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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한국사 1637년 1월 3일 쌍령전투
제국의명장 추천 0 조회 2,564 05.08.27 08:51 댓글 32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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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5.08.26 19:40

    첫댓글 저..저런..-_-;;

  • 05.08.26 19:40

    하..기병 300혹은 3000에.. 조선 4만이 전멸하다니..하...역시...수만믿고 덤비면..저렇게 되는구나..아무리 우리 역사라 하더라도..한심하다..그런데..이거 게임같은데 어떤것이죠?

  • 05.08.26 19:50

    민'영'입니다.

  • 05.08.26 20:11

    정말 한심하다-_-;;;

  • 05.08.26 20:24

    이거 말고도 와키자카의 1600명에게 조선군 5만이 깨진 것도 있죠 용인전투라고...

  • 05.08.26 20:39

    전멸이라기보다는 공중분해죠. 칠천량해전이나 용인전투같이..

  • 05.08.26 22:10

    너무 수치스러운 전투군요. 이런 전투가 세간에 잘 알려져있지 않는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 05.08.26 22:46

    미...미친것들...-_-;; 용인전투는 그래도 싸움답게 하려고 마음이라도 먹었지만 이것은 완전 "닥치고 뒤로돌격!" 아닙니까;;;

  • 05.08.26 23:02

    짧으나마 환도는 차지 않았나? 설마 온리 조총부대에 환도도 미지급? 그러면 대략낭패지만 육모방망이로도 싸우면서 조총 개머리판으로라도 싸우지 그랬수. ㅡ,,ㅡ

  • 05.08.27 00:06

    예전 임진왜란떄 용인전투랑 비슷하네요,5만인가? 아무튼 조선군이 일본군 3백인가?암튼자세하진않은데 완전 대패한거

  • 05.08.27 00:07

    근데 이건 너무 구라인것같다...3천이겟죠 설마 3백이겟습니까? 조선군이 4만인데..,,;;딱봐도 조선군 진지의 위용을 봐도 쫄죠,....이건 너무말이안되는듯....3백이 어떻게 4만을이겨..ㅡㅡ; 4만명이 조총 한발씩만 쐇어도 적어도 전멸은 할텐데..,,;;;3천이겟네요...3천...3천이면 가능할지도 모르죵~!

  • 05.08.27 19:22

    금기병 17기가 송 보병 3천명을 대파시긴 적도 있습니다.;;

  • 05.08.27 00:12

    강태공/훈련안된 병사들의 조총 명중률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 05.08.27 01:20

    강태공님, 그렇게 어림짐작으로 결정하시는 것은 좀 그렇지 않나요. 딱보니 3천이네라는 것은 좀...그런데 아마 단순히 저기에 기록된대로 조총 총알 없어서 진 것만은 아닐겁니다.

  • 05.08.27 01:28

    체계적인 훈련을 받지 않은, 병과도 갖추지 않은, 설상가상으로 운도 없었던 군대의 몰락이군요.............

  • 05.08.27 01:43

    삼백도 삼백 나름이고 사만도 사만 나름이죠. 솔직히 군대가 사만이 있어도 군기없는 그야말로 농민들 모아놓은 군대라면 총 쏴보고 총알 떨어지면 겁먹고 도망가기 바쁘죠. 보병 3백이라면 또 모를까 기마3백이면 그 위압감은 장난 아닐겁니다. 어느정도 훈련된 병사라면 어떻게 하든지 인원수로 덤벼들면 살길이 있으리라

  • 05.08.27 01:44

    생각하고 총이라도 휘둘러 보지만 훈련없는 농민의 경우는 내가 왜 여기서 죽어야 하나 하는 생각부터 들겁니다, 당연히 도망부터 가려할꺼고 집단심리상 누구 하나가 도망가면 우후죽순으로 도망자가 생기고 그렇다면 지리멸렬 하는것은 일도 아니죠.

  • 05.08.27 02:56

    롬토의 피전트도 저거보단 잘싸울것같다는 생각이 문득...ㅡ,.ㅡ;

  • 05.08.27 07:26

    강태공/구라는 뭐가 구라입니까. 연려실기술 기록그대로입니다. 300 청기에 4만 조선군. 사거리 안에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총질해대다가 선두가 밟혀버리고 민영의 진에는 화약창고에 불이 떨어지는 바람에 날아가버리고, 결국에는 우르르 도망.

  • 05.08.27 07:29

    4만명은 과장된 것이리라 봅니다. 연려실기술에 나온 기록들 중엔 그런 경우가 많지요. 신립이 충주에서 패할 때 이끌고 있던 병력도 터무니없이 과장되었던 것처럼.. -_-;

  • 05.08.27 11:25

    기병은 적은 수만 있어도 엄청나게 많은 수로 보입니다. 기병을 상대해 오지 않았다면 그런 착시로 인한 위압감도 장난이 아니겠죠.

  • 05.08.27 11:28

    흠...그렇군....근데 조선군 진짜 허접하긴...허접하다....그냥 죽창으로 맞서 싸워도 3백은 그냥이길터인데

  • 05.08.28 01:09

    조선군은 절대 약하지 않습니다. ;*용인에서와 같이* 저 전투 당시에 지휘관의 통제력과 병사 개개인의 개별행동이 부른 참패죠. 또한 청나라 기병 *팔기군*은 8개의 무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죽창으로도 별 효과가 없습니다-_-

  • 05.08.27 13:57

    바랑기안 60명이 농민반란군 3000여명 찍어죽이는거랑 비슷하지않을까요...-_-;;ㅈㅅ

  • 05.08.27 21:22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쌍령 전투는 근접전을 담당할 병과가 없이, 원거리 투사무기만으로 구성된 군대가 실전에서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준 전투였죠. 그리고 강태공님이 "조선군이 각자 총 한방씩만 쏴도 적어도 전멸은 할텐데" 라고 하셨는데, 당시의 조총은 사정거리도 짧고 명중율도 매우 낮았습니다.

  • 05.08.27 21:24

    즉, 총을 쏴도 적에게 명중하는 건 적었습니다. 10발을 쏜다고 해도 1~2발 맞는게 고작이었습니다. 그렇기에 4만의 총병이 총을 쏜다고 해도 사정거리 밖에 있는 적에게 명중하는 총알은 매우 적었다는게 현실이었습니다.

  • 05.08.28 14:21

    절대 약하지 않다고 하는 것도 무립니다. 아시겠지만 저당시 군포 및 그밖의 수많은 폐단으로. 군역제는 이미 갈때까지 간상황이었고 국내상황도 임란의 피해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해 피폐한 상태였는데다가 군기도 문제였습니다.

  • 05.08.28 14:21

    그리고 근본적으로 조선군 시스템상 조총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전략 및 전술이 없었지요.

  • 05.08.29 19:09

    팔기군은 여덟 깃발, 즉 여덟개 부대로 나뉘어 있어서 팔기병이지 무기 여덟개를 써서가 아닙니다. 기병창, 도리깨, 투창, 장검, 활, 단검, 화승총, 마상총을 썼을까요? (단검 여덟개라도 운반이 장난이 아니겠군요.

  • 05.08.30 02:51

    무기 여덟개를 써서 그랬다는 잘몼됀 저오를 입수해서 그랬습니다-_-; 정정합니다;;

  • 05.09.02 08:06

    조총부대로 새 잡을라고 모았나..ㅡㅡ;

  • 05.12.31 21:43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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