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훈, 직장(딸기탐탐) 24-16, 성훈 씨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막 출발하려는데 휴대전화가 울린다.
김혜진 대표님이 보낸 메시지를 읽는다.
‘오늘 저희 농장은 딸기 심을 자리 구멍 뚫고 있습니다.
어렵거나 위험한 일이 아니라서 성훈 씨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시면 저를 찾거나 제 차가 없으면 일정 때문에 나간 것이니 남편에게 연락하시면 작업을 알려 줄 거예요.
010-7444-0000, 강신열.’
출발하면서 전성훈 씨에게 소식을 전한다.
경험하기로는 말보다 글로 전할 때 훨씬 집중해 주는 것 같다.
그렇게 해도 괜찮은 경우라면 글을 택한다.
택한다기보다 더한다가 맞을지도 모르겠다.
말도 하고 글도 전한다.
“오늘 저희 농장은 딸기 심을 자리….”
조수석에 앉은 전성훈 씨가 웃으며 메시지를 읽는다.
무엇인지 설명하고 글을 보이면 잘 응하며 읽는데, 종종 이렇게 활짝 웃으며 읽을 때가 있다.
이것도 경험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그 일이 전성훈 씨 마음에 들어서 그런 것 아닌가 싶다.
아직은 그렇게 추측한다.
“안녕하세요?”
“성훈 씨 왔네요. 반가워요.”
사장님에게 따로 연락할 일 없이 대표님과 사장님 모두 농장에 계셨다.
목장갑을 끼고 설명을 듣는다.
한동안 바구니 씻는 일만 하다가 어제는 비닐을 걷고 오늘은 구멍을 뚫는다.
잘 짜인 계획 같다.
실은 따로 염두에 두고 준비한 계획이 아니어서 감사하다.
이 모두가 실제이고 이 일의 주인이 전성훈 씨며 이 일에 사회사업가로서 동행할 수 있어 감사하다.
감사, 또 감사가 충만한 오후를 보낸다.
당근처럼 생긴 도구가 있다.
원뿔 모양 플라스틱 끝에는 가로로 일자 손잡이가 달려 있다.
그리고 긴 자 같이 생긴 막대가 있다.
막대에는 눈금이 있는데 눈금 사이 간격이 하나는 길고 하나는 짧다.
딸기 심을 고랑 가운데로 호스가 있다.
나중에 여기로 물이 나와 딸기가 클 수 있는 거라고 했다.
고랑 양쪽에 모두 심을 수 있는 데는 구멍과 구멍 사이에 눈금 간격이 긴 막대를 대고 뚫는다.
이때 양쪽 구멍이 겹치지 않도록 교차한다.
비닐하우스 끝에 있는 고랑은 벽이 있으니 양쪽을 쓸 수 없다.
그래서 한쪽만 하는데, 대신 간격이 짧은 막대를 대고 사이를 좁게 뚫는다.
이번에도 전과 다르지 않게 한다.
한 작업을 두고 여러 방법을 시도해 본다.
전성훈 씨가 편하게 할 수 있고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그렇게 한다.
앞으로 같은 작업을 감당하게 될 때 마지막에 했던 대로 하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조금씩 전성훈 씨가 하는 사람, 할 수 있는 사람에 가까워지고 있다.
대표님과 사장님이 설명한다.
한번 해 보겠냐며 구멍 뚫는 도구를 건넨다.
전성훈 씨의 ‘플라스틱 당근’이 힘차게 흙으로 향한다.
‘거침없다’의 뜻이 ‘일이나 행동 따위가 중간에 걸리거나 막힘이 없다’라는데,
거침없는 그의 손길에 지켜보던 세 사람이 움찔한다.
그래, 안 하려는 것보다 낫지 싶다.
“성훈 씨, 잘하는데 여기 선을 잘 맞춰야 해요. 여기 맞춰서 이렇게 꾹.
아! 그리고 구멍 뚫을 때 가능하면 위에서 수직으로 해야 해요.
나중에 여기서 딸기가 통로 쪽으로 자라거든요?
구멍이 비스듬하게 뚫려 있으면 앞쪽으로 쏟아지는 모양이 되겠죠?
그래서 가능하면 위에서 이렇게 꾹.”
“네에. 네에.”
처음에는 내가 막대를 잡아 자리를 알리고, 거기에 맞춰 전성훈 씨가 뚫었다.
간격이 일정하지 않은 데다 대표님과 사장님이 강조한 ‘수직’이 맞지 않았다.
‘시설에서 왜 미안하다고 하나?’ 했다는 어느 농장 주인의 말을 떠올렸지만,
그래도 이 집 농사를 좌우하는 일인데 직원이 책임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전성훈 씨 말이다.
다음에는 간격에 맞춰 내가 자리를 잡고 기다리면 전성훈 씨가 내 손을 쥐고 아래로 누르도록 했다.
이렇게 하면 간격도 수직도 잘 맞았지만, 내가 하고 전성훈 씨가 돕는 것 같았다.
동행에서 주객전도는 절대 조심할 일이다.
그래서 바꾸었다.
마지막에는 전성훈 씨가 구멍 뚫는 도구를 들고 있으면 내가 간격을 보고 위치를 알렸다.
얼추 자리를 잡으면 전성훈 씨가 천천히 팔에 힘을 주어 구멍을 뚫는다.
비스듬해지는 것 같으면 전성훈 씨 손을 잡고 똑바로 내려가도록 돕는다.
같은 흙도 상태에 따라 쑥쑥 잘 들어가는 게 있고, 심폐소생술 할 때처럼 최선을 다해 힘을 주어야 하는 게 있다.
때와 상황에 맞추어 필요한 만큼 돕는다.
하나하나 진행되는 일이 재미있어 보인다.
금방이라도 대신하고 싶은 마음을 의식하며 참고 또 참는다.
대신하는 건 쉽다.
대신하지 않으려면 뜻과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공부해야 한다.
공부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신하지 않는 건 쉽지 않다.
다만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무엇을 하려고 여기 있는지 생각할수록 택해야 할 답은 더욱 선명해지는 것 같다.
애초에 그 답은 흔들린 적 없다.
‘대표님과 남편분이 가르쳐 주셔서 딸기 심을 자리 구멍 뚫는 일 거들었습니다.
때마다 성훈 씨가 할 만한 일, 하면 좋을 일 살펴서 권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성훈 씨 잘 다녀왔습니다.’ 동료에게 보낸 메시지
2024년 8월 30일 금요일, 정진호
성훈 씨가 할 만한 일, 하면 좋을 일 권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신아름
나날이 새 일을 맡아 직접 해 보는군요. 정진호 선생님과 함께 읽고 나눈 『퀴닝』을 다시 읽는 느낌이에요! 월평빌라 사회사업가에게 가장 어려운 게 ‘기다리는 것’이라죠. 가장 중요하기도 하다고요. ‘대신’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담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또 참는다’ 추가! 월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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