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훈, 직장(딸기탐탐) 24-25, 모은 것 쓸어 담기
비닐하우스 바닥을 쓴다.
처음에는 한 동 한 동 열심히 쓸면 시간이 들어도 언젠가 마무리되겠다고 생각했다.
같은 작업을 반복하는 전성훈 씨와 몇 번 동행하며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고랑과 고랑 사이 통로 하나를 지나면서 쓸어야 하는 곳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통로를 중심으로 왼쪽 모종 아래, 가운데, 오른쪽 모종 아래다.
바퀴 달린 카트를 끌고 이동할 수 있게 레일이 설치되어 있는데,
레일이 가로막힌 곳까지를 임의로 ‘한 구역’으로 칭한다.
한 구역은 대여섯 발자국쯤 된다.
왼쪽, 가운데, 오른쪽을 포함해 고랑과 고랑 사이, 비닐하우스 입구부터 안쪽 끝까지
‘한 줄’을 쓰는 데 한 시간쯤 걸린다.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든다.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 일하는 전성훈 씨와 동행하면
하루에 한 줄 반에서 두 줄 정도 청소할 수 있다.
한 동에 네 줄인 비닐하우스가 많으니 한 동을 청소하는 데
짧게는 두 번, 길게는 세 번 출근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모종을 그대로 두면 끝나는 게 아닌가 보다.
농장에서 어떤 작업으로 모종을 꾸준히 살피는 것 같고, 그러면 바닥에 다시 흙이 떨어지게 된다.
앞의 출근으로 청소를 마쳤다 싶은 곳도 다시 가 보면 청소해야 하는 구역으로 바뀌어 있다.
깔끔하게 마무리한 후에 전성훈 씨가 자랑스럽게 대표님에게 보고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러기 어려운 건 아쉬운 일이다.
그래도 이 일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흙이 떨어져 있다고 해도 아주 쓸지 않았을 때보다는 깨끗하다.
다른 작업보다 빠르게 할 수 없다고 해도 전성훈 씨 지나간 길이 정돈되는 건 흡족한 일이다.
빗자루와 쓰레받기가 크다 보니 세세하게 쓰는 건 어려워 보인다.
대신 모은 것 쓸어 담는 건 전성훈 씨가 잘 감당할 수 있다.
돕는 나보다 나아 보인다.
그래서 그 일은 전성훈 씨가 하고, 어려워하는 일은 돕기로 한다.
레일이 가로막힌 ‘한 구역’ 단위로 쓸고 흙을 모아 두면,
전성훈 씨가 비닐이 담긴 쓰레기통을 들고 옮겨 다니며 모아서 버린다.
가득 찬 비닐을 비우는 것까지 전성훈 씨 몫이다.
여기서는 전성훈 씨 작업보다 내 작업에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는데,
담당한 일이 생길 동안 전성훈 씨는 자유롭게 청소한다.
흙이 모이는 것 같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쉬지 않고 열심히 쓸고 또 쓴다.
모든 과정의 결과를 돕는 사람이 담보할 필요는 없다.
이렇게 하면 좋겠다고 거들고 싶은 말이 불쑥 차올라도 꾹 참고 삼킨다.
흙이 모이지 않으면 어떤가?
저렇게 진중한 얼굴로 허리 숙여 집중하는데….
지금 나는 그것으로 족하다.
감사하다.
2024년 10월 4일 금요일, 정진호
해도 해도 줄지 않는 게 여느 직장인의 형편과 비슷해서 반갑습니다. 성훈 씨 할 일과 직원이 도울 일을 구분해서 돕는 뜻과 유익을 짐작합니다. 거기에서 ‘족하게 여기고 감사하는’ 마음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월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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