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리쿰(부르주) 전투>
<알레시아 공방전>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기>를 개정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너무 오랫동안 개정이 없었던 내용 구성과 그 밖에 이런저런 것들을 환골탈퇴 하는 식으로 나아가는 것인데... 그것과 관련하여 요즈음 돌아버릴 지경이다...
관련해서 들어갈 삽화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그것만이 남았다.)
그 중 위의 두 전투에 관한 그림들을 찾았다.
그래서 그것들을 바탕으로 위의 두 일러스트들을 그렸다.
카이사르라는 위인은 원래 그다지 대단한 인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일단 <로마인 이야기 제4권> 등을 비롯한 카이사르에 관한 여러 전기문들을 보면 말이다...
심지어 알렉산더 대왕의 흉상 앞에서 혹은 알렉산더 대왕의 전기를 읽고서...
하인 앞에서 눈물을 흘렸고, 이에 그 하인이 "왜 우시나요, 나으리?" 하고 물으니...
"이 양반(알렉산더 대왕)은 나보다 어린 나이에 세계를 정복했는데, 나는 지금 이렇듯 한량으로 지내고 있어서 그런다!"고 했던가...
그런 "한량"이 결국 "만고불변에 전무후무한 위대한 위인"으로 떠받들어지고 있다.
왜 그럴까?
그것은 바로 그가 <갈리아 전기>라는 기록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것도 최대한 객관적인 기록...
자신의 전공만이 아니라 자신의 부하들을 "그 이름까지 일일이 거론하며" 그 전투행위의 과정까지 마치 그들의 전투보고서를 그대로 옮겨적듯이 적어놓은 것 하며...
거기 더해서 자신의 적들을 "찌질한 존재들"이 아니라 정말로 "대단한 존재 OR 존경이 가는 존재"로 기록해 놓은 내용 등등...
시오노 선생의 말씀대로 "간결하다" 혹은 "문장에 카리스마가 넘친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아마도 이러한 점들이 그의 기록을 만고불변의 위대한 기록으로 남게 해준 것 같다고 본다.
하지만 그 내용들 중 "절정"이라 할만한 내용이 있다.
바로 제7장... <갈리아 전체와의 전쟁>이라는 제목을 붙인... 바로 그것...
그 중 백미라 할 수 있는 "알레시아 공방전"...
그리고 카이사르의 생애에서 가장 거대한 적이었던 "갈리아의 그리고 프랑스 역사상 진정한 군주 : 베르킹게토릭스"...
처음에... 오늘날 스위스 원주민들의 조상인 헬베티 족의 대이동이 전쟁의 원인이었다.
게르마니아인들의 압박 때문에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 갈리아 족의 일부였던 헬베티 족은 오늘날의 이탈리아 북부를 통과하여 다른 곳으로 갈 수 있게 해달라며 당시 그 지역의 댓빵으로 배치되어 있던 카이사르에게 요구해 오자 이에 카이사르는 "지역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서" 그것을 불허하면서... 결국 전쟁으로 이어지는데...
헬베티 족은 쉽게 박살냈지만, 산 넘어 산이라고... 이번에는 갈리아에 들어와 갈리아 여러 부족들로부터 삥을 뜯어먹던 아리오비스투스라는 게르마니아인과 맞장을 떠야 하게 되었는데...
이 아리오비스투스와 그의 부하들에 대한 이야기가 제대로 알려진 것이 없던 바...
말 그대로 당시 카이사르의 로마병사들은 이들을 "먼치킨 투명드래곤 집단"으로 생각했던 바...
이에 카이사르는 부하들을 질타한 뒤 아리오비스투스와 싸워 승리하는데 성공,
여기 더하여 라인 강에 "거대한 다리를 건설하여" 이를 도하함으로서 로마인들의 "엄청난 기술력(High Technology)"까지 선보임으로서 갈리아인들과 게르마니아인들을 완전히 질리게 그리고 굴복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카이사르에 대한 갈리아인들의 항쟁은 마치 베트남전쟁처럼 끝도 없이 계속되었고,
그 결과 6차에 걸친 대전쟁이 이어졌다.
물론 카이사르는 그 전쟁 때마다 일일이 그것을 기록하여 보고서 형태로 만들어 "로마의 진정한 주권자들(... 로마 시민들에게는 제정 시대에도 투표권 등이 있었으니까...)"에게 알림으로서 그들로부터 지지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고,
또한 거기 더하여 (브리타니아 전쟁 때에는 자기들 스스로 선단을 편성하여 따라오기까지도 하고 혹은 군단의 주둔지에서 PX 같은 것을 운영하기도 하던...) 상인들에게서 전리품과 노예들을 매매하는 조건 등으로 돈을 받게 되면서 경제적 기반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는데...
당연히 이것이 훗날...
그가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이 강(루비콘 강)을 건너면 세상이 망하고, 건너지 않으면 내가 망한다!"라고 외치며 <카이사르 내란기>의 소재가 될 또 하나의 전쟁을 위한 바탕이 되어주었을 터!!!
이로서 "로마의 한량"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영웅이자 위인"이 된 셈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최대의 위인에게도... 결국 중대한 위기가 있었으니...
바로 "베르킹게토릭스"였던 것이다.
6차에 걸친 전쟁 끝에 카이사르에게 완전히 굴복, 심지어 충성까지 맹세한 갈리아인들...
19세기에나 제대로 이루어질 "민족의식"을 이 때 이미 고취시켜 카이사르에 대항해 이들을 봉기케 했던 그...
과연 그의 최종 목적이...
당시 그에게 비아냥 대던 몇몇 갈리아 부족장들의 말대로...
그리고 오늘날 권세를 휘두르는... "한 때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던 경력"을 내세우며... "국민들이 취직을 해서 밥을 벌어먹던 말던 상관없이, 자장면을 덜 먹게 하고 담배를 덜 피게 하며 (단란주점이나 룸사롱 빼고) 사창가를 못 가게 하고 세금도 이런저런 근거를 들어 더 많이 거두어 그것으로 우리와 같은 민족임을 내세우며 이것저것 달라고 요구하는 자들에게 쥐여주어 통일을 위해 애쓰던 모습으로 역사에 기록되게 하고 또한 우리도 골프치며 놀아보세!!!"를 외치는 386들을 보다보면...
정말로 수상하게 보인다만...
그래도 그는 (솔직히 앞서 말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갈리아의 진정한 지도자였음이다.
그리고 카이사르의 가장 무서운 & 최대의 적이었고...
혹자는 아마도 폼페이우스를 꼽겠지만...
그는 이미 카이사르보다 먼저 유명해지고 또한 대단한 인물로 추앙받던 탓에...
오히려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알고 있었을 것이고...
이는 또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 백승이다"라는 손자병법의 원리를 따를 적에...
카이사르에게는 "별로 안 무서운 적"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기껏해야... 영화 <패튼>에서... "난 이미 네 놈을 알고있다"고 중얼거리면서... <롬멜의 전격전>이라는 책을 침대 위에 던져놓으며 작전을 하러 나가던... 조지 패튼 장군의 모습이 더 떠오른다만...)
그 대신,
그 능력은 커녕 그 과거조차 제대로 알 수 없는 적... "베르킹게토릭스"야말로... 카이사르에게는 더더욱 무서운 적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 부분에서... 만화 <사이코매트러 애지>에서... 주인공인 애지가 7살 연상의 연인 "시마 형사"에게 털어놓던 말... "처음 보는 상대를 상대로 싸움을 할 때는 서로가 서로를 두려워하기 마련이에요. 왜냐하면 상대의 능력을 알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저처럼 사이코매트러라 남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언제든지 상대방의 두려워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기에 자신감을 가지고 싸움을 할 수 있죠"라고 말하던 것이 떠오른다... 그와 함께... "Mathor Goose"를 즐겨부르던... 콜럼비아에서 온... 또 하나의 사이코매트러를 두려워해야 했던 내용도...)
그나마 카이사르에게는... 하늘이 도우셨는지는 몰라도...
먼저 초토화작전을 펼쳐 로마군을 곤란한 지경으로 몰아넣자던 베르킹게토릭스의 주장에...
당시 한다하던 도시들 중 하나였던 아바리쿰(부르주)이 이에 반대하고 또한 그들의 반대를 베르킹게토릭스가 수락했던 점이 그의 문제였다.
카이사르는 로마가 가진 우수한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최신무기들을 사용하여 저 성곽도시를 점령하였고,
그곳을 거점으로 이런저런 군수품의 확보와 병사들의 개인정비를 실시한 다음,
알레시아에 집결하여 마지막 전투를 준비하던 베르킹게토릭스의 대군을 포위한 뒤,
또한 베르킹게토릭스가 다른 갈리아인들을 불러올 것에 대비...
이중의 철통같은 방어태세를 완비한 다음
마침내...
엄청난 수의 인원을 바탕으로...
안팎에서 인해전술로 육박해오던 갈리아군을 상대로 거대한 혈전을 벌인 끝에...
이들을 상대로 "더 이상의 전투를 포기하게 만드는" 사태에 놓이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주식이 주로 곡식과 채소와 생선류였던지라... 적게 먹고 적게 싸던 로마군과 달리...
주식이 주로 고기와 유제품 등이었던지라... 식량이 금방 동이난 (덧붙이자면 말의 경우 밖에서 도와줄 원군을 모집하기 위해 기병들을 태워 내보냈던 상태였다... ㅡㅡ;) 터라...
결국 베르킹게토릭스는 알레시아의 모든 비전투원들(여성, 아이들, 노인들)까지 강제로 퇴거시켜야 했던 상황에 더하여...
그래도 많은 희생을 냈음에도 적은 굴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이쪽 또한 식량이 동이 나자...
결국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기로 하고 항복을 결심하게 되는데...
"이 전쟁은 나의 필요에서가 아니라 모두의 자유를 위해 행했다. 운명에는 양보하지 않으면 안 되므로 내가 죽어 로마 군에 보상하든지, 산 채로 로마 군에 인도되든지 어찌 되었든 이 한 몸을 모두에게 바치겠다." (범우사 <갈리아 전기> 2000년 6월 27일 2판 3쇄. 제7권 89장에서...)
물론 카이사르에 의해 기록되어진 이 "적장의 심정"은...
당시 베르킹게토릭스의 비장한 말투와... 거기 더해 울먹이거나 포효했을 갈리아 용사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데...
우리 이웃나라의 군주가 60년 전에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을 회피한 채,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 채 신하들이 가져온 보고서에 사인만 한 허수아비 군주였다고 변명한 다음,
대궐 안에 만들어놓은 식물원에서 원예연구나 하는 것처럼 세상을 속인 채...
심지어 "태평성대를 이룩한 군주"인양 존경까지 받으며 비단금침 속에서 편안히 죽어간 것을 생각하면...
정말로...
이 아니라...
이...
이 진정한 군주의 항복 광경이 아니었나 싶다.
(덧붙이자면... 19세기 말엽에 그려진 저 아랫그림 속 포승에 묶여 꿇어앉혀진 갈리아인은... 아마도 통역으로 끌려나온 포로였던 모양이다.)
아무튼 카이사르는 그의 경력에 있어 최대의 위기를 극복하고...
(만약 그가 알레시아에서 패한 뒤 로마로 "무사히" 도망쳐 왔더라도... 분명 로마 원로원 멤버들은 그의 실패를 빌미삼아 분명 그를 가만 두지 않았었을 것이다. 어차피 아리오비스투스부터가... "만약 내가 당신을 죽이면 당신네 원로원 의원들이 기뻐할 것이다. 이건 농담이 아니라 내가 당신네 나라 사람들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다!" 라고 했을 정도였으니...)
마침내 위대한 승리를 이끌었던 것이다.
자칫 독일군 제9군 총사령관 파울루스 원수와 비슷한 처지가 될 뻔한 그였지만...
결국 그는 이렇듯 그 거대한 위기를 극복함으로서...
그 개인적으로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수"가 되었고...
세계사적으로는 "서유럽의 역사"의 바탕을 이루었던 것이다.
ps. 관련 그림들은 google.co.kr에서 "카이사르"의 한글 및 알파벳 이름으로 검색하여 찾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