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암 스님은 1914년 경북 풍기에서 출생, 28년 예천 서악사에서 출가하였다. 36년 김용사에서 비구계를 수지하였으며 김용사 강원 사교과를 수료하고, 일본대학 종교학과 3학년을 중퇴하였다. 예천에 포교당 설립, 갑사의 토굴에서 단식 수행 등 제방선원에서 정진, 40안거를 성만하였으며, 문경 봉암사 조실로서 선풍을 진작시켰다.
"아 , 이 먼 데까지 무엇 하러 오려고...힘든데 올 것까지 없어요."라는 서암 큰스님의 말씀 속에는 따뜻하신 배려가 녹아 있었다. 그에 힘입어 재삼 청원 드리자, 4월 초순에 서울 갈 일이 있으니 그때 보자는 약속을 해주셨다.
▶스님,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나야 떠돌이 중이니 떠돌아 다녔지요.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가고 이리저리 인연 닿는 대로 떠돌아다니면서 중이 하는 소리 듣고 싶다면 해주고 다녔어요."
▶스님, 미국에 가셔서 포교하시는 등 대내외적으로 무척 바쁘게 지내신다고 들었습니다.
"미국 가서 포교를 안 했다고도 할 수 없고 했다고도 할 수 없지요. 여러 교수들을 만나 이야기했는데, 어느 교수는 '지식으로 짜내는 이론을 탈피한 공부, 입 열지 않고 하는 공부를 일러 달라'고 하더군요. 한마디로 상념의 세계는 접어두고 의식이 아닌 무의식의 세계, 인생의 참모습을 이야기해달라는 것이었어요. 어쨌든 인간의 실상에 대해 탐구하는 자세가 매우 인상적이었지요."
▶그 교수처럼 요즘 미국사람들은 아니 미국사람뿐만 아니라 현대 서구인들은 서양문명에 한계를 느끼며, 동양사상 특히 불교사상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글쎄 그런 것까지는 내가 모르겠고, 불교에 관심을 가진 지식인들이 퍽 많은 것은 사실이에요. 그들은 신 중심의 서양문화에 권태를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서양의 종교는 자기는 없고 신만 의지하는 종교인데, 물질문명이 치성해지고 과학이 발달하면서 서구 종교는 사실상 쇠퇴일로를 걷고 있다고 볼 수 있지요. 서구의 학자들은 현대를 서양문화가 벽에 부딪힌 위기의 시대라고 진단하면서 그 구원을 동양의 불교, 물질과 정신이 둘이 아님을 설파하신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찾으려 하고 있어요."
▶스님 말씀처럼 요즘 서구에서는 해체이론이라 하여 탈로고스 이론 즉 기독교에서 말하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은 허구로서 해체되어야 마땅하다는 이론이 풍미하고 있다고 합니다.
"물질과 유일신관(唯一神觀)에 파묻혀 살다가 이제는 그 허상을 깨닫고 뒤늦게나마 부처님의 가르침, 물질을 초월하고 나아가 모든 삼라만상이 서로 상의상관(相依相關)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는 연기적 세계관에 눈뜨게 된 것은 대단히 다행스러운 일이에요. 그네들 가운데 깨달음의 차원에서 공부하려는 사람들, 삶의 실상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더러 봤는데 오히려 우리보다 구도자세가 더욱 진지해 보였어요."
▶미국에 동양의 선(禪)이 마치 모래사장에 물 스며들 듯이 스며들고 있다는 말이 실감나는데요. 사실 선에 대한 오랜 전통을 갖고 있는 우리 한국의 불자들도 제대로 선(禪)을 모르고 있는 듯합니다. 선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십시오.
"선은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거예요. 그러나 사람들에게 일러주기 위해서는 말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데, 눈을 뜨고 보면 일상사 모두 선 아닌 것이 없고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부처 아닌 게 없어요. 꿈을 깨면 되는데 모두들 꿈에 형상에만 사로잡혀 제 본성이 부처인 줄 모르고 있어요. 선은 상념을 쉬어버리고, 일체 알음알이로 축적된 지식보따리를 벗어버리고 진짜 자기의 본성, 자기의 주체를 찾으러 가는 방법이에요. 그래 절절마다 일주문에는 '입차문내(入此門內) 막존지해(莫存知解)라, 이 문 안에 들어서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저 자기의 지식저울대로, 자기 잣대로 재기만 하지 자기의 밝은 마음을 깨치려고 하지를 않아요. 선을 해서 깨우치려면 육체감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만 급급해 살지 말고 영원한 자기를 찾으려 노력해야 해요.
▶선을 통해 마음이 열려지면 이 세상 모든 것이 부처 아닌 게 없다는 말씀은 일체중생(一切衆生) 실유불성(悉有佛性)을 설파하신 부처님의 말씀과 같은 맥락이겠군요?
"그래요, 누구나 다 부처입니다. 다만 부처가 부처인 줄 알지 못하고 부처의 구실을 못하고 사는 게 문제예요. 『금강경』에 비유가 나오는데, 산 속에 금이 아무리 많아도 광부가 용광로에서 잡석을 녹여내고 정련해야 순금이 되는 것입니다. 비록 모양은 천차만별 달라도 금인 것은 한 가지이지만 아무리 그의 성품을 가졌더라도 정련을 거치지 않으면 순금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곧 부처님의 성품을 가졌더라도 밤잠 안자고 정진해야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부처가 된다는 것을 다른 말로 해탈한다고도 말하는데 그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십시오.
"부처는 온 우주의 이치를 깨친 각자(覺者)를 말합니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각자가 되기 위한 방법이 바로 선이에요. 그럼 해탈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삼라만상의 이치를 깨닫고 모든 괴로움과 속박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이 말은 스스로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울어도 내가 울고 지옥을 가도 내가 가고 천당을 가도 내 발로 가야 해탈입니다.
천당을 가더라도 만약 누군가에게 끌려간 것을 알면 그것은 해탈이 아닙니다. 한마디로 내가 주체적으로 사는 것, 마음이 마치 갈대가 흔들리듯 흔들리지 않고 초지일관 똑바로 자기 부처 찾아 사는 게 수행생활입니다."
▶ 인간에게 성불할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시고 성불의 방법까지 일러주신 부처님께, 그리고 스님께 감사드립니다. 스님의 출가 인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참 험난한 시절이었지요.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진지 드셨습니까.'라는 우리네 인사말은 전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에요. 일제 때 하루 밤에도 수십 명 씩 끌려가 고문 당해 죽는 사태가 다반사로 일어났기 때문에 인사가 밤새 안녕하셨는가 였어요. 또 아무리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일인들이 다 뺏어가니 허구헌 날 배를 곯는 거라, 그래 인사가 진지 드셨습니까예요. 그런 인사법이 다 일제 때 만들어진 겁니다.
그렇듯 험악한 시절, 우리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했어요. 가산은 다 탕진되고, 날이면 날마다 일인 순사들이 아버지 찾으려고 눈을 부라리고 감시하고, 그러다 보니 나는 아버지 얼굴도 제대로 못보고 크면서 늘 공포와 괴로움 속에서 자랐지요. 물론 공부도 제대로 할 수 없었어요. 여기저기 다니면서 동냥글로 이삭줍기 공부를 했어요. 그렇게 고통 받는 생활을 하면서 '인생이 뭔고, 인간이 왜 태어나서 이렇게 볶여 사느고, 이 몸뚱이가 뭐 길래 이토록 괴로운고' 하는 의문이 저절로 드는 거예요. 친구 따라 교회에 가서 목사와 문답도 나눴는데 시원한 대답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하나님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다는데 자꾸 반감만 드는 거예요. '아니 무슨 신이 그렇게 심술 맞은가, 이왕에 창조하려면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만들 것이지 왜 이렇게 괴롭게 만들었는고, 누구는 잘 살고, 또 누구는 못 살고'하며 원망하는 마음만 들어 교회당에도 나가질 않았어요. 그러나 늘 마음속에는 '인생이 뭔고'하는 의심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지요. 소학교도 신문배달하며 다닐 정도였고 하루하루 사는 게 그야말로 고역이었으니....
나이가 열두서너 살 때였던가, 하루는 동네 뒷산의 절에 찾아갔었지요. 절의 노장이 어떻게 사나 궁금하기도 하고, 내 의문에 답변을 들을 수 있을까 해서 찾아가 물었지요.
이러저러 여쭈었더니 노장이 빙그레 웃으시며 '니가 지금까지 배우고 들은 것 다 집어던져버리고 니 소리 한번 해봐라' 하시는데 그만 말문이 꽉 막혀버리는 거예요. 아무리 애기 하려 해도 맨 학교에서 배운 것뿐이더란 말씀이에요. 몇날 며칠 연구해도 도무지 배운 것 말고 진짜 내 소리는 한마디도 없는 겁니다.
며칠 뒤 다시 스님을 찾아가서 '그럼 스님이 답변해보시오'하고 억지소리를 하자 또 빙그레 웃으시는 거라, 아무튼 말씀은 안 하셔도 스님은 뭔가 통쾌하게 사시는 것 같아 중 되게 해달라고 졸랐지요. 안 된다고 하시는데 자꾸 졸랐더니 2년 동안 머슴살이를 하라고 하시더군요. 그래 꼬박 2년 동안 머슴 살고 난 뒤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지요."
▶출가하신 뒤에 일본에서 갖은 고생 하시면서 일본대학 종교학과를 다니신 이야기는 스님의 회고록에서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일본에서 얻은 폐병을 참선으로 극복하셨다는 대목이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죽고 사는 일이 사람의 마음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참선에 돌입했지요. 김용사 선방에 들어가서 하루 12시간 이상 정진했어요. 그 때 약은 입에 대지도 않은 것은 물론이지요. '이 뭣고?'하는 화두에 생명을 싣고 정진하다보니 각혈도 멈추고 기침도 줄어들더니 어느 결엔가 병이 나았지요. 그러나 병이 낫고 안 낫고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에요. 자칫하면 사람들이 참선의 효용성에만 빠져들 수 있는데 그러면 참선의 본말이 전도되는 겁니다."
▶그래도 생명을 건 정진, 화두를 참구하며 선정삼매에 드신 결과 고질병을 고치신 이야기를 듣고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옛날이야기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옛 스님들의 일화가 결코 단순한 얘깃거리가 아니라는 것도... 40안거를 성만하셨는데, 기억에 남는 일화 한 토막만 얘기해주십시오.
"한 달도 굶고 두 달도 굶고 바위틈에서 죽기 살기로 공부한 적이 있지요. 나뿐만 아니라 많은 수좌들이 지리산, 태백산, 계룡산 등지에서 정진했지요. 정진을 하다보면 자기도 없어지고 우주도 없어져버리는데 그 없어진 것을 아는 마음은 있어요. 한마디로 시공을 초월한 우주가 텅 비고 아주 밝은 자기가 빛나고 있지요. 아무리 설명해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어요. 이 경지에 이르면 죽고 사는 것 또한 생각의 기멸(起滅)임을 깨닫고 그대로 태평객이 됩니다. 이렇듯 잔잔한 명경지수처럼 근본 마음이 나타날 때는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몰라요. 어떤 수좌는 밥을 해놓고 '뜸 들거든 먹어야겠다.'하고 정진하다 삼매에 들었어요. 이만하면 밥이 다 됐겠다 보니 밥이 썩어버린 겁니다. 괴로울 때는 일각이 여삼추요, 재미날 때는 후딱 지나가는 것처럼 시간도 관념의 문제예요."
▶앞으로 특별한 원력이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십시오.
"부처님 가르침은 천고에 누구도 가감할 수 없는 완벽한 교법이에요. 그런데 부처님의 교법을 이탈하는 이들이 있어요. 오늘날 사회는 물론이고 한국불교의 가장 큰 병폐 또한 집단이기주의에요. 각 문중마다 세상 욕심 법에 물들어 세력 다툼을 하는 것은 참말로 눈뜨고 볼 수가 없어요. 모든 중생이 절대 평등한 것을 알고 남의 허물이 있으면 자비심으로 다독거려 주어야 하는데 서로 허물을 캐내며 세속 법에 의지해 다투면서 부처님 욕 먹이는 일이 많으니... 중흥사를 복원하는데 힘을 기울여 앞으로 네 문중 내 문중 떠나서 참말로 불교를 일으키는 포교운동을 할 겁니다. 어둠은 아무리 쓸어버리려 해도 쓸러지지 않지만 부처님 밝은 등불 켜기만 하면 어둠이 저절로 스러진다 그 말입니다.
우리 불자 모두 참말로 순수한 불교를 일으키는 운동을 서로서로 힘을 합쳐 일으키고 부처님 사상을 고취시켜야 합니다. 이렇게 불법을 실천하며 살 때 자기가 행복하고, 그 행복한 마음을 가족과 이웃과 사회와 나누어 가질 때 인류평화에 기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쪼록 좋은 법 나눠주어 행복한 세상 만드는 불자가 되길 뵙니다."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 <불광 미디어> 본 기사는 불광 사경불사에 동참하신 김옥정 불자님께서 입력해 주셨습니다.<2007.9>
첫댓글 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