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 텔리비젼 앞에 빠져 들며 보았던 인기 절정의 드라마 ' 임금님의 첫사랑'
강화 도령 원범과 양순이의 안타까운 첫사랑 이야기, 그 때는 강화 도령 원범이 철종 임금인줄도 모르고 마냥 재미있고 신기해 하며 보았던 것이다.
강화는 그렇게 유년기 내 기억에 첫 사랑 같은 섬이었다. 철이 들고 나서야, 역사를 좀 알고 나서야 비로소 강화는 그렇게 아름답지도 첫사랑 같지도 않은 시련의 섬,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라는 것을 깨닫는데 그리 오랜 세월이 걸리지 않았다.
수원 지기 학교 베테랑 교장샘, 든든한 지원군 교감샘과 함께 다녀온 강화는 내게 또 다른 강화를 느끼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라고..
기회있을 때마다 다녀온 강화지만 정족산성이라 불리는 삼랑성을 한번도 오른 적이 없었고 양헌수 장군을 기억하기엔 아는 것이 너무 없었을 것이다. 기껏해야 강화의 유명 사찰인 전등사를 둘러 보는 것이 전부였을 것이다.
삼랑성은 다리가 세 개 달린 솥의 모양을 했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정족산성(鼎足山城)으로도 불리운다. 삼랑(三郞)은 세명의 사내란 뜻으로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산성안으로 걸어가다 보면 양헌수 승전비가 보인다. 1866년 프랑스 선교사의 죽음과 천주교도 박해를 빌미로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에 쳐들어 온 사건인 병인양요때 양헌수 장군은 프랑스군을 잘 막아내었다. 조선군이 갖고 있는 화승총은 사정거리가 짧았다. 이를 잘 알고 있던 장군은 적군이 사정거리로 들어 오길 기다려 총 공격을 가해 프랑스군을 전멸 시킨다.
삼랑성 안으로는 고구려때 지어진 전등사가 있다. 창건 당시 진종사로 불리었는데 고려 충렬왕비인 정화궁주가 전등사에 옥등을 시주하면서 전등사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전등사의 범종은 중국 북송대의 것으로 2차 세계대전때 일본이 전쟁을 위해 우리나라에서 많은 쇠붙이를 강제로 빼았아 가는 과정에서 병기창으로 옮겨진 것을 전등사의 범종을 찾다가 병기창에 남아 있던 것을 가져오는 과정에서 전등사의 본래 종이 아닌 중국종을 가져오게 되었다고 한다.
전등사의 대웅보전 지붕에는 마치 벌거벗은 여인이 추녀를 받치고 있는 듯한 모양을 한 나무 조각상이 있다. 어떤 사람은 절을 지키는 신장이라고도 한다. 전등사에는 이 나부상에 얽힌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사랑에 빠진 도편수는 대웅전을 지어 번돈을 모두 아랫마을 주모에게 주었는데 어느날 주모가 그 돈을 모두 갖고 도망을 간다. 그러자 배신감을 느낀 도편수는 대웅전 공사가 끝나갈 무렵 대웅전의 처마에 그 여인을 벌할 생각으로 이 조각상을 새겨 놓았다고 한다.
정족산성 안 전등사 옆으로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정족산 사고가 있다.
사고(史庫)는 내사고(內史庫)인 춘추관과 외사고(外史庫)인 충주, 성주, 전주등 세곳이었으나 전주사고를 제외하고 모두 임진왜란때 불타 없어졌다. 임란이후 전주사고본은 춘추관과 강화 마니산, 오대산, 태백산, 묘향산의 다섯 군데에 나누어 보관하게 된다. 1660년 정족산성안에 마니산사고가 옮겨지고 정족산 사고로 불리게 된다. 병인양요때의 양헌수 장군이 아니었으면 이 또한 어찌 되었을지..
광성보의 성루인 안해루와 용두 돈대가 있는 소나무 숲길을 따라 가면 '신미양요순국무명용사비'와 신미양요때 광성보 전투에서 순국한 어재연형제의 쌍충비각을 만날 수 있다. 조금 더 가면 신미양요때 전사한 이름없는 조선군을 7곳에 나누어 합장한 묘지인 신미순의총이 있다. 손돌목 돈대는 어재연 장군이 끝까지 싸우다 전사한 곳이다.
1871년 미국은 1866년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빌미로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를 차례대로 점령한다. 미군의 전사자는 단 3명이었고 조선군 전사자는 350명이었다. 광성보를 초토화 시킨 미군은 어재연 장군의 수(帥) 기를 전리품으로 빼앗아 가는데 136년 만인 2007년에 다시 돌아와 강화역사박물관에 전시 되어있다.
용두돈대는 공사중이라 아쉽게도 들어가 볼 수 없었다.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광성보 특히 손돌목 돈대에는 조선군 시체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고 한다.
광성 돈대에는 대포, 소포, 블랑기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블랑기는 당시 프랑스 군이 쓰던 것이라고 한다.
강화 탐방을 모두 마칠 무렵 버드내 도서관 수강생중 한분이 신미양요와 운요호 사건 당시 포탄 맞은 소나무를 보고 가자고 하셔서 초지진의 벽과 노송에 남아 있는 포탄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치열했던 역사의 현장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수강생 분들의 모습에서 우리 역사를 사랑하고 배우려는 열정을 보았다.
첫댓글 샘~잘 읽었어요~^^저도 강화도에 가고 싶네요~
앞으로 산성탐방 자주 하실 것 같은데요~~ 함께 걸었던 정족산성의 바람이 다시 그리워지네요^^
용두돈대에서 바라보는 염하도 멋진데 아쉬우셨겠어요.ㅠㅠ
전 정족산성을 걸어보는걸 못했는데, 다음에 각각 못해본거 도전하러 같이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