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집에서 밥 챙겨 먹기 귀찮아, 간단히 한 끼 해결하려고 아파트 단지 근처 상가를 배회하다가
상가 모퉁이 한적한 곳에 김밥집을 찾았다.
"저기 아주머니 우동하고 김밥 한 줄 주세요"
나를 등지고 김밥 말든 여인이 "네 앉으세요" 라며 고개를 돌리고 나를 보는 순간, "움찔하며" 표정이
좀 놀라는 모습이었다.
"아주머니 왜 그렇게 놀라세요? 제가 도둑놈같이 생겼나요"...하하하~
평소 농담을 좀 즐기는 편이라 그녀가 왜 놀랐는지 알고도 싶고, 쉰 중반에 제법 고운 모습으로 비쳐
왠지 말을 걸어 보고 싶었다.
"아..아녜요. 그냥 예전에 알던 사람과 좀 닮아서요...호호호"
부끄럼을 감추려는 듯 살며시 미소짓는 그녀의 해맑고 순박한 모습에 순간, 내 마음이 미세하게 요동
치는 느낌이다.
그녀와 첫 마주침은 그렇게 시작됐다.
김밥을 즐겨 먹는 편은 아닌데, 그녀 가게를 종종 찾게 되면서 한가할 땐 가벼운 대화도 나누고, 조금씩
단골이 되는 기분이었다.
그날은 휴일이라 모처럼 산에 가려고 김밥을 주문하러 그녀 가게에 들렀다.
주방 아주머니가 김밥을 싸고, 그녀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작은 목소리였지만, 얼핏 듣기엔
"그녀가 혼자란 걸" 감지했다.
그녀도 혼자란 걸 알게 된 후 가끔 들리는 김밥집은 내 일상에 "소소한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단정한 양복 차림의 50대 중후반 남자가 항상 혼자 와서 음식을 먹고, 김밥을 싸가는 모습을 보며 분명
그녀도 내가 혼자라는 걸 충분히 간파했을 거로 생각했다.
그래서 일까...모든 손님한테 다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유독 나에게 만은 언제나 부드럽고 다정한 표정과
말투로 반겨주는 것 같았다.
아직 연애엔 초짜지만, 그녀 역시 내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걸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종종 그녀 가게를 들락거리며 서로 가벼운 농담도 주고받는 제법 편해진 사이로 지내던 무렵.
봄비 내리던 늦은 밤, 직원들과 삼겹살 회식으로 술이 좀 취해 집으로 가는 길에 김밥도 살 겸, 그녀 얼굴도
볼 겸 가게에 들렀다.
가게 문 닫을 시간이라 주방 정리하던 그녀가 날 보더니, 이 시간에 어쩐 일이냐며 애교섞인 놀란 표정으로
묻는다.
"아 네...아침에 먹을 김밥 좀 싸 가려고요"...
"끝나는 시간인 줄 모르고, 너무 늦게 왔나 봐요...그냥 갈게요"
"아...아니에요... 금방이면 되니까 조금만 기다리세요"
"후다닥"... 뭐가 그리 급한지, 허둥거리며 정리했던 주방 재료를 다시 꺼내 김밥을 준비하는 그녀 표정이
무척 천사 같은 모습이다.
마침 술도 마신 김에 궁금했던 질문이 떠올라 미친놈처럼 실실거리며...
"저기...처음 가게 찾은 날, 절 보시고 움찔하며 놀라셨는데 왜 그랬어요?
"아...네... 실은 처녀 때 짝사랑했던 직장 상사와 많이 닮아서 순간 놀랬던 거에요"...호호호~
술기운 때문일까... 해맑고 순박한 그녀의 눈 웃음이 묘한 매력으로 비친다.
김밥 봉지를 들고 추적추적 봄비 내리는 상가를 돌아 호젓하게 걸으며, 카페 어느 여인이 올린
"비와 당신" 노래를 듣는데, 감미로운 목소리가 지금 내 마음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특히 "비가 오면 눈물이 나요"...이 대목에선 그냥 차가운 봄비에 흠뻑 젖어버린 느낌이다.
마음 한켠에, 그리움 하나가 차가운 봄비와 애처러운 맬로디에 마음은 몹시 추워졌지만, 김밥집
그녀의 따뜻한 미소가 허전했던 내 마음에 차곡히 쌓이는 기분이라 가슴은 훈훈해 진다...^^
(짙은 봄내음이 물씬 풍기는 5월의 훈풍에... 요즘 보이는 여인마다 다 곱게 보인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지금 내 마음이 외로움에 지친 "한 순간 감정"이었다는 것을 느끼는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지금의 설레는 감정은 좀 더 즐기고 싶다)
(글 속의 김밥집 여인이 아닌, 김밥집 이미지를 빌려온 컷이다)
첫댓글 잘 해보소~호호호
언제든 김밥 생각날 때 자유롭게 들리는 손님으로 남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답니다.
괜히 대쉬했다가 거절 당할 수도 있고, 수락한다 해도, 한 달에
한 두 번 쉬는 강도 높은 김밥 집 일에 저 때문에 쉴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뺐는 것도 같고...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가게에 몰입할 수밖에 없는 그녀의
직업 상, 평범한 데이트, 만남은 무척 어렵겠다는 생각이 듭니다...ㅎㅎ
그냥 지금의 므흣한 감정...즐기는 것만으로 만족해 할 생각입니다..~~
김밥집 접어들때면
내가슴은 뛰고 있었지♬♪
김밥을 말고있는 너의 모습을 한없이
바라보았지♬♪♭
뭔가. 설레이는 여운을 남겨두는 것도 좋치요~^^
잼나는 글 잘 읽었어요~^부러운 글솜씨~^^
맞아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설렘을 느낄 수 있는 상대.
유효 기간이 언제까지 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감정이 더 댕기는 군요...ㅎㅎ
김밥집 여사장이 알던 사람,
그 사람을 세븐힐스님이 닮았다니...
그것도 아주 움찔,
놀랄만큼 닮았다니...
이건 그린라이트 같습니다.
세븐힐스님도 그 여인에게
끌림이 있으시고...
후편이 기대됩니다~^^
제가 용기가 좀 부족하고, 거절 당할 불안감에 뭉그적거리는 타입입니다ᆢㅎㅎ
그래서 지금의 설레는 감정만으로 만족해 하며, 여유 있게 좀 더 감정의 흐름을 살펴볼 생각이에요~
이런 못난 스탈이라ᆢ
그동안 여복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ㅋㅋ
가까운곳에도 가슴설레이는 소소한 일상이 많은거 같습니다
우리의 주변은 자연스러운것이 자주 있네요
서로 궁금해 하고 안부정도로도 생활에 활력소가 될수있습니다
느낌있는 글을 기대해 봅니다
평범한 일상의 주변에ᆢ
유심히 들여다 보면, 흥미로운 일이 진행되고 있는 경우를 발견하곤 합니다.
우리 대부분은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지만, 세심하게 살펴보고 느껴보면ᆢ
뭔가 의미 있는 테마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 그런 소소한 부분을 들춰 내, 글로 표현하는 걸 즐기곤 합니다^^
김밥집이 어느 동넨가요
가까우면 저도 단골좀
해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