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파렐 (1987-98, 106경기)
골키퍼
주위환경을 고려하면 브라질에서 자라면서 골키퍼가 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아마도 근본적으로 골키퍼라는 포지션이 최우선으로 선호받는 포지션이 아닌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유야 어쨌든, 이탈리아인과 독일인의 피를 이어받은 그에게 그러한 고정관념은 해당되지 않았다. 타파렐은 브라질 국가대표를 위해 100차례 이상의 경기를 소화하는 동안 1994년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는데 막대한 임무를 소화했다. 또한 두번의 코파 아메리카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는데도 큰 공헌을 했으며 2000년 UEFA컵 결승, 당시 갈라타사리에서 뛰며 아스날과의 결승전에서 패널티까지 걸쳐내는 동안 무실점을 일궈냈다.
닐튼 산토스 (1945-68, 75경기, 3골)
수비수
산토스는 16년간의 커리어동안 왼쪽 윙백으로서 끈기있는 수비력을 구사하며 상대방의 공격수들에게는 마치 찰거머리같은 존재였다. 공이 그의 발앞에 놓인 순간, 그는 도움닫기 없이 순식간에 최고의 속도를 구사하며 브라이언 하바나를 무색케하고 마치 치타를 방불케했다. 그는 1958년과 1962년 월드컵 우승에 큰 공을 세웠다. (*브라이언 하바나: 100미터를 10.2초에 주파하는 남아공의 럭비선수)
드잘마 산토스 (1952-68, 98경기, 3골)
수비수
그는 상대팀 윙백들의 공격을 억압해내는데 뛰어난 선수였다, 드잘마 산토스는 경기내내 지치지않는 엔진을 구사했었다. 오히려 90분은 그에게는 너무 짧은 시간처럼 보였다. 위키피디아가 그를 브라질선수로서는 최초로 100번의 출장수를 채운 선수라고 소개한다해도 당신의 의심치 않을 것이다. 그는 39세에 98번째 경기를 치루며 구가대표팀을 은퇴했지만 자신의 체력이 건재함을 입증해냈다. 4차례에 걸친 그의 월드컵 출전은 브라질의 또다른 버팀목인 카푸에게 큰 본보기가 되어주기도 했다.
알다이르 (1989-2000, 93경기, 4골)
수비수
그와 같은 성을 가진 세명의 수비수들이 있었기에 헷갈리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알다이어는 세계최고의 두 윙백 카푸와 카를로스를 지휘하며 수비대열을 맞추는 능력과 안정성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가 AS 로마에서 13년을 보낸 후 클럽을 떠났을 때, 클럽은 다른 수비수들과 대조를 이뤘던 그의 플레이 스타일을 존경하여 그의 번호였던 6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하였다. 인상적인 수비를 구사했던 그는 브라질이 1994년 월드컵에서 우승을 일궈내는데 초석이 되어줬다.
가린샤 (1955-66, 50경기, 12골)
미드필더
경기 입장료가 아깝지 않을 만큼의 활약의 펼쳐주는 선수가 있고, 또한 몇몇 영혼을 입장료로 낸다해도 무색치 않을 만큼의 활약을 보여주는 선수들도 있다. 그의 경기를 본 사람들, 또한 그렇지 못한 사람들 역시 이 윙어를 '날개가 꺾인 천사' 라고 회상한다. 그는 1958년과 1962년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그러한 성과들은 가린샤에게 많은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1958년도 월드컵을 앞두고 가졌던 브라질 vs 피오렌티나 전에서 그가 득점했던 골은 그의 성격을 대변해준다. 4명의 수비수와 골키퍼까지 제친 후, 골대는 무방비였고 반전이 없는한 득점이 분명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는 수비수가 다가올때까지 기다렸다. 그후 공을 뻇으러 온 한명의 수비수를 한번 더 제친 후 공을 골대로 차 넣었다.
디디 (1952-62, 68경기, 20골)
미드필더
크리스티아노 호날두는 프리킥을 차기 전 마치 총을 장전하기라도 하는 듯한 포즈를 취한다. 이것의 원조는 디디이다. 그는 로베르토 카를로스의 왼발이 세상에 등장하기 전까지 모든 프리킥을 독점한 선수였다. 디디가 구사했던 프리킥의 특징은 공이 급하락함에도 불구하고 매우 정확다는 점이다. 그 프리킥은 이제 호날두에 의해 재현되고있다. 슛 궤도의 엄청난 급하락으로 인해 그의 프리킥은 "떨어지는 나뭇잎"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또한 그의 프리킥을 칭찬하는 이런 문구도 있다, '골키퍼들은 그의 프리킥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공이 위로 튀어오르기만을 기도한다'. 디디는 세번의 월드컵(1954, 58, 62)에서 브라질을 위해 뛰었으며 그 두 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1958년 월드컵에서는 MVP 선수로 꼽히기도 했다.
지코 (1976-88, 88경기 66골)
미드필더
지코는 월드컵을 차지하지 못한 선수중에는 가장 위대한 선수이며 역대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도 거론되고 있다. 1978, 82, 86년 브라질 대표팀이 월드컵에서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코의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와 숨막히는 프리킥은 브라질의 축구 황금세대가 끊기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마라도나가 이탈리아의 세리에 A로 떠나기 전 시즌, 지코는 이미 우디네세에서 자신의 입지를 굳혀가는 중이었다, 마라도나가 이탈리아로 오면서 플라티니, 지코, 마라도나가 한 리그에서 뛰게 되었고 이탈리아인들은 자신들의 리그가 흥행하게 될 것을 매우 기뻐했다.
지징요 (1942-57, 53경기, 30골)
미드필더
유명한 남미의 축구기자 알렉스 벨로스는 지징요(앞줄에서 6번쨰에 있는 선수)를 두고 브라질 대표팀의 '영원한 교과서'라고 묘사했다. 지징요는 브라질을 1960년 월드컵 결승으로 이끄는 골을 성공시켰으나 아쉽게도 결승전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펠레는 그가 엄청난 탄성을 지닌 윙어라고 말하며 자신이 봤던 선수 중 최고의 선수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완벽한 선수이다. 그는 미드필더에서 뛰기도 했고 공격에 가담하고 득점을 올리기도 했다, 수비에도 능했으며 헤딩과 크로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벨로스도 지징요에 대한 중요한 증인이 되겠지만 펠레만큼은 아닐 것이다.
둥가 (1982-98, 91경기, 6골)
미드필더
브라질 대표팀을 작은 배들의 함대라고 묘사한다면 그 배들은 폭풍속에서 자신들을 보호할 항구가 필요할 것이다. 둥가가 바로 그런 남자였다. 의성어이기도 한 그의 닉네임은 그가 팀에서 심장과도 같은 존재라는 것을 잘 알려준다, 브라질의 화려한 삼바축구의 즐거움을 적당히 조절하고, 팀을 성공으로 이끌어줬다. 견고한 그의 신체적 능력은 팀을 1994년 월드컵 내내 이끌어줬고, 대회에서 보인 그의 뛰어난 활약은 그가 팀에 가져다준 요소들을 잘 요약한 최고의 표본이다.
아루투르 프리덴라이히 (1914-25, 22경기, 10골)
공격수
만약 아르투르에게 이탈리아인의 피가 한방울이라고 섞여있었다면 세계 최고의 축구국가는 독일과 브라질, 이 두 국가가 됬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독일 사업가였고 어머니는 아프리카 출신의 브라질인이었다. 20세기 초, 백인이 남미의 축구계를 지배했었고 일반적으로 축구는 부업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러한 환경에서 프리덴라이히는 몇몇 되지않던 흑인 선수였다. 그는 매번 경기 전에 영국인처럼 보이기 위해 스스로를 꾸미는데 시간을 들이면서도 계속하여 득점기록을 갈아치우며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몇몇 축구 역사가들은 그의 득점 기록에 동의하지 않기도 한다(1,239골이 최소 집계 수치이다), 하지만 그가 남겨놓은 유증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의심치 않는다.
펠레 (1957-71, 92경기, 77골)
공격수
신의 축복을 받은 축구선수. 초월적이까지한 천재다. 기자인 매튜 피어론이 말했다. "사람들은 내게 20년동안 똑같은 질문을 해왔다, 펠레와 마라도나, 누가 더 나은 선수인가? 난 그들에게 그저 현실을 보라고 답한다 - 펠레가 그의 오른발과 머리로 얼마나 많은 골을 득점했는가?"
출처: http://www.independent.co.uk/sport/football/internationals/robinhos-ingenuity-stuns-italy-1606348.html?action=Popup
첫댓글 잘 봤습니다
다들 대단한 선수들이지만 호돈신이 없는건 아쉽네요 ㅠ
호나우두는 놀앗나........말도 안되
아우투르는 잘모르겠지만 기록으로보면 엄청난 선수였던거 같긴하네요. 호돈신이 끼기에는 공격수2명이 너무 대단한듯.
호돈신도 못 낄 공격진 ㄷㄷㄷ
호돈은 아직 은퇴 안해서 그런걸지도... 카푸는 있을 줄 알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