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캠버스 시절에, 우리들 청춘에 일대 파란을 일으킨
김일엽의 "청춘을 불사르고'
1962년 김일엽이 출간한 ‘청춘을 불사르고’ 는
당시, 수많은 여성들이 불가에 귀의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었고
1966년, 김일엽을 모델로한 가요 ‘수덕사의 여승’ 을 송춘희가 불러 크게 히트쳤고
지금도 애창곡으로 남아 널리 불리고 있음
김일엽 (1896년~ 1971년) 은
평남 용강에서, 아버지 김용겸과 어머니 이말대의 장녀로 태어났으며
본명은 원주(元周)
아버지 김용겸은 목사였는데, 5대 독자였고
어머니 이말대는 초혼에 상처한 22세 홀아비 김용겸과 결혼
결혼한 지 6년 만에 얻은 첫 자식이 김일엽
아버지 덕에 어렸을 적부터 서당에 다니며 한학을 배운 김일엽은
아홉살 때 구세소학교(救世小學校)에 입학했으며 1906년 삼숭보통여학교에 입학
그의 어머니는 그녀가 9살 때에, 동생 출산 후 바로 사망하여
아버지는 안악군에 살던 과부 한은총(韓恩寵)과 재혼
한은총은 의병장 정원모의 아들인 정기찬(鄭基贊)의 아내였으나
시아버지와 남편이 연이어 죽자, 김일엽의 아버지인 김용겸과 재혼
한은총은 본남편과의 사이에서 아들 정일형과 정신형을 두었는데,
큰아들인 정일형은 두고 어린 아들 정신형만 데리고 시집옴
'중 시켜 달라' 고 시위하던 중
"엄마가 보고 싶어 현해탄을 건너 왔다"는 열네살 소년이 찾아왔는데
이는, 김일엽이 일본 유학시절 일본 명문가 출신 오오다 세이죠와의 사이에 낳은
사생아 아들인 김태신이었음
그러나 일엽은 모정에 목말라 있는 아들에게
"나를 어머니라 부르지 말고 스님이라 불러라" 라고 냉정하게 말함
<>아들 김태신은 승려가 되는데 법명은 일당
김일엽이 병석에 누워있던 어느 날
오오타 세이죠가 수덕사를 찿아왔으나 일엽은 그를 만나주지 않았고
이후 오오타 세이죠는 외교관이 됐고,
평생 독신으로 살다가 1970년 독일에서 세상을 떠났음
그녀의 의붓 동생으로는 : 정치인으로 대성한 정일형(鄭一亨) 박사(8선 국회의원)
정일형 박사의 배우자 :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인 이태영(李兌榮) 변호사
<>정일형과 이태영, 두분 사이의 아들이 정대철(5선 국회의원)
정대철의 아들, 정호준도 지역구를 물러받아 국회의원이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