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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부끄러운 죽음에 내어주심
육신(肉身:인간생애 육체)의 아버지는, 자기의 아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갖는다. 아버지는 자신의 어린 아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생애의 위험[생로병사의 인생 길]들을 생각하고 떤다. 그는 자기의 사랑하는 자식을 사단[고통과 죽음]의 권세에서 보호해 주고, 시험과 투쟁에서 벗어나도록 붙잡아 주길 원한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셔서, 더욱 심한투쟁과 더욱 무서운 위기를 당하게 하신 것은, 우리 어린자녀들을 위하여 인생의 길이 안전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사랑은 여기 있”다. 기이 하도다, 하늘이여! 놀랍도다, 땅이여!
(DA 49 . 2 )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죄악세상]을 내려다보시고, 영광의 왕 그리스도께서 힘없는 아이로, ‘베들레헴’에 태어나실 시간이 온 것을 보셨다. 영원 전부터 계시며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며, 자신의 영광의 행렬(行列:아버지의 반열)로 온 하늘을 채우시는 분께서, 이 세상에 있는 것으로 유일(唯一:오직 한곳)한[이 지구에만 있는 불순종으로 들어온 반역의 죄] 증오의 대상으로 죄를 바라 보셨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무죄하고 거룩한 그분의 독생자가, 자신 위에 세상의 죄를 취하실[치욕과 고난의 십자가를 지시고, 그 죄를 담당하시고 속죄제물이 될]것에, 동의[완전한 순종]하셨다.(2SAT 111.3)
예수께서는 그분의 탄생의 오묘(奧妙:심오하고 묘한 의미)를 설명하려고 시도(試圖:계획)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바다를 건너시던 것에 관한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던 것처럼 그분이, 하늘에서 내려오신 것에 대한 질문에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그분의 생애의 특징을 이룬 이적에, 주의를 환기(喚起:관심을 일으킴)시키지 않으셨다. 그분은 자원하여, 스스로 명성[권위]을 거절하고 종의 모양을 취하셨다. 그러나 그분의 말씀과 업적은, 그분의 품성을 드러냈다. 거룩한 빛에 마음을 연 자는 모두 그분이, “아버지의 독생자”로서 “은혜와 진리가 충만 하”(요1:14)심을 깨달았다.(DA 387.2)
[마지막]심판에서, 우리가 크고 흰 보좌 주위에 설 때, 하나님의 율법을 위한 어떤 증거가 제시될 것인가? ‘갈바리’ 십자가의 희생 제물로 하여금, 하나님은 그분의 율법을 변경시킬 수 없으시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며, 그가 이 계명을 지키는 지를 보기 위해 다른 시련을 주시고자 그분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요3:16)는 것을 증명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운명[영생영멸]을 영원히 결정하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만일 우리가 여기에서 순종하는 자녀가 될 수 있다면, 우리는 거기에서도 순종하는 자녀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분은 율법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을, 하늘로 데리고 가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은 하늘에서, 다스리기 위한 율법을 가지고 계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도 율법을 지키라고 강제하지 않으실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영혼은 자신들의 길 위에 떨어지는 빛에 순종하면, 구원받을 수 있도록 뽑힐 것이기 때문이다.(1SAT 236.2) 하나님께서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고 독생자를 주심에 있어서, 우리를 위해 아주 많은 것을 행하셨다. 우리는 소망의 백성들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 앞에 놓인 소망을, 의지하도록 할 수 있다.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요 14:12).
그리고 그분은, “나는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켰다”고 말씀하신다. ‘바리새인’들은 제자들이 밀밭을 지나가면서 이삭을 잘라먹었을 때, “이 사람이 안식일을 범하였다”고 말했다. 그들은 그분을 비난하고 나서 무엇을 하려고 했는가? 그들은 그분을 대적하여, 거짓증거를 얻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분을, 안식일을 깨뜨리는 분으로 정죄하였다. 그러나 그분은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는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한다.”(마9:13 참조),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죄 없는 것을, 정죄하지 않았을 것이다.(1SAT 242.1) 지금, 이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말씀하시는 분은 누구인가?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분은 누구신가? 그분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다. 그분은 누구신가? 우리 구주이시다. 하늘에서의 높은 지휘권을 제쳐두고 하늘궁전을 떠나셔서, 그분의 신성에, 인성을 옷 입으신 분이시다. 그분은 이 세상에 오셔서 인성이 인성을 잡을 수 있게 하시고, 그분의 신령한 팔이 무한하신 분의 보좌를 잡고 계신 한편, 그분의 긴 인간의 팔이 인류를 품을 수 있게 하셨다.(1SAT 250.2) 우리 앞에있는 가능성과 능력을 생각하자. 우리는 하늘의 모든 능력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그리스도를 주셨을 때, 그분은 모든 하늘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분의 신령한 손으로는 무한하신 분의 보좌를 붙드시는 한편, 구주의 긴 인간의 팔은 인류를 안으신다.
우리는 죄 되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시며 그분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유리한 근거 위에 설 수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 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3:16). 영생을 잃는 모든 남자나 여자들에게는 핑계가 없다. 모든 이는 하늘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사람도 강제하여 그분이 만드신 섭리를 받도록 하지는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도 강제로 순종하게 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아무도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이상으로, 시험받는 자리에 놓지 않으신다.(1SAT 321.3) 오,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주께서는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사랑하는 독생자를 부끄러운 죽음을 죽도록 내어 주셨으며, 그분을 통해, 세상이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주께서는, 여기 낮은 곳에 있는 인간가족들에게 바로 행하는 데 있어서, 자신을 가르칠 수 있는 특권을 주셨으며, 그들이 위에 있는 무죄한 가족들과 하나가 되며 주의 왕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기회와 특권들이 지나치는 것을 보고 있으며, 그럼에도 더욱 더 강퍅해지고 덜 예민해지는 심령들이 있습니다. 오, 우리는 채찍질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뇌의 아픔을 당하셔서 모든 영혼이 하나님의 가족과 연합할 수 있도록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주께 기도합니다. 오! 나의 구주여, 이 심령의 강퍅함이 깨어지도록, 주께 기도합니다. 영혼을 녹이고 굴복시킬 수 있도록, 주께 기도합니다.(1SAT 379.1)
그리고 그분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한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왜냐하면, 이 세상에 대한 염려가 마음의 모든 능력을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애정은 마음이 있는 곳에 집중되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향해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애정이 위에 있는 것들에 집중되도록, 그분께서 그분의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셨음에도 불구하고, 타락한 인류를 위해 모든 희생이 치러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이 우리 각자 앞에 쓰러지지 않을 불멸의 면류관을, 놓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그분이 우리에게. 그리스도와 천사들이 우리를 만날 장소를 약속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신실한 자들을 기다리는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덧없는 쾌락을 위하여, 세상은 이 영원한 유익이 되는 모든 것을 버렸다.(2SAT 48.4)
하나님의 복된 말씀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다. 우리는 타락했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죄 가운데 머무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유리한 곳에 서 있다. 하늘의 주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3:16).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얼마나 고귀한 소망을 가지고 있는가!(2SAT 174.4) 하나님께서는, 영광과 덕을 위해 우리를 부르셨다. 우리는 세상과 닮을 권리— 옷 입고 말하고 사는 데 있어서 세상과 같이 행할— 가 전혀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도달해야 할 높은 표준을 주셨다. 사람이 이 표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셨다.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께서는 무한한 희생을 치르셨다.
그분은 자신의 왕관과 왕복을 벗어 놓으시고, 신성에 인성을 옷 입으셔서 이 세상에 오셨으며, 남녀들에게 생명과 구원의 율법을 가르치게 하셨다. 그들은 이것을 영광의 왕국에서, 영생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가지고 나아가야 했다. 사단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의 그릇된 것을 입증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높은 자리를 떠나셔서, 스스로 인성을 취하시고 인성이 사단의 시험을, 견딜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해 타락한 인류의, 머리에 서시고자 이 땅에 오셨다. 그분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 시험 당하는 모든 면에서의, 시험으로 공격을 당하시기 위해 그리고 시험 당하는 모든 자들의, 구원자가 되는 법을 알기 위해 인성의 머리가 되셨다.
그분은 이 지상에서 하나님의 의로운 표준과, 어떻게 조화되는 삶을 사는 지 그 문제를 해결하셨다. 그분은 우리의 본성을 쓰시고 사단을 이기고, 승리를 얻으시며 하나님의 의의 표준에 진실하셨다. 그분은 우리와 한 결 같이 모든 면에, 시험을 당하셨으나 죄는 없으셨다.(2SAT 194.3) 우리 하늘 아버지는, 인간들과 산 연관을 맺고 계신다. 우주에 우리가 존경해야 할 한 분이 계시다면, 그분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다. 왜냐하면, 그분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 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3:16).(2SAT 230.2)
아, 우리가 우리의 구속을 위해 치러진, 무한한 값을 보다 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면! ‘바울’은 이렇게 선언한다. “너희는 값으로 산 것이 되었다.”(고전6:20). 이것은 사실이며 치러진 값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독생자의 생명의 값이다. 우리 모두 이것을 깊이 생각해 보자.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초청을 거절할 수도 있다. 우리는 그분의, 용서와 평안을 주시는 것을 무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사실만은 남는다. 즉 우리 모두는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며, 심지어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의 고귀한 피로 산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을 깊이 생각하라”(히12:3).(2SAT 251.4)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짐과, 책임을 지는 것으로부터 자제해야 한다. 이 짐은 생명력을 파괴하고, 쉼을 주지 못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것을 행하도록, 어떤 것도 주시지 않았다. 우리는 그분을 받아 들여야 하며, 그분을 믿어야 하고,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났다는 종교적인 체험을 보여 줌으로, 그분의 품성을 드러내야 한다. 그 때에 우리는 건강한 심장의 박동을 갖게 될 것이며,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 로서”(요1:13) 낳게 될 것이다.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임으로써, 우리에게 오게 될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2SAT 275.2)
심령이 하나님 앞에 바른 상태에 있으면, 우리는 자아를 부정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독생자 예수- 사람을 만드시는 데 있어서, 아버지와 동등하신 분- [창조주]를 우리에게 주시지 않았는가? 그대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무엇을 하는가? 그대는 자신의 이해력을 배양하고 있는가? 그대는 현명하고 주의 깊은 식생활로, 자신의 육체적인 힘을 보존하고 있는가? 술과 또한 이와 같은 종류를, 멀리 하도록 하자. 우리는 의무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하기 위해, 단순한 식사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살피심 가운데 살고 있으며, 견뎌야 할 시험이 있고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잘 배양되어 육과 영과 혼의 성화에 대한 완전한 신뢰로써, 하늘에 다다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2SAT 317.1)
그분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직전, 제자들을 따로 불러 그분과 함께 기도하도록 하셨으며, 그분과 그들이 견딜 수 있는 힘을 받도록 하셨다. 바로 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분의 고뇌 가운데, 그분 손안에 있는 잔이 흔들렸다. 그분은, 이것을 마시고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고 말 것인가? 그분은, 세상의 죄들을 자신이 취하실 것인가? 잃어버린 인류의 재난이 그분 앞에 일어났으며, 그분은 말씀하셨다.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 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마26:42). 그리고 한 힘센 천사[‘가브리엘’천사장:“성령”]가 영광 중에 나타나 그분 곁에 와서, 그분을 강하게 하고 두려운 시련을 통과하도록 하였다.(2SAT 318.3)
그분은 무덤에 놓여 졌으며, 큰 돌이 무덤 문 앞에 굴려졌다. 그러나 그분이 풀려나실 날이 오자, 하늘로부터 한 힘 있는 천사가 와서, 그 돌을 마치 조약돌 옮기듯이 굴려 버렸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나오셔서 ‘요셉’의 빌린 무덤 위로 선언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요11:25). 그분은 ‘마리아’에게 자신을 나타내셨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의 마음에 기쁨을 주셨다.(2SAT 318.4)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이 아들이 실제적인 경험을 통해, 인간의 필요를 배우도록 하셨다. 신성과 결합된 인성을 통해 그분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신령한 본성을 신뢰하도록 하셨다.(2SAT 318.5)
우리가 세상과 하나가 되고 동시에 그리스도와 하나가 될 수 없기 때문에, 대표하는 것에서 돌아서지 않도록 하자. 우리는 이런 방법으로 그리스도께 나온다면, 하늘을 보장받을 수 없다.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복종을 하도록 하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분으로부터 떨어지도록 이끄는, 사람들과 교제하는 데서 우리가 물러서기를 바라신다. 그분은, 그분의 백성들이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는데 있어서, 확고함을 유지하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그들이 희생으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기를 원하시고, 신앙의 기쁨을 나눔과 함께 고통스런 분야도 감당하기 위해, 하나님께 자신들을 성별하기를 바라신다. 만일 그들이 이것을 할 수 없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도성 문에 들어갈 수 없으며, 생명나무를 가질 수 있는 권리도 가질 수 없다.(2SAT 319.1)
영생은 하나님의 독생자의 값으로,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언제나 기억하도록 하자. 이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그분의 사업을 위해, 우리가 어떤 희생을 할 수 있는지 알기 위해 연구하지 않으며, 앞으로의 위대함을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발전시키는 데, 우리가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지 않겠는가? 인성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붙잡을 수 있다. 우리가 분별 있는 믿음으로 붙잡으면, 이것은 우리를 위한 것이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께서 자아를 부인하셨듯이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 어떤 뜻인지 배우도록 하자. 그분은 아버지와 함께 그분이 가지신 모든 것을 제쳐 두시고, 신성에 인성을 옷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남녀들로 하여금,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를 가르치셨다.
우리는 시험의 때에 살고 있다. 우리는 이 면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편에 서도록 결심하지 않겠는가? (2SAT 319.2) 그대는 하나님의 도성의 문이 그대에게 자유롭게 열리고, 그대의 자녀들과 함께 환영받기를 원하지 않는가? 그대는 영광의 면류관이, 그대의 이마에 덮어지는 것을 원치 않는가? 그대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측량할 수 있는 생명을 원하지 않는가? 그러나 우리가 이런 영원한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이생에서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과, 죄를 극복하는 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야 한다. 오늘 하나님께서 여기를 축복하실 것이다.(2SAT 319.3) 우리는 각자의 구원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합력하기 위해 얼마나 기꺼이 희생할 것인가?
우리는 깨우침을 받고 또 다른 사람들을 깨우치기 위해, 무엇을 기꺼이 해야 할 것인가? 사단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고통을 줄 수 있는 수단을 만들어 놓기 위해, 모든 불의의 속임수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 모두 참된 경건의 단순성을 계발하도록 하자. 우리 인간의 본성으로 신령한 것을 취하여 그 본성이, 우리 생명과 품성과 말과 사업을 꼴 짓도록 하자. 그 때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곧바로 나아갈 수 있다.(2SAT 319.4) 예수님의 제자들까지라도 그들이 지닌 이기심과, 세속적인 욕망 때문에 그분께서 그들에게 나타내고자 하신, 영적영광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제자들이 구주의 품성과 사명을 충분히 깨달은 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에게로 승천하시고, 신자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신 후의 일이었다.
성령의 침례를 받은 후에야 그들은 자신들이, 영광의 주께서 임재하신 바로 그 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들의 기억에 되살아 날 때에, 그들의 마음은 열려서 예언을 이해하고 그분께서 행하신 이적을 깨달을 수 있었다. 경이로운 그분의 생애가 저희 앞에 지나갔으며, 그들은 꿈에서 깬 사람들과 같았다. 그들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는 말씀을 깨달았다. 그리스도께서는 타락한 ‘아담’의 자녀들을 구원하려고, 실제로 하나님을 떠나[영광과 권위를 접으시고] 죄 많은 세상에 오셨다. 제자들은 이 모든 사실을 깨닫기 전보다, 이제 자신들이 더욱 하찮게 생각되었다.
그들은 그분의 말씀과 하신 일을 되풀이해 말하는 데, 결코 싫증을 느끼지 않았다. 어렴풋이 이해했던 그분의 교훈들이 이제 새로운 계시처럼, 제자들에게 똑똑히 제시되었다. 성경은 제자들에게 새로운 책이 되었다.(DA 506.4) 그리스도께서 보배로운 진주가 되신다는 사실과, 이 보배를 얻을 수 있는 특권이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묵상해야 할 가장 절실한 주제이다. 이 값진 진주가 얼마나 값비싼 것인지를, 사람에게 보여 주시는 이는 성령이시다. 성령의 능력이 역사하고 있는 이 시대는 특별한 의미에 있어서, 하늘의 선물을 찾아 구해야 할 시대이다. 그리스도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들었으나 그들의 마음이, 거짓 교리로 어두워져서 그들은 ‘갈릴리’ 태생의 겸손하신 선생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주임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에, 그분의 중보적[구속사적 중재자] 왕국에 즉위(卽位:등극)하신 사실을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증거 하셨다. 즉, 오순절에 성령을 부어주셨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증인들은 부활하신 구주의 능력을 증거 하였다. 하늘의 빛이 그리스도의 원수들에게, 속임을 당한 자들의 어두운 마음을 비치었다. 그들은 이제 그리스도가, “이스라엘로 회개하게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행5:31)신 바 되신 분임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그가 하늘의 영광에 둘러싸여 있는 것과 불순종하던 생애를 버리고, 돌아온 모든 사람들에게 주실 무한한 보화가 그의 손에 있는 것을 보았다. 사도들이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을 드러냈을 때, 하루에 삼천 명이 회개하고 믿었다.
그들은 죄 많고 누추한 자신의 상태를 보게 되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친구와 구주가 되심을 보았다. 성령의 권능이 사람들에게 임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는 높임을 받으시고 영화롭게 되셨다. 믿음으로 신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이 멸망당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하여 치욕과 고난과 죽음을 당하신 분임을 알게 되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계시되었을 때에, 그들은 그분의 권능과 위엄을 깨닫게 되고 믿음으로 그에게 손을 내밀면서, “내가 믿습니다.”라고 말했다. (COL 118.3) 나를 믿는 그대의 믿음은, 나와 아버지 하나님을 향한 가깝고도 효성어린 애정을, 경험할 수 있게 그대를 이끌 것이다.
나의 아버지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사랑은, 그대의 마음과 영혼을 묶는 금 사슬이다. 내 이름이 그대에게 소중하며 그대가 나를 경외하고, 사랑한다는 사실을 아버지 하나님께 나타내라. 그러면 그분께서 고결한 가족으로 그대를 영입할 것이며, 그대는 하나님의 자녀로 독생자와 함께 상속자가 될 것이다. (BLJ 14.3) 영원하신 하나님의 독생자께서는 그분의 말씀과 실제적인 모본으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분명한 귀감(歸勘:손수 본보기의 품성을) 남기셨다. 그분은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우리를 말씀으로 교육하셨고, 그분의 행위[거룩함의 행실]로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지 보여 주셨다.(BLJ 40.2)
무한하신 하나님의 독생자께서는, 그분의 말씀과 실제적인 모본으로 우리가 따라야 할, 분명한 모본을 남겨 주셨다. 예수님은 그분의 말씀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우리를 교육하셨고 그분의 행동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어떻게 순종할 수 있는지 보여 주셨다.(BLJ 49.5) 하나님의 독생자의 생명을 값으로 치른 영혼들은, 그들을 위해 지불된 엄청난 속량에 의해, 그 가치가 계산되어야 한다. 빈부와 흑백을 막론하고 그리스도께서, 인간영혼에 부여하신 가치대로 대접받아야 한다.(MM 210.3) 우리는 마음 내키는 대로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표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값으로 산 바 되었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녀로서, 우리는 순종적인 자녀가 되어, 그분의 독생자를 통해 나타난 그분의 성품의 원칙들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MM 256.1)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들은 장엄하고 영원한 장면들을 바라볼 수 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시고, 흑암의 권세를 전복시킨 신비스런 투쟁에 관여하신 것을 볼 수 있다. 무한하신 하나님의 위치에서 독생자로서의 굴욕을 당하시기로 찬성했다는 사실은, 얼마나 놀라우며 얼마나 믿기 어려운 일인가!(LHU 120.3) 하늘 아버지와 독생자 그리스도께서 하늘 총회에서, 인간의 구원에 꼭 필요하다고 여기신 것들이 분명하게 성경에 제시되었다.
구원에 대한 무한한 진리들은 너무나도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으므로, 진리를 알려고 하는 자들은 누구나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거룩한 계시들은 인간에게 의를 교훈하기 위하여, 주신 것이므로 저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저희 동료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LHU 170.2) 우리들은 불완전한 생애에서 복음의 신앙으로, 회개하여 돌이킬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남에게 잘 보이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만약 저들이 계속적으로 그리스도의 생애를 바라본다면, 저희의 마음과 정신이 그리스도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다.
그 때에 저들은 아무런 인위적인 노력이 없이도, 자연히 빛을 내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선을 과시하기를 요구하지 않으신다. 독생자의 은사를 힘입어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내적생애가, 천국의 원칙으로 물들게 되도록 섭리하셨다. 내적생애의 변화야말로, 그리스도를 세상에 나타내는 유일한 섭리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중생의 체험을 맛볼 때 저희의 정직성, 성실성, 확고부동한 원칙이 틀림없이 중생의 경험을 증거 할 것이다. 아, 나에게 주신 말씀들이 얼마나 귀중한가! 풍성한 은혜를 통하여 주신, 온유함이 얼마나 놀라운가!(LHU 171.6)
우리에게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신뢰심으로, 영감을 받기 위하여 간구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있다. [옛날 이 땅의 각 국가간에] 세상의 궁전에서 왕이 자신의 진실성을, [상대 나라와]사람들에게 보증하기 위하여, 가장 믿음직한 서약을 할 경우에 그가 약속을 이행 할 때, 도로 찾는 조건으로, 자기 자식을 볼모[인질][조약, 약속이행의 확신을 위해 왕족의 왕자나 귀중한 귀중품을 보증물]로 내놓는다.
하늘 아버지의 진실성에 대한 서약(誓約:맹세의 진정하신 약속)이, 어떠한가 보라! 하나님께서 하늘 총회의 불변성을 보증하시기 위하여, 그분의 독생자께서 인성을 쓰시고 이 세상에 오시도록 허락하셨으며, 이 지상에서의 짧은 기간만이 아니라, 하늘 법정에서도 인성으로 남아 있게 하여, 하나님의 진실성에 대한, 영원한 서약의 표로 삼으셨다.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의 부요하심이, 얼마나 심오한가!(LHU 3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