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지난 번 악천후로 산행이 취소 되었던 영덕 팔각산을 향해 참으로 멀고도 먼 여정이 시작된다.
청송 주왕산과 포항 내연산 사이에 수줍은 섬색시처럼 숨어 있는 영덕 팔각산과 옥계 계곡은 작심하고 그곳을 찾기 전엔
일반인들은 쉽게 접근을 하기가 어려운 오지 중의 오지라고 할 수 있다. 여자도
인물이 쫴꿈 반반하면 이놈 저놈 손을 타기가 쉽지만 엎어 놓은 된장사발은 잘만 뒤집으면 왕건이를 건질 수가 있듯이
이곳 팔각산 또한 마찬가지다.
수원 I.C에서 경부 영동 중앙고속도로를 내리 달려 서안동 I.C를 벗어 나선 안동 시내를 경유하여 영덕으로 향하는 34번 국도를
타고 영덕 목전에서 우회전하여 또 다시 69번 지방도를 타고 한참을 달려 가니 옥계 계곡이 시작되는 곳에 어랍쇼 검문소가 설치
되어 있다. 통과를 할려면 돈을 내야만 된다는 것이다.
여기가 아프카니스탄도 아니고 파키스탄도 아닌데 백주에 통행세를?
아마도 그 지역 주민자치단체에서 워낙이 몰려 드는 행락객들의 쓰레기 처리와 주변 청소비 명목으로 일정 금액을 징수 하는 건
일면은 이해가 가는 점도 있지만 멀쩡한 도로를 막는 건 정말 아니다.
쓰레기로 몸살을 앓거나 취객들의 문란한 행동이 문제가 되면 지방자치단체에서 행정적으로 지도를 하거나 세금으로 쓰레기를
수거 하여야 함이 마땅한 일이다. 초장부터 써억 유쾌한 기분이 증말 아니다.
뜨으발 나도 집에 돌아 가선 팔뚝에 문신 쫌 하고 분당 불곡산 입구에서 입장료나 받아 보까? 그리고 참고로 국도는
오늘 우리가 달린 34번 국도처럼 그 숫자가 짝수인 경우엔 동서로 연결된 도로이고 서울에서 부산으로 잇는 1번 국도처럼
홀수인 경우엔 남북 즉 세로로 연결되는 도로이다.
오늘은 일본 북알프스 원정 산행 여파로 다수의 정예 멤버들이 불참을 한 탓에 인원이 다소 단촐한지라 B 팀으로 빠져야 할
내가 어느 넘에게 등 떼 밀리듯이 A 팀 본진으로 합류하는 한마디로 장고 끝에 악수를 두게 되는 불상사를 저질르게 된다.
다소 가파르긴 하나 그리 멀지 않은 제1봉에 당도하여 가뭄과 폭염으로 싯뻘겋게 달아 오른 암릉길에 한발을 내 딛기 무섭게
대가리가 후끈 거리면서 온 몸이 열기에 휩 쌓이기 시작한다. 난생 처음으로 다리가 후들 거리기 시작하니 불안하기 그지 없다.
나이를 먹어서 인가? 무려 섭씨 36도라는 살인적인 날씨 탓인가? 이도 아니면 과도한 성생활이 문제인가?
이룬 잔대가리를 굴릴 여유도 없다. 절라라 덥다는 생각 외엔 아무런 생각도 없이
눈물 콧물 훔치며 죽을 힘을 다해 팔각산 정상에 오르긴 올랐지만 산행 지도를 보니 하산길이 지금 온 길의 물경 세배나 된다.
정상에서 영덕 일대를 둘러 보며 잠시 이곳 영덕에 관한 썰레발이 한토막을 풀고서야 다음장으로 넘어가 보시져 무어.
영덕군 축산면에서 태여 나신 항일 의병장 신 돌석(申 乭石) 장군은 일제 낭인들의 칼에 국모이신 명성 황후가 처참히 시해되자
만 18세의 어린 나이로 거병을 하게 된다.
영릉 의진이란 유격대를 지휘하여 울진 백암산, 영양 일월산,봉화,청송을 비롯한 태백산 줄기를 근거지로 3년 8개월 간 왜놈들의
관공서 등을 급습하면서 혁혁한 무공을 세우는데 적을 치고 빠지는 재주가 신출 귀몰하여 일명 태백산 호랑이라 불리우며
왜놈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셨던 분인데 부끄럽게도 우리 어릴 적만 해도 어른들의 입을 통해 구전되는 설화 속의 인물 정도로만
알았다.
성씨로 보아선 고려 태조 왕건과 함께 대구 팔공산 전투에서 견훤의 군대와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신 신 숭겸 장군의 후예
인듯 하나 신 돌석 장군의 이름자를 보면 알듯이 이미 신분은 평민으로 전락한 상태 였었다.
그래서 글줄 꽤나 읽었던 당시 대부분의 유생 출신 의병장들과는 달리 평민 신분인 신 장군의 업적은 정사에서 다소 거리가 멀게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만문 다행으로
1971년에 신 장군님을 국립묘지 유공자 묘역에 정중히 안장을 하였으며 탄생지인 이곳 영덕군 축산면에 기념관을 건립하여
많은 이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 하였다고 한다.
패망한 나라의 변변치 않은 신분의 애띈 젊은이가 세계 최강의 군대인 일병을 상대로 열악한 무기를 들고 천혜의 지형 지물을
이용하여 게릴라전을 벌이며 우리의 민족혼을 만방에 떨친 영릉 의진의 항일 유격전을 생각 하노라면 절로 고개가 숙여 지고
그러한 분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어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지 않았겠습니까?
현대에서 게릴라전의 대가는 중국의 마오 쪄뚱(모택동) 이라고 하는데 이 마오의 게릴라 전법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16자 전법이다. 적진 아퇴 즉 적이 쳐 들어 오면 물러 나고 적이 피로하여 쉬면 공격하고 적이 도망가면 따라 가서 때려 잡는
다는 아주 단순한 열 여섯 글자이지만 그 의미는 참으로 심장하다. 그리고 이 보다 더 유명한 말이 바로
민중과 군대는 물과 고기의 관계란 것이다. 군대란 고기는
물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는 것이다. 신 돌석 장군님도 이렇듯
선친을 비롯한 여러 향리 인사들의 지극한 도움을 받았을 뿐 아니라 민중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행동을 일절 하지 않았음을
쉽게 알 수가 있다.
영덕 일대 조선 민중들의 애국 정신이란 물이 바탕이 되어 신 돌석 장군이란 항일 의병 고기가 진면목을 발휘하게 되었지
않았겠습니까. 우리 모두
영덕군과 신 돌석 장군님을 향해 받들어 총!
그리고 여담이지만 농민의 아들로 태여나 막강한 장 개석의 군대를 대만으로 몰아 내고 중국을 공산화한 모 택동이가 신화적인
존재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유야 어찌 되었던 항미 원조란 명분으로 6.25 전쟁에 30만이란 대군을 파병하여 우리 강산을 유린한,
대한민국의 입장에선 결코 탐탁치가 않은 인물이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했던 어떤 작자는
중국에 국빈으로 공식 방문을 하여선 중국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곤 모 택동 이라고 서슴 없이 대답을
한다. 중국 쨩꼴라들의 띄웅하면서 참으로 의아해 하는 표정들이 지금도 눈 앞에 서언하다. 팔뚝에
모 택동이 문신을 하고 권투 시합 도중 경기가 잘 풀리지 않는다고 상대방의 귀를 물어 뜯은 타이슨이란 괴물과 진배 없는
인물이다. 대통령에 취임하기 바쁘게
미국에는 사진 찍으로는 아니 가겠다며, 반미 쪼끔 하면 어떠냐고 이죽 거리던 이 인물의 자식들은 참으로 묘하게 지끔도
철천지 원쑤의 나라? 미국에서 호의 호식하고 있다.
김 정일 장군 만세를 외치는 대한민국의 얼치기 빨갱이놈들은 구래도 상당히 약은 놈들이라 가라고 가라고 사정을 해도
북한땅에 가서는 절대로 살지를 않는다. 이런
인간들은 필히 영덕 축산면에 있는 신 돌석 장군님 기념관을 참배하고 엎드려 석고 대죄를 해야만 한다.
기왕지사 6.25 전쟁 이야기가 나온 김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영덕 남정면에 있는 장사리 라는 해변에서 벌어 졌던
육군 유격부대의 상륙작전에 관한 전설적인 무용담과 피 맺힌 사투를 돌아 보지 않을 수가 없겠습니다.
인천 상륙작전을 지휘 했던 맥아더 미 육군원수의 할아버지는 남북 전쟁 당시 기억이 확실치는 않지만 나이가 채 서른이 되지
않아서 얼마나 용맹하였는지 규정에도 없는(연령 미달) 육군 대령 계급장을 달았으며 아버님께서는 필리핀 총독을 역임하였기
때문에 검은 썬그래스 그리고 옥수수 파이프와 함께 맥아더 원수하면 떠 오르는, 꽃수술이 모자 옆으로 삥 돌아 백힌 군모는
놀랍게도 필리핀군 장군 모자라고 한다.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해서 모든 사람들이 불가능하다는 인천 상륙작전을 기획한 맥아더 장군은 적을 교란하기 위해서 양동 작전을
펼치게 된다.
중국의 성동 격서란 계책이다.
동쪽에서 요란하게 소리를 내곤 서쪽으로 쳐 들어 가기 위해서, 이곳 장사리에 인천 상륙작전이 감행되기 전날인 1950년
9월 14일에 장사 상륙작전이 감행되는데 참으로 눈물 겨운 처참한 전투가 벌어 진다.
육군본부에서 작전 명령을 하달 받은 이 명흠 대위는 기초적인 군사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772명의 학도 의용군 유격대를
LST (landing ship tank)라고 불리우는 상륙 주정에 싣고는 변변한 호위 병력도 없이 태풍이 몰아 치는 칠흑 같은 밤중에 장사에
도달하지만 악천후로 상륙 주정이 좌초하게 된다.
원래 상륙 작전이란 공격 개시 전에 항공기의 공습과 함대의 함포로 일대를 유린하고서야 연막탄을 터 뜨리며 돌격을
감행 하는 것이 기본인데 우리의 학도병 유격대는 애초부터 인천 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한 교란 작전이였기 때문에 말 그대로
총알받이의 무모한 돌격전 이였다.
배가 좌초되자 결사대를 조직하여 로푸를 해안으로 연결하곤 적의 기총소사와 로켓포탄이 빗발치는 해안으로, 생존하신 영웅들의
말씀에 의하면 달랄 장총 한자루에 미싯가루 몇 봉지를 주머니에 넣은 우리의 호국 영웅 학도 유격대는 로푸에 몸을 의지하곤
부나방 처럼 수류탄을 투척하며 적의 토치카로 뛰어 든다.
6일간의 치열한 전투로 포항 안강과 기계 쪽으로 남하 하던 괴뢰군의 보급선과 퇴로를 끊었을 뿐 아니라 적의 상당한 주력 부대를
인천이 아닌 이곳 동해안에 발을 묶는 혁혁한 전공을 세운다. 물론
아군의 피해 또한 엄청날 수 밖에 없었으리다.
군번도 없이 교모를 쓰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꽃 다운 청춘을 산화하신 민족의 영웅들이 고이 잠 들어 계시는 곳이 바로 이곳
영덕 남정면 장사리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셔요. 파도 소리 사이 사이로
마지막 피를 가슴으로 토해 내며 어머님이 보고 싶다며 절규하시는 그 어린 영혼들의 피 맺힌 함성이 들리지 않습니까?
참고로 우리들이 D-day, H-hour 라고 하는 말은 바로 상륙작전에서 나온 용어라고 합니다. 어떤 곳으로
어느 날 어느 시에 상륙작전을 감행하는지는 극비 중의 극비 사항으로 참으로 중요 했다는 겁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여러 벗님들! 잠시 마우스를 손에서 놓고 자리에서 일어 서십시요.
장사 상륙작전의 호국 영웅들께 경례 필승 빰빠라 빠빠 빰 빰빠빠 바로 그리고 오분간 묵념............................................ 글구
혹시 벗님들 중에서 군대 아이 가따온 X들이나( 당근 똥방위 출신이나 공익 요원 지랄하는 넘도 포함됨) 여성분들은
거수 경례를 할 자격이 없으니 엎드려서 큰절을 해도 무방 합니다.
동해안에는 꼬실래기 지살 지 뜯어 먹기란 말이 있다.
서해안의 망둥이를 동해안에선 꼬실래기 라고 하는데 동해안 꼬실래기는 갯펄에서 사는 말뚝 망둥어와 달리 크기가 그리 크지
않아 회로 먹으면 맛이 기가 막힌데 낚시를 할 적에 미끼를 달리 준비를 할 필요가 없다.
꼬실래기 살점을 뜯어서 낚시 바늘에 매 달면 간단히 해결 된다. 자기 살 자기 뜯어 먹는 어종이 또 하나 더 있다.
늦여름에서 초가을 쯔음이면 동해안 해변으로 고등어떼가 몰려 든다.
야간에 방파제에서 고등어살 미끼를 끼운 낚시 바늘을 수면 아래 1~2 미터 정도로 내려 보내고 잠시 기다리면 야광찌가 물 아래로
급하게 내려 간다.
낚싯대를 힘차게 채서 올리면 낚싯대에서 씨잉 씨잉 하는 피아노줄 울리는 소리가 나면서 낚싯대 끝이 물속으로 빨려 들어 가는데
이때의 손맛은 가히 환상적이다. 그 순간만은 왕후 장상 자리와 바꾸지 않는다는 것인데
고등어는 생물로 먹거나 아니면 자반 간꼬등어로 염장을 해서 먹는데 오리지널 간꼬등어는 생물 고등어로 팔다가 선도가 떨어 질
즈음에 소금간을 하는 것이 아니다. 배에서 잡아 올림과 동시에 소금간 즉 배에서 한다고 하여 뱃간을 하여야 제 맛이 난다.
이런 간고등어를 영덕 강구항에서 구입을 해선 지게에 지고 고개를 넘고 또 넘어 하루 쥔종일을 걸으면 지게에서 소금물이 줄 줄
흘러 내리면서 제대로 염장이 되기 시작하는데 이런 고등어가 내 고향 안동땅에 도착을 하면 요즘 마트에서 많이 볼 수가 있는
안동 간고등어가 되는데 안동에서는 사투리로 고디이 고디이 라고 한다.
안동 고등어 상인들의 말에 의하면 자반 고등어를 오래 저장할 경우에는 반드시 장독에 켜켜이 쌓아서 저장을 한다고 하는데
이런 염장법을 독간 이라고 한다.
안동 상인들은 간꼬등어를 척 보면 뱃간을 한 고등어인지 선도가 떨어진 고등어에 소금을 뿌린 건지 금새 안다고 합니다.
연탄불에 누릿 누릿하게 구운 간꼬등어를 뽀얀 쌀밥에 얹어서 한술 뜨면 그 맛이 바로 이 맛 입니다. 곁 드려서
경북 의성 육쪽 마늘을 토종 날된장에 푸욱 찍어서 와삭 거리며 씹어 보셔요. 맘 좋은 예팬네 만나서
뽀사시한 사발 그릇에 발로 꾹꾹 밟아 담은 탁배기 한잔 쭈우욱 꿀꺽 꿀꺼덕 거릴 수가 있스문 이 건희가 부럽겠습니껴?
김 태희 남푠이 부럽겠습니껴?
급경사길을 하염 없이 내려 오고 또 내려 오노라니 마침내 계곡 물소리가 들린다. 심한 가뭄으로
비록 수질과 수량은 그렇고 그렇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여유가 없다.
후미진 곳으로 돌아 가서 옷을 할라당 벗곤 염치 없이 짝붕알탕을 감행 하는데 빌어 먹을... "재수 없는 넘은 시냇가에서 놀다가
피래미 헌티 머어 빨린다는" 말로만 들어 보던 그 말이 현실로 대두 된다.
아줌마 피래미 새끼 피래미 가리지 않고 새카맣게 달려 드는데... 피로가 일거에 풀리기 시작 한다.
태국 발 맛싸지는 쨉도 아닙니다. 흐 흐.
팔각산은 예상외로 허술한 이정표 덕분에 우왕 좌왕 하면서 여러 번이나 헷갈렸는데 가뭄으로 거의 바닥이 난 성골 계곡을 마침내
내려 오고 나니 장관이 벌어 진다.
현수교 형태의 철제 출렁다리가 설치 되어 있는데 너무도 거창하고 부티나게 보인다. 한마디로 말하면
산 보다 호랭이가 더 큰 경우이다. 일년에 이 출렁다리로 과연 몇 사람이나 다닌다고 이리도 외진 곳에 이다지도 많은 돈을
쳐 발랐는지 참으로 의아 하다.
애물단지로 전락한 경기도 용인의 경전철과 유사한 경우라 아니할 수 없다.
자치단체는 이룬 다리에 쌩돈 갖다 붇고 주민들은 엄한 외지 사람들에게 쌩돈 뜯어 내고 참으로 장한 일을 하고들 있다.
늦은 시간 분당엘 도착하니 이곳 분당엔 오늘 잠깐 동안이지만 물폭탄이 터졌다고 합니다.
오늘 증말 덥고 먼 길 이였지만 이런 기회가 아니면 다시 가 볼 수가 없을 것 같아 용기를 내어 따라 나섰는데 막상 집으로
돌아 오니 더위와 피로는 싸악 가시고 뿌듯한 마음 뿐입니다. 어려운 기획을 해 주신
강 대장님께 다시 한번 더 감사를 드립니다.
글구 다음 산행은 십이폭포가 유명한 금산 성치산이 예정 되어 있다고 합니다.
폭포가 웅장하니 자연 큰 물고기가 살겠지요. 이번엔 쏘가리 헌티 머어 함 화끈하게 빨려 보까요? 캬 캬.
분당 탄천변의 가마우지 돌삐 인사 드립니다.
|
첫댓글 푸하하하~~~ 암튼 돌삐님의 산행이야기는 멋드러집니다.
그러니 아니 읽을수가 있나요~ ^^ 더운 날 고생하셨습니다.^^
더위로 힘든산행이었지만 풍광 하나는 가히 끝내주는 산이었습니다.
멀고 멀어서 가기 어려운 영덕..팔각산
웬만한 산꾼아니면 그 이름조차도 생소한 산입니다.
옥계계곡과 함께 이지방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그 산을 찾은 날은ㄴ
하필이면 기온이 가장 높았던 날이라 하더군요.
더위에 고생은 했지만 산은 맘에 쏙 들었습니다.
지금쯤은 시원한 에어컨 앞에 업무에 열중하시겠지요?
계곡에 풍덩 하신 그 모습은 마치 물속에 앉아있는 회색곰..캭
다음주 폭포산행때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