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색(閉塞)”은 ‘닫히어 막힘’을 뜻하는 한자어입니다.
인체에서 무언가(혈액, 소화물, 기도 등)가 지나다니는 관 형태 기관이 막힐 때도 쓰는 용어입니다. 요즘에는 ‘장 폐색’이 많다고 하는데 병원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나을 수 있는 병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폐색이 사람들에게만 쓰는 말인 줄 알았는데 요즘에는 고양이와 개에게도 이런 증상이 있다고 해서 황당합니다. 자연에서 사는 고양이도 이런 증상이 있을까 해서입니다. 다 사람들이 만든 병 같습니다.
폐색은 열차를 운전할 때 선로에 일정 구간을 만들어 한 구간에 한 개의 열차만을 운행하는 방식을 뜻하기도 합니다. 단선일 경우, 상행 열차와 하행 열차가 한 선로를 사용하므로, 열차가 운행 중일 때는 다른 방향에서 오는 열차가 진입하지 못하게 막아 두지 않으면 열차가 마주 오는 열차와 충돌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1차원의 선로들을 통제하기 위한 방식입니다.
폐색은 인체기관이나 무슨 운동방식에서만 쓰는 말은 아닙니다. 사람과 사람, 집단과 집단 사이에도 막힌 것을 폐색으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즉 소통이 되지 않으면 그것도 폐색, 즉 소통폐색(疏通閉塞)입니다.
<대한민국의 국운이 급속한 쇠퇴 기미를 보이고 있다. 나라에 깊게 드리운 ‘소통폐색(疏通閉塞·communication impasse)’의 짙은 먹구름 때문이다.
소통폐색은 조선의 율곡 이이가 당대의 국정 형세를 진단했듯이, ‘유호무문(龥呼無聞)’ 즉, 두 세력의 양보 없는 극강의 상호 대립 속에서 아우성과 호소만 난무할 뿐, 어떤 말도 서로에게 전혀 들리지 않는 가운데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이 꽉 막힌 상황을 말한다.
그는 소통폐색에 함몰된 조선왕조를 ‘토붕지세(土崩之勢)’ 즉, 산사태처럼 급격하게 무너져 내리는 비극적 형국이라고 통찰했다. 오늘날에도 여야 간의 정쟁으로 인한 소통폐색, 특히 거대 야당의 입법 폭주와 탄핵 공세로 국가 기능이 전면적으로 위축·마비되고 있다.
국회는 116개 민생 관련 법안 등 200여 개의 법안 처리에 아예 손을 놓다시피 하고 있다. 내년 국회의원 선거가 코앞인데 선거법 개정 논의는 아직 착수도 하지 않고 있다.
대형 인명 사고를 막기 위한 핼러윈방지법안, 주택 관련 고충 완화를 위한 ‘실거주 의무’ 완화 법안 등 민생 법안, 우주항공청법안 등 국가 미래와 관련된 주요 전략산업 법안까지 국회에서 마냥 표류 중이다. 국회가 여야 간 정쟁에 휘말리면서 소통폐색에 함몰된 채 공전(空轉)하는 탓이다.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은 국회의 임명동의서 채택 부결로 두 달째 공석 중이며, 후임자 임명은 기약도 없이 시간만 흘러가고 있다. 이에 따라 법원의 인사와 행정이 정체되고 있다. 전국 법원에서 오랫동안 판결이 나오지 않는 장기 미제 사건이 폭증하고 있지만, 언제나 이런 문제가 해소될 수 있을지 예측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행정부 역시 소통폐색으로 인한 기능 상실이 극심하다. 서울∼양평 간 고속도로 건설 사업은 야당이 정쟁 항목으로 낚아챈 이후 추진이 완전 중지됐고, 국회에 제출된 정부 예산안은 거대 야당의 입맛대로 그 원형을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난도질당하고 변형된다.
거대 야당은 1일 1건, 식으로 탄핵·특검·해임·국정조사를 발의하면서 정권을 위협한다. 장관을 탄핵해 몇 달씩 직무를 정지시키는가 하면, 방송통신위원장과 일선 검사의 탄핵까지 주저 없이 추진한다. 이처럼 정치가 갈등의 해소 아닌 조장에 악용되는 가운데 국가의 입법·사법·행정 기능이 총체적으로 무력화하고 있다.
몸집 크기에 걸맞은 정책·입법 경쟁이 아니라, ‘입법 독주’를 주도하며 매일 같이 탄핵·특검·해임·국정조사를 거론하는 거대 야당 때문에 의회 민주주의는 망가지고 있다. 정치는 야당의 ‘독단적 입법’ 폭주와 대통령의 거부권 사이에서 맞짱 대결 즉 극심한 소통폐색으로 변질됐고, 국정의 파탄과 국민의 고통만 키워가는 중이다.
‘사회’에서의 소통폐색 역시 갈등과 그 비용의 극대화를 낳는다. 한 예로, 학생의 ‘인권’ 대 교사의 ‘교권’ 사이의 양보 없는 싸움이 극단으로 치닫는 가운데 ‘교실’은 무너지고 양자 사이 상호 조정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서울 시내에 불법으로 설치된 천막 하나를 구청이 철거하는 데만 10년씩이나 걸렸다는 보도까지 나올 만큼 사회적 소통폐색은 심각한 상태다.
갈등은 많은 비용을 청구한다. 우리나라의 갈등지수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고, 그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연간 수백조 원에 이른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이처럼 국정도, 사회질서도, 법치도 모두 율곡이 말한 대로 산사태처럼 무너져 내리고 있다.
과거나 지금이나 소통폐색에 따라 원활한 국가 운영이 무력화하는 양상은 우리의 비참한 관습이다. 사회 전반에 갈등과 반목만 깊어지고, 국가의 주요 쟁점은 해결 없이 방치, 누적되고 있다. 혈관폐색이나 장(腸)폐색이 생명을 위협하듯이 소통폐색에 빠진 정치는 국가의 국정 조율 능력과 통치력(governability)을 무너뜨려 무정부 상태의 혼란을 유발할 수 있다.
소통폐색의 해소에 국가의 장래가 달렸다. 거대 야당은 정권을 끌어내려 그 반사이익으로 재집권을 도모하는 파괴적 방식에 집착하지 말고, 건전한 정책 경쟁을 통해 나라를 이끌어가는 건설적 수단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국운의 쇠퇴 아닌 도약에 기여하는 책임정치와 수권 정당이 갈 길이다.>문화일보. 박승관 서울대 언론정보학과명예교수
출처 : 문화일보. 오피니언 칼럼, 시평, ‘소통폐색’은 국가 쇠망 부른다
사람 몸에서 폐색은 생명을 위협하는 무서운 병인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요즘엔 의학이 발달해서 난치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 사이, 집단 사이의 소통에 폐색이 있다면 그 폐색은 고치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치킨게임'처럼 그 사회는 결국 한쪽이 망해야 끝날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여당야당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같은 당 안에서도 폐색이 짙어져서 큰일입니다. 다들 자기주장만 내세우면 결국은 파국이 올 것입니다. 가진 것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요즘 정치판을 보면서 한탄만 나옵니다.
자기들끼리 밥그릇 싸움이나 하고 있으니 그들에게 무슨 나라와 국민의 일이 마음에 들어오겠습니까? 어떤 명의가 와도 방법이 없고 현 시점에서 사회적 폐색을 고치려면 판갈이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