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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숙님
3. 17.
불법사드철거 김천평화촛불 930회
매화와 산수유가 꽃망울을 터뜨렸기에 옷을 좀 얇게 입었더니 춥다. 아직은 두텁고 긴 겉옷을 입어야 하나 보다.
평화광장에서 묵묵히 따뜻한 간식을 준비해 주는 함수연 님이 생떡국(미역 찹쌀수제비)을 나누어 주었다. 혼자 하기 힘든데도 추위에 따뜻한 걸 먹어야 덜 서글프다고 매번 뭔가를 준비해 온다.
오늘의 사회자는 김종희 사드배치반대 김천시민대책위원회 기획팀장.
늘 그렇듯 묵념과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오늘 집회가 시작되었다.
전쟁을 반대한다! 평화에 살자! 투쟁!
대구에서 온 평통사(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회원 정수경 님과 이기자 님의 인사가 있었다.
공통으로 “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감사하다. 참석은 못해도 든든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감사의 마음은 우리가 더 크다. 대구에서 여기 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더구나 어두운 밤에...
늘 힘찬 발언으로 힘을 주는 백창욱 예수살기 목사님.
구한말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매천 황현 선생의 매천야록이라는 책을 읽은 소감, KBS 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 2022년 국방부가 발간한 국방백서를 열린 군대를 위한 시민연대에서 읽고 분석하고 해설한 책을 냈는데 그 책을 읽은 감회, 그런 것들을 함께 묶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매천야록은 1894년 갑오년부터 경술국치 1910년까지의 역사를 매천 선생이 쭉 기록한 겁니다.
1894년에 아주 중요한 사건이 일어나죠. 동학혁명, 농민항쟁이 일어납니다. 그때 고종 정부가 제어를 못해서 청나라에 원병을 요청합니다.
청나라가 얼씨구나 하고 들어오는데 그전에 청나라와 일본이 천진조약(텐진조약)이라는 걸 맺은게 있습니다. 두 나라 중에 한 나라가 조선에 들어오면 다른 나라도 자동으로 들어온다 이런 조항이 있습니다.
그래서 청나라가 들어오자 일제도 얼씨구나 하고 들어옵니다.
조선에 외국 군대가 들어오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폐단을 일으키는가 하는 거를 거기서 엿볼 수 있습니다.
알다시피 청나라는 아산에 진주하죠. 그런데 일제는 바로 서울로 들어옵니다. 서울로 들어오는데 마침 그때가 야간이어서 숭례문이 닫혀 있었대요. 그런데 그냥 숭례문을 쳐부수고 남산 꼭대기에 대포를 설치합니다. 그다음에 서울에서 수원 인천까지 진영을 설치해서 도로를 완전히 통제합니다.
여러분 우리나라 군대가 그런 일을 하면 아무 상관없어요. 작전에 의해서 방어를 위해서 국방을 위해서 안보를 위해서 그런 일을 하는 건 아무 상관이 없죠.
근데 일제가 조선 땅에 들어와서 서울에서 수원, 또 인천까지 그냥 이렇게 곳곳마다 진영을 설치해서 무력을 과시하는 거죠.
정말 우리로서는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죠. 자긍심에 심각하게 손상을 입는 일 아닙니까? 남의 나라에 외국 군대가 들어와서 자기들 임의대로 이제 막 하고 싶은 대로 막 하는 거잖아요.
그 뒤에 어떻게 됐습니까? 전쟁이 일어나죠, 우리 땅에서.
1905년 을사조약 때 이등박문의 행동거지가 아주 자세히 나오는데 경복궁을 완전히 군대로 포위를 합니다. 무력으로 그냥 하는 거죠. 그다음에 거의 폭력적으로 고종에게 압박을 합니다. 이 조약을 수용하라고.
글자 그대로 표현하면 '왕은 벌벌 떨고 떨면서 어찌할 줄을 몰랐다' 이런 표현이 있어요.
근데 그렇게 되기에는 사실 고종이 자초한 측면이 많습니다. 매천 선생이 그 옛날 말을 인용하는데 '나라는 반드시 스스로 친 후에 남이 치느니라 '- 이미 내부에서 무너지는 징조가 있다는 거죠. 그것이 기반이 돼서 외적이 그 나라를 친다 그런 옛날 말을 인용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고종이 모든 벼슬을 돈받고 팔았어요.
동학 혁명도 그 최초의 발단은 고부군수 조병갑의 탐학에 전봉준을 위시한 농민들이 들고 일어난 거잖아요. 조병갑이 왜 그렇게 농민들을 수탈했을까? 그 사람도 왕에게 갖다 바친 뇌물이 있거든요. 벼슬을 사기 위해서 갖다 바친 돈이 있으니까 그 본전을 뽑아야 했던 거예요.
그게 조병갑뿐만이 아니라 모든 벼슬을 산 사람들이 그런 거죠. 한 고을에 1년에 무려 군수가 5번이 바뀌어요. 그러니까 한 번 바뀔 때마다 (돈으로) 팔고 사잖아요. 그게 재미가 들려갖고 다섯 번씩이나 그렇게 군수가 바뀌는 일이 통상적으로 일어날 정도로, 군주가 관료들을 통해서 나라를 운영하는데 그 관료들이 다 돈으로 벼슬을 사고 하는 거니까 그 체제를 완벽하게 무너뜨린 거죠.
군대가 제대로 양성이 됩니까? 임오군란 대표적인 거잖아요. 명성왕후가 그냥 충청도까지 도망을 치지 않습니까?
제가 정말로 놀란 게 그 왕이 정말 단 한 번이라도 조선의 백성들 안위를 생각한 적이 있었을까 싶을 만큼 완전히 자기 중심으로 나라를 끌고 갑니다.
그거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게 경술 국치에서 나라를 팔아넘기는 그런 협상(?)이 간단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굉장한 압력 속에서 밀고 당기는 게 있는데 마지막까지 고종이 지키려고 했던 게 뭔지 아십니까? 왕실의 보존과 자기 지위 유지였어요. 우리가 역사에서 알다시피 그래서 조선 왕실이 유지가 됐습니까? 다 그냥 무너져버리지 않습니까?
이등박문이 1909년 10월 26일 암살 당하잖아요. 안중근 의사한테. 그렇게 나라가 일제에게 넘어가는 그런 일들이 차곡차곡 쌓였을 때 그 당시 조선 민중이 느꼈을 그 분노 원한 그 한 맺힘이 얼마나 컸겠어요? 그런 것들을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통해서 표현한 거죠.
제가 왜 고구려 거란 전쟁에서 참 배운 게 많았다고 얘기를 하냐면 그때 왕이 현종이잖아요. 거란이 고려 땅에 들어와가지고 가는 곳마다 유린을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왕과 신하가 거기에 대응하는 대책을 수립하는데 그때마다 왕이 빠뜨리지 않고 꼭 하는 말이 있어요.
"그러면 백성이 어떻게 되느냐? 백성은 어떻게 됐느냐? 그렇게 했을 때 백성이 어떻게 되느냐?"
끝까지 백성의 안위를 물어보는 말을 하더라고요.
제가 거기에 감동 먹었어요. 지도자들이 민중의 재산과 생명을 보존하는 일에 그렇게 마음을 쏟는 사람이 별로 없잖아요.
그런데 현종이 그 대사에서 그 얘기를 빠뜨리지 않고 "왕실의 안위, 나의 일상은 어떻게 되느냐? 왕실의 처지는 어떻게 되느냐?" 이런 말은 안 해요.
이런 말은 안 하고 "백성은 어떻게 되느냐? 백성의 희생이 얼마큼 되느냐? 백성의 살림살이가 보호되겠느냐?"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서 정말 외국 군대를 그렇게 쉽게 좀 와달라고 말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하는 거를 조선이 일제에게 넘어가는 그런 과정에서 느꼈습니다.
그렇게 군사작전을 하고 대궐을 감싸고 거기서 이제 그들이 원하는 조약들을 다 강제로 체결을 하게 하고 이등박문이 막 그 신하들한테 돈을 풀어요. 그 돈을 받아서 부자가 된 신하들이 또 아주 많습니다.
이렇게 민중은 말 그대로 도탄에 빠지는 그런 나락으로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그런 거에 아랑곳 없이 왕이나 신하들은 그냥 자기 잘 먹고 잘 사는 그런 거에만 그냥 골몰해가지고 가는 그 놀라운, 그 참담한 환경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구한말 이런 역사는 우리가 알잖아요. 근데 제가 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왕이 상당 부분 그런 것들을 자초했다. 매관매직을 통해서 그다음에 흥청망청, 고종과 민비도 정말 연산군 못지않게 흥청망청했어요.
그렇게 나라가 경각이 기울어서 왔다갔다하는 위태로운 상태인데 매일 밤마다 그렇게 연회 잔치를 벌였어요. 그런데 여러분 이게 그냥 100여 년 전 구한 말로 끝났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제가 2022년 국방백서를 봤는데 다 그냥 말의 성찬입니다. 한국 국군의 군사력이 세계 6위인 것을 막 포장해 놨지만 제가 심히 안타까웠던 건 그 모든 국방부의 a부터 z까지 그것이 다 미군의 수중 하에 돌아간다는 거예요. 그런 상황에서 세계 6위라는 군사력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작전 계획도 그렇고, 전시작전통제권도 그렇고 하나부터 열까지 다 미군의 통제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그 모든 대한민국의 국군 현황을 봤을 때 이게 도대체 구한말이랑 다른 게 뭐지 하는 비통한 심정이 드는 거예요.
우리 스스로 무엇을 행할 수 있는 그런 의식이 안 돼 있는 것 같아요.
미군을 통해서만 군사력이 쓸모가 있는 것처럼 그렇게 비춰지는 오늘의 현실이 결국 우리에게 이렇게 사드 고통까지 안겨준 거잖아요.("맞아요.")
근데 더 놀라운 건 민주당에서 비례연합 대표를 뽑는데 처음에 뽑힌 사람들이 ("반미 활동했다고 잘렸어"하는 소리가 들렸다.) 재의결 요구를 받았잖아요. 그 이유가 뭔지 아시죠?
반미단체에 소속됐고 또 사드 반대 집회에 참가하는 단체 소속이라는 거예요.
세상에 저는 그거 보고 정말 깜짝 놀랐어요. 여러분 이게 가능한 일입니까?
국민의힘이 그러면 으례이 그렇다고 할 수가 있는데 민주당조차도 '반미. 사드 반대' 이런 거를 터부시해가지고 그런 거를 빌미로 해서 그 대표를 거부했다는 자체가 저는 마음이 좀 꽉 막힌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동학혁명 일으킨 농민들이 그랬거든요. 매천 이 사람도 아직 인식이 안 돼갖고 그들을 폭도니 역도니 공비 비자를 쓰는 그런 비적이니 이런 표현을 썼거든요.
그런데 지금 우리가 그렇게 표현 안 하잖아요. 이들이야말로 조선의 자존심을 지킨 정말 그런 빛 된 민중으로 우리가 존중을 하잖아요.
지금 현실이 이렇습니다. 우리의 사드 투쟁조차도 이렇게 기득권 세력에게 비토 되는 그런 처지에 와 있어요. 여러분들 다 반국가 활동을 하고 있어요 지금.(일동 폭소) 그거 지금 각오하고 여기 계신 겁니까?
역사가 우리 편입니다. ("맞습니다.")동학혁명에 나선 그 민중들 그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이렇게 그 정신을 이어받는다고 외치고 있잖아요.
그 동학혁명이 없었으면, 그 당시에는 그렇게 무참히 쓰러졌지만 그들이 없었으면, 지금 우리가 쪽팔려서 얘기를 못하잖아요.("맞습니다." )그 뒤에 일어난 그 무수한 우리의 주권과 자존을 찾기 위한 그런 투쟁이 오늘까지 이어졌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이 자리를 버티는 거 아니겠습니까?
비록 돌이켜보기 싫은 그런 참담한 역사가 있지만, 그 속에서도 빛나는 그런 민중들의 저항과 항쟁이 있었기 때문에, 그 정신의 맥이 오늘 우리를 붙들어주고 있다고 봅니다.
여러분 세태에 흔들리지 맙시다. 현실에 우리가 휩쓸리지 맙시다.
우리의 뜻을 올곧게 세워서 우리가 원하는 자주의 세상, 주권 확립의 세상을 맞이할 때까지 함께 흔들리지 말고 갑시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오 히로부미를 저격하면서 했던 말이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이토오의 작동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 이토오를 저격한다고 했거든요.
우리가 비록 여기 목사님의 말에 의하면 반국가 활동을 하고 있지만, 우리가 하는 반국가 활동이 평화로 가는 길이고, 이 땅에 핵전쟁을 불러올지도 모르는 미국의 작동을 멈추기 위한 평화의 외침이기 때문에 자부심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혼자 해봤습니다." 하는 김종희 팀장의 사회.
식구와 다름 없는 사랑스런 지민주 님.
경산에 일이 있어서 왔다가 참새가 방앗간을 또 못 지나간다고 이렇게 (기차표가 없어서) 입석으로 두 번 갈아타서 왔다고 한다.
음향이 제대로 안되어 조정하는 동안 음악 없이 '사노라면'을 불렀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일이란 것은 고 정유엽군 4주기 추모제에 와달라고 해서였단다.
https://www.newsmin.co.kr/news/100465/
코로나19 의료공백 사망 정유엽 4주기···“슬픈 기억에 머물러 있지 않을 것” | 뉴스민 대구경북독립언론
“마스크를 사기 위해 비가 오더라도 약국 앞에서 순번을 기다려야 했고, 흔하디 흔한 감기 진료도 쉽게 볼 수 없던 그 기억이 벌써 4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누군가에겐 잠깐의 해프닝으로 기억 남을 수 있지만 누군가에겐 잊을 수 없는 슬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4년이 지나면서 스스로가 바뀌었다. 슬픈 기억으로만 머물러 있지 않고, 앞으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먼저 나서야겠다. […]
http://www.newsmin.co.kr
"엄마 아파, 아프다 엄마." 이게 마지막 말이었대요. 그 친구가요. 고등학생인데 건강했대요. 걸어 들어갔거든요.
그런데 아무도 사과도 하지 않고 책임지는 사람이 없어 아버님이 사과를 받으려고 경산에서 국회까지 걸어서 도보 행진을 4년 전에 하셨고(김천의료원까지 오셨다.), 또 많은 시민들이 그 아버님과 어머님에게 응원의 박수를 부탁했던 그런 일이 있었고, 그래서 오늘 행사를 하러 왔는데 너무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건강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권리,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권리 누구한테나 다 있잖아요.
아무한테도 물어보지도 않고 사드 막 들어오게 하고 시민들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사과도 하지 않는 이런 정부와 뭐가 다를 것인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마음을 갖고 올라가는 길에 김천을 들러야 되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고요.
나의 동지
마지막 노래 '세상에 지지 말라'는 노래는 핸드폰 손전등을 켜서 흔들며 같이 했다.
"세상이 만만하지 않지만 우리도 만만하지 않잖아요. 우리는 우리를 지킬 수 있죠. 세상에 지지 말아요." 인사하고 떠나는 지민주 님.
박수규 소성리 평화지킴이
"현수막 걸어놨네요. 선거가 이제 한 달도 안 남았어요. 근데 기대가 되고 가슴이 울렁거리고 뭐 그러신가요? 없어요. 내만 그런 거 아니죠? 내가 이상한 거 아니죠?" 하면서 여기 오면 동지들도 같은 심정이라니까 좀 위로가 된다 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사실은 투표가 아니고, 내 표 하나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혁명이에요. 그런데 그게 안 되니까 참 갑갑한 거죠.
주역에 있는 49번째 괘가 '택화혁'괘인데요, 여기에 혁이라는 건 바로 혁명이라는 이야기거든요. 위에 있는 게 못택자, 물이 담겨 있는 그릇이거든요. 그런데 밑에는 불괘가 있어요. 그러니까 불로 위에 있는 물을 계속 쪼이는 거는 민중들의 삶이 물처럼 졸아드는 거라 졸아들다가 졸아들다가 더 이상 못 견디면 그때는 혁명이 일어나야 되는 때죠.
이게 택화혁괘입니다. 택화혁 괘를 싹 뒤집으면 화풍정이라는 거가 나와요. 태극기에 나오는 불괘가 위에 있어요. 밑에는 긴 짝대기 2개 밑에 끊어진 짝대기 이렇게 해서 바람괘예요.
혁명이 일어났으면 권력이 바뀌잖아요. 그 다음에 해야될 과제는 이 사회를 완전히, 이 솥에 고기를 삶듯이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도록 삶아버려야 되는 겁니다.
그냥 혁명이 일어나서 권력만 바뀐 상태로 가면 그 권력은 오래 못 가죠. 사회 자체가 바뀌어야 되는 거예요. 그게 바뀌는 게 바로 이 화풍정괘인데 여기서 '정'자는 솥 정자예요.
박근혜를 탄핵시키고 문재인이 대통령 되고 판문점 회담하고 할때까지 정말 진짜 한번 살아보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문재인이 평양에서 15만 군중 앞에서 연설을 할 때는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이때까지가 정치가 우리한테 주는 감동이 이런 거구나 생각이 들었고 그 외에는 다 별로였거든요.
결국은 뒤집어 엎어야 뭐가 바뀌는데 뒤집어 엎을 힘은 없는 게 우리 상황이잖아요. 그래서 늘 택화혁괘에 대한 동경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괘는 오늘 제가 말씀드린 이 화풍정괘입니다. 솥 안에 뭔가를 넣고 쌀도 넣고 콩도 넣고 뭐 이렇게 넣어서 거기에서 푹 삶으면 쌀알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콩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거기에 들어간 고기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다 섞이잖아요. 다 섞여서 한 덩어리가 되는 거잖아요. 국이 되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간에 이게 화풍정괘입니다.
이렇게 만들려고 하면 거기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나무가 되어야 되는 거죠. 불 속에서 함께 활활 타오르는 불쏘시개가 되어야 이런 변화가 일어나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에 모인 우리들이 다 한 사람 한 사람 그런 불쏘시개로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동지 여러분들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저도 이 자리에 하나의 불쏘시개 역할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런 약속을 드리겠습니다.
소성리가 낳은 우주적 가수 정진석 님.
"세상이 망해도 농부는 밭을 간다. 사드가 들어와도 주민은 반대한다.
내가 보람을 느끼는 그 일을 하고 있는 동안은 우리는 행복하다. 농부가 밭을 갈면서 행복하듯이 사드 반대 운동을 하면서 우리는 행복하다."
그런 의미에서 '행복의 나라로'를 불렀다.
1분 남았는데 앵콜 요청이 쏟아졌다. 그래서 기~인 노래 '이땅이 니땅이가? 내땅이지!'를 불렀다.
춥고 스산하지만, 옆에 있는 동지가 있어 '위로'가 되는 저녁, 오늘도 그렇게 촛불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