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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보살 가피도 그저 깨달음으로 가는 길일뿐”
2016-02-23 안직수 기자
불보살 영험이야기
이수경 편저/ 운주사
이수경 편저/ 운주사
법당에서 백일기도에 들어간
우룡스님이 어느 날 낙엽처럼
법당 밖 향나무 아래 떨어졌다
함께 있던 신도들이
놀라서 뛰어 나갔는데
스님은 하나도 다친 곳이 없었다
그날 밤 흰 수염의 노인이
우룡스님의 꿈에 나타났다
‘시끄러워 잘 수가 없다
소원이 뭐길래 시끄럽게 구느냐’
‘제일의 강사가 되고자 합니다’
‘알았으니 그만 떠들어라’
강화 보문사는 관음기도도량으로 유명하다. 이곳에서는 나한기도 영험을 체험한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오고 있다. 사진은 인도에서 건너온 성인들(나한석)이 어부들의 꿈에 나타나 바다에서 건져 올려 모셔졌다는 강화도 보문사 석실.
강화 보문사는 관음기도도량으로 유명하다. 이곳에서는 나한기도 영험을 체험한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오고 있다. 사진은 인도에서 건너온 성인들(나한석)이 어부들의 꿈에 나타나 바다에서 건져 올려 모셔졌다는 강화도 보문사 석실.
불교는 신비주의를 배격한다. 절대자나 신의 도움이 아니라, 스스로 정진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불자, 스님들은 간절한 기도를 통해 영험을 경험해 왔다. 종교로서 불교라는 측면에서 신이한 일을 무조건 배격할 수 많은 없다. 오히려 불보살의 가피나 이적은 견고한 신심을 불러일으키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칠순이 가까운 나이의 이수경 씨는 20살 무렵, 부친으로부터 부처님이 깨달은 이야기를 듣고 발심, <금강경>을 공부하며 불국사 조실을 역임한 월산스님으로부터 참선을 지도받았다. 이수경 씨가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에 전래되는, 그리고 근대에 있었던 불보살의 이적을 엮어 <불보살 영험이야기>를 펴냈다. 전래동화를 읽는 듯하면서, 편안한 문체로 쓰여진 책이다.
부처님 당시 석가족이 집단 출가한 이후 불교문중에서 가장 많은 출가수행자를 배출한 가문이 일타스님의 집안이다. 일타스님은 친가와 외가를 합해 43명을 사문의 길로 이끌었다. 그 배경에는 외증조할머니인 이 평등월 보살의 기도와 방광의 이적이 있었다고 한다.
평등월 보살은 광산 김씨 집안으로 시집을 가 삼형제를 낳고 유복하게 살았다. 60살이 넘는 해, 남편이 빚보증을 섰다가 재산을 날리고, 그 충격으로 세상을 등졌다. 아들들은 남은 재산을 처분해 솜틀기계 한 대를 사서 공주 시내에 솜틀공장을 차렸는데, 장사가 잘돼 삼형제가 3교대로 24시간 기계를 돌렸다.
“한날 비구니 스님이 탁발을 나왔는데 평등월 보살이 ‘어쩜 저리도 잘 생겼을까. 마치 관세음보살님 같다’는 생각을 하며 쌀을 가득 퍼서 걸망에 부어드렸어요. 그리고 아들 자랑, 며느리 자랑, 손자 자랑을 한참 늘어놨어요. 이윽고 묵묵히 듣고 있던 비구니 스님이 입을 열었습니다. ‘할머니. 그렇게 세상 일에 애착이 많고 집착이 많으면 죽어서 이 세상을 떠날 때는 떠나고 싶지 않아 괴롭고 또 죽어서 좋은 곳으로도 가지 못하게 됩니다. 구렁이로 태어납니다.’”
그 말을 들은 평등월 보살은 ‘아이쿠!’ 했다. 그리고 스님에게 구렁이를 면할 방법을 알려달라며 한사코 매달렸다. 하지만 비구니 스님은 “이미 늦었다”며 버티는 것이 아닌가. 결국 평등월 보살의 간청에 못이겨 한마디 전했다. “오늘부터 이 집을 나가지 말고 나무아미타불만 부르십시오. 지극정성으로 불러야 합니다.”
말을 마친 스님은 벽에다 삿갓과 바랑을 걸어 놓더니 슬며시 방문을 열고 나갔다. 그리고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이상하다 싶어 마을사람들에게 물어도 그 스님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후 모든 세상일에 관심을 끊고 독방을 차지하고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한지 10년, 평등월 보살은 앞날을 훤히 내다보는 신통력까지 생겼다고 한다.
그렇게 88세가 되는 해 평등월 보살이 입적을 했는데, 이적이 일었다. 7일장을 지내는 동안 집안이 온통 환하게 방광을 한 것이다. 어찌 밝은지 문상객으로 붐비는 밤에도 불을 켜지 않고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그 이적을 경험한 일타스님 가문의 사람들은 차례로 출가를 했다고 한다.
이수경 저자는 중국 보타 낙가산의 이적 이야기를 비롯해 대강백을 서원하고 백일나한기도를 올리던 우룡스님이 갑자기 바람에 날리듯 법당 밖으로 날라가 버린 나한의 영험 이야기, 오대산 문수보살 친견 이야기, 지리산 영원사 금대암의 나한이야기, 링 린포체의 환생, 수덕사 혜월·수월스님과 관련한 이야기 등 다양한 이적을 책에 담았다. 강화 보문사에서 나한기도와 관세음보살 기도의 여러 영험 등 멀지 않은 시기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그러면서 “이적은 단지 깨달음으로 가는 길일 뿐”이라며 수행과 영험의 목적이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불교를 통해 인생의 참된 길을 깨달은 저자가 세인들에게 “열심히 공부하라고 당부”하는 마음이 책 곳곳에서 읽혀진다.
“살다보면 염불이나 기도 외에는 할 것이 없어지는 때가 있다. 그럴 때 불교공부와 염불을 병행해라. 염불이 지극해지고 지극해지면 어느 순간 불가해한 세계의 문이 열릴 때가 있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듯한 불보살 이야기는 새삼 신심을 일깨워 준다.
[불교신문3179호/2016년2월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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