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는 자는 복이 있다
이사야 30:18-26 94, 535, 527, 528
세상은 기다림이 있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기다리기도 하고,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기도 합니다. 기다리는 사람이 오지 않을 때는 애가 탈 만큼이나 심리적 고통이 되지만, 그러나 기다림이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기다림이 없는 사람은 삶의 의미가 없습니다. 기다릴 사람도 없고,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 사람은 삶의 의미가 없는 불행입니다.
병들어 누워있어 있을지라도 기다리는 사람이 왔을 때 반가워합니다. 늦은 밤이라도 불을 켜놓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면 행복합니다. 기다림은 사랑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기다리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기다리지 않습니다. 기다림이 없는 사람은 삶의 의미가 없습니다.
본문 말씀에 여호와께서 기다리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18)
여호와께서 누구를 기다리십니까? 26절에 ‘자기 백성’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시온에 거주하며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19) 곧 여호와께서 기다리는 사람은 이스라엘 자손들입니다.
당시 예루살렘에 거주하던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고 애굽으로 내려 갔습니다.(30:2) 여호와께서 그들을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하는 자식들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들이라’(30:9) 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이방신과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들을 버리지 않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셨습니다. 그들이 돌아오기를 얼마나 간절하게 기다렸든지 ‘일어나시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언약 맺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 죄악 세상으로 내려갔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탕자의 비유가 생각이 납니다. 탕자는 아버지를 떠나 먼 나라로 가서 허랑방탕하다가 궁핍하여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내 아버지에게는 먹을 양식이 풍부 한 되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라고 말했습니다.(눅15:17) 그래서 그는 일어나 아버지께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집을 떠난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 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눅15:20)라는 말씀을 보면 아버지가 기다리던 아들이 돌아오는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날마다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멀리서 한 거지가 오는 것을 보았을 때, 아버지는 기다리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달려가서 입을 맞추고 아들을 반가이 맞아 주었습니다.
애굽에 내려간 이스라엘 자손들은 어떻게 살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아궁이에 불을 붙이거나 물웅덩이에서 물을 뜰 것도 얻지 못했습니다.’(14) 마치 돼지우리에서 굶주려 죽게 된 탕자와 같았습니다.
한 사람이 꾸짖은즉 천 사람이 도망하겠고 다섯이 꾸짖은즉 너희가 다 도망하고 남은 자는 겨우 산 꼭데기에 깃대 같다(17)는 말씀은, 그들이 애굽 사람들로부터 말할 수 없는 학대를 받고 쫓겨 다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누구입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약 맺어주신 아브함의 자손들입니다. 시온에 거주하고 예루살렘에 거주하며 하나님을 섬겨야 할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애굽으로 내려갔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잊어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예배는 성도들이 하나님과의 만남의 축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배시간에 만나시기를 기다리신다는 것을 별로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다신다는 것을 안다면 하나님을 만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나올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예배시간이 되면 자기 백성을 만나시기를 기다리십니다. 일어나서 간절한 마음으로 애를 태우며 기다리십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나와 여러분을 만나시려고 기다리시다가 우리가 왔을 때 반가이 맞아 주셨습니다. 예배시간이 다 되어가는 데도 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목사인 저도 그를 기다리며 문쪽으로 자주 고개를 돌립니다. 예배를 시작하고 찬송을 부르면서도 문쪽으로 눈이 갑니다. 문밖에 그림자라도 보이면 반가워집니다.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는 자들은 구원받아 영원한 천국 백성이 되기 때문에 복이 있는 자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지 않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영원히 저주받은 매우 불행한 자들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이 돌아오면 어떻게 하실 것인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돌아오면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18)고 말씀하셨습니다. ‘은혜를 베풀고’, ‘긍휼이 여기심’이란 어떤 복인가를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애굽에서 돌아와서 시온에 거주하며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에게 다시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19) 그들이 애굽에서 고통중에 부르짖고 통곡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돌아오면 시온(예루살렘)에서 거주하며 다시 통곡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은혜는 베풀어 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애굽에서는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먹고 마셨지만, 돌아오면 네 눈에 네 스승을 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20) 그들이 애굽에서 먹고 마시는 것으로 육체적인 고통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돌아오면 스승을 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라’는 말씀은 스승이 그들을 가르치고 돌보아주게 될 것이라는 말씀은, 스승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인 참된 영의 양식을 공급하심으로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영적으로 강건케 하실 것입니다.
“너희가 오른쪽을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고 가라 할 것이며”(21)라는 말씀은 그들이 애굽에서는 채찍을 맞으며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를 알지 못해서 방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의 백성이 주를 떠나면 바른길을 찾지 못하고 마치 길 잃은 양처럼 방황하게 됩니다. 그러나 돌아오면 주님께서 스승이 되셔서 바른길(진리)을 가르쳐 주시므로 안전하게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전에는 죄악의 상징인 금과 은을 부어 만든 우상을 섬겼지만, 돌아오면 마치 불결(부정)한 물건을 버림 같이 우상을 던지며 ‘나가라’ 한다는(22) 말씀은 우상이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그들이 돌아오면 여호와께서 은총을 베푸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3-26절까지 돌아온 그들에게 풍성한 양식과 평안과 치유의 복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땅에 뿌린 종자에 주께서 비를 주사 땅이 먹을 것을 내며 곡식이 풍성하고 기름지게 하실 것이며 그 날에 네 가축이 광활한 목장에서 먹을 것이요”.(23)
20절에 여호와를 떠났을 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신다’는 말씀과 대조되는 말씀으로 돌아오면 무엇보다도 먹고 마시는데 부족함이 풍족한 열매로 기름지게 하시는 복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주께서 비를 주신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축복을 가장 현실적으로 나타내는 상징으로 풍성하고 기름진 곡식을 주실 것이며, 광활한 목장에서 먹을 것이라는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23)
그리고 사람들이 충분한 양식을 취한 것(23)과 같이 가축들도 특별한 먹이를 먹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밭 가는 소와 어린 나귀도 키와 쇠스랑으로 까부르고 맛있게 한 먹이를 먹을 것이며”(24)라는 말씀은 가축들이 알곡의 버려진 껍질을 먹는 것이 아니라 알곡을 맛있게 먹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기다리는 자들이 돌아오면 그들에게 세상적인 복으로 충만하게 주실 뿐 아니라, 내세의 영원한 복락을 누리는 복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는 복의 근원이십니다.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은 세상적인 복도 주시지만, 영원한 내세의 복도 주십니다.
“크게 살육하는 날, 망대가 무너질 때에 고산마다 준령마다 그 뒤에 개울과 시냇물이 흐를 것이며”(25). 라는 말씀은 앞서 세상적인 축복이라면, 이제부터는 종말론적인 복을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크게 살육하는 날 망대가 무너질 때에’란 말씀은 세상이 종식되는 최후의 심판날을 가리킵니다. 최후의 날에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무너지고 패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고산마다 준령마다 그 뒤에 개울과 시냇물이 흐를 것이며’란 말씀은 새로운 세상으로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씀으로 새 하늘과 새 땅, 신천지에서의 영생복락을 의미합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26)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신다’는 말씀은 죄를 사하여 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크게 살육하는 날’은 곧 최후의 심판의 날을 의미합니다. 최후의 심판의 양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날에 여호와께로 돌아온 자에게는 죄로 인한 상처를 싸매시고, 고치시고 완전한 의로운 자로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돌아오지 않은 자들에게는 형벌로 저주하셔서 지옥 형벌을 받게 하실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 애굽으로 내려간 백성들의 회복을 가리키는 말씀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영적 이스라엘의 자손들인 나와 여러분들의 완전한 회복과 구원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는 자들이 돌아오면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지라도 용서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기다리신 자들이 돌아왔을 때 그들이 들어갈 영원한 천국을 말씀하셨습니다.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곱’이란 완전함을 의미하는 숫자로 자연계의 완전한 회복을 의미합니다.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이 회복될 때에 자연계도 완전히 회복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기다리는 모든 사람들은 그날에 다 돌아올 것이며, 돌아온 그들 모두는 햇빛의 일곱 배가 되는 밝은 천국에 들어가서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기다림이 없는 사람들은 그날에 영원한 지옥불 속으로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돌아오지 않은 자들에게는 영원한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돌아온 자들에게는 무한한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다(18)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에는 여호와께서 기다리는 자들만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기다림이 없는 자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오늘도 여호와께서 나와 여러분을 기다리십니다.
사랑하는 성도들 여러분! 성도는 어떤 사람입니까?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기다리시는 여호와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기다리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누구를 기다립니까? 주님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립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약속을 믿고 기다립니다. 비록 더딜지라도 주님은 반드시 오실 것입니다.
그날은 주님을 만나는 최고의 기쁨의 날이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기다리시던 우리를 만나심으로 기뻐하실 것입니다. 주님을 기다리던 우리가 주님을 만남으로 무한한 영광이 될 것입니다. 최고의 기쁨과 축복의 날이 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그날에 주님을 만나시고 영원한 기쁨을 누립시다.
|
|

첫댓글 귀한 말씀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