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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본부간부회〉 해외활동체험(海外活動體驗)
싱가포르 창가학회 우진화(呉錦華) 이사장 (요지)
2025년 4월 22일
청년과 구축하는 인간공화의 낙원
一, 저희 집에서 가장 먼저 신심(信心)을 시작한 사람은 아버지였습니다. 입회(入會) 전에는 성격이 급해서 직장을 전전(轉轉)하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술, 담배, 갬블(도박)에 몰두해 어머니와는 싸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친척에게 절복(折伏)되어, 어본존(御本尊)을 어안치(御安置)한 것은 1969년의 일이었습니다. 동지(同志)의 격려로, 아버지는 진지(眞摯)하게 근행(勤行)·창제(唱題)를 실천해, 3개월 후에는 정사원으로서 취직. 술, 담배, 갬블도 딱 끊으셨습니다. 아버지의 변화(變化)에 놀란 어머니도 곧바로 신심(信心)을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용감하게 초창기(草創期) 싱가포르 광포(廣布)의 진열(陣列)에 동참했습니다. 활동(活動)과 절복(折伏)에 바빠 부부싸움을 할 틈도 없이 집 밖으로 울려 퍼졌던 고함소리는 큰 제목(題目) 소리로 바뀌었습니다.
부모님 덕분에 저도 미래부(未來部) 시절부터 학회(學會)를 무척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타고 넘어 진학(進學). 학생부(學生部)에서 신심(信心)을 연마(鍊磨)해 졸업 후에는 유명한 다국적 기업에 취직할 수 있었습니다. (박수)
그러나 결혼 후, 시련(試鍊)이 찾아왔습니다. 아내가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유산(流産) 위기(危機)에 직면한 것입니다. 의사는 절대(絶對) 안정(安靜)을 말했지만, 미래부 시절부터 순수하게 신심을 관철해 온 아내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지 않았습니다. 부부가 함께 어본존(御本尊)을 향해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싸웠습니다.
건강하게 태어나 준 큰딸을 안았을 때의 감사(感謝)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현재 큰딸은 전국부(副)여학생부장, 큰아들도 학생부에서 국공립대학그룹의 리더를 하고 있습니다. 가족 3세대가 절대적 행복(絶對的幸福)을 확신하며, 큰 목적에 살고, 함께 광포에 진력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가족의 최고의 기쁨입니다. (박수)
一, 이케다(池田) 선생님께서는 싱가포르를 세 차례 방문해 주셨습니다. 1988년, 첫 방문 때는 남자부(男子部) 임원(任員, 스태프)으로서 선생님의 투쟁(鬪爭)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리콴유(李光耀, 1923 ~2015) 당시 총리와 회견하신 모습이 TV 뉴스에서도 방영(放映)되어 모두가 환성(歡聲)을 올린 날의 일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과밀(過密, 빽빽)한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임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씀을 건네시며 때로는 마술을 선보여 기쁘게 해 주셨습니다. 사회에 나가기 직전이었던 저에게도 “광선유포(廣宣流布)를 위해 후회(後悔) 없이 끝까지 살아주세요.”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출국 직전까지 임원을 격려하시며 “절대(絶對) 퇴전(退轉)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퇴전하려면 나에게 먼저 연락(連絡)해주세요.”라고 하시며 마지막 순간까지 자애(慈愛)의 지도(指導)를 계속해 주셨습니다.
1995년, 다시 선생님을 맞이했을 때는 싱가포르 건국 30주년을 기념하는 ‘청년우호예술제(靑年友好藝術祭)’가 개최(開催)되었습니다.
전국남자부장이었던 저는 청년부(靑年部) 멤버들과 함께 운영(運營)의 일체(一切)를 책임(責任)지며 사회에 우정(友情)의 유대(輪, 고리)를 크게 넓히고자 동지와 열심히 준비(準備)했습니다. 저명(著名)한 예술가에 대한 우정출연(友情出演)의 섭외(涉外)도 우리 청년이 했습니다. 학회(學會)의 평화·문화·교육 활동, 무엇보다 선생님의 철학(哲學)과 행동(行動)을 용감하게 또 성실하게 끝까지 이야기해 갔더니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연주가(演奏家)나 가수(歌手)가 출연을 승낙(承諾)해 주었습니다.
실전 전날에는 놀랍게도 리허설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선생님 앞에서의 연주에 대비해 리허설에 달려와 주었습니다. 학회의 진실(眞實), 선생님의 위대함을 성실(誠實)하게 끝까지 이야기하면 진심(眞心)은 전해진다는 것에 진심으로 감동했습니다.
예술제에서 펼쳐진 연주(演奏)·연기(年忌)는 우리나라의 다양한 문화를 상징하는 ‘인간공화(人間共和)의 낙원(樂園)’ 그 자체였습니다. 1400명의 출연자가 참여한 피날레를 보신 후, 선생님께서는 저희를 향해 “청년부(靑年部)는 이겼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고 실감(實感)하니, 뜨거운 것이 복받쳐 올랐습니다.
“좋은 시민(市民)이어라”라는 이케다 선생님의 지침(指針)에, 똑바로 부응해 온 것이 싱가포르 창가학회(SGS, Soka Gakkai Singapore)의 긍지(矜持, 자랑)입니다. 그동안 정부(政府)의 요청(要請)으로 출연해 온 국가의 가장 중요한 행사인 ‘내셔널 데이 퍼레이드(NDP, National Day Parade, 독립기념일 행사)’도 올해로 기념할 만한 40회째입니다. 춘절(春節[춘지예], 음력설)을 축하하는 최대의 이벤트 ‘칭게이 퍼레이드(Chingay Parade)’에도 41회 출연. 이런 단체는 SGS 이외에는 없습니다.
샨무가라트남(Tharman Shanmugaratnam, 1957~) 대통령은 “SGS가 앞으로도 싱가포리언(Singaporian, 싱가포르 국적을 가진 사람)의 단결을 깊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완수해 줄 것을 확신합니다.”라며 우리의 활동에 깊은 공감(共感)을 보내주고 있습니다. (박수)
一, 싱가포르는 지금 저출산(低出産)·고령화(高齡化)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기당천(一騎當千)의 청년 육성에 각부(各部)가 총력(總力)을 기울여 지역에 맞는 형태로 유연(柔軟)하게 청년끼리 촉발(觸發)하는 장(場)을 늘리고 있습니다. 더욱이 좌담회(座談會)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춰, 가정방문(家庭訪問)을 통해 어느 누구도 방치하지(빼놓지) 않는 격려를 끈기 강하게 계속 하고 있습니다. 세계 어느 곳보다, 청년이 성장하는 조직(組織)을 싱가포르에 구축해 가겠습니다.
이케다 선생님께서 초창(草創)의 선배님들과 손으로(직접) 만들어(구축해) 주신 조직은 인구 600만 명인 우리나라에 있어서 약 4만 명까지 발전했습니다.
2000년의 세 번째 방문 때, 선생님께서는 호소해 주셨습니다.
“함께 광선유포(廣宣流布)의 길을, 영원(永遠)히 남깁시다!”라고.
우리는 “세계광포(世界廣布)의 모범(模範)인 ‘견루(堅壘)’ 싱가포르”를 모토로, 2030년을 향하여 또 그 앞으로, 선생님 직결(直結)의 SGS를 단연코 지켜, 대발전시켜 갈 결의입니다.
[기사 원문] https://www.seikyoonline.com/article/47B9676AD6354D996EBC2250FC55A7FE
첫댓글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매일매일 의노고에 진심으로 깊이깊이 항상 감사드립니다 노고많으셨습니다. 👍👍👏👏👏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남아시아 합동 연수때 우리 방면이 싱가포르를 응원하게 되었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