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은구곡(葛隱九曲)-속명승보 6 (2018. 5. 28)
서시; 갈은동문(葛隱洞門)
제1곡; 장암석실(場嵒石室)
제2곡; 갈천정(葛天亭)
제3곡; 강선대(降僊臺)
제4곡; 옥류벽(玉溜壁)
제5곡; 금병(錦屛)
제6곡; 귀암(龜岩)
제7곡; 고송유수재(古松流水齋)
제8곡; 칠학동천(七鶴洞天)
제9곡; 선국암(仙局岩)
* 개요; 충북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에 있다. 은자의 골짜기 갈은마을은 갈론(葛論)마을이라고도 부른다. ‘칡뿌리를 양식으로 해 은둔하기 좋다’는 뜻이다. 벽초(碧初) 홍명희(洪命熹 1888~1968)의 조부 홍승목(洪承穆 1847~1925)과, 국어학자 이능화(李能和 1869~1943)의 부친 이원긍(李源兢 1849~?)이 은거를 했고, 구한말 칼레 신부가 천주교 박해를 피해 숨은 곳이다. 이 구곡은 외지인의 발길이 뜸한 오지라 태초의 풍경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다. 곡(曲)마다 암석에 새겨놓은 한시가 그대로 남아 있는 전국에서 유일한 계곡이다. 다양한 서체로 음각해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높다. 구한말 전덕호(全德浩 1844~1922)가 명명했다고 전한다. 관련 자료는 갈은동문 각자가 있는 곳을 제1곡으로 보는데, 필자는 견해를 달리한다. 제2곡 갈천정 아래 장암석실을 제1곡으로 잠정(暫定)키로 한다, 9곡 까지 왕복 약 4km로, 2시간이면 충분하다. 선인의 체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아름다운 곳으로, 이 곳만은 수몰되지 않으면 좋겠다. 지인의 다음 블로그 산행유정(바위산) 충청권(2018. 5. 28) 자료를 참고했다.
서시(序詩) 갈은동문(葛隱洞門)
칡숲이 무성하니 은사(隱士)는 걱정 없어
속진(俗塵)에 찌든 때는 고기가 핥아주니
숨겨둔 곡류(曲流) 허리띠 칭칭 감고 놀리라
* 구곡(굽이) 들머리다. 들어서자마자 우람한 절벽 위에 앉은 직육면체 바위에 ‘葛隱洞門’(갈은동문)이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암벽 아래 바위 무더기는 마치 바위 집 같다고 하여, “집바위”라 부르기도 한다.
제1곡 장암석실(場嵒石室)
감춰진 청옥(靑玉)이라 일곡(一曲)을 몰랐나봐
돌집 안 금은보화 다람쥐가 모아뒀기
푹신한 물침대 위서 평생 밀애(密愛) 즐길까
* 장암석실이란 마치 방처럼 생긴 반듯한 바위다. 굳이 우리말로 풀이한다면, ‘마당바위 돌방’이라 할까?
* 제1곡 암각 한시(작가는 전덕호로 추정)
冬宜溫奧夏宜凉(동의온오하의량); 겨울에는 따솜따솜 여름에는 서늘서늘
與古爲隣是接芳(여고위린시접방); 태고의 자연과 벗하며 사노라니 마냥 좋아라
白石平圓成築圃(백석평원성축포); 평평하고 하얀 암반은 채소밭 하면 안성맞춤
靑山重聳繞垣墻(청산중용요원장); 청산은 겹겹이 높이 솟아 담장이어라
제2곡 갈천정(葛天亭)
두껍게 쌓인 이끼 갈색 옷 걸친 암석
여울진 잔돌 밑에 동자개 박(拍)을 치자
칡뿌리 꾹꾹 씹으며 하늘 정자 거닐다
* 갈은동문 바위 북쪽 계류 건너편 바위지대를 일컫는다. '갈천'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이 은거했다는 장소로 갈론마을의 지명유래가 된 곳이라 한다.
* 동자개; 몸길이가 20cm가량인 동자개과 민물고기의 일종이다. 수염은 4쌍이며, 가슴지느러미에는 톱니가 달린 날카롭고 단단한 가시가 있다. 몸은 황색 바탕에 암갈색의 큰 얼룩무늬가 있으며, 꼬리지느러미는 깊게 파여 있다. 가슴지느러미의 날카롭고 단단한 가시와 기부 관절을 마찰하여 빠각빠각 소리를 내어 흔히 ‘빠가사리’라 한다. 내수면 양식의 주요한 대상종이며, 주로 매운탕의 재료로 이용된다. 똥짜개, 자개, 등으로도 부른다. (국립생물자연관 생물다양성 정보)
제3곡 강선대(降僊臺)
벼루를 포갠 바위 늙은 솔 외로운데
내려온 푸른 신선 천석흥(泉石興) 도연(陶然)하니
흩뿌린 소매 자락에 옥녀봉(玉女峰)이 걸렸네
* 갈은동문에서 약 200m 들어간 합수점 상단부 너럭바위 지대에서 동쪽으로 약 100m 거리인 다래골 입구 계류 건너편 작은 절벽 아래, 바위를 휩쓸고 흐르는 옥류가 어우러져 비경을 이룬다. 옆 작은 절벽에 강선대(降僊臺)라는 글씨가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다. 암반으로 이어져 개울까지 흐른다. 작은 소에는 풀빛이 감돌고, 바위 위에는 노송이 한그루 바위틈을 비집고 뿌리를 박아 운치 있다. 제9곡 선국암 끝자락 서남쪽에 유방을 닮은 옥녀봉(596m)이 근사하다. 보통 함께 등산한다.
* 천석흥 도연하니; 산수의 흥취에 거나히 취했으니.. 필자도 모처럼 문자를 쓰며, 객기 한번 부려 본다.
* 진묵 음게(吟偈)-게를 읊다(선시)
진묵대사(震默大師/조선 1562~1633)
天衾地席山爲枕(천금지석산위침); 하늘을 이불로 땅을 자리로 산을 베게 삼고
月燭雲屛海作樽(월촉운병해작준); 달은 촛불이요 구름은 병풍이라 바다로 술통 지어
大醉巨然仍起舞(대취거연잉기무); 크게 취함에 거나히 일어나 춤추나니
却嫌長袖掛崑崙(각혐장수괘곤륜); 긴 소매 자락은 왜 이리 곤륜산에 걸리는고 (번역 한상철)
* 仍; 인하다, 거듭, 곧 등.
* 却; 도리어, 물리치다. 발어사, 어조사 등으로도 쓰인다. 却嫌; 도리어 싫다.
* 완주 모악산 수왕사 조사전과, 김제 망해사 낙서전 주련(柱聯)에 실려 있다.
제4곡 옥류벽(玉溜壁)
너른 소(沼) 풀빛 돌아 시루떡 안친 반석
구슬로 흐른 방울 발등을 적실 제에
나그네 백옥쟁반에 김밥 한 줄 끄르네
* 입구에서 1㎞쯤 걸어 오르면 넓은 소와 시루떡처럼 생긴 바위가 층을 이루고 있다. 제4곡부터 제9까지 동쪽 계류에 있다. 구슬 같은 물방울이 흘러내린다는 3m 높이의 암벽이 길게 이어져 장관이다. 이 곳 너럭바위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른다.
제5곡 금병(錦屛)
황금빛 각진 석주(石柱) 잘난 척 뽐내다가
비단을 두른 병풍 솔 이슬에 젖어가자
새아씨 첫날 밤 그리워 산꽃 하나 꺾어오
* 옥류벽에서 상류로 약 100m 거리인 협곡이 ㄱ자로 꺾이는 곳 오른쪽 절벽이다. 황갈색 바위벽에 물 위 반사된 햇볕이 닿으면, 그야말로 비단병풍처럼 보인다.
제6곡 귀암(龜岩)
반듯한 층층바위 눈 굴린 검은 거북
굽이친 옥류 따라 물보라 흩어지면
꼬리로 솔을 툭 치곤 슬그머니 사라져
* 금병에서 상류로 약 40m 거리에 있는 거북을 닮은 기암이 하나 계곡 가에 올라 앉아 있다.
제7곡 고송유수재(古松流水齋)
깔때기 바위무리 명주실 토한 폭포
옛 묵객 움막터는 솔향기 짙어가고
두 눈 먼 풀무치 한 쌍 해금(奚琴) 뜯고 있느니
* 거북바위에서 조금 더 오르면 암반 사이로 맑은 물이 쏟아져 내려 눈이 시원한 풍경이 나온다. U자형을 이룬 바위지대 가운데로 계류가 흐른다. 주변에 움막터가 있다. 옛날 시인묵객들이 이곳에 머물기 위해 지었다. 지금은 오래된 소나무가 빼곡히 들어서 있고, 우측에는 정자 터가 있으며, 부엌자리 등이 남아 있다. 위 칠학동천에서 흘러내린 물이 폭포를 이뤄 모양새가 뽀얀 명주 같다.
* 풀무치; 길이는 48~65㎜이며, 콩중이와 비슷하다. 앞가슴의 중앙 세로융기선은 뚜렷하지 않고 중앙에서 가로 홈으로 절단된다. 어깨에서 뚜렷이 모가 나고 뒤쪽으로 심하게 퍼져 있다. 앞날개는 가늘고 길게 옅은 색을 띠며, 무늬가 불규칙하다. 뒷날개에 흑갈색의 중앙대가 없다. 메뚜기과의 대표적인 종의 하나로 들에서 흔히 발견되었으나, 최근에는 채집이 쉽지 않다. (다음백과 인용)
제8곡 칠학동천(七鶴洞天)
고송(古松)이 사라지니 일곱 학 둥지 떠나
면경(面鏡)이 깔린 암반 옥수가 쏟아질 때
백운은 오선지에다 학 울음을 그려요
* 고송유수재 상단부에 있다. 일곱 마리의 학이 살았다는 칠학동천에는 지금 학을 볼 수 없다. '고송유수'에 노송이 없어지니, 이곳 학들도 떠났나 보다. 학은 비록 없지만, 하늘을 보면 흰 구름이 두둥실 떠돌고, 수려한 암반 위로 맑은 계곡수가 쏟아져 내린다. 이게 바로 학 무리와 그 울음소리가 아닐까?
* 풍성학려(風聲鶴唳); 바람소리와 학의 울음소리. 적을 두려워한 나머지 바람소리와 학의 울음소리만 들어도 적병이 추격하는 줄로 착각하고 도망하다. 겁을 먹은 사람이 하찮은 일이나, 작은 소리에도 몹시 놀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출처 《진서(晉書) 〈사현전(謝玄傳)〉》.
제9곡 선국암(仙局岩)
청류 옆 고인돌은 단아(端雅)한 바둑판이
흑백선(黑白仙) 놀이하다 승패 결국 못 가려
황옥(黃玉) 판 뒤집어 버리고 술잔치만 벌이군
* 칠학동천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옥녀봉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나온다. 갈림길 옆에 제9곡인 선국암이 있다. 신선이 바둑을 두었다는 이곳은 둥글 넙적한 바위 위에 판이 그려져 있다. 돌을 넣는 곳도 둥그렇게 파여 있다. 바둑판바위 네 귀퉁이에는 ‘四老同庚(사로동경)’ 글씨가 음각되어 있다. 네 분의 동갑내기 노인들이 바둑을 즐겼다는 뜻이다. 신선 仙 자의 본 자는 僊 자이다.
* 제9곡 암각 한시(작가는 전덕호로 추정)
玉女峰頭日欲斜(옥녀봉두일욕사); 옥녀봉 산마루에 해는 저물어가건만
我棋未了各歸家(아기미료각귀가); 바둑을 아직 끝내지 못해 각자 집으로 돌아가네
明朝有意重來見(명조유의중래견); 다음날 아침 생각나서 다시금 찾아와 보니
黑白都爲石上花(흑백도위석상화); 흑백 모두 돌 위에 꽃을 피워 놓았네 (번역 한상철)
*제 4구 감상; “밤새 서리가 내려 바둑알이 하얗게 서리꽃을 피워 놓았다”는 아름다운 글이다.
*제 3구는 이백의 명시 ‘산중대작’ 제4구를 차운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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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山書》 제 29호(2018년) 풍치시조 2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