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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살 딸, 세살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제3권을 읽고
다시쓰는 한국현대사 마지막 3권의 이야기를 해줄께.
박세길의 <다시쓰는 한국현대사> 3권은
최고의 현국현대사 책으로 기억될 것 같구나.
하나하나 주제별로 다룬 한홍구의 <대한민국사(4권)>과 쌍벽을 이룬다고 평가하고 싶단다.
...
3권은 1992년에 출간되었어.
3권에서 다루고 있는 시기는
1979년 10.26 이후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단다.
이 책이 출간된 지 20년이 지났구나.
1992년.
불과 엊그제 같은데 말이야.
지은이 박세길은 지금도 역사연구가로 활동하고 계신데,
1992년 이후부터 오늘날까지의 일들을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그후> 등의 제목으로 출간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박세길의 다른 책들도 출간했던데 기회되면 읽어봐야겠구나.
1. 12.12 쿠데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죽었다.
그것도 자신의 참모의 총에 의해...
갑자기 몇십년 최고 독재 권력이 사라진거야.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지고, 갑작스러운 권력의 누수.
그 권력을 노리는 자들이 있었으니,
첫번째가 군부 세력이고,
두번째가 3김으로 대표되는 정치인들
세번째가 신현확 총리의 유신 관료들이었어.
이 중에 미국의 지지를 받고 있는 군부가 가장 유리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결과도 군부가 권력을 차지하게 되었구...
당시 보안사령관이자 철저한 친미주의자였던 전두환이 권력을 호시탐탐 노렸어.
그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정승화 육군촘모총장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었어.
전두환은 정승화를 가장 먼저 제압하면서,
12.12 쿠데타를 일으키고, 불운하게도 성공했단다.
이후 계엄 상태를 유지했어.
그는 곧바로 대통령 자리를 차지하는 않았어.
여론을 좀 살폈던 것 같아.
1980년 봄.
우리나라는 학생과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민주화 시위가 연일 계속되었는데,
1970년대와 달리 통합이 잘 안되었다고 하는구나.
재야계와 야당 지도자들도 뜻이 잘 모이지 않았대.
학생 운동을 이끌고 있는 전국학생총학생회 연합도 약간은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1980년 5월 15일, 서울역에서 가두 시위하던 학생들을
모두 학교로 돌아가라는 결정을 내렸대.
일명 서울대 회군이라는 부르는 결정이래.
이 결정이 당시 학생들의 나약함을 군부에게 보여준 것이 되었고,
군부는 이를 기회로 강격대응으로 돌변했다는구나.
그래서 1980년 5월 17일 계엄을 확대하였고,
탱크를 주요 도시에 투입시켰으며, 모든 대학에는 휴교령을 내렸고,
민주 재야 인사 및 야당 정치인들을 잡아들였다고 하는구나.
이때 김대중도 이유도 모른 채 잡혀들어갔대.
6달만에 다시 군사쿠데타를 일으킨거야.
....
1980년 봄의 시위는 전국적으로 이루어졌는데,
광주에서도 학생들이 가두시위를 하다가
서울쪽 총학생회의 회군 결정을 듣고, 그에 따르기로 하고
1980년 5월 17일 가두시위를 철수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2. 광주 민중 항쟁(광주 민주화 운동)
그리고 1980년 5월 18일.
적군과 싸워야할 특수부대가 광주에 진입했어.
광주에서는 여전히 군사독재에 저항하고 있었거든.
그리고 시민들을 폭력으로 다루었지...
시민들은 아무런 이유없이 폭행을 당했어.
특수부대는 상부로부터 어떤 명을 받고 내려왔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광주시민들을 보기를, 적군 바라보듯 했단다.
그리고 아무런 이유없이 총에 의해 죽은 사람들이 발견되었어.
광주는 완전히 고립되었단다.
그렇게 강압하면 할수록 더욱 저항하는 것이 민중인것이야.
몇몇 시민들이 몰래 광주를 빠져나가 무기를 훔쳐서 다시 광주로 들어왔단다.
더이상 광주 시민을 보호해줄 이는 없었어.
나라를 지켜야하는 군인들이 그들에게 총을 겨누고 있으니 말이야.
100여명으로 결성된 시민군들은 훔쳐온 무기로 저항을 했단다.
예상치 못한 공격을 받은 계엄군은 철수했고,
잠시나마 광주시민들은 해방을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계엄군의 작정상 철수였다고 하는구나.
5월 27일 탱크를 이끄로 다시 진격하여 시민군이 점령하고 있는 도청에 총포를 쏘았다고 하는구나.
결국 이 무자비한 계엄군의 공격으로
200여명이 죽고 2000여명이 다쳤다고 하니,
이게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나다니 정말 어이가 없구나.
이것이 광주 민주화 운동이고,
지은이는 이를 광주 민중 항쟁이라고 일컬었단다.
이 무자비한, 특수부대로 조직된 계엄군의 공격을 미군은 몰랐을까?
당연히 알고 있었어.
우리나라 군수권은 한국전쟁 이후 계속 미국이 갖고 있었거든.
그런 병력을 움직이는 데 미국의 허락없이는 안된다는 거였어.
어차피 전두환이 철저한 친미주의자이기 때문에
전두환이 권력을 잡는데 미국이 안도와줄리가 없었겠지.
전두환은 광주민중항쟁을 탱크와 총으로 누르고
피묻은 총을 들고 미국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결국 대통령까지 차지하게 되었단다.
그렇게 공포의 5공화국이 시작되었어.
...
그렇게 비극으로 끝난 광주 민중 항쟁은 나중에 그 실체가 알려지게 되었단다.
언론을 장악한 군사정권으로 광주의 소식을 모르고 있었던거야.
그리고 그 광주 민중 항쟁의 정신은
1980년 군사 정권의 저항하는 밑거름이 되었고,
결국 1987년 6월 항쟁과 7,8,9 노동자 대투쟁을 만들어내었다고 한다.
3. 5공 시절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은 폭압정치를 시작했단다.
야당 정치인과 재야인사들의 정치활동을 1988년 말까지 금지시키고,
집회 및 시위를 못하게 하였고,
민중들의 개인적인 유인물을 금지시켰어.
그야말로 개인의 자유를 안드로메다에 갖다 버린거야.
뿐만 아니라 노동법도 개악하여 노동자의 단뎔과 단체행동권을 봉쇄했단다.
하지만, 민중의 저항은 밟으면 밟을수록 더욱 거세지게 마련이란다.
집회와 시위가 연일 이어졌고, 유인물도 계속 나왔어.
이런게 모두 불법이다 보니 전두환은 군과 경찰들을 이용해 더 강하게 억압하고,
그럼 민중은 또다시 더 강하게 저항하고...
그러다보니 1980년대 민중의 항쟁과 전두환의 폭압은 시간이 갈수록 강도가 세어지게 되었어.
수많은 학생들이 제적되고, 구속되고, 수배되었단다.
전두환 시절 7년동안 하루에 평균 1.6명의 정치적 구속이 있었다고 하니 대단하구나.
...
1980년대 전세계적으로 미국과 소련의 갈등이 가장 심한 때였어.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군축 증강으로 미국과 소련과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에 늘 휩싸였고,
그렇다보니 친미국가인 남한 역시 소련의 경계대상이 되었지.
그래서 KAL기가 소련공군에게 폭격당하는 비극적인 사건도 벌어지고 말이야.
그런데, 이 KAL기에 대한 놀라운 해석이 있어 소름까지 끼치더구나.
KAL기는 애초의 비행로를 이탈해 소련 항공으로 들어가게 되었대.
그런데, 비행기는 사전에 비행경로를 컴퓨터로 입력하기 때문에,
컴퓨터가 오작동하거나 누군가 의도적으로 잘못 입력하지 않는 한 그렇게 경로를 이탈할 수 없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오동작으로든 KAL기가 비행경로를 이탈했을 때,
비행기룰 추적하던 미국, 일본의 관제소에서 비행기한테 아무런 경고를 보내지 않았단다.
비행기가 경로를 이탈해서 소련 영공으로 넘어간 사실을 미국도 알고 있었던거지..
그리고 결국은 소련 전투비행기에 의해 폭격을 당한 것이고 말이야.
미국의 어느 TV 다큐멘터리에서 소련의 방위태세를 시험하려는 고의적인 발상에서 생겼다고 고발했단다.
즉 미국이 소련 기지에 대한 정보 수집이나 방위태세 점검 임무를 위한 것 아닌가 추측을 한거야.
그리고 KAL기 조종사가 CIA요원으로 추정된다고까지 했어.
정말 놀랍고도 소름끼치는 추측이구나.
....
냉전시대에 맞게 미국은 남한과 함께 해마다 팀스프리트 훈련이란 것을 했단다.
이 훈련은 적국의 침략에 대한 방어 훈련이 아니라,
북한을 침략하는 공격 훈련이 대부분이었다고 하는구나.
그렇다 보니 북한은 이 팀스프리트 훈련을 할 때마다 공포에 휩싸였다고 하는구나.
아빠는 지금까지 북한의 군사시설 대부분이 휴전전 근처에 전진배치되었다고 이야기들었어.
이것은 늘 남한에 있어서 전쟁의 위협과 일맥상통했고 말이야.
하지만, 실제로 확인해 본 결과 전국에 비교적 고르게 배치되어 있다고 하는구나.
오히려 남한에는 경기도와 강원도에 군사력이 집중배치 되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우리는 늘 북한의 침략에 위협을 받고 있다고 들었어.
하지만, 북한은 자기 지형에 수많은 지하진지를 구축했다고 해.
그 지하진지의 목적은 공격이 아니라, 적의 침입을 자신의 땅에서 방어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이 상식이란다.
즉, 북한은 침략의 의도가 높지 않았다는거야.
오히려 핵무기를 잔뜩 배치한 남한이 더욱 위협적으로 느꼈을거라는 게 지은이의 생각이란다.
우리나라에 1990년대초까지 미군의 핵무기가 있었다는 것은 이제 모두 아는 사실이거든...
....
1980년대 경제는 어땠을까?
1970년대 두어차례 석유 파동이 지나고,
1980년대에는 저달러, 저유가, 저금리 시대가 도래하여
전세계적으로 경제호황을 누렸다고 하는구나.
우리나라도 그랬는데, 기업들만 수익이 급상승했지,
수익에 비해 노동자의 임금은 저의 제자리 걸음이었대.
그렇다 보니 198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노동자 시위도 잦아졌다고 하는구나.
앞서 이야기한 학생들의 시위와 노동자의 시위가 거세지고,
군사 정권은 그에 대한 탄압이 가해지고,
결국 학생들과 노동자들의 시위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1987년 6월 항쟁으로 불꽃을 발산하게 되었단다.
4. 6월항쟁과 그후
5공화국의 끝은 1987년 6월 항쟁이라고 할 수 있고,
그 끝은 결국 민중의 승리하고 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구나.
1987년이면 아빠는 아직 까까머리 중학생이고,
시골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잘 몰랐어.
나중에 알게된 일이지만, 1987년 6월 항쟁이 얼마나 위대했더구나.
1987년 벽두부터 박종철군 고문 치사사건으로
수많은 시민들이 시위를 하게 되었고, 야당 정치인들도 합세하였어.
이에 전두환은 4월 13일 호헌조치를 발표하여 강력 진압을 표명하였대.
그러나 이 4.13 호헌조치는 심한 반발을 불러왔으녀, 더욱 농성은 심해졌어.
야당 정당까지 합세하여 5월말에는 범민주세력이 뭉쳤으며,
그 여세를 몰아 호헌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면서
전국적인 규모의 시위를 벌였단다.
1987년 6월 10일에 있었던 일이야.
모든 시민들이 거리로 뛰어났으며, 더이상 1980년의 서울역 회군 같은 일도 없었어.
6월 10일 시작한 민주화 시위는 날이 갈수록 커져서 전국으로 확산되었단다.
전두환은 군투입을 했지만, 민중들은 이를 두려원하지 않았어.
아무래도 광주민중항쟁의 경험이 컸던 것 같아.
그리고 광주가 아닌 전국적인 시위를 막기 위해서는 모든 군을 투입해도
쉽지 않을거란 생각을 했을거야.
그리고 미국도 예사롭지 않게 보았을테고,
아마 미국의 입김이 있었겠지만, 전두환은 두손두발 다 들게 되었단다.
민중들의 뜻에 따라 대통령 직선제를 하고 개헌을 하기로 했어.
백성들은 승리의 도취되었단다.
16년만의 대통령 직선제.
이제 선거로 대통령을 바꿀 수 있다고 하니,
그 지긋지긋한 군사정권을 끝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을거야.
그것은 유력한 야당 정치인 김영삼과 김대중도 마찬가지였을거야.
자, 그럼 누가 야당 대통령 후보가 될 것인가?
모든 백성들은 당연히 단일화하여 한명이 나올 줄 알았어.
하지만, 그들은 양보를 하지 않았단다.
아무래도 둘 모두 단일화를 하지 않아도 본인들이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아.
야권이 분열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정당 노태우는 방심하지 않았어.
온통 불법 선거운동을 했고,
북풍 또한 이용을 했어.
이때 김현희의 KAL기 폭파사건이 있었는데,
이것은 민정당 노태우의 지지도 상승에 큰 역할을 했단다.
그런데, 이 KAL기 폭파사건은 조작의 냄새가 심하게 풍긴단다.
아직도 KAL기 사건의 진실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구나.
과연 진실이 무엇인지..
그 뿐만 아니라, 군사정권은 선거 및 개표에서 불법을 자행했다고 하는구나.
그렇게 온갖 조작과 불법을 행했음에도 불구하고 36%표로 대통령이 된 노태우.
대부분의 백성들이 좌절하고 실망했단다.
어떻게 얻어낸 직선제인데, 다시 군인한테 대통령자리를 주어야 하다니..
그래도 역사의 바퀴는 굴러가는 것인지...
거기에 1990년대 들어서면서,
기회주의자 김영삼은 오랜 야당 생활을 접고,
삼당합당으로 거대여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된단다.
그리고 대통령 당선...
그리고 그가 5년내내 보여준 무능한의 극치....
이게 지은이가 이야기한 우리나라의 현대사란다.
...
다시쓰는 한국현대사 3권을 통한 우리나라 현대사...
안타깝고, 억울하고, 슬픈 역사의 연속인 듯 싶구나.
다들 한번 사는 인생인데, 왜 그렇게들 살아야 하는지...
과연 통일을 될 수 있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
지금 살고 있는 이시대는 또 어떤 역사적인 평가를 받게 될런지...
서두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 책의 지은이 박세길님이 1990년대 이후부터 오는날까지를
민중의 입장에서 정리를 한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5. 지은이 맺음말
지은이의 에필로그에 역사에 대한 지은이의 생각에
격한 공감을 느껴 발췌해 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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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앞으로 내닫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그러다 보면 지쳐 나가떨어질 수도 있고 길을 잘못 들 수도 있는 법입니다.
때로는 한걸은 물러서서 투쟁의 성과를 그릇에 담고,
걸어온 길을 차분히 되돌아보면서 갈 길을 모색하는 것이
현명한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변화하는 현실을 새로운 각오와 새로운 시야로 이해하고
실천하기 위한 것입니다.
변화하는 현실에는 눈을 돌린 채 과거의 도그마에만 사로잡혀 있다면,
현실은 언제나 비관적이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오히려 현실은 언제나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역사로부터 잠시도 시선을 떼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역사는 우리에게 가장 풍부한 지혜의 원천입니다.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우리 모두에게 투철한 역사적 안목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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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 : 다시쓰는 한국현대사 3 (1980년부터 90년대초까지)
지은이 : 박세길
펴낸곳 : 돌베개
페이지 : 303 page
펴낸날 : 1992년 10월 01일
책정가 : 6,000원
읽은날 : 2014.03.19~2014.03.21
글쓴날 : 2014.03.27,28,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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