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오빠가 환갑을 맞이한다.
결혼 34년차인 오빠 내외 사이에 세 명의 자녀가 있다.
오 빠의 회갑축하와 이제 막 군 전역을 한 막내아들을 위해
분가한 큰아들 가족을 뺀 네 식구가 미국 여행을 왔다.
오빠는 사업차 호주 중국 베트남 등 여러 나라를 다녔지만 미국 방문은 처음이고,
또 미국에서 두 여동생이 어찌 사는지 궁금하기도 했던 것이다.
인천 공항에서 시카고를 거쳐 텍사스 주의 샌안토니오에 사는 막냇동생 집에 먼저 들러
그곳에서 사흘을 지내며 근처에 있는 스페인 선교사들의 유적지를 구경했다고 한다.
그리고 철도를 이용해 다시 시카고까지 이틀간의 긴 여행을 한 후,
시카고에서부터 자동차를 빌려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위스콘신 주의 수도인 밀워키에서 일박.
거기서부터 열 시간 운전해서 우리 호텔에 도착한 건 토요일 오후 여섯시였다.
떨어져서 산 시간과 거리에 비례하여 반가움이 더했다.
서로 인사 나누고 기념사진도 찍고 준비해 둔 삼겹살과 상추쌈으로 저녁을 먹었다.
소주가 없는 것이 서운했지만 아쉬운 대로 맥주와 와인으로 건배했다.
이 주말은 비수기인 겨울이라도 단 한 번 있는 얼음낚시 대회라서 정신없이 바쁜 주말이었다.
두 방으로 나누어 여행 짐을 풀고 여독도 풀 겸 아이들은 수영장에서 놀며 올케언니와 나는 그동안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 날 아침 호텔 조식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오빠 부부는 쉬시라 하고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손님들 방을 청소하는데 조카들이 와서
쓰레기도 치워 주고 침대 시트를 가는 일도 도와주며 일손을 거들었다.
점심으로는 돼지 갈비에 밥을 먹고 어느 정도 바쁜 호텔 일을 마무리한 후에 살림집을 보고 싶다고 해서 이십 분 거리에 있는 집으로 함께 갔다.
집 앞에서 기념사진을 또 찍고 안으로 들어가 위 아래층을 둘러본 후에
닭백숙으로 저녁을 먹고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월요일에는 근처의 할인 아울렛 매장으로 오빠 가족들은 하루 종일 쇼핑을 가고,
나는 어제 못다 한 빨래와 방 청소를 마쳤다.
화요일 아침, 미시시피 강 발원지가 있는 북쪽 도시 버미지(Bemidji)에 가 보자고 해서 함께 나섰다.
아침에는 안개가 짙어 조금 걱정했는데 다행히 곧 걷히고 해가 떠서 겨울 날씨치고는 매우 따뜻했다.
올라가는 도중에 호숫가에 있는 등대(Walker bay Light house)가 매우 운치 있어
멈추어 서서 구경도 하고 사진도 여러장 찍었다.
꽁꽁 얼어붙은 호수 위를 걸어 다니며 겨울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이곳만의 경치를 보는 즐거움도 있었다.
버미지 시에는 미국 개척시대 전설 속의 인물인 빨강 체크무늬 셔츠의 벌목꾼 폴 버니언(Paul Banyan) 과
그의 친구 파란 암소 베이브(Babe)의 동상이 호수를 배경으로 서 있었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동화책으로 또 디즈니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 옆에는 기우제를 지내는 춤추는 인디언의 동상도 우스꽝스러운 형상을 하고 서 있었다.
동상 앞에서 같은 자세를 취한 채 몇 장의 사진을 찍고
목적지인 미시시피 발원지(Head waters)를 찾아 다시 차에 올랐다.
아이타스카(Itasca state Park) 공원에 도착해 안내소에서 설명을 듣고
방명록에 이름도 적은 후 미네소타의 특색을 보여주는 기념엽서도 여러 장 골라 샀다.
오 분 여 거리를 걸어가자 작은 호수와 돌로 된 징검다리가 있었고
발원지라고 쓰인 나무 기둥이 서 있었다.
미네소타의 호수들이 전부 얼어 있었는데 여기는 징검다리 사이로 물에 흐르는 것이
역시 강의 발원지가 맞는 것 같았다.
돌이 미끄러우니 조심하라고 쓰여 있었지만 우리는 번갈아가면서 징검다리에 올라 사진을 찍었다.
작은 것들을 빼고도 천이백 평이 넘는 큰 호수가 만 개나 되는 미네소타 주.
돌아오는 길에도 좌우로 이어지는 여러 개의 호수와 붉은 노을,
자작나무와 소나무의 아름다운 조화를 보며 이렇게 멋진 자연을 주신 조물주 신께 감사를 드렸다.
귀가 시간이 늦어져서 그냥 중식 뷔페를 먹기로 하고 자주 가는 중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후
십 분 거리에 있는 동네 카지노에 들러 한 시간만 놀다 거기로 했다.
조카들은 카지노 방문이 처음이라며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고 돌아다녔고
돈을 딴 사람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모두 즐거웠다고 웃었다.
마지막 날 우리는 미네소타 주립 대학 덜루스 분교에 다니는 아들도 만나보고
세계에서 제일 큰 민물 호수인 수피리어(Lake Superior) 호를 보기 위해 덜루스(Duluth) 시로 향했다.
가는 길에 전에 운영하던 호텔도 잠깐 들여다보고 수피리어 호수를 제대로 보기 위해
2번 국도로 건너갔다가 53번 다리를 타고 다시 덜루스로 돌아왔다.
대학 기숙사 앞에서 아들을 만나 함께 일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배가 지나면 다리를 들어 올리는 리프트 브릿지(lift bridge)가 있는 카날 파크(Canal Park)에 갔다.
공원 안에는 수피리어 호수 안으로 창처럼 길게 모래톱이 있고
그 끝에는 작은 비행장이 있어 경비행기 관광을 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 모래톱 좌우로 한쪽은 호수가 얼어 빙판이었고
반대쪽은 모래사장에 바다처럼 끝이 안 보이는 물이라는 것이다.
바람은 매서웠지만 당장에라도 물에 뛰어들고픈 충동을 느꼈다.
아들을 기숙사에 내려주고 돌아오는 길은 한참 비가 오다가 진눈깨비 내리고
이어서 앞이 안 보일 정도로 함박눈이 쏟아져 운전하는 데 애를 먹었다.
마지막 식사는 밖에서 불 피워 바베큐 스테이크를 먹기로 했었는데
날씨가 도와주지 않아 포기하고 전날 삶아 놓았던 돼지 수육과 새우젓 구운 마늘과 상추로 저녁을 먹고
오랜만에 노래방 기계를 가동해 흥겨운 가무의 시간을 가졌다.
날이 따뜻해 눈이 거의 다 녹아버려서 눈썰매장도 스노모빌 탈 계획도 어긋나고
얼음낚시도 못 했지만 그래도 다들 편안하고 즐거웠다고 하니 다행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먼 길 가는 사람들에게 김치찌게로 밥을 챙겨 주고
‘어서 가시라’ 등 떠밀며 잠깐 나도 따라가고픈 유혹을 느꼈다.
다음에 한국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고 차에 오른 그들이 무사히 귀국하기를 기도했다.
오후에 그동안 찍었던 사진들을 컴퓨터에 정리하며 아름다운 추억을 저장한다.
삶은 이렇게 아름다운 추억들이 모여서 한 권의 멋진 책이 되는 게 아닐까?
환갑은 이제 백세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명이 짧던 시기에는 60년을 살면 잘 살았으니 크게 잔치를 열어 모두가 장수를 축하해 주었다.
이제는 내 인생은 환갑부터라며 대부분 사람들이 여행을 하는 추세이다.
몇 년 뒤 나도 환갑이 되면 어디로 여행을 할까 미리 생각해보고 하나둘씩 준비도 해 놓아야겠다.
인생이라는 자서전 후반부의 멋진 시작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