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훈, 직장(딸기탐탐) 24-19, 땀 흘리는 일
9월 10일 화요일.
주룩주룩 땀이 흐른다.
전성훈 씨가 새로운 일을 맡았다.
이번에는 모종을 옮기는 작업이다.
육묘장에서 농로 건너 비닐하우스로 운반하는 일이다.
대표님과 사장님이 방법을 알렸고, 실제 과정마다 궁금한 것을 묻고 설명 듣는 건 새로운 분이 도왔다.
짐작하기로는 두 분 딸인 것 같다.
육묘장에 가면 쌓여 있는 모종이 있다.
심었던 것 가운데 쓸 것을 따로 빼 둔 것인데 나머지는 나중에 자라면 쓰게 되는 건지,
이번에 발탁되지 않으면 쓰지 않는 건지, 사용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건지는 모르겠다.
언제 전성훈 씨를 앞세워 물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동행하면서 궁금해진 일에 속해 아주 모르기는 아쉽다.
바구니에 비닐이 담겨 있다.
짐작하기로는 앞에 전성훈 씨가 씻었던 그 바구니인 것 같다.
비닐에 모종이 잘 담기도록 차곡차곡 쌓는다.
비닐 끝을 몇 번 말아 입이 다물어질 정도를 남겨 두고 가득 차면 다음 바구니로 넘어간다.
바구니가 대여섯 개쯤 되면 육묘장 밖으로 가지고 나온다.
그리고 이동식 카트에 실어 비닐하우스 앞으로 배달한다.
비닐하우스 앞에 비어 있는 바구니가 있다면 수거한다.
비닐 안에 남은 흙은 한 곳에 털어 모은다.
모은 흙이 가득 차면 농장 구석 바닥에 붓는다.
여기까지 끝내고 돌아온 바구니는 다시 모종을 담는 데 쓴다.
모종이 예쁘게 생겼다.
전성훈 씨에게 담도록 권했으나 차곡차곡 쌓기는 어려워했다.
방법을 바꾸었다.
전성훈 씨가 하나씩 집어 나에게 주면, 내가 자리를 잡아 쌓으며 담았다.
바구니 채우는 일은 비교적 간단했지만, 배달하러 바구니를 옮기는 일에 수고가 필요했다.
9월 중순이 다 되어 가지만 아직 한낮은 여름 날씨인 데다 몸 쓰는 일을 하니 조금만 움직여도 뚝뚝 땀이 흘렀다.
땀 흘려야만 열심히 일한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일했는데 땀까지 흐르면 기여한 것에 비해 더 고생한 것처럼 보인다.
전성훈 씨의 땀, 동행한 사회사업가의 땀이 우리 자신에게 어떤 증거로 남는 것 같아 즐거웠다.
9월 11일 수요일.
모종 옮기는 작업에 두 번째로 참여했다.
전날 설명을 들어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고 있다.
따로 묻지 않아도 무엇을 해야 할지 아는 일에 만족을 느낀다.
전성훈 씨도 같은 마음이기 바랐다.
과정은 알지만 일하는 데 도움이 되는 세세한 팁까지 단번에 깨우치기는 어렵다.
같은 데서 일하는 동안 대표님 따님이 여러 일을 알려 주었다.
“담을 바구니는 다른 바구니를 두 개 정도 깔아 두면 좋아요. 그러면 허리를 안 숙여도 되거든요.”,
“오늘은 어제랑 다른 데로 가지고 가면 돼요. 나중에 옮길 때 제가 알려 드릴게요.”,
“흙을 비워야 가벼워져서 나중에 안 힘들어요. 가지고 돌아오기 전에 입구에 있는 비닐에 모아서 버리면 돼요.”
전성훈 씨는 때마다 ‘네에’ 하고 대답했다.
출근한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 언젠가 대표님이 질문한 적이 있다.
기억하기로는 여기 일이 전성훈 씨에게 잘 맞는 것 같은지 물었다.
혼자서 하는 일이 있고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일이 있는데, 여기서는 많은 일을 혼자 하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같은 공간에 함께 있더라도 같은 작업을 함께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과 반드시 함께해야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 점이 전성훈 씨에게 잘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만약 누군가 가까이 있거나 주의해야 할 상황이었다면 나도 모르게 전성훈 씨를 말렸을지도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예를 들어 전성훈 씨가 어느 카페나 식당에서 일한다면 혼잣말하지 않도록 권하거나
묻지 않고 모르는 사람 손을 잡으면 안 된다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대개 만류하고 제지하는 일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자유롭다.
전성훈 씨가 자기에게 편한 모습을 억지로 참거나 바꾸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생각하는 것을 열심히 말해도 괜찮고,
관심 있는 사람 손을 잡고 자기 눈을 가려도 모두 전성훈 씨를 아는 사람일 테니 놀랄 일이 적다.
대표님과 사장님을 제외하면 처음으로 새로운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이다.
그동안 전성훈 씨가 농장에서 맡았던 작업 가운데서 유일하게 누구와 함께하는 일인 것 같기도 하다.
따님은 모종을 캐고 전성훈 씨는 바구니에 담았다.
아무래도 담는 일에 품이 덜 드니 멀리서 시작해도 점점 모종 캐는 사람 가까이에 붙게 되었다.
처음으로 다른 사람이 있어 노심초사할 상황이 생긴 것이다.
전성훈 씨는 열심히 무어라 말했다.
추측하기는 어렵지만 지금 생각하고 있는 즐거운 일일 것이다.
말려야 하나 하다가 그대로 두었다.
따님도 아무런 내색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어디서든 약자를 적극적으로 돕는 사람만이 좋은 사람인 줄 알았다.
사회사업가로 일하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감사하게 된다.
보조기를 사용하거나 혼자서 이야기하거나 큰 소리로 이야기해도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사람들이 고맙다.
꼭 나쁜 마음이 아니더라도 궁금하거나 관심을 가질 법한 상황인데 그러지 않는 데는 의식과 노력이 있다는 걸 안다.
타인의 의도된 무관심으로 약자는 자신을 바꾸지 않고 오늘을 산다.
9월 12일 목요일.
전날 비가 와서 바닥이 질다.
물웅덩이를 피하려고 해도 아주 피하기 어렵다.
직장에 동행하며 알게 된 사실 가운데 하나는 전성훈 씨가 깔끔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때로 망설임 없이 샤워를 건너뛰는 것만 보아서 그런지 깔끔하다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옷에 조금만 뭐가 묻어도 금세 물로 닦아 낸다.
일을 마친 후에는 꼭 비누로 손을 씻는다.
그 때문인지 처음으로 맡았던 작업인 바구니 씻는 일에도 비누를 써서
하얗고 향기로운 거품이 농장 배수로를 따라 하염없이 흘렀다.
이후에 사진을 보고 대표님이 바구니 씻을 때 비누는 쓰지 않아도 된다고 알려 주기도 했다.
이미 발은 반쯤 물에 잠겨 걸을 때마다 질퍽질퍽하다.
신발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이쯤 되니 전성훈 씨도 편하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은 모양이다.
평소였으면 얼른 밖으로 나가 신발을 벗고 정비했을 텐데, 오늘은 개의치 않고 일한다.
아예 젖어 버려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우산을 접어 버리는 날과 같은 마음일까?
땀 흘리니 좋다.
신발이 물에 젖으니 좋다.
힘들고 고생하니 좋다.
전성훈 씨 삶에 뽀송뽀송한 날이 전부가 아니어서 좋다.
감사하다.
2024년 9월 12일 목요일, 정진호
농장 대표님과 사장님께서 성훈 씨가 할 만한 작업을 궁리하고 제안하시면, 사회사업가 정진호 선생님은 성훈 씨가 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고 제안하고, 전성훈 씨는 자기 의지와 손길과 요령으로 작업하는군요. 삼위일체! 신성 모독이라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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