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예술일반에 대한 진리성의 부정(미학사, 이론과실천 p33)'이라는 서술에 대한 의견
201550369
박광철
1. 서론
교재 제2장 플라톤 편에서 지은이(먼로 C.비어슬리)는 ‘[공화국] 끝부분의 (호머를 포함하여) 비극시인에 대한 저 간결하고 신랄한 고발에서 플라톤은 시인의 참지식(episteme)에의 권리주장을 부인하는 것으로 보인다.(p32)’는 의견을 내고 있다. 그러면서 ‘아마도 미메시스는 하나의 기술이 아니라 “진지하게 수행되지 않는 일종의 유희의 형식”이다([공화국] p602).’는 인용을 통해 플라톤의 사상은 ‘예술이 그 자체의 목표와 방법을 지닌 특별한 종류의 기술이기는커녕 사이비 기술임이 밝혀진 것(p33)’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는 ‘플라톤은 때때로 예술가에게 그 이상의 것을 부여하기도 한다. 어떤 종류의 예술에서는 미 그 자체가 ’정확성(correctness)'에 의존하는데...... 즉 모든 예술이 틀렸거나 가공적인 것이 아니라 몇몇 작품은 참되고 몇몇은 참되지 않다고 말해야만 할 것이다.(p41)’는 서술과 다른 입장을 읽을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2. 플라톤의 좋은 예술과 나쁜 예술의 구별 의미
‘플라톤의 예술비판의 시작은 당시 유형하던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의 서사시와 아테나이의 비극을 비롯하여 당시에 현존하며 대중의 인기를 끌던 모든 예술들이 그곳에서 제시된 다양한 논변들에 의거하여 비판되어야 할 ‘나쁜 예술들’임을 분명히 하는 것을 주된 취지로 삼는다.’(플라톤에 있어서 미메시스와 예술, 권혁성, 미학 제 69집 2012.3)는 입장을 발판으로 미학사 교재에서 플라톤의 예술에 대한 진리성에 대한 판단에서 플라톤의 이중적 태도로 보고 있는 예술에 대한 긍정과 부정적 애매한 태도로 규정하는 지은이의 입장과는 다르게 플라톤은 도덕적 관점, 사회 통치적 관점에서 예술이 좋을 수 있는 조건 즉, ‘예술이 정당할 때, 선을 행하고 사회의 건전함과 질서에 이바지하는 그것의 힘은 거기에 잠재하고 있는 해악만큼이나 큰 것이다.(p47)’의 언급을 살펴볼 때 예술의 진리성의 의심보다는 사회적 책임이 막중하고 긍정적인 영향만큼이나 부정적인 파괴력이 큰 예술이 사회적 관리 하에 있어야 한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 플라톤의 예술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당시 많은 그리스인들에게서 커다란 숭앙을 받던 호메로스를 사례로 들면서 시인의 인식능력과 활동에 대해 말하는데’ 이를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입을 통해 이상 국가에서 시가 교육이 가져와야 할 효과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는데, 그것은 젊은이들에게 어린 시절부터 아름답고 그렇지 못한 것들을 알아보는 민감성을 길러주어 그들에게 나중에 철학 교육에서 아름답고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한 논변이 주어질 때 그들이 그것에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라고 한다.(국가 401e-402a, 위 논문 재인용)’는 것처럼 대중 영합하는 예술을 경계하고 이상사회를 만들기 위한 예술의 지위와 역할을 규정하는 선으로 보여 진다. 다른 시각으로 보 면 플라톤의 예술에 대한 이러한 경계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예술에 대한 경계를 하고 있다. 예술이 절대 미 혹은 이데아를 실재하는 모습으로 가장 가깝게 보여준다는 사실에서 출발하여 예술의 힘을 통제하지 않으면 이데아의 본모습이 사회에 구현되기보다 왜곡될 수 있음을 경계한 입장이지 예술이 결코 진리 즉 이데아에로의 접근을 막는다는 입장은 아닌 것이다. 이를 지은이는 일부 인정하는 입장에서 ‘진정 진리를 알고 있는 시인이라면 그는 시인 이상이다. 그는 철학자인 것이다.(P41)’라고 쓰고 있다. 이제 이러한 흐름으로 볼 때 플라톤은 예술의 진리성을 부정하기보다 이상사회에 걸맞게 복무할 수 있는 예술은 ‘시민의 삶과 교육에 있어 그토록 중요한 것(P47)’이라는 분명한 인식의 기준에 서있음을 알 수 있다.
4. 결 론
플라톤에게 예술은 이데아의 참 모습을 보여주는 가장 영향력 있는 수단이자 많은 대중에게서 명성을 얻으려는 무지한 예술가에 의해 이루어지는 나쁜 영향을 주는 예술의 위험성을 강조한 [공화국]에서의 예술에 대한 태도를 직역한 지은이의 해석에 반론하고자 한다. 플라톤은 예술이야말로 비가시적인 비인지적인 이데아를 찾아가는 가장 유용한 수단으로 인식하면서 동시에 그 파괴력이 가지는 힘 때문에 이것이 왜곡 되었을 때, 비 교육적, 비 인륜적 영향의 편리한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정의하고 있다. 이를 정리하면 플라톤은 예술일반에 대한 진리성의 부정을 한 것이 아니라 일부 예술, 특히 플라톤 당시의 대중예술의 일부 중 아주 강한 영향력이 있는 예술들을 평가절하 하는 것으로 판단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