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피땀, 2주 박수
극한 고통 이기고 기쁨 준 영웅들 지속적 관심으로 투혼 북돋워야
몇 년 전 일본 출장 때 일이다. 현지 언론은 온통 일본 육상 남자 100m에서 처음으로 마의 10초 벽이 깨진 사실을 대서특필했다. 기류 요시히데의 9초98 기록도 놀라웠지만 레이스가 펼쳐진 후쿠이 육상경기장에 1만 명 가까운 관중이 들어찬 모습이 경이롭기까지 했다.
8일 폐막한 도쿄 올림픽은 코로나 사태로 96% 경기가 무관중으로 치러졌다. 텅 빈 객석에 익숙한 한국 비인기 종목 선수들에게는 별 낯설 게 없는 환경이었다.
한국 근대5종 첫 올림픽 메달을 딴 전웅태는 지난해 한 방송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애달픈 처지를 털어놓았다. “사람들이 근대5종을 잘 모른다”는 고민을 말하자 진행자 서장훈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게 답”이라는 처방을 내놓았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깜짝 주목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이번엔 다를까.
여홍철은 기자가 처음 취재했던 올림픽인 1996 애틀랜타 대회 체조 남자 뜀틀에서 은메달을 차지했다. 한국 체조 최초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가 된 그는 시상대에서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2차 시기 착지 실수로 세 발짝 물러나면서 0.031점 차로 금메달을 놓친 아쉬움이 컸다. “부모님과 감독님께 죄송할 뿐이다”라는 말을 반복하던 그는 눈시울을 붉혔다. ‘은메달에 그쳤다’, ‘통한의 눈물’이란 표현이 기사에 등장했다.
도쿄 올림픽 체조 여자 뜀틀에서 여홍철의 딸 서정이 19세 나이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여자 체조 선수 최초로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된 그는 시상대에 올라 활짝 웃었다. 어떤 회한도 없어 보였다.
1년 연기됐다가 열린 도쿄 올림픽은 부정적인 여론이 많았다. 막상 개막 후 17일 동안 열기는 폭염만큼이나 뜨거웠다. 올림픽의 주인공은 어렵게 무대에 오른 선수들이라는 사실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다.
한국은 금메달 7개, 톱10 진입의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그러나 성적에 대한 시선은 25년 세월을 두고 메달을 딴 부녀의 상반된 반응처럼 달랐다. 최선을 다해 후회 없이 쏟아낸 열정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하다. 체조, 수영, 육상, 근대5종 등은 불모지에서 값진 성과를 거뒀다. 높이뛰기 우상혁은 24년 만에 한국 신기록을 1cm 넘겼다. 여자 배구의 기적 같은 ‘해보자’ 4강은 아직도 가슴을 뛰게 한다.
이번 대회는 엘리트 스포츠와 생활 체육의 통합, 시도체육회 회장 직선제 시행 후 처음 맞은 올림픽이다. 새로운 시스템이 정치 논리에 휘말려 오히려 발전을 저해한다는 지적도 있다. 양궁(현대차), 펜싱(SK)에서 보듯 장기 투자가 국제 경쟁력의 발판이라는 건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몇몇 뜻있는 기업인, 지도자에게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
“훈련하다 보면 근육이 터질 것 같고, 숨이 턱까지 차올라 주저앉고 싶은 순간이 온다. ‘이 정도면 됐어’, ‘다음에 하자’는 말이 나온다. 99도까지 온도를 올려놓아도 1도를 넘기지 못하면 물은 끓지 않는다. 마지막 1도, 포기하고 싶은 1분을 참아내야 다음 문이 열리고 내가 원하는 세상으로 갈 수 있다.”
김연아의 에세이에 나오는 내용이다. 도쿄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은 자신의 한계에 맞서 마지막 1도를 채우려고 오랜 세월 피, 땀, 눈물을 흘렸을 게다. 무한능력의 투혼을 보인 그들 모두가 슈퍼 히어로였다.
P.S. 올림픽에 무심했던 가족, 지인들이 대회가 끝나 허전하다고 한다. 걱정 마시라. 베이징 겨울올림픽이 6개월 남았고, 파리 올림픽도 3년 후면 열린다. 변함없는 애정과 관심을….
김종석 스포츠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