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1234) -조촐한 회방(回榜) 오찬
가을바람 솔솔 부는 10월에 들어서도 예년보다 더운 날씨더니 새벽부터 비가 내린다. 비 그치면 쌀쌀한 날씨라는 예보, 환절기건강에 유의하시라.
며칠 전 오랜 동안 교분을 이어오는 지인들과 오찬모임을 가졌다. 1966년 가을에 합격한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에 몸담은 인연을 맺은 지 금년으로 60년, 50명의 합격자 가운데 뜻이 맞는 열두 명의 동지가 교분을 이어오는 중 더러는 세상을 떠나고 더러는 건강이 여의치 않아 요즘의 참석자는 다섯 명 내외다.
선인은 일상에 드문 경사로 회갑·회혼·회방 등 ‘삼회’(三回)를 꼽았다. 회(回)는 60년 지나 돌아왔다는 뜻. 회갑(回甲)은 태어나서 60주년이 되는 해, 회혼(回婚)은 부부가 혼례를 치른 지 60주년이 되는 해, 회방(回榜)은 과거 급제 60주년이 되는 해를 말한다. 조선시대에는 과거에 급제하기도 어려웠지만, 급제 후 60년의 삶을 누리기는 더 어려웠다. 이런 점에서 회방은 극히 소수의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었던 아주 특별한 의례였다. 장수시대를 맞아 여러 동지들과 함께 갖는 조촐한 회방 오찬이 뜻깊어라.
* 30년 넘는 광주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양로원 어른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나눈 시간들, 서울 입성 40년을 추억하며 이렇게 기렸다. ‘외로운 어른들의 삶터인 양로원(후에 요양원)에 작은 손길 보탬의 30년.’ 그곳(천혜경로원)에서 매달 요양원 어른들의 생활을 소재로 한 소식지, ‘경로원 이야기’를 보내온다. 이번 달에 보내온 내용을 살펴보자.
‘경로원 이야기
만나면 반가워서 “오매오매” 하며 잡은 손을 놓지 못하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금방 화색이 돌며 한없이 따라 부르던 ㅁ할머니가 오늘은 하루 종일 직원들을 볶아댔다.
“우리 서방 밥해줘야 씅께 지금 당장 쌀 사갖고 집에 가야쓴단 말이요.”
견디다 못해 현장직원은 상부에 하소연하기에 이르렀고 사회복지사가 현장으로 달려갔다. 사회복지사는 우선 할머니를 바람을 쐬드릴 겸 잔디밭으로 모시고 나왔다. 할머니는 여전히 소신을 굽히지 아니하고 “집에 가야써라우”하며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은근히 서방님 자랑을 늘어놓았다.
“나는 성질이 뭣같아도 우리 영감은 성격이 좋아서 지금까지 한 번도 쌈한 적이 없어라우.”
“할머니, 서방님은 정말 훌륭하셨던가 봐요.”
“말로 할 수도 없어라우.”
할머니를 인계받은 사회복지사는 할머니를 달래느라 견디다 못해 쓰러질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날도 저물어가니 주무시고 내일 가십시다.”
“날이 저물어간께 어서 가봐야 쓴당께라우.”
눈이 어두운 할머니가 모를 줄 알고 할머니 머리위로 스프레이를 뿌리면서 말했다.
“할머니, 지금은 비가 오는데요.”
할머니는 여시촉새같이 알아차리고 받아쳤다.
“물 뿌리는구만.”
오랜 시간 실랑이를 하고 있는 이 광경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할머니 곁으로 다가가 무턱대고 말했다.
“할머니, 노래 한자리 부르실까요?”
♪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
“내가 속이 지랄같은디 노래가 나오겄소?”
맞는 말씀이었다. 그러나 우리도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계속해서 노래를 몇 곡 이어갔지만 할머니는 다른 때와는 달리 고개를 숙였다, 돌렸다하며 요지부동이었다. 그러나 이 한마디에 할머니의 마음은 녹아들기 시작하였다.
“할머니, 속이 지금 개 ㅈ같지라우? 그래도 이럴 때 노래를 부르면 개 ㅈ같던 마음도 확 풀어져라우.”
할머니는 “오매오매, 하하하.”하고 깔깔 웃더니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 가을이라 가을바람 솔솔 불어오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