 응제(應製)를 행하였다.
부(賦)에서는 유학(幼學) 윤달영(尹達榮)·정경원(鄭敬源),
진사(進士) 이의국(李義國)을 모두 직부전시(直赴殿試)하도록 하였다.
-고종실록 27권, 고종 27년 2월 8일 무인 3번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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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은 위대합니다.
모든 기록이 수록되어 있네요.
역시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기록유산입니다.
주인공은 이제 밝혀졌습니다.
영문록의 주인은 다름아닌 진사 이의국입니다.
앞서 본 사종제의 이름이 이의택이니
'의'자 돌림을 쓰는 집안 맞습니다.
문과방목을 검색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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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국(李義國)
[문과] 고종(高宗) 27년(1890) 경인(庚寅) 별시(別試) 병과(丙科) 26위(30/33)
생년- 정묘(丁卯) 1867년(고종 4)
본관- 연안
거주지- 한성([京])
전력- 진사(進士)
[부]
성명 : 이봉영(李鳳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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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의 기록 정신은 대단합니다.
없는 게 없습니다.
게다가 교차검증까지 가능합니다.
역시 붓의 나라답습니다.
연도도 영문록에 나온 경인년(1890년)이 맞고,
아버지 이봉녕 항렬 또한 영문록에
나오는 녕(寧)자 돌림을 쓰고 있으니
확실히 이 영문록의 주인공은 이의국이 맞습니다.
아버지 이봉녕은 음서로 관직에 진출해, 시강원 위솔, 직산현감 등을
역임했습니다.
이 연안이씨 집안은 대대로
서울 남산골에 세거한 '근기남인(近畿南人)' 세력인데
영문록에 기록된 사람들 중 노론, 소론 인사들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과거 급제를 축하하는 데 당파의 여부와는 관계가
없었던 걸로 보입니다.
드디어, 이 영문록의 퍼즐은 완성된 셈입니다.
이렇게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고문서 하나에 담긴 또 하나의 역사를
밝혀 보았습니다.
이의국은 1890년 23살의 나이로 과거에 급제하고,
승정원 주서- 비서원 비서랑직을 10년간
봉직하다, 규장각 직각에 오르고
1910년 경술국치 이후엔 고향으로 낙향해
은거한 것으로 보아 적어도
망국후 친일을 한 인사는
아닌거 같습니다.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이런 작업을 한 보람은 있는 셈이니깐요.
(중략)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처 : http://mlbpark.donga.com/mp/b.php?p=1&b=bullpen&id=201707160006324472&select=&query=&user=&site=&reply=&source=&sig=h6jLSYtYjhjRKfX@hca9Sl-1khlq
첫댓글 우와....
대단하다. 저 퍼즐을 푼 분도 대단하고 조선왕조실록도 대단하다!!!
갱장해 뭔말인지도 모르믄서 정독했어여 짱멋져..
와.. 정말 퍼즐맞추는것 같아요 ㅋㅋ 근데 넘나 복잡한것 ;ㅠ
재밌다.. 와..
와 복잡한데 재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