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계화도 쌀 / 박성우
늦은 귀가를 하는 길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집에 들어가려는데 문 앞에 쌀자루 하나가 놓여 있었다 시골 방앗간에서나 볼 법한 나일론 쌀자루, 시골집 노모가 보내셨나? 쌀자루를 끙끙 들어 현관 앞 거실에 옮겨놓고 가만 살펴보니 105동으로 가야 할 쌀이 106동인 우리 집으로 왔다 보낸 이의 주소도 처음 보는 전북 부안 계화 소재였다 나일론 쌀자루에 쓰인 원래의 손글씨를 보니 5인지 6인지 애매하게 적히긴 했다 부안 계화도 쌀이라면 밥맛은 어지간하겠군, 시간은 벌써 밤 열시를 넘기고 있었고 더 늦기 전에 나는 곧장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쌀자루를 둘러메자 허리가 휘청했고 후들후들 옆 동으로 옮겨가 11층에서 내렸다 동만 다르고 호수가 같은 집 앞에 쌀자루를 부려놓고 초인종을 눌렀다 혹시, 쌀 시킨 적 있나요? 우린 그런 적 없는데요, 중년 사내의 목소리에는 경계심 가득한 퉁명스러움이 잔뜩 섞여 있었다 남의 집 문 앞에서 졸지에 난감해진 나는 잠시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방에서인지 화장실에서인지 나온 듯한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반갑게 들려왔다 여보 내가 쌀 시켰어, 부부는 문을 열어주었고 가까스로 나는 쌀자루를 집 안에 들여놓을 수 있었다 너무 늦은 시간에 방문해서 그런가, 중년 내외는 뭔가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봤지만 딱히 나는 개의치 않고 공손한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그것 좀 들었다고 땀이 다 나나, 넥타이를 풀어 들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나는 양복에 묻은 먼지를 톡톡 털어보면서 집으로 향했다
- 《문학과의식》 2021년 가을호
* 박성우 시인 1971년 전북 정읍 출생. 원광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같은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2000년 〈중앙일보〉신춘문예에 시 당선. 200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당선. 시집 『거미』 『가뜬한 잠』 『자두나무 정류장』 『웃는 연습』 동시집 『불량 꽃게』 2007년 신동엽창작상, 2018년 백석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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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의 묘미는 기념사진 촬영하듯이 하는 게 아니라 스냅사진 촬영하듯이 할 때에 맛볼 수 있다. 스튜디오에서 잘 설정된 포즈로 찍은 사진처럼 애초의 의도가 잘 담겨진 시가 좋을 때도 있지만, 따분하고 지루한 일상을 롱테이크로 촬영한 영상처럼 그대로 묘사한 시가 좋을 때도 있다. 왜냐하면 반복과 권태가 ‘일상’의 본질적 속성이지만 그 ‘일상’을 그대로 재현하면 낯설어지기 때문이다.
롤랑 바르트의 『글쓰기의 영도』에서 ‘중립적인 글쓰기’가 지시하는 바도 이런 글쓰기의 근방일 것이다. 그리고 ‘시도 없고 시적인 것도 없다’고 갈파했던 이승훈 시인의 『영도의 시쓰기』 역시 이 어름일 것이다. 아무런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느슨한 시는 그 느슨함으로 시의 고삐를 당긴다. 위 시가 그렇다.
인용한 부분은 이 시의 전반부이다. 전반부만 봐도 후반부가 어떻게 이어질지 짐작하는 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시의 극적상황이 단순하고 특별한 반전도 없다. 내용은 별 게 아니다. 화자가 밤늦게 퇴근해보니 아파트 문 앞에 쌀자루가 하나 배달돼 있었다는 것이고, 끌고 들어가 자세히 보니 “동만 다르고 호수가 같은 집”으로 갈 쌀이 잘못 배달되었다는 것이고, 다시 그 쌀을 메고 본래 주인을 찾아가서 돌려주었다는 것이다. 이 시의 끝부분은 이렇다.
중년 내외는 뭔가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봤지만 딱히 나는 개의치 않고 공손한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그것 좀 들었다고 땀이 다 나나, 넥타이를 풀어 들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나는 양복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보면서 집으로 향했다
간이 맞지 않은 음식처럼 심심하다. 시를 읽고 나면 뭔가 개운한 맛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시는 밍밍한 맛으로 느껴지겠지만, 개운한 맛을 살리기 위해 우리 시가 치러야 했던 대가는 가볍지 않다.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가면, 노벨문학상 받은 시들을 한번 읽어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대부분의 노벨문학상 수상작들은 개운하기는커녕 지루할 정도로 밍밍하다. 무슨 기준으로 이런 시를 쓰는 시인에게 노벨상을 주는지 의심해보지 않은 사람이 드물 것이다.
이를 테면 이 시도 노벨문학상 수상작 스타일이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처럼 일상의 모습을 그대로 가져옴으로써 낯설어지게 하는 것. 시는 멀리 있는 무엇이 아니라 일상의 한토막이라는 시인의 시론이 그대로 투영된 게 아닐까 한다. 이런 시의 성패도 핍진한 관찰과 묘사의 성공 여부에 달려있다. 이를테면 조고각하(照顧脚下), 멀리 볼 게 아니라 ‘발밑을 잘 살펴보라는 것’, 부처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시도 바로 거기에 있다는 거다. 다시 말해 가장 위대한 시는 일상 속에 있고, 가장 훌륭한 시론은 일상의 날렵한 재현에 있다는 것.
- 김남호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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