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훈, 직장(딸기탐탐) 24-18, 훈이 일하는 직장에서
“성훈 씨, 심는 것도 한번 해 볼래요?”
김혜진 대표님이 이야기한다.
근래 모종 심을 자리 구멍 뚫는 일을 맡아 거들었다.
새로운 작업 제안이 반갑다.
전성훈 씨도 새 일을 마다하는 사람이 아니니 미소로 화답한다.
낯선 곳에 가면 동행한 사람 가까이에 있으려는 걸 보고 익숙한 것을 선호하는 사람인가 했지만, 아닌 것 같다.
선호하는 장소, 선호하는 메뉴, 선호하는 사람이 있지만 여느 사람의 정도와 다르지 않다.
먼저 시도하지는 않지만 무언가 설명하고 권하면 선뜻 응한다.
무엇이든 거침없이 하고 능숙해 보이게 한다.
“구멍 뚫은 데 있죠? 거기에 이 모종을 심으면 돼요.
여기 보면 이렇게 생긴 부분 있죠?
이걸 꽃대라고 하는데, 이 꽃대가 바깥쪽, 그러니까 우리가 있는 방향으로 향하게 심어야 해요.
그것만 기억하면 어렵지 않아요.”
“네에. 네에.”
모종 하나를 집어 건넨다.
전성훈 씨가 받아다 심는다.
꽃대 방향까지 맞추기는 아직 어려운가 보다.
이번에는 꽃대 방향까지 고려해 모종을 건넨다.
별말 하지 않아도 그대로 심으면 옳은 방향이 된다.
드문드문 심는 중에 방향이 틀어지면 이야기해서 잘 맞추도록 거든다.
바구니를 씻는 것도 구멍 뚫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지만,
아무래도 이건 농사에 직접적인 과정인 것 같아 그동안 했던 것보다 더 정성 들여 살피게 된다.
전성훈 씨도 하나하나 신중하게 작업한다.
“성훈 씨, 이거 받아요.”
전성훈 씨가 장갑에 묻은 먼지를 털고 대표님에게서 샤인머스켓 상자를 받아 든다.
딸기농장에서 웬 샤인머스켓인가 하던 참에 대표님이 설명한다.
“별건 아니고 추석이고 해서 성훈 씨 드리는 거예요. 근처 농가에서 샀어요.”
“네에. 네에.”
구인 소식을 들은 것부터 면접을 보게 된 일, 출근하게 된 것, 전성훈 씨가 감당할 만한 일을 살펴 주시는 것,
조금씩 다른 일을 경험하게 제안해 주시는 것까지 딸기탐탐에서 있었던 일 가운데 어느 하나 감사하지 않은 게 없다.
그런데 명절이라고 선물까지 받았다.
그동안 일한 데 비해 과분하지 않나 싶다가 내 몫이 아니니 그만 생각과 말을 삼키기로 한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는다.
이제 어쩌면 좋을지 전성훈 씨와 궁리한다.
직장에서 받은 명절 선물, 의미 있게 쓸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받은 사람이 먹을 수도 있다.
전성훈 씨는 후회 없이 맛있게 먹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하면 얼마쯤 아쉬움은 남을지 모른다.
후회도 아쉬움도 없으면 좋겠다.
“성훈 씨, 직장에서 받은 샤인머스켓 말인데요. 성훈 씨가 다시 선물하면 좋겠는데요. 어때요?”
“네에. 네에. 포도.”
“누구 드리면 좋죠? 명절이니까 가족? 할머니? 고모? 동생?”
“네에. 할머니. 할머니 주세요.”
‘할머니 뵈러 가자’는 뜻의 ‘주세요’겠지만, 이번에는 ‘주세요’가 제때 쓰였다.
‘할머니 드리자’라고 들리니 더 좋다.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게다가 함양에 있는 할머니 댁이라면 마음만 먹으면 오늘이라도 바로 다녀올 수 있다.
시간이 지난 오후, 전성훈 씨가 함양에 방문했다.
샤인머스켓 한 상자와 할머니 드리려고 산 양산을 손에 쥐고 할머니 댁으로 향한다.
“할머니, 할머니!”, “성훈 씨, 할머니 안 계시나 봐요. 전화해 볼까요?”
“네에. 할머니, 할머니요.”
“아이고, 할머니! 여기 계셨네요.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이게 누구고. 선생님 왔어요? 아유, 우리 훈이도 왔네. 그래, 그래.”
고개를 돌려 보니 마당 한쪽에서 할머니가 무언가 정리하고 계셨다.
앉아 계셔서 손자는 할머니를 미처 보지 못했고,
할머니는 집이라 보청기를 착용하고 있지 않아 손자가 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지난 어버이날 할머니 찾아다녔던 추억이 새록새록 피어오르려던 찰나, 다행히 뵈었다.
할머니를 기다리는 동안 안방에 앉아 사진을 구경한다.
전성훈 씨가 별말 없이 수많은 가족사진 가운데 하나를 정확히 짚어 가리킨다.
손끝을 따라가니 결혼사진이다.
아! 동생 아름 씨 결혼식!
알은체하며 묻는다.
“결혼사진이네요? 성훈 씨 동생 결혼식이죠?”
“네에. 아름이. 아름이.”
“그때 성훈 씨 결혼식 다녀온다는 이야기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성훈 씨도 있어요?”
“네에.”
이번에는 자기 얼굴을 가리킨다.
다른 사진도 많지만, 전성훈 씨에게는 그 사진이 가장 애틋한가 보다.
손님에게 집 소개해 주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오랫동안 이어지는 결혼식 이야기에 집중하려 애썼다.
“그래, 갑자기 무슨 일 있어요?”
“아니요, 할머니. 성훈 씨가 할머니 뵙고 싶어서 왔습니다. 아직 날이 덥네요. 9월인데요.”
“그러니까 말이요. 내 이래 더운 가을은 처음이라. 이제 추석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 덥네.
성훈이도 선생님도 건강 잘 챙기세요. 저거는 뭐요? 성훈이가 할머니 만나러 온다고 사 온 거라?”
“아! 성훈 씨, 말씀드릴까요? 아니요, 할머니. 성훈 씨가 직장에서 받은 거예요.
이제 곧 추석이라고 명절 선물로 주셨는데, 할머니 드리면 좋겠다고 해서 가지고 왔어요.”
“아이고! 우리 훈이 일하는 직장에서 받았나? 아이고, 그래. 잘했다, 잘했어.
우리 훈이가 일해서 선물도 받고. 착하다, 착해.”
할머니 드리면 좋겠다고 고른 고운 색 양산을 펼치는 할머니와 전성훈 씨 직장생활을 두고 이런저런 소식을 전한다.
‘야가 할 수 있겠나? 옳게 해야 될 긴데. 그래도 선생님이 도와주고 하니까는 하지.’ 하시면서도
흐뭇한 미소는 감출 길이 없다.
이 순간 전성훈 씨는 얼마나 뿌듯할까?
지금 이 기분을 마음껏 누리기 바랐다.
“잘됐네. 안 그래도 이제 곧 추석이라고 장에 갈까 했는데.
훈이 고모도 온다 하고 훈이도 오고 해서 과일이라도 사야 하나 했는데 이거 먹으면 되겠네.
훈이 잘했다. 착하다.”
할머니가 냉장고를 열어 손자가 가지고 온 과일 상자를 넣는다.
이리저리 자리를 맞춰 가며 넣는 것을 지켜보던 손자가 할머니 옆으로 가 상자를 들고 자리 잡는 것을 돕는다.
무척 듬직해 보인다.
“할머니, 그러면 한 상자 더 가지고 올까요? 차에 바로 있어요.”
“한 상자를 더? 아이고, 무신. 괜찮아요. 선생님 먹어요.”
“성훈 씨가 받은 건데요. 원래 돌아가는 길에 울산에 고모 계시잖아요.
택배로 보낼까 했는데, 먹는 거라 제때 갈까 싶더라고요.
며칠만 있으면 할머니 댁에 다 모이니까 같이 드시면 좋지 않을까요?”
“그런가? 그래, 있으면 저그 고모도 주고 훈이도 먹고 하지. 이래 다 주고 가도 되는가 모르겠다.”
샤인머스켓 상자도 두 배, 할머니 미소도 두 배다.
이대로 돌아가기 아쉬워 전성훈 씨가 저녁 식사를 대접하기로 했다.
연신 갈비탕을 외치는 손자 손길에 못 이긴 듯 집을 나서는 할머니와 손자 사이로
늦여름인지 초가을인지 모를 날, 보리차 색 햇볕이 내려앉는다.
오늘 아침, 전성훈 씨 출근을 도울 때까지 계획하지 않았고 예상할 수조차 없었던 일이다.
김혜진 대표님의 명절 선물, 함양 할머니 댁 깜짝 방문, 취업 기념 할머니와 저녁 식사….
포근한 햇살에 비친 아름다운 마을을 눈에 담으며 앞선 두 사람을 따라 걷는다.
2024년 9월 9일 월요일, 정진호
‘할머니 주세요.’ 성훈 씨 말에 곧장 할머니 댁에 다녀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직장에서 받은 선물, 할머니께서 또 손자를 대견해하셨겠습니다. 신아름
할머니께서…. 할머니께서 손자 성훈 씨에게 ‘아이고, 그래. 잘했다, 잘했어. 우리 훈이가 일해서 선물도 받고. 착하다, 착해.’ 하셨다…. 월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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