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치(훗날 여태후)
가난한 평민출신에 사십에 가까운 나이에도 건달생활,사수정장(열개 리에 하나의 정을 두고 이 정을 관리하는
진나라 최하급관리.지금으로 치면 면장)일을 하던 유계(훗날 유방)의 첫째 부인으로
본인은 유력자 집안인 여공의 딸이었으나 가난한 사수정장 유계에게 시집을 가 별볼일 없고 가난하던 시절을 함께함.
유계가 군사를 일으키고 진을 공격하러 갈때 집을 지키고 농사일을 하며 유계의 아버지 유태공과 아이들을 보살핌.
초한전쟁때 유계의 아버지 유태공과 함께 항우에게 인질로 잡혔는데
풀려날 몇년동안 적진에 있으면서도 유태공을 곁에서 극진히 잘 보살핌.
척희(훗날 척부인)
진나라 토벌을 위해 군사를 일으키고 원정을 떠난 유계가 원정길에서 만났다고도 하는 둘째 부인 척희.
어린 나이에 애교도 많아 유계의 총애를 받고 아들 유여의를 낳는다.
첫째 부인 여치가 항우에게 인질로 잡혀 있을때 유계를 곁에서 모셨고
수시로 아들 여의를 태자로 세울것을 간청했다고 한다.
유계가 이름을 알리고 제후,왕일때 곁에 있었다.
하지만 중국을 통일하고 황제가 된 유방이 재위 7년만에 죽자,
상황은 급변. 여태후의 아들 유영(혜제)이 황제에 오르고 척부인에게 고통이 시작된다.
척부인의 아들 유여의를 여태후가 죽이려고 하였으나 우애가 깊었던 황제 혜제의 보호에 의해 번번히 가로막히지만
혜제가 사냥을 나간 틈을 타 유여의를 독살하고, 이어 척부인에게 약을 먹여 벙어리로 만들고 귀를 잘라 귀머거리로 만들고
눈을 도려내고 두손과 두 발을 잘라 변소에 던져 '인간돼지'라고 칭했다고 한다.
며칠후 혜제는 이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병이 생겨 정무를 포기하고 주색에 빠지며
재위 7년, 23세의 나이에 사망하자. 혜제의 아들 소제를 황제로 옹립하고 본인은 태황태후가 되고
각지에 제후로 있던 유방 서자들을 겁박하고 암살해 여씨 세력을 키웠다.
박희 (훗날 효문태후)
위나라 왕 위표의 후궁으로 위표가 한신에게 패하여 포로가 되면서
한의 직조실(옷감 짜는곳)에 들어가 일했다. 어느날 직조실에 들어간 유방이 박희를 보고 후궁으로 들였지만
해가 지나도록 관계를 맺지 않았다. 훗날 한번 잠자리를 함께 해 유항을 낳았으나 이후 남편 유방을
거의 보지 못 했다고 한다. 유방이 죽자 여태후는 유방의 총애를 받은 후궁들을 다 유폐하고 나오지 못하게 했으나
박희는 유방의 총애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유폐하지 않고 대나라 왕으로 있던 박희의 아들 유항에게 보내
대나라의 왕태후로 삼았다.
기원전 180년, 여씨 일족이 주발등의 쿠데타로 몰락하자 아들 유항이 한나라 5대 황제로 옹립되 황태후가 되어 장안으로 돌아간다.
황태후가 된 이후에도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지 않아 주위에 존경을 받았고
아들 유항(한문제) 재위중 세금 대폭 감면,직접 농업을 장려했으며 화려한 건물을 신축하지 않는 등
검소한 생활을 하였으며 가혹한 형벌 폐지,흉노와 화친을 해 민생 안정을 이루었고 그의 아들 6대 경제도 선왕의
정책을 잘 이어 나가 문제와 경제의 치세를 '문경의 치'라 부르며 풍요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말로 사용했다
그리고 경제의 아들로 7대 한무제는 영토,국력에서 전성기를 맞는데 동쪽으로 왕검성을 함락하고 고조선을 멸망시킨
사람이 바로 이 한무제..ㅜ.ㅜ
(결국 박희가 최후의 승리자)
첫댓글 오 흥미로워요 여태후 진짜 잔인했네요 ㅜ
이런글 너무좋아요-!
학교 때, 세계사 선생님께 처음 척부인 얘기를 듣고 너무 충격적이어서 며칠 동안이나 계속 생각이 났던 기억이 나네요.
인간돼지 ㅎㄷㄷ 무섭네요 글 재밋게읽었습니다
이런 역사 얘기 꿀잼ㅋㅋㅋㅋ중국사는 내용이 방대해서 각잡고 봐야하는데ㅋㅋㅋ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