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훈, 직장(딸기탐탐) 24-15, 비닐 걷는 일
딸기탐탐에 동행하면 주로 두 분을 만난다.
김혜진 대표님과 남편분.
대표님은 대표님으로, 남편분은 사장님으로 부른다.
전성훈 씨와 대화하다 자연스러운 것 같아 권한 뒤로 이렇게 호칭하고 있다.
오늘도 바구니를 씻는다.
다른 업무 지시가 있지 않고 아직 씻어야 할 바구니가 남아 있는 동안에
이 일은 전성훈 씨 담당으로 정해진 것 같다.
쓰고 온 모자는 어디 두었는지 어느새 보니 없다.
출근할 때마다 이곳에서 전성훈 씨가 알고 다니는 구역이 늘어나는 느낌이다.
게임에서 어두운 구역을 지나가면 전체 지도가 밝혀지는 것처럼 차츰차츰 익숙한 곳이 되고 있다.
딸기탐탐은 자동차가 한두 대 다닐 수 있는 농로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시설물이 설치되어 있다.
묘목을 키우는 육묘장 옆에 주차하고 내리면 여름 햇볕이 느껴진다.
이 농로에서 하는 일이 아니면 반쯤 실내나 다름없다.
그래서 일단 모자를 쓰고 출근하는데 나중에는 잃어버리지 않게 잘 챙기기만 하면 벗어도 불편하지 않다.
“성훈 씨!”
“네에.”
“혹시 이것도 할 수 있을까요? 바구니는 조금 이따 씻고 잠깐 와 볼래요?”
대표님 말씀에 자리에서 일어난다.
수돗가가 있는 통로 쪽으로 문을 둔 비닐하우스가 몇 동 줄지어 있다.
그 가운데 한 곳으로 들어간다.
면접을 통틀어 비닐하우스에 들어가는 건 오늘이 처음이다.
생각만큼 덥지 않고 아늑하게 느껴진다.
대표님과 사장님이 설명한다.
“이 비닐을 걷는 거예요. 딸기 심을 자리에 깔아 뒀던 비닐을 이제 걷어서 정리하거든요.
혹시 성훈 씨도 할 수 있을까요?”
“….”
여러 시선이 전성훈 씨를 향한다.
동행한 사람에게로 향하는 시선을 당사자에게 돌리는 일, 이곳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일의 주인이 명확하다.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것을 바라며 일하는데도 평범하고 당연한 것을 마주하면 마음에 깊이 남는다.
보려고 해서 보이는지, 보고 있어서 예민하게 반응하는지 모르겠다.
잠깐 침묵이 이어진 끝에 일의 주인을 보며 묻는다.
대표님과 사장님의 말에는 의도가 없지만, 나의 질문에는 분명한 의도가 실려 있다.
그건 그래서, 또 이건 이래서 좋다고 생각한다.
“성훈 씨, 대표님이 물어보시네요. 한번 해 볼까요? 재밌을 것 같은데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네에. 네에.”
전성훈 씨가 용기를 낸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바퀴를 잘 굴릴 수 있게 끝에서 끝까지 레일이 설치되어 있다.
레일 폭에 맞춘 ‘구루마’ 위에 큰 쓰레기통을 싣는다.
앞으로 가면서 비닐을 돌돌 말아 모은 뒤, 쓰레기통에 담으면 된다.
끝까지 가서 돌아올 때는 반대로 저쪽에서부터 이쪽까지 같은 방법으로 한다.
몇 번 시행착오 끝에 전성훈 씨가 잘 감당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처음 바구니를 씻을 때와 다르지 않다.
처음에는 전성훈 씨가 앞장서도록 하고 뒤에서 따라가 보았다.
어렵지 않게 하는가 싶더니 몇 걸음 못 가 멈춘다.
권하면 다시 출발, 몇 걸음 가서 정지.
덜컹덜컹하는 기차 같다.
다음에는 내가 앞에 서서 비닐을 걷으며 걸어가고 전성훈 씨는 카트를 밀며 따라오기로 했다.
일은 빠른데 어째 모양새가 이상하다.
고생은 한 사람만 하는 것 같다.
누구는 출근, 누구는 동행이면 그 고생은 출근하는 사람의 몫일 것이다.
그래서 둘이 바꾸었다.
전성훈 씨가 앞에 서서 비닐을 돌돌 말며 걷고, 나는 뒤에서 카트를 밀며 따라갔다.
전성훈 씨 손에 돌돌 만 비닐이 많아져서 들기 버거워 보일 때쯤 쓰레기통에 버리도록 거드는 일 정도 더 했다.
비닐하우스 한 동 일을 끝내고 아까 어질러 두었던 수돗가를 정리했다.
바구니를 마저 씻고 물기가 잘 마르게 엎어서 쌓았다.
그리고 퇴근.
전성훈 씨가 이곳에서 새로운 일을 감당했다는 사실이 만족스럽다.
전성훈 씨도, 대표님과 사장님도 같은 마음이기 바랐다.
‘전성훈 씨 다녀왔습니다.
오늘은 바구니 씻다가 대표님이 가르쳐 주셔서 대표님 남편분과 같은 곳에서 비닐 걷는 일 거들었습니다.’
동료에게 보낸 메시지
2024년 8월 29일 목요일, 정진호
새로운 일 했네요. 성훈 씨 고생이 많아요. 신아름
농장 대표님과 사장님께서 합을 맞추어 일을 설명하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하기는, 두 분이 어젯밤에 오늘 성훈 씨 할 일을 궁리하신 것 같습니다. 더불어! 월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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