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암골이 세간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09년 가을. MBC 예능프로 ‘오마이 텐트’에 소개되면서부터다. ‘오마이 텐트’는 김제동이 MC로 나서 게스트와 함께 캠핑을 하며 진솔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진지한 접근으로 인해 ‘다큐적 예능’이라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오마이 텐트’는 단 1회만 방송되고 종결됐다. 이 프로그램의 처음이자 마지막 촬영지가 살둔마을과 문암골이다. 문암골에는 당시 세운 ‘오마이 텐트가 찾은 걷고 싶은 길’이라는 이정표가 있어 지금도 오지마을을 찾아 나선 이들의 길잡이가 되고 있다.
세상의 끝 오지마을에서 다시 시작되는 길
10여 년 전만 해도 살둔마을은 오지의 대명사였다. 이곳에서 길이 끝났다. 내린천 물길은 이어졌지만 찻길은 없었다. 여행자들은 이 외진 오지마을을 찾아 세상 끝까지 온 듯한 여행의 기쁨을 맞보곤 했다. 그 중심에 살둔산장이 있었다. 내린천 곁에 귀틀집으로 지은 이 산장은 감성이 충만한 여행자의 안식처였다. 그러나 살둔마을이 끝이 아니었다. 길은 끝에서 다시 시작됐다. 그곳이 문암마을로 가는 문암골이다. 살둔산장에서 내린천 건너에 빤히 보이는 계곡. 그 계곡을 따라 오지로 가는 아름다운 길이 있다.
문암골 초입에 세워진 목장승 2기. 이곳에서 내려가면 내린천을 가운데 두고 살둔산장과 마주하게 된다.
문암골로 가는 길은 살둔마을이 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시작된다. 이곳에서 내린천을 오른쪽에 끼고 산비탈을 따라 길이 나 있다. 초입에 ‘자전거 트레킹 코스’라 적힌 이정표가 있다. 문암마을까지는 걷는 것도, MTB를 타고 가는 것도 좋다. 자전거는 생둔분교 오토캠핑장에서 대여해준다.
내리막길은 잠시 야트막한 언덕을 지나 부드럽게 이어진다. 언덕을 지나면 남녀형상의 거대한 목장승 두기가 있다. 호랑소라는 비석도 있다. 이곳을 지나면 드문드문 민가가 나타난다. 첫 번째 다리를 건너면서 시멘트포장도로가 끝이 난다. 이곳부터 문암마을 삼거리까지 4km는 아늑한 흙길이 이어진다.
다리를 건너 500m쯤 가면 ‘오마이 텐트에서 찾은 걷고 싶은 길’ 이정표가 있다. 이곳부터 민가도 보이지 않는다. 문암마을까지는 이제 둘이 나란히 걷기 좋은 길과 깊은 숲, 소리만으로도 청량감을 물씬 풍기는 계곡만이 있다. 길과 나란히 이어진 계곡은 문암골이 깊어질수록 풍광이 아름다워진다. 바위와 암반이 어울린 협곡이 짙은 녹음 사이로 언뜻언뜻 비친다. 도보여행에 나선 이들은 그 계곡에 발을 담그고 싶어 안달이 나지만 쉽지 않다. 워낙 계곡이 험하기 때문에 내려서는 길이 많지 않다.
문암골 청량한 물소리는 탁족의 즐거움을 부르고
이정표가 서 있는 자리에서 10분쯤 가면 첫 번째 삼거리다. 오른쪽으로 가면 운리동으로 간다. 문암마을로 가는 길은 왼쪽이다. 갈림길을 지나면 길은 더욱 아늑해진다. 계곡미도 더욱 빼어나다. 하얗게 포말을 그리며 쏟아지는 물살이 여행자의 마음을 훔친다. 그러나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다. 갈림길에서 1km즘 올라가면 자연스럽게 계곡과 마주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작은 채마밭이 있는 이곳은 물살이 층층이 떨어지며 흘러가는 곳. 계곡물은 발가락이 얼얼할 정도로 차다. 걷기는 그만하고, 탁족을 하며 그저 쉬고 싶게 만든다. 이곳에 오마이 텐트가 세운 ‘여기까지 2,500걸음’이라는 이정표가 있다. 여행자를 배려하는 그 이정표가 정겹다.
이정표를 지나서도 계곡의 풍광은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깊은 협곡으로 변해 신비감을 준다. 과연 이 길 끝에 마을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그러나 끝은 있었다. 다시 ‘여기까지 5,000걸음‘이란 이정표를 만나고 나서 300m만 더 걸으면 잘 포장된 시멘트 도로와 만난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과 달리 말끔하게 포장된 도로여서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는 지점이 삼거리다. 직진하면 고개를 넘어가 홍천과 상남을 잇는 31번 국도와 만난다. 문암마을 사람들은 고개를 넘어 율전리로 장을 보러 간다. 즉, 이 길이 문암마을과 세상을 연결하는 끈이다. 따라서 주민들의 편리를 위해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든 것이다. 반면, 문암골에서 살둔마을로 가는 길은 활용도가 떨어져 점점 아늑한 오솔길로 변하고 있다.
삼거리에서 문암마을로 가는 길은 왼쪽이다. '문암마을 감리교회 2km'라 적힌 이정표가 있는 다리를 건너간다. 삼거리에서 문암마을로 이어진 길은 특별하지 않다. 짙은 숲 그늘도 없고, 경치도 특별날 게 없다. 무엇보다도 포장된 도로가 마음에 거슬린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계곡이 한결 가까워졌다는 것. 이제는 틈만 나면 계곡에 발을 담글 수 있다.
빗물로 불어난 문암골의 계곡물이 세차가 흘러가는 가운데 바위 하나가 우뚝 솟아 있다. 이곳에서 조금만 더 가면 첫 번째 삼거리가 나온다.
종교적 경건함이 흐르는 소박한 문암교회
삼거리에서 문암마을까지는 20분이면 족하다. 이 계곡 끝에 무엇이 있을까 싶던 의구심은 마을 입구에 닿으면 풀린다. 마을이 터 잡은 계곡은 생각보다 넓다. 부드럽게 흘러내린 산자락 마다 밭이 만들어져 있다. 10가구쯤 되는 집들도 띄엄띄엄 있다. 과거에는 꽤나 큰 마을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마을에 있는 문암교회는 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들고나는 길도 험하기 짝이 없던 그 시절에 이곳에 교회가 있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최근에 새롭게 단장한 문암교회는 종교가 추구해야할 진정성과 가치를 조용히 말해준다. 통나무로 뼈대를 세우고, 황토로 벽을 발라 지은 교회는 아담하다. 하늘을 찌르는 첨탑도 없이 수수하다. 교회 내부도 소박하기 그지없다. 예배당 정면에 세워 놓은, 나무를 켜서 만든 선이 자연스러운 십자가도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창문 너머로는 문암마을의 전경이 펼쳐진다. 무신론자에게도 종교적 감동을 줄 정도로 경건함이 흐르는 검박한 모습이다.
문암마을에서 땀을 식히고 나면 이제 돌아갈 일만 남는다. 왔던 길을 되짚어가는 길이라 조금 싱거울 수는 있다. 하지만, 언제든지 내장까지 시원하게 훑어줄 계곡이 기다리고 있어 발길이 가볍다. 혹여, 밭일 나가는 농부의 트럭이라도 얻어 탈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가는 길 살둔마을이 들머리다. 서울~춘천고속도로 동홍천IC로 나와 56번국도 양양 방면을 따라 가면 내면 지나 광원리에 이른다. 광원리에서 우회전, 446번 지방도를 따라 8km 가면 살둔마을이다. 영동고속도로 진부IC에서 31번 국도를 따라 운두령을 넘어가 내면 창촌에서 56번 국도를 갈아타도 된다. 대중교통은 상봉이나 동서울터미널에서 고속버스와 직행버스를 이용해 홍천읍까지 간다. 홍천읍에서 내면 율전리행 버스가 약 1시간 단위로 운행된다. 2시간 소요.
숙박 살둔마을 주변에 펜션과 민박이 많다. 살둔산장(033-435-5928)은 주말에는 서둘러야 예약할 수 있다. 생둔분교 오토캠핑장(033-434-3798)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삼봉자연휴양림의 산막이나 캠핑장을 이용할 수 있다.
차량 통행도 가능한 편안한 길이다. 아이들과 함께 걸으면서 쉴 수 있다. 자전거를 타고 가도 나쁘지 않다. 여름에는 편안한 샌들을 신고 가도 무방하다. 생둔분교에서 자전거를 빌려서 MTB체험을 할 수도 있다. 계곡의 시원한 그늘에서 탁족을 즐기면 삼복더위도 모르고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