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은 포장된 축복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누구나
자신의 삶이 형통하고
고난이 없기를 기대합니다.
그런데 고난이 포장된 축복임을 아는 이들은
그리많지 않습니다.
대부분 고난과 역경이 오면
왜 내게만 이런 시련이 주어지냐고
하늘을 향해 원망하고
낙담하고,
자포자기 망가진 인생을 살아가기 쉽습니다.
그런데 고난은
우리가 어떤 태도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우리에게 큰 복이 되기도하고
우리에게 큰 슬픔이 되기도 합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이렇게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은
우리의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교훈해 줍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처럼
난세가 오히려 영웅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저 안일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려던
영혼을 깊은 잠에서 깨우고 일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요즘 같아도 남편 잃은
젊은 과부의 삶을 힘든데
힘들고 힘든 일제 강점기때에
아무도 없는 홀홀단신 젊은 여인의 삶이란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을까요?
그런데 여기 정말 인생의 고난을 복을 바꾼
전화위복의 여인의 삶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日帝 强占期) 시절에 충남 예산에 꽃같이 어여쁜 처녀 한 분이 있었습니다.
이 아가씨가 17살에 시집간지 2년만에 서방님이 졸지에 죽어 19살에 과부가 됐습니다.
동네에선 그녀를 볼 때마다
불쌍하다!! 나이가 아깝다!! 하면서 위로해 줬지만 19살 과부(寡婦)에게는 혹독한 시련이었고 고난이였기에
울기도 많이 울었답니다.
어느날 그녀는 마음을 다잡아 먹고 거울 앞에 앉아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사정없이 잘라버렸답니다.
그러면서 젊은 과부가 마을 어르신네들로부터 듣는 동정의 말들이 듣기가 너무도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헤쳐나갈 방법을 곰곰히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서방도 죽고 자식도 없는 시댁(媤宅)에서 더 이상 머무를 수도 없었지만 친정으로 돌아간들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무언가 새로운 길을 모색(摸索)하기로 결심하고 서울행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낯설고 물설은 서울 생활이
어린 과부에게 녹녹지 않았습니다.
소개해 준 곳곳마다 가서 이를 악물고 닥치는 대로 일했답니다.
식당에서 설거지와 남의집 빨래도 하며 차츰 서울 물정에 눈을 떴을 때 지인의 소개로 어느 부유한 집 가정부로 들어갔습니다.
그집에서 밤낮으로 열정(熱情)을 쏟아부으며 성실(誠實)하게 일 했습니다.
주인댁 부부 모두가 마음씨가 좋았고 주인 어르신께로부터 신뢰와 인정을 받았습니다.
어느날 주인께서 말씀이
''나이도 젊은데 무엇이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말해 보라'' 했습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두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그중 하나는 ''야간 학교에라도 가서 늦었지만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고,
또 하나는 ''주인을 따라 주일에 교회를 갈 수 있게 해달라'' 했습니다.
인정 많으신 주인 어르신께서
정말 기특한 생각을 했다며
젊은 과부의 소박한 소원을 흔쾌히 들어줬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숙명여학교 야간부에 입학했고 또 주일에는 빠지지 않고 교회에도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주인 어르신의 큰 은혜에
감읍(感泣)하여 갑절로 더 열심히 성실히 일을 했고 밤에는 학교에서 죽기 살기로 공부에 전념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녀는 최우수 학생으로 장학생이 되었고 학교로 부터 실력과 성품(性品)을 인정받았고 22살 되던 해(1913년) 늦게나마 숙명고등 여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그때가 일제 강점기 때인데 26살 때인 1917년 모교에서 그녀를 일본으로 유학을 보내주었습니다.
유학생 신분으로 일본으로 공부하러 가게 된 26살 젊은 과부는 너무나도 감사가 차고 넘쳤다고 술회했습니다.
일본 도쿄여자 사범대학예서
소정의 과정을 마치고 연락선을 타고 부산 포구(浦口)에 내린 젊은 과부는 몰라보게 달라졌습니다.
신문에서도 예산의 시골 젊은 과부가 당대의 명우 윤심덕처럼 멋쟁이가 되어 귀국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한국으로 귀국(1921년)했을 때
그녀의 나이 30세였습니다.
모교인 숙명여고 교사 근무를 거쳐 당시의 조선총독부 장학사로 임명받고 일하다가 1945년 해방과 함께
숙명여자전문대학으로 승격되어 학장으로 취임한 후, 10년 후인 1955년에 숙명여자대학교을 세우고 초대총장으로 취임하신 분이 바로 17세에 시집가서 19세에 남편이 죽고 식모살이 까지 했던 예산의 19살 과부 임숙재(任淑宰) 총장 이야기입니다.
임숙재는 숙명여대를 창설, 성장 발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불굴의 의지로 운명을 바꾸어 놓은 인물이기도 합니다.
임총장은 항상 제자들에게 <''성공하기를 원하십니까? 환경을 다스리시오''>라고 교훈과도 같이 늘 일관되게 가르쳐 왔습니다.
19세 시골출신 과부가 식모살이에서 대학총장까지 승승장구한 사연이야말로 인간이란 존재는 <''고난을 잘 이겨내야 무슨 일이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산증인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잠재된 능력과 무한한 가능성이 주어져 있음을 보여 준 살아있는 증거라 하겠습니다.
사람은 어떤 환경이나 위치에
처해 있던 주어진 조건을 어떻게 이겨내고 잘 다스려 가느냐에 따라 그 인생의 성공 여부가 결정 돤다고 했습니다.
지금 나 자신에게도 숨겨진 잠재력이 있는데도 스스로를 모른 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지낼 수 있습니다.
그것들을 찾아내는 것 또한
내 몫이 아니겠습니까.
내 자식들과 후손들 몫까지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을 둘러싼 환경이
주저앉을 수 밖에 없을지라도 임숙재 총장의 이야기가 모두에게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所望)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합니다.
임숙재 총장께서 만약에 19살에 청상과부(靑孀寡婦)가 되지 않았다면 그저 시골에서
평범한 주부로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깐 우리에게 닥친
위기(危機)란 것은 도리어
복(福)의 통로(通路)가 되어
인생역전(人生逆轉)의 고귀한
드라마가 될 수도 있다는 훌륭한 교훈으로 남겨주셨고
임숙재 총장께서는 1961년 향년(享年) 71세로 작고 하셨습니다.
빅터 프랭클은 나치 독일의 '강제 수용소(Concentration Camp)'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극한의 한계에서 살아남은 사람입니다.
그는 한곳에만 머문 것이 아니라, 총 4개의 악명 높은 수용소를 거쳤습니다.
테레지엔슈타트 (Theresienstadt): 체코에 있는 게토(격리구역) 성격의 수용소. 이곳에서 아버지가 굶주림과 폐렴으로 사망했습니다.
아우슈비츠 (Auschwitz): 폴란드의 가장 악명 높은 절멸 수용소. 이곳에 도착했을 때 프랭클은 자신이 평생 연구한 원고 뭉치를 뺏겼고, 옷 속에 숨겨둔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카우페링 (Kaufering) & 튀르크하임 (Türkheim): 독일 다하우(Dachau) 수용소 산하의 노동 수용소들. 이곳에서 가혹한 강제 노동에 시달렸습니다.
신분도, 이름도 모두 빼앗기고 '수감 번호 119,104'라는 번호로만 불렸습니다.
물리적 고통: 영하의 추위 속에서 얇은 옷 한 벌로 철로를 놓는 중노동을 했습니다. 식사는 묽은 수프 한 그릇과 작은 빵 조각이 전부였기에 극심한 영양실조에 시달렸으며, 해방 직전에는 발진티푸스에 걸려 사경을 헤매기도 했습니다.
심리적 고통: 언제 가스실로 끌려갈지 모른다는 공포, 이유 없는 구타, 인간 이하의 취급을 견뎌야 했습니다. 특히 옆 동료가 "살아갈 의미가 없다"며 포기하는 순간, 며칠 내로 사망하는 모습('무슬림'이라 불린 현상)을 목격했습니다.
상실: 그는 수용소 생활 중 사랑하는 아내, 어머니, 형제가 모두 다른 수용소에서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됩니다. 유일하게 여동생만 살아남았습니다.
이 지옥 같은 곳에서 그를 살게 한 것은 바로 그가 주창한 '로고테라피(의미 치료)'의 실천이었습니다.
로고테라피(Logotherapy)는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이 창시한 심리 치료 이론으로, 인간 존재의 가장 일차적인 동기를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로 보는 것입니다.
그리스어 '로고스(Logos)'는 '말', '이성'이라는 뜻도 있지만, 여기서는 '의미(Meaning)'를 뜻합니다. 즉, "의미를 통한 치료"입니다.
핵심 전제: 인간은 단순히 본능(성욕, 식욕)을 충족하거나 권력을 얻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내가 왜 사는가?"에 대한 대답, 즉 삶의 고유한 의미를 찾을 때 비로소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니체의 명언 인용: 프랭클은 니체의 이 말을 자주 인용했습니다.
"왜(Why)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How) 상황도 견딜 수 있다."
프랭클은 우리가 삶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세 가지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① 창조적 가치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무엇을 하는가) 무언가를 만들거나 성취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맡은 일, 과업, 창작 활동을 통해 세상에 기여할 때 의미를 찾습니다.
② 체험적 가치 (나는 무엇을 경험하는가) 무언가를 경험하거나 누군가를 만나는 것입니다.
자연의 아름다움, 예술 작품을 감상하거나, 누군가를 사랑하는 경험을 통해 의미를 찾습니다.
프랭클은 "사랑은 다른 사람의 인격 깊은 곳에 있는 본질을 파악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③ 태도적 가치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 - 가장 중요 피할 수 없는 시련에 직면했을 때 취하는 태도입니다.
불치병, 죽음, 수용소 생활처럼 상황을 바꿀 수 없을 때, 그 상황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선택함으로써 의미를 찾습니다. 시련을 인간적인 성취로 승화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앞서 말씀드린 '전화위복'의 심리학적 기초입니다.
현대인이 겪는 정신적 문제의 핵심을 프랭클린은 '의미 상실'에서 찾았습니다.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되었는데, 도무지 의욕이 없고 허무하며 지루함을 느낍니다. 이를 '실존적 공허'라고 부릅니다.
일요 신경증 (Sunday Neurosis): 바쁜 평일에는 모르고 지내다가, 할 일이 없어지는 휴일에 밀려오는 공허감과 우울감을 뜻합니다. 로고테라피는 이 공허함을 쾌락(술, 도박 등)으로 채우지 말고, '나만의 의미'로 채우도록 돕습니다.
로고테라피는 인간에게 질문의 방향을 바꾸라고 조언합니다.
"우리가 삶에게 '내 인생은 왜 이렇게 힘든가?'라고 물어선 안 된다.
오히려 삶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당신은 당신의 삶(상황)에 대해 어떤 책임 있는 대답(행동과 태도)을 내놓을 것인가?"
로고테라피는 "인간은 어떤 최악의 조건에서도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으며, 그 의미를 찾을 때 고난을 이겨낼 자유와 힘을 얻는다"는 희망의 심리학입니다.
고난중에 있으십니까?
그것은 당신에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배가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의 태도에 따라서 말입니다.
고로 인생은 선택입니다.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신 30:19)
https://youtu.be/xlZI1LPjLEM?list=RDxlZI1LPjLEM
https://youtu.be/sFTnyXY5GLk
https://youtu.be/6J6KsYnlmR0?list=PLaLfC_Mdht_D2Du0bWab2LEJ_A1YNJ07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